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읽는 "돈끼호떼"이다. 10살 때 계림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책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를 취하였고, 20살때 동서문화사의 세계문학·사상전집에 들어있는 소설을 통독하였다. 이번에 출간 4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민용태 교수의 기념비적 완역본을 접하고, 이 불후의 고전이 왜 그토록 칭송받는 작품인가, 그 의미를 찾고저 한문장 한문장 음미하며 숙독하였다. 대개 사람들은 ''돈끼호떼 인간형''을 상정하고, ''햄릿형''과 대비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만 앞서는 낙관파로 규정 짓는데, 조금 의문스러운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에 만약 실제로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면, 특정 분야에만 발현하는 일종의 편집증이 아닐까 싶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놀랄 정도로 정상적이고 교양있고 예의 바른 전형적인 향반(鄕班)의 모습이지만, 본인이 몰입한 기사도에 있어서 만큼은 극도로 현실감각을 상실한 채, 본인이 믿고자 한 장면만 보이는 증세이다. 세르반떼스가 묘사하였듯이, 책을 많이 읽고 전반적으로 미친 것이 아니라, 요즘 기준에선 약간의 약물치료로 회복 가능한 - 따라서 책을 불사른다든지, 감금한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 신경정신과적인 질환이라고 추측된다. 저자의 종군 경험이 묻어있는 "문(文)과 무(武)에 대하여 펼친 담론"(38장, 560쪽 이하)등을 볼 때, 돈끼호떼의 정신은 지극히 균형있고 합리적인 사고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돈끼호떼"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또한 원전을 꼼꼼하게 읽은 독서가도 드물 거라는 현실에서, 다음의 관점에 포커스를 맞춰 읽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첫째, 소설을 관통하는 시각은 단연 ''해학(諧謔)''이다. 몰락하는 스페인 제국의 시민으로서, 전쟁포로와 노예생활을 거쳐 공금횡령 혐의로 투옥까지 당한 세르반떼스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주인공 돈끼호떼는 단순한 좌절감과 사회에 대한 불만의 화신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쓸쓸한 상황을 살짝 비틀어 극도로 유쾌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더욱 소설을 빛내 주는 것은 적절하게 자리잡은 기사소설의 패러디와 현란한 언어적 유희이다. 역자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우리말답게 번역하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 있지만, 스페인어 원전을 읽을 기회가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의 사회 현실이나 기사 소설의 원형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추었더라면 더욱 의미가 분명했을 것이란 점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을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은 아주 재미있다(문학 작품이 재미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는가!). 이미 아는 이야기이이고, 이제 더 이상 이야기 따위에 감동 받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방랑기사의 황당한 모험담을 따라가는 내내 배꼽잡고 웃을 일이 끊이지 않았다. 둘째, 소설 속에 담겨있는 소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돈끼호떼"는 당연히 ''위대한 라 만차의 기사 돈끼호떼'' 이야기가 주이지만, 돈끼호떼 외에도 여러 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히 후반부 객주집에서의 사건 진행은 갑자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스타일로 바뀌어, 잡다한 단편[중편]소설이 끼워넣어져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일체 제외하고 단순히 돈끼호떼의 유쾌한 모험담만으로 엮었다면, 우리에게 현재 남겨진 "돈끼호떼"와는 전혀 다른 또 한편의 늘씬한 패러디 기사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촛점이 흐려지고 독자들이 통독하기 버겁게 만든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세르반떼스가 중간에 삽입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물론 이야기 하나하나 대단히 재미있고 교훈적이다) 세째, 돈끼호떼의 인간형을 살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빠뜨릴 수 없는 충실한 시종 산초 빤사의 모습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황당무계한 주인의 계획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끝까지 자신이 영주가 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산초 빤사를 그저 어리석은 사람이라 치부하기에, 현대의 나약한 소시민의 현실인식과 놀랍도록 흡사하지 않은가. 보통 사람이면 위대한 기사보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인의 행태에서, 오히려 더 큰 동질감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등장하는 법사 신부의 ''기사소설론''(48장, 700쪽 이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론에 경도된 세르반떼스 문학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단순한 패러디 소설에 머문 것이 아니라, 인생관·세계관·철학·전쟁과 인간사의 각종 교훈이 쉴 새 없이 점철하는 중후한 걸작이기도 하다. 벌써 초판 출간 400년을 맞았지만, 앞으로 400년 후에도 역시 불후의 고전으로 인류의 도서관 한쪽을 장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여 평생을 두고 "돈끼호떼"를 천착한 역자 민용태 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마침내 그로 인하여 우리민족도 우리말답게 제대로 된 "돈끼호떼"를 보유하게 되었음이다. |
