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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오마이뉴스에서 2006년이 된 시점에서 2005년도 작품 중,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을 추천했다. 시 분야에서, 이 시집이 추천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시였으면 2005년도 2006년에 다시 추천했겠나 싶어 최영미가 누구인지, 돼지들에게란 제목이 무얼 뜻하는 지도 모르고 주문을 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 이 시집, 뒤 표지에 이렇게 써져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 읽으면서, ''후훗~~ 나도 모르게 조롱하듯 웃으면서 통괘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회란 생각보다 정의보다는 거짓, 위선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고 사기가 흉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요즘... 이 시는 돼지와 진주목걸이를 이용해 수준높게 거짓과 속임수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시집을 사기 전에 가졌던 생각, 맑고 사랑에 대한 시집 속에서 괜찮은 문구를 섭렵하려고 했었지만... (그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그 대신 남들 앞에서 사회 속에서는 짓지 못하는 조소와 조롱을 시를 읽는 도중에 스스로 내뱉어 보았다. 과거 국어, 문학 교과서 속에서 항일, 독립, 독재타도, 민주주의에 관한 시들을 접하면서 시인과 시가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서도 내가 접해보진 시대여서 큰 반향을 못 느꼈지만.. 이 시집 속에서는 내 마음과 합일 되는 그 지점을 맛보았다. [인상깊은구절]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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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5년.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도 헤아림이 불가능한 시절 나온 책을 읽는다. 늘 읽어도 깊은 뜻을 헤아리기 힘들었던 시라는 장르를 오늘은 왜 읽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접한 하나의 소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마침내 시름은 끝났다. 신음하던 이게 통쾌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 모두가 우러러 보았으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도 있는 유력한 후보로 칭해지던 이의 민낯을 이런 식으로 알게 될 거라곤 기대치 않았다. 싸움은 외로웠다. 설마,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설령 그렇더라도 굳이 이 시점에서 파헤쳐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식의 회의론도 접했다. 사람들은 폭력에, 권력에 관대했다. 왜 아무도 하지 않는 싸움에 시인은 나선 것일까. 세상에 많고 많은 아름다움을 제껴둔 채 자신의 작품에 그날의 일을 담기로 다짐했던 까닭이 문득 궁금해진다. 이런 나의 시선 또한 폭력이겠지. 왠지 모르게 과격하게 느껴지는 <돼지들에게>라는 시집을 택했다. 묻고 팠던 많은 것들에 대한 대답 대신이었다. 누군가는 돼지요, 다른 부류는 여우다. 특정인을 염두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작품 속에서 나는 정확히 둘로 갈린 세상을 만났다. 자신이 돼지인 줄 끝끝내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을 향한 환호가 실상 여우가 빚어낸 허상이라는 걸 영영 알지 못할, 우리는 돼지다. 여우는 돼지를 좌지우지하며 여우인양 만들지만, 세상에 여우는 오직 하나, 자신만 여우여야 한다. 겉으로는 번지르르, 온갖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만, 그의 내면은 차갑고도 오만하다.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는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한다. 자신이 여우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진주는 그의 몫이 아니다. 그는 정의는 오로지 축구장에만 있다 하였다. 여우도 돼지도 타인을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단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축구장이었으면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 세상은 참으로 투명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운동장과는 다르다. 위선이 곳곳에서 버젓이 행해진다. 순간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축구의 선함은 언제고 위협받는다. 관중석을 내려다 보며 자신의 번영을 확인하는 권력자, 앞에서 사람들은 작아진다. 하지만 그도 공을 매만지기 위해선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하는 것처럼 절대권력자도 공 앞에선 무기력해진다. 경기장 내부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게임은 행해진다. 굳이 나서야만 한다면 수비수가 되어 싸우리라. 날카롭지만 먼저 상대를 파고드는 강력한 주먹의 소유자는 아니리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 싶었다. 시대가 가만히 있는 걸 반기지 않았다. 혁명과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으로 얼룩졌던 20대 시절의 그는 안타깝지만 사진 한 장으로도 남질 못했다. 무언가에 갇히면 유한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덕에 그는 자유로웠다. 강력한 메시지 안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가득했다. 때는 2005년인데, 그 시절로부터 나아진 측면이 있긴 하던가. 한 마리의 돼지는 꿀꿀거리면서도 자신은 결코 돼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발뺌 외에 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돼지를 부르짖는 여우의 울부짖음을 어색하게 바라본다.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난 여우가 아니므로 응답한다. 옳은 반응이라 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자가검열에 들어간다.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거대한 파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한 법이다. 차라리 침묵하고, 비굴하다는 평을 듣는 게 마음이 편하다. 어쩔 수 없는 돼지가 되어 저자의 조언을 새겨듣는다. 돼지이므로 돼지답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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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대서 시를 못 쓰지 않지만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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