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직속상사에게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들은 직장생활 치열하게 안해. 여자들도 동등하게 대접받으려면 남자들하고 똑같이 야근하고 어려운 업무도 맡고 해야지..퇴근시간만 되면 쪼르르 퇴근해버리고.." 이런 단세포적이고 무식한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과장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되죠.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기대받은 바가 다르고 주어진 임무가 다르잖아요. 우리 사회는 어쨌든 여성에게는 육아 및 가사에 대한 책임에 더 비중을 두고, 남성에게는 가족부양의 책임을 지우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시끄러운 회식자리에서 여기까지 겨우겨우 말하고 있는데, 내 말을 곡해한 다른 여직원의 말로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여자도 남자들이랑 똑같이 일해야지! 남자는 돈벌로 여자는 집안일하고..이런거 아니잖아~"-이런 식의 말이었다.) 하고싶었던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과장한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남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 더 열심히 일해야하고 여자는 가사일에 책임이 있으니 직장생활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현상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게 마련이고, 여성들이 퇴근시간만 되면 일찍 퇴근해버리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원인이, 오로지 여성들은 직장생활에 치열한 책임감을 갖고있지 않다는 한가지만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다는 거였다. 직장생활에서의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의식 속에 굳게 뿌리박혀있는 남녀차별적인 생각을 걷어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사회생활에서의 평등은 물론 가정생활의 평등도 이루어져야 하고(맡벌이 부부의 가사분담같은), 그보다 앞서 상황이 왜 이러한가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상황이 왜 그렇게 되었는 가를 넓게 고민하고 이해하고, 바람직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이 과도기적인 시기를 서로 견뎌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제발, 여자들은 칼퇴근하고 일하는데에 책임감이 없다 탓할 것이 아니라, 당신부터 집에 돌아가서는 아이들도 돌보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명절때는 부엌일도 좀 하란 말이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사회생활하는 여성들이 남성들하고 똑같이 야근하고 치열해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단순심플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비록 하고 싶은 말은 다하지 못했지만, 남녀평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여자의 탄생]을 읽고 좀 더 싶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여자로 만들어지는지, 또 남자는 어떠한 남자로 만들어지는지. 다양한 원인분석과 문제지기, 그리고 문제제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제시까지. 최근에 이렇게 단숨이 읽어버린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여성인 우리가 어떤 기대를 받고 이땅에 태어나, 무슨 교육을 받고 자라고,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인이 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도 몰랐던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꿈에 부푼 대학생들이, 갓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들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
|
추석 때 크레마에 책 2권을 넣어 갔다. 나임윤경의 『여자의 탄생』, 데스몬드 모리스가 쓴 『벌거벗은 여자』 이렇게 두 권. 둘 다 일반 대중으로 한 교양서. 다만 학문 배경이 전자는 여성교육학, 후자는 동물학으로 다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페미니스트는 남자가 아무리 페미니스트인 척 해 봤자 훼미니스트에 불과하다고 비웃었다. 페미니즘은 유물론이다. 마르크스가 구사한 유물론이 재화를 중심으로 했다면 페미니즘은 '몸'이 핵심이다. 여성의 몸을 입지 않고서 여성으로서 삶을 체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자는 훼미니스트일 뿐이다는 지적. 아, 이론. 근데 누가 이런 논의를 펼쳤는지 기억 안 나네. 어쨌건. 동감한다. 그럼에도 여성학 근처에 기웃거리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원한다. 개체 선택에서 인간은 유전자 명령에 복종하며 이기적이면 이기적일수록 살아 남는 데 유리하지만. 집단 차원은 다르다. 개인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도 협업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계층 분화는 필연적이지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때, 그들의 숨구멍을 틔워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보수 일간지가 지적하는 '한국인 특유의 평등 지향'이 실제로는 인류 보편적인 성향이다. 웬만큼 싸가지가 없지 않고서야 평등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조금씩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가부장제를 반대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었다. 실로 오랜만에 읽은 듯하다. 책은 저자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반추하며 한국 여성의 삶을 탄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재구성했다. 