| 장장 1600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이라 읽는데에도 상당한 애를 먹었습니다. 책을 데리고 다니는데도 약간 부담스럽구요. ^^; 다 읽고 나니 뿌듯하군요. 그리고 새삼 내가 전에 알고 있던 내용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전에 알고 있었던 내용은 돈끼호떼라는 인물이 현실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되기위해 그리고 되고난 후 보여주는 얼뚱한 이야기들로 아이들의 눈에 재밌도록 각색된 것이었습니다. 바보같은 돈끼호떼를 보며 참 많이 웃었습니다. 완역본을 읽어보니 전반적으로 가벼우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었던것 같습니다. 첫번째로 돈키호떼가 동화속에서보다 더 집착과 강박증이 심하다는 것 두번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차와의 싸움(사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이 책에서는 앞쪽 100페이지 정도에 나오는 일부 내용일 뿐이라는 것 세번째, 특이한 이야기 진술 방법, 세르반테스는 그가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사람이나 다른 책에서 들은 것을 옮겨놓은 것처럼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그래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이긴 하나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하는 아쉬움도 있었고, 그래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네번째, 각주의 엄청난 효과. 만약 각주가 없었다면 적당한 한국어가 없어 외국어를 그대로 써놓은 번역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 작자는 엄청나게 많은 책과 그 책의 주인공들을 참고자료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행동의 정당성이나 그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섯번째, 문화적 이해. 외국소설이나 많은 다른 장르의 책을 보면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당시 스페인의 문화를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귀족이나 양반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의복에서부터, 서민들의 놀이문화와 길거리 풍경들을 느꼈고 내가 아는 스페인이라는 현재의 모습에서도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어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돈끼호떼는 사실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도인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상이라는 집착에 빠져 많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평범한 일반인인 입장에서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제가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편이라 가끔 돈끼호떼에게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할까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재미와 엉뚱함으로부터 오는 상상력, 모험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고 흥분되는 것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역사, 문화와 함께 소설에서 주는 허구와 상상력이 잘 어우러져서 두꺼운 책이지만 매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정말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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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을 읽고나면, 그간 내가 읽었던 소위 명작이나 고전에 대한 불안감이 덜컥 생긴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빼먹고 살아온 것일까, 하는. 숲의 윤곽은 보이는데, 그 안에 어떤 나무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피조물과 어떻게 맺어가며 사는지 도통 알지 못하는 느낌과도 같은 불안감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간 돈끼호떼에 대해 어느 수준의 앎을 가지고 있었나. 제대로 읽은 적 한 번도 없으면서 쉽게 폄하해 버리지는 않았나. 혹시 말이다.
기사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머리가 돈 시골양반이 마침내 방랑기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좌충우돌하는 갖가지 에피소드. 살짝 돌았으니 그가 일으키는 사건이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겠는가 하는 것만으로도 출판사 편집자들에게는 유혹적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돈끼호떼>는 지금처럼 논술이 붐을 이루기 전에도 아이들을 독자로 하여 여기저기서 나온 다이제스트가 무척 많았다. 그들에게 이 책은 우스꽝스러운 어떤 아저씨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 분명하겠다.
그러나 이번 완역본에 이르러 세르반떼스는 자신이 400년 전 분명 어린이가 타겟은 아니었을 듯한 독자들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싶었을 이야기를 어느 정도나마 전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예컨대 저자 자신이 돈끼호떼 뒤에, 혹은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산초의 뒤에까지 숨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철학과 문학, 삶과 죽음, 사랑과 배신, 남자와 여자, 부와 가난, 신분, 사회제도를 두루 넘나들며, 그 하나하나에 심각성과 위트와 해학과 뒤집기를 고루 버무려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는 것 말이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번의 완역읽기를 통해 나는 더러는 심하게 공감하기도, 덜 공감하기도, 또 더러는 반박하고 싶은 부분들을 지나가면서 그가 독자를 향해 던지는 숱한 이야기들이 왜 정면을 향하지 않고 살짝 미친 사람을 내세워야 했겠는가 하는 데에 이제야 생각이 닿게 되었다. 또한 ''인간의 정신세계는 고대 희랍 이후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발전한 것은 기술뿐이다''라고 한 누군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도 되었다. 사람 사는 일, 사람이 하는 생각, 행동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딱 그 지점에 도달해 있더라는 느낌이랄까.
모두가 공감하듯 그가 가상의 연인인 둘시네아를 향해 끝없이 던지는 사랑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사랑이라는 관념을 사랑하는가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으며, 그 사랑은 비단 남녀문제 뿐 아니라 부모자식이나 인류에 대한 사랑에도 공히 적용되는 문제인 듯하다. 우리 모두가 때로 자문해 보지 않는가. ‘너는 진실로 그를 속속들이 사랑하느냐’ 하고. 혹은 ‘타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결국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냐’ 하고.
사실, 1~2권을 합하여 1500쪽이 넘는 책에 쉴 새 없이 나오는 돈끼호떼나 산초가 하는 이야기들은 돌이켜보면 너무 교훈적이어서, 자칫 재미없을 수도 있으련만 미친 사람과 바보스런 사람으로 설정된 두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 또 오히려 새롭게 들리게도 하니 저자가 얼마나 교묘한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민용태 교수의 알뜰살뜰한 번역과 역자의 견해를 수많은 사료와 버무린 주석도 또 다른 재밋거리이다. 다만, 우리 식으로 말을 바꾸려는 것에 역자가 너무 신경을 써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부분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었다면, 그 또한 무지의 소치일까?
입맛 도는 완역을 시간을 두고 음미한 후, 책꽂이에 떡하니 꽂아두고 이따금 새록새록 씹어 먹으며 즐기고 싶은, 책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강추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하는 여보. 혓바닥이 온통 종기투성이어도 살 닭은 살아야죠. 당신은 무조건 살아야 돼요. 세상에 통치자 자리가 그토록 많다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통티자 자리 따위 없이도 당신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고, 통치자 없이도 지금까지 살아왔고, 통치자 없이도 하느님이 부르시면 하느님이 부르시면 무덤으로 가거나 데려가겠지요. 세상엔 정부나 통티자 없아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사람 축에 끼지 못하거나 살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세상에 제일 좋은 반찬은 시장기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시장기가 없는 적이 없으니 항상 밥이 맛있지요.돈끼호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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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800여장 분량의 [돈 끼호떼 I]을 다 읽었다.
감상을 소개하자면, (물론, 다양한 원인과 종류가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일부는) 즉, 무의식 중에 기존에 존재하는 '상식이 파괴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용하여 만들어지게 되고, 결국 나와 다른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사람을 사회 구성원에서 격리시키거나 제지한다.
여기에서 '상식'이라는 것을 살펴보자.
즉, 상식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인데, 이러한 지식은 과거로 부터 이어짐과 동시에 변화하는 것이다.
여기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돈 끼호떼 I]'이 있다.
우스꽝스럽고, 괴기까지 한 시골양반 '돈 끼호떼'와 '산초'의 기이한 행동과 모험은 두꺼운 현실이라는 또 상식이라는 것에 도전하고 방황하기도 깨닮음을 얻는 우리('나이'에 상관없이)의 '청춘'을 발견할 수 있다.
=============================== ※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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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거 그리려 말 ─
남의 사생활을 알려고 하지 말 ─
자신에게 아무 상관없는 일에 ─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이 점잖은 ─
남의 말 잘하는 사람은 혼 ─
곤경에 빠지기 쉬운 법이 ─
그대는 오직 좋은 명성을 얻기 위 ─
등잔에 눈썹을 태우며 공부하 ─
미련한 짓을 하는 사람 ─
그 빚을 영원히 갚을 수밖에 없나 ─
※ 『라 만차의 돈 끼호떼』에 바치는 글 "p 029, 030"
바 어떻게 그토록 날씬한가, 로신안떼?