나머지는 그냥 메모. --- 이제껏 여성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들 중 많은 책이 남성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꾸짖거나 여성성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나의 현재 경험이 그러하듯이 대부분의 직장과 사회생활의 영역은 남성들의 주도와 리더십 아래 움직이고 있으니 그곳에서의 행동 방식이 남성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남성적인 그 모든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제껏 배워온 그 많은 내용들을 남성적인 것으로 바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이처럼 어떤 정해진 틀, 특히 여성다움이나 남성다음과 같은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아이에게 맞는, 그 아이가 처한 상황에 맞는 방식대로 '제대로' 그 아이의 생각과 철학과 감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 구성주의가 교육과 관련하여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딸과 아들을 다르게 키운 다음에 그들이 사회에서 평등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龍, 宇, 虎, 碩, 光, 秀, 輝, 强, 學, 聖, 駿, 傑, 基, 株, 承, 赫 등의 한자는 여아의 이름에는 쓰이지 않는 것들이며, 반면애 愛, 淑, 智, 惠, 順, 瑛, 美, 花, 和, 敬, 景, 喜, 庭, 珠 등은 남아의 이름에는 쓰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름이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장 최초의 상징이라면, 그 이름을 지을 때 남자와 여자로서 거는 기대 이전에 그 아이에게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대와 바람 같은 것을 반영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 기저귀를 가는 것과 같은 단순한 행위에서조차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똑같이 취급되지 않는다면 남녀평등은 그저 공허한 구호 여자 몸에 대한 근거 없는 수치심 때문에 딸아이의 기저귀도 당당하게 못 갈아주는 것을 성찰해보아야 하지만, 남자 몸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에 아들아이의 벗은 몸을 당당하게 내보이는 우리 문화의 남아 선호 혹은 남성 중심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가정내에서 과도하게 남자아기들의 성기를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사진관처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옷을 입지 않은 남자 아기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사실을 수시로 볼 수 있는 우리 문화는, 정말 황당합니다. 어릴 적부터 머리가 긴 공주나 인형을 아름다운 여성의 전형으로 보고 자란 여성들은 자신을 노동에 적합한 방식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분명히 자기는 공주가 될 확률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기는 공주는커녕 직접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이어야 하거나 학비를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맞는 머리 모양을 하지 않습니다. 남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여성을 구한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의 내용에 아이들이 세뇌당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도한 남자라면 아무리 사랑했던 여성이라도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죽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허구를 아이들도 알아야 합니다. '모래시계'의 백재희와 '타이타닉'의 잭은 용감했다기보다는 무모했습니다. 만약에 백재희가 자신을 죽였던 패거리로부터 달아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윤혜린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잭 역시 자신을 먼저 지키려고 했다면 그의 사랑하는 여인 로즈도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죠. 우리의 딸들이 살아갈 미래도 직므과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딸들을 평등하게 길러내고 그들에게 평등의식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딸이 '곱게' 커서 능력 있는 남성과 결혼하기만을 바란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워피안(Whorfian)의 법칙'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남성 중심적인 시선은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평가하면서 그 평가 기준에 여성을 쉽게 길들인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그 시선과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받는 것이지요. 각종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영화감독, 드라마 연출자, 유명 브랜드의 의상과 헤어 디자이너, 그리고 성형외과 의사는 거의 대부분 남성입니다. 이 모든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이 정한 미의 기준에 맞추어집니다. 존 버거(John Berger)라는 학자는 "여성은 보여지고 남성은 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성이 대상화되는 현실을 말한 것이겠지요.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시험 점수, 내신, 봉사 점수 등 대학 입시와 관련된 교육 행정에 따른 불이익에 대해서는 모두 하나가 되어 불길같이 일어납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행정에 저항한다는 것은 현실 변화를 뜻하므로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왜 부모들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방식의 성차별적 기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저항이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교사나 교장, 교감에 의해서 행해지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사물화하는 성차별적이고 성폭력적인 언설들이 학생들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왜 간과하고 있을까요. '오빠'라는 호칭은 연애 중인 여남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계를 확실하게 해주는 장치이지만 그 위계는 '낭만'으로 포장되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둘의 관계가 낭만적이면 낭만적일수록 '오빠'는 더 자주, 더 강하게 사용됩니다. 반면에 '누나'는 어떤가요? 연애 중인 여남관계에서 남성이 나이가 적다 할지라도 그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둘의 관계가 더욱더 낭만을 향해 지속될 때 '누나'는 차라리 없어져버립니다. '누나'는 여성의 위치를 '오빠'의 자리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누나'는 낭만 관계에서 언제든지 '너', 'OO야'로 환원될 수 있는 불안한 장치인 것이지요. 연하 남성은 연상의 상대 여성에게 '누나'라고 하지 않는데, 왜 연하 여성은 연상의 상대 남성에게 '오빠'라고 하는 걸까요? '오빠'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누나'를 부활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누나'가 연애와 동시에 사라지는 호칭인 것처럼 '오빠' 역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여성들의 고나계 지향적 사회화는 모녀의 사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사적 관계에서 형성된 여성들의 관계 지향적 성향은 공적 영역에서 필수적인 '맥락 읽기에 대한 감수성'의 발달에 이롭지 않다고 봅니다. 