로 밥을 안먹고 일만 하니까.
바 보리도 주고 여물도 준다는데?
로 우리 주인이 한 입도 못 먹게 하잖아.
바 아니, 이봐요. 참 예의가 없으시구먼. 아무리 당나귀 주둥이라고 주인을 모독하다니.
로 당나귀 신세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지. 한번 보시려나? 사랑에 빠져보시라구.
바 사랑하는게 바보짓인가?
로 크게 점잖은 짓은 아니지.
바 형이상학적이지.
로 먹는게 있어야지.
바 종한테 불평 좀 하지.
로 그걸로 안되지. 어떻게 내가 내 아픔을 불평하겠나, 주인도 종도 집안일을 맡을 사람도 모두가 로신안떼처럼 다 삐쩍 마른걸.
※ 『라 만차의 돈 끼호떼』에 바치는 글 "p 039"
역사가란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가장 정확하고 진실해야 하며, 개인의 이익이나 두려움, 원한, 편애로 진실을 버리고 그들의 붓을 굽은 길로 가게 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진실의 어머니이며, 시간의 경쟁자, 행적의 저장고, 과거의 증인, 현재의 실증이며 전달이고,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 제 9 장
무정함은 사람을 죽인다, 인내는 공포스럽다.
의혹은 참이거나 거짓, 질투는 가장 참혹하게
사람을 죽인다, 오래 보지 못하면
인생이 어지럽다, 행복한 만남에의 희망이
아무리 굳셀지라도, 잊혀질까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는 못한다, 모든 것에는 피할 수 없는
확실한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 제 14 장
"어찌 되었든 내 형제여, 자네가 알아두어야 할 건," 돈 끼호떼가 말했다. "세월이 가면 나쁜 기억도 다 잊혀지게 되고, 죽으면 고통도 다 없어진다는 말일세."
"아이고, 세상에! 그런 불행이 또 어디 있겠어요?" 산초가 되받았다. "아니, 모든 게 다 잊혀지도록 세월을 기다려야 하고, 아픔을 잊도록 죽음을 바라야 한다니요? 우리 불행이 고약 두어 개 붙여서 나을 병이라면 그래도 낫겠네요. 하지만 보아하니, 병원에 있는 약이란 약을 다 가져다 써도 상태가 어지간히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은 뎁쇼."
"쓸데없이 약한 소리 그만 하고 힘을 내게나, 산초!" 돈 끼호떼가 대답했다.
※ 제 15 장
"산초,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네. 우리에게 일어난 이 모든 폭풍우 또한 곧 날씨가 잠잠해지고 일들이 잘 풀릴 거라는 징후이기도 한 걸세. 행운도 불행도 마냥 오래갈 수는 없어. 그래서 나온 결론이 재난이 오래간다는 것은 행운이 벌써 가까이 왔다는 말이라는 걸세. 그러니 나한테 일어난 불행 때문에 고민하지는 말게, 자네는 이런 일과는 상관없으니…"
※ 제 18 장
Ese te quiere bien, que te haec llorar ;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울린다. ※ 제 20 장
우리의 영혼에 와닿는 즐거움이란 우리의 시선이나 상상력이 앞에 놓인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 감지하는 조화와 아름다움의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하거든요. ※ 제 47 장
불가능한 이야기도 쉽게 말하고 위대한 행동도 평범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써야 독자들이 놀라고 긴장을 느끼고 미치고 재미있어하는 법이고, 그런 글을 읽을 때 즐거움과 경탄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자연의 모방이나 사실성을 떠나서는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지요. 이런 작가만이 글쓰기에 있어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제 47 장
이런 모든 것을 온화한 문체로 재치있는 창조력으로, 될 수 있는 한 사실에 가깝도록 묘사한다면 틀림없이 여러가지 아름다운 매듭으로 곱게 짜인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겠지요. 끝내고 난 뒤에 작품의 그런 아름다움과 완벽성이 보이면 글쓰기가 요구하는 가장 훌륭한 목적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이란 이미 내가 말했듯이 재미와 가르침이 함께해야 좋은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이들 책에 풀어놓은 글은 작가로 하여금 더러는 서사시적으로 혹은 서정적으로, 혹은 희극적으로, 혹은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거든요. 그 안에 지극히 달콤하고 즐거운 시와 연설의 예술을 내포하는 그런 부분들이 다 필요하니까요. 서사시라는 것을 시로 써도 좋고 산문으로 쓸 수 도 있는 거거든요."
※ 제 47 장
모든 걸 한꺼번에 빨리 알려고 너무 재촉하지 마, 화나. 내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는 것만 알고 입 다물어. 이왕 말이 났으니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모험을 찾아다니는 방랑기사의 하인으로서 영예로운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야. 사실 대부분의 모험이 원하는 것처럼 다 마음에 들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 백번 부딪치는 모험에서 아흔아홉 번은 꼬이고 뒤틀려 수난을 당하기 마련이니까. 이건 내가 경험으로도 아는데, 어쩔 때는 담요말이를 당하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두들겨 맞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사건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야. 산을 가로지르고, 숲을 들여다보며, 바위를 딛고, 성들을 방문하고, 객주집에서 갖은 대우를 받으며 빌어먹을 돈 몇 푼이야 귀신이나 가져가라고, 돈 내는 법이 없이사니 말이야."
※ 제 5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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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여러 종의 번역이 나온 책은 어떤 걸 고를 것인지 무척이나 고민하게 된다. 그게 유명한 고전이면 고전일수록. 돈키호테도 마찬가지여서, 실제로 하나쯤 집에 보관해 두고 싶은데 무얼 선뜻 고를지 상당히 고민했다. 예전에 범우사에서 나온 돈키호테를 읽고는 너무나 재미가 없어서 중도포기했던 기억도 있고...
일단 이 돈키호테는, 표지가 아름답지 않은가??? 미리보기를 해보면 알겠지만, 표지도 마음에 들고, 고급 종이와 적당한 글씨체를 쓰고 있다. 각주도 적절하고. (그렇다...인터넷으로 책을 고를 때 마음에 드는 표지를 선택하는... 철없는 나인 것이다-_-;;)
내용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도 없고, 쓸 재주도 없고, 다른 분들의 훌륭한 리뷰가 있으니 그것들을 참조하도록.
그리고 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돈키호테의 본래에 가까운, 나는 그것을 '해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매우 구성진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하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그것. 그렇지만 스페인어를 알지 못하는 어려움은 극복하기 힘들고, 민용태 교수는 (이름을 보고는 설마 이 사람인 '도전 지구탐험대'의 그 민용태 교수??? 라고 생각했었던^^;;) 그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세르반테스의 말장난과 스페인 속담을 우리식으로 번역하는 동시에 각주에 친절하게 원문과 그 의미를 해석해 두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농담따먹기들이 상당히 유치하고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하는 농담들에 대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 읽을 때는 그게 좀 거슬리기는 했는데, 오히려 직역했다면 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이 되었을테니까. 그리고 도저히 우리말로 번역이 안되는 건 다소 의역하기도 했는데, 역시 그러한 부분은 각주를 달아 설명해놓고 있다. 흐음...역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순간이랄까.
그리고 돈키호테의 1편만 번역된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속편도 같이 나와있다. 물론 2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강력한 이유 중 하나가 되겠다.