차를 끓이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반드시 여자에게만 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성차별입니다. 이것은 남성에게 무거운 짐을 나르도록 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부분은 별로 공감 못하겠음. 남성에게'만' 적당한 무게의 짐을 나르게 하는 것과 커피 타기는 모두 성차별적임 인습적인 결혼 형식이 가지고 있는 여성 역할에 대한 많은 상징들을 비판적으로 읽고, 그것들을 답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여성의 삶의 방향과 질을 바꿀 수 있는 올바른 시도가 아닐까요. 결혼식 단 몇 분을 위해 아침부터는 물론 몇 달 전부터 피부 마사지를 하는 것, 화려하지만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드레스를 입는 것, 신부 대기실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 아버지나 집안의 남자 손을 잡고 신부가 식장에 입장하여 곧 신랑에게 '넘겨지는 것', 예식 후 신랑 가족에게만 폐백을 올리는 것 등 결혼 예식의 형식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만 할 수 있어도 우리 사회의 결혼과 갖고에 대한 많은 비판을 하는 것이겠지요. 서울 여성들의 초혼 평균 연령이 서른일 만큼 여성들에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되었습니다. 가족 붕괴, 이혼율 증가, 명절 증후군, 가정 폭력, 시집 식구와의 갈등은 여성들에게 결혼의 실상을 보여주는 키워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결혼의 모순을 알고 잇는 여성들이 공중으로 던져진 부케를 열심히 뛰어가 잡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는 결혼이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부 여자 친구들의 부케 받기'입니다. 나는 이러한 절차가 반드시 있을 필요도 없고, 또한 부케가 반드시 신부의 여자 친구에게 가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결혼이 여성들에게 유일하거나 중요한 대안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사항이 아닌 요즘 행운을 낚아채는 듯한 포즈로 결혼의 상징인 부케를 달려가 잡는 연출은 여성들에게 현실적이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없어져도 무방한 것이겠지요. 결혼식 형식 중 결혼을 이상화하거나 미화하는 절차들은 이제 더 이상 여성들이 알고 있는 결혼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적어도 여성들에게 뛰어가 잡아야 할 만큼의 매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난 뛰어가서 낚아채듯 잡아야 하는 부케가 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가 아줌마들을 폄하하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우리 사회는 중년 여성들이 갖는 세상에 대한 소유 의식이 두렵고 싫은 겁니다. 남자들의 생각에 세상은 자신들이 만들고 자신들이 통제를 해야 하는 곳인데, 20대까지만 해도 남자 자신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수줍어하고,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미의 기준에 부합하려고 살도 빼고, 밥도 조금만 먹고, 화장도 하고, 머리도 기르고, 하이힐만 신던 여성들이 서른을 넘어서면서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여성들의 앞마당쯤으로 생각하고, 남자들의 통제를 가볍게 무시하며 살도 찌고, 맨얼굴로 돌아다니고, 펑퍼짐해지니까 남자들은 서른을 넘어선 여자, 아줌마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
|
나는 한국의 여성학자 중 이름을 접해보기라도 한 사람은 정희진 교수님과, 나임윤경 교수님 뿐이다. 한창 학교에서 정희진 교수님의 신작 '페미니즘의 도전'이 눈에 띄어 읽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예전에 읽었었던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에 관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책 역시 정희진 교수님의 책이었다. 이 책은 제인 프리드먼의 책보다는 현실에 훨씬 가까운 편이다. 게다가 항상 내가 고민했었던, 이성애와 관련된 궁금증이나 성매매 여성과 관련된 여러가지 논의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역사가 어쩌구 저쩌구-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지라도-하는 프리드먼의 책 보다 남는 게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여성주의가 몇몇 많이 배운 여성들에 의해 대학교에 다니는 몇몇 관심있는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남겨져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주의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은 정희진님의 말처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렌즈'를 끼는 것마냥 눈 아프고 피곤하게 마련이긴 하지만. 결국에 모두가 편해지기 위해 여성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남성들은 그들과 다른 성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해 여성주의는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인 프리드먼의 책이나 정희진 교수님의 신작은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 세상은 남성중심적이었군. 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렵고, 내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나는 그래서 나임윤경님의 '여성의 탄생'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페미니즘의 역사가 어쩌고저쩌고 가부장제가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아도 여자의 탄생에서 성장 과정을 통해, 이미 아줌마가 되어 그 모든 과정을 겪어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차별기제들을 당연하게 서술한다. 어릴 때 남자애들에게 로봇을 여자애들에게 인형을 갖고 놀게 하는 것이 결국 성차별에 어떻게 기인하는지, 대학교에서 오빠라는 존재를 통해 나타나는 '낭만적 사랑'의 맹점은 어디인지, 결혼식과 결혼을 통한 두 가정의 만남 사이에 여성을 차별하는 어떠한 요소가 담겨있는지 등등.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나는 읽는 동안 이 책이 어떤 이론에 대해 설명하여 나의 여성주의적 소양을 늘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책 내용에 대해 오롯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이 책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졌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혹은 타인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이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에서 딸들은 어떻게 여자다운 여자로 만들어지는가'로, 이는 책 내용의 전체를 반영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진다. 