그러니, 미리보기 등과 다른 모든 리뷰 등을 고려하여 만족할만한 돈키호테를 고르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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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올해가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이라지요. 서울대 민용태 교수가 번역했다는 완역본, 총 1,2권으로 두 권 합하면 페이지만 1500 이 넘습니다. 돈키호테라는 고전, 이 두권을 두 손에 들어보고 묵직함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일단 흐뭇합니다. 완역본이라서인지, 400년 전 돈키호테가 발간될 때의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극 상연을 할 때 돈키호테와 산초빤사, 둘시에나가 입었던 의상이며 돈키호테가 발간될 때 세르반테스가 책의 첫머리에 썼던 글들도 그대로 옮겨져 있어요. 또한 그에 대한 민용태 교수의 부연 설명도 덧대어져 있습니다. 책 장을 넘겨 본문이 시작되는데요. 줄거리가 계속 진행되는 중에도 원문에 대한 민용태 교수의 설명이 주석으로 달려있어요. 이번에 읽을 때는 본문에 집중하고 싶어 주석을 일일이 읽지 않았는데요, 다음번에 다시 읽을 때는 400년 전 책의 본모습을 더욱 느껴보고자 주석까지 꼼꼼하게 읽어볼 요량입니다. ^^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돈키호테 이야기. 완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어내는 느낌은, 흡사 인스턴트 단팥죽이 아닌, 몇십년간 팥죽만을 정성들여 끓여온 고풍스런 집에서 뜨거운 팥죽을 소금도 설탕도 간하지 않은채 호호 불며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 그래요, 달지 않아서 좀 밍밍하기도 하고, 늘 먹던 것이 아니라 어색하기도 해요. 하지만, 한 입 한 입 먹으면서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읽어내며 세르반테스 특유의 거칠고도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낮은 계층이었으며, 감옥에 오랜 기간 갇혀 있었다는 세르반테스는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썼다죠. 많이 배우지 못했다...라고 스스로 책의 초반부에서 얘기하고 있으며 돈키호테를 읽으면서도, 말끔히 정제된 느낌보다는 약간 거칠지만 열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식자임에도, 방구석에 쳐박혀 편한 여생을 보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방랑기사를 청하며 이고생 저고생을 하며 불쌍한 몰골을 유지하는 돈키호테는, 당시 세르반테스의 감정을 옮겨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400년 전 그 때에도, 우두커니 책상머리만을 지키며 흠흠 하는 식자들이 존재했을 것인데, 배웠다는 자격으로 서민들을 우롱하는 그들에 반해 오히려 서민들에게까지 조롱 받으면서도 그들을 지켜내고자 골몰하는 돈키호테를 통해 당시 시대를 집중하고자 함은 아니었을지? 고전은 한 번 읽고, 또 읽고, 또 읽을수록 그 맛과 느낌이 달라진다던데, 꽤나 두꺼웠던 이 책, 다시 한 번 읽어보며 당시 세르반테스에게 궁금증을 다시 한 번 던져보려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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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전에 다른 어떤 책에서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 구입해 놓고는 770p에 달하는 그 두꺼운 위력 앞에 목차와 서문 정도만 읽고는 감히 시작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8월이 가기 전에는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드디어 1권을 도전했고 그래도 생각보다 빠져들게되면 술술 넘어가는지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만큼 차례에서부터 감정가,오자에 관한 증명,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거창하게 장식되어 있다.
작자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에스파냐 군대에 입대하여 1571년 역사상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 참가, 가슴에 두 군데, 왼손엔 평생 사용 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로 귀국하던 도중, 당시 지중해에 횡행하던 해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1580년까지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는 기구한 생활이 주인공 '돈 끼호떼'를 통해 나타나 있는 듯하다.
비록 기사소설을 그대로 믿고 재현하려는 데서부터 미치광이 짓을 하지만 기사도에 의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다. 그것은 널리 알려진 풍차를 적으로 오해해서 벌이는 무모한 사건에서부터 무려 52장에 걸쳐 전개되는 수많은 사건마다 그럴듯한 이유와 그 나름의 해석을 산초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그 박식함이란...
방랑의 목적은 오로지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어떠한 희생이 다르더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것을 당연시한다. 처참하게 당하는 장면에서는 불쌍하기도하면서 우스꽝스러움을 연출하여 읽는 독자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에게도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정당한 일일지라도 우선은 자기 몸부터 사리고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에 정의의 기사도를 발휘하는 '돈 끼호떼형' 인간이 그립기도하다.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주의자인 돈 끼호떼를 현실에 불러내오면 어떨까?
'미쳐야 산다' 말도 있다. 돈 끼호떼처럼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자하는 분야에 미치도록 매진할 수 있는 열정과 결단력과 저돌적인 추진력은 닮고 싶은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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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돈 끼호떼'를 읽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해보자. 지금 당장 떠 오르지 않지만 이런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실제로 그 뜻이나 내용을 알고있는 가에 대한 의심 없이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돈 끼호떼'도 그 중 하나였다. 이따금 등장하는 '돈 끼호떼'는 막연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면서 또 모르고 있다는 애매함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직접 책을 통해 만나서 그 찜찜함을 풀어봐야지 하면서도 고전이라는 어려움에 여태껏 미뤄두었던 것을 이제야 손에 들었다.