이것이 바로 '젠더'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길러지고 여성은 여성으로서 길러진다는 젠더의 인류보편적 관점 하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으로서 한국 남성이 한국 남성으로 길러지는 과정과 한국 여성이 한국 여성으로서 길러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터, 우선 <여자의 탄생>을 집어들었다. (한국 남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남자의 탄생>은 다음 타자다) 저자는 교육학을 전공한 교육학자로서,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젠더 바이어스 없이 키울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정작 아이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컬 하기도.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지침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책들을 통해 이 세상이 성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그러한 책들은 외국의 저자가 현재가 아닌 시점에서 쓴 책들이기에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의식은 공유할 수 있지만 그러한 문제의식을 '나의 일상'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에 반해 저자 나임윤경은 정말로 '피부에 와닿는' 사례들을 제시하고 그러한 사례들에서 취할만한 적절한 조치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사례들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얼마나 많은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sensitivity가 얼마나 무뎌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 또 하나의 매력점은 이 책의 논지가 일방적으로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타박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뭐랄까, '함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달까. 이는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흐름과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울스턴크래프트와 같은 1세대 여성주의자들은 남성과 동일해짐으로써 주체가 되고자 했다. 이 말은 '여성적인 것'의 배제를 통해 남성적 존재가 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68혁명 이후에 등장한 2세대 여성주의자들은 인간 주체가 되기 위해 여성임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를 직시하고,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주목하고 그동안 배제되고 평가절하 되어왔던 여성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중심적 여성주의를 표방한다. 즉 1세대 여성주의자가 인간 주체가 되기 위해 리본과 핑크를 집어 던지고 남성과 똑같은 복장을 주장했다면 2세대 여성주의자들은 리본과 핑크를 몸에 달더라도 여전히 인간 주체임을 주장한다. 1세대에 비해 2세대는 여성적인 것의 긍정적인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여전히 '배제의 논리'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갖는다. 즉 무엇인가를 희생의 대상으로 만들어 배제하는 논리 - 1세대는 여성성을 배제했고 2세대는 남성성을 배제했다 - 그 자체가 문제적이다. 이에 다라 3세대 여성주의자들은 '배제하지 않음'을 통해 여성성을 구축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남성 vs. 여성이라는 대립적 이원론을 넘어 양자 공존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이현재의 <여성의 정체성 -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참조) 이 공존의 토대는 상호인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즉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때 가능한 것이다. 나임윤경의 논지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가 매순간 맞닥뜨리는 일상에서의 성차별은 어느 한쪽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등의 '배제'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협상(?)을 통할 때 제대로 극복될 수 있지 않을련지다. 예를 들어 부부 간의 호칭이랄까, 데이트 비용의 부담과 같은 아주 작은 것부터 말이다. (특히 부케 이야기는 뭔가 불편하다고 느껴왔던 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데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한 사례다. 내 결혼식엔 꼭 그렇게 해야지~!!) 또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성차가 변인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 역시 주요한 논지 중의 하나인데, 백번 공감하는 부분이다. 흔히 연애와 관련해서 '남자/여자들은 왜 그래?'라는 푸념이 넘쳐나고 있지만, 사실 많은 경우 남자/여자라서가 아니라 차인/찬 사람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임을 나는 직/간접적으로 겪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언제부터였을까? 딸만 셋인 우리 집에서는 여자와 남자 차이가 있을 수 없었고, 제일 시작은 내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다음은 결혼을 하며 내가 아닌 누구의 아내가 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선택할 수 있긴 하겠지만
책 리뷰쓰면서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지만.. 책에 적힌 얘기들... 대체로 맞다.. 저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았다. 책 표지에 [2006 올해의 청소년 추천도서] 도장이 쾅! 찍혀 있듯 청소년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을 선물해 주신 껌정님께 감사드린다. |
|
이 책엔 남녀 성차이가 어떻게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차별에 기여하는지, 어떻게 교육을 통해 막을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연대 교육학과 교수로 있으며 학생들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해서인지, 딱 여고생, 여대생 혹은 젊은 엄마들 보기에 좋은 책이다.
그래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례는 중산층에서 비교적 혜택받고 자라 (연세대갈만큼) 심한 남녀차별은 안/못 겪은 여자들 이야기 위주여서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나처럼 졸업하고 10년이상 직장생활을 하고 질낮은 남자들에 시달려 보면 알게 된다. 그 과정에 좌절, 우울증에 걸리는 친구들 보게 되면 알게 된다. 그나마 학생 시절이 남녀차별로부터 보호받던 시절이며, 연애시절이 결혼이후보다 성평등한 대우를 받던 시절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이 책의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읽고, 경험한 세계에 비하면 이 책은 참 원론적이어서 독자인 나는 직접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드시 성별에 근거한 부당한 명령이나 요구를 할 수 있는 관행은 깨져야 합니다. 나는 이 글에서 그 관행을 깨뜨리는 방법이 반드시 투쟁이나 오기 혹은 분노를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문제를 '피해자의 처지'에서 해결하지 말라고, 대신 '내가 한 수 가르쳐준다'는 위치로 우리 자신을 놓자는 것입니다. - 본문 191쪽
말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피해자가 피해자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나?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투쟁, 오기, 분노'로 인해 상처받은 내 마음을 치유해줄 행동강령이다.
책 앞에 '2006 올해의 청소년 추천도서'라고 적혀있다. 딱 그정도의 독자를 대상으로하는가,싶은 생각과, 내가 청소녀 시기를 보낸 1980년대나 2000년대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나보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
|
남녀공학 대학교에서 교육학교수로 재직 중인 교수의 시선에서 쓴 글입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왜 그렇지?’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관련하여 알려준다. 여자 몸에 대한 근거없는 수치심, 초경에 대한 주변의 반응, ‘여자의 외모를 노동에 맞는 모습으로 꾸미는 것’, 여자는 분노를 표현하기 보다는 삐치는 것으로 길러지고 남자는 공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길러진다‘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왜 그렇지?’하면서도 딱히 마땅한 근거를 찾지 못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자극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워피안(whorfian)의 법칙’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思考)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론. 언어가 사고에 영향줄 수 있는 만큼 우리의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 남편에게 존대말 & 아내에게는 반말 쓰는 경우_드라마의 경우, 친가와 외가, 남녀라고 하고 여남이라는 쓰지 않죠, 저도 남편과의 카톡을 보니 남편의 존대횟수와 저의 존대횟수가 확 차이가 납니다.으~~악!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남성 존중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표현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 책입니다.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성욕에 대한 연구도 참 재미있었다. 야하거나 야하고 낭만적인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성적 흥분 정도를 실험했는데,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이 가끔 자신의 성적 흥분 정도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실험에 참가한 여성의 반 정도가 신체적 흥분을 알아채지 못해 자기 직접 보고와 객관적 보고가 일치하지 않았다. 우린 성욕을 느끼지도 못하도록 길러지는 것일까요?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각종 사회범죄에 마땅하다고 길러지는 것일까요? 전반적으로 청소년에게 추천할 만큼 글은 읽기 어렵지 않았고, 여성의 생애 주기에 맞춘 구성과 함께 사례와 관련 연구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
|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건 좀 문제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그것이 왜 문제인지 조목조목 따져본 다음, 제대로 개선하자고 말하고 있다. 작가도 말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우리나라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든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남성 중심성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실제 주변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공감가는 많은 이야기들로 이끌어가고 있다. 1부에서는 여자, 태어나다를 제목으로 하여 7부 여자, 아줌마 되다로 여자가 태어나서 학교를 가고, 사춘기가 되고, 사랑에 빠지며, 사회생활, 결혼 등의 일생의 순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고 있는 남성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를 말하고 있었다.