1부와 2부, 각각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가 마음을 묵직하게 한다. 이런저런 골치아프고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은 넘겨버리고 바로 본문으로 들어간다. 초반부에 익숙했던 부분, 나로하여금 '돈 끼호떼'를 알고 있다고 판단하게 만들어버린 내용들이 등장한다. 그 풍차가 나오고 '돈 기호떼'의 엉뚱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부분 말이다.
그 동안 편협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돈 끼호떼'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쉽게 던지는 이야기로 '돈 끼호떼' 형 인물이니 어쩌니 하는 식으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그런 모습만이 아니라 생각한다. 좋은 글솜씨로 정리된 언변으로 생각들을 정리해서 표현하고 싶지만 머리만 아프고 단어들이 자꾸 맴돌기만 할 뿐 막상 표현을 하자니 쉽지가 않다. 그렇더라도 그 복잡한 것 중에 서툴게라도 남겨놓아야 할 것 같은 내 스스로 만든 압박감 속으로 빠져 든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돈 끼호떼'는 무잡배기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나름의 지식이 있고 논리가 있으며, 또한 의리와 용기가 있으며,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내게 무리다.
중반부쯤 페이지가 넘어갔을까. 문득 책 첫 표지 간략한 작가연보를 본다. "1605년 1월 마침내 마드리드에서 [돈 기호떼] 1권을 출간했다." 무려 400여년 전에 태어난 작품이다. 감탄의 감탄을 한다. 이런 고전을 만날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대단한 것이라고 고민하고 있는 일들,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일들 이런 모든 일들이 몇 백년 전 사람들도 고민하고 경험하고 생각했던 일들인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고민들과 행동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했던 모습들을 볼 때면 내가 너무 작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느낀다. 마치 내가 아주 특별한, 다른 사람들은 겪지 못하는 어려움 또는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지만, 그런 나 혼자만이 갖고 있으리라 여겼던 것 처럼 행동했음에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만이 갖는 어려움도 아니고 나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것도 없다. 다른 사람처럼 나도 살아가는 것이다.
1권을 읽어 가는 동안 즐거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고전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전이라 생각한다. '돈 끼호떼'를 편협하게 알고서는 그를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 처럼, 편협한 시각으로 우쭐대거나 자만하지 않고 매일매일 더욱 배워간다는 자세로 스스로의 지적인 능력과 심적인 마음을 더욱 키워야 함을 느낀다. 이론도 없고 논리도 없이 기분에 좌지우지 하여 이상만을 추구하는 내 안의 잘 못된 '돈 끼호떼'를 지워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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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에서 내가 ‘명장면’의 하나로 꼽는 것은 ‘마법의 세숫대야’라고 이름붙일 만한 한 대목이다. 불의를 쳐부수고 마법에 걸린 세계를 구출하러 나선 이 라만차의 기사는 모험길의 한 지점에서 여관 세숫대야를 머리에 쓰고 나와 그게 자기 ‘투구’라고 선언한다. 여관의 다른 투숙자들은 돈키호테의 주장을 놓고 두 패로 나뉜다. 한쪽은 돈키호테의 주장이 “맞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아니다”라고 맞선다. 한참 실랑이 끝에 양쪽은 투표로 문제의 진위를 결정할 것에 합의한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실랑이에 사단을 제공한 돈키호테는 팔짱끼고 뒤로 물러나 싸움판을 구경하다가 혼자 생각한다. “저 자들이 미쳤어.” 몇 년 전, 도정일 선생이 쓴 칼럼에서 위의 구절을 보고 배꼽을 잡고 나뒹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원작 <돈끼호떼>를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돈키호테에서는 저런 구절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용태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원전 <돈끼호떼>를 보고는 머리부터 아팠다. 총 1,600p가 넘는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엄청난 양의 각주들... 민용태 선생이 돈끼호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두기만 한 채 수 개월이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가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첨에는 조금씩, 나중에는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갔다. 정말 명작이다. 그동안 보았던 축약본이나 편집본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오래 묵은 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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