나도 여자로 태어나 24살인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빠져있는 남녀불평등의 분위기에 쌓여 살아온 것 같다.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시는 부모님, 좀 더 애교스럽길 바라는 친구들, 좀 더 여성스럽기를 바라던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 등등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어떤 모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혼은 일찍 하신 부모님은 나도 일찍 결혼을 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대화하면서 지금은 공부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시지만 여자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으신 듯하다. 여기서 학교에서 겪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 선생님들의 고정관념 등이 나오는데 고등학교 한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 선생님은 사회 선생님이셨는데 자유분방하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여자고등학교에서 성 평등을 이야기하시며 수업도 조별토론 등으로 새로운 수업 등을 시도하셨다.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수업시간에 우리 주변의 남성우월주의 등을 이야기하며 발표 하였는데 한 예로 친구가 아침에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고 오려는데 딱 타자마자 여자가 타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며 내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 사회 선생님도 그런 우리나라가 바뀌어야 한다며 소리 높여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수업시간 말고 떠들다가 걸렸거나, 아침 자습시간에는 여자들이 어디서 떠들고 있냐고 말하고 그 외에도 말 중간 중간에는 여자를 낮추는 말을 해서 참 당황스러웠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말지 하면서 우리끼리 저 선생님이 더 하다며 이야기 하였었는데 선생님들의 그런 태도는 배우는 학생들에게 결국 사회는 저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옛날보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점점 사회에서, 가정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도 커지고 있으며, 나라에서도 지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도 가능해 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자는 가정과 사회생활 둘 다를 잘 병행해야 100점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사회생활을 잘 해야 100점이며 성공한 사회생활 100점에 가정생활까지 잘하면 보너스로 플러스 50점이 더 있다고 말한다. 나도 이제 사회에 나갈 나이가 되었고 지금보다 남성중심인 우리의 이야기를 은근히 많이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실력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일을 계속하려면 여자는 남자보다 두 배 이상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적의로 가득한 상황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것은 여자들의 직장생활 불문율 가운데 하나다.” (필리스 체슬러 - 심리학자) |
|
나는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억압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차이와 다름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구조가 다르고 근육의 크기가 다르고 생각하는 메카니즘이 다르기 때문. 인류 탄생 이래 이 문제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음양론 등. 역시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 둘이 상호보완적이고 호의적일 때 완전한 사랑과 평화가 오고 적대적이고 투쟁적일 때 다툼이 오는 것 처럼 남녀 문제에는 완전한 답이 있을 수 없고 화합하려는 서로의 노력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태극문양처럼 유동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녀가 똑같다는 것. 다르게 된 것은 오로지 사회적 교육 때문이라는 것.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훈련 시키기 때문이니 그런 교육이 없으면 똑같아 진다는 주장.
과연 그럴까? 나는 동의가 어렵다. |
| 살면서 한번쯤은 이런 책을 읽어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사람과 페미니즘을 부르짖는 사람에게 은근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민감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성 차별을 하지 않으려 애쓰셨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남동생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딸이라 그런가 싶어 필요 이상으로 저항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는, 양성 불평등과 성별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내 생각에 저자는 그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아이들 장난감을 살 때 선물 받을 아이가 남아인지 여아인지를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저 고려해야 할 것은 장난감의 가격, 견고성, 안전성이지요. 이제, 여자아이들에게 지적인 능력 계발에 별 소용이 없는 장난감은 그만 사 줍시다. 난 더 이상 네 살배기 친구의 딸에게 커피 대접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아이가 직접 만들었을 법한 근사한 장난감 집이나 자동차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친구에게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아이 선물 사올 사람들이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파워레인저 변신로봇이요.''라고 말해. 알았지? 네 딸 이담에 과학자 되면 다 내 덕인 줄 알라고!" -46쪽 여성과 남성은 같을 수 없다. 차별해선 안되지만, 차이를 부정하는 것 역시 안된다. 어린아이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식하며, 그 이상으로 자신의 취향도 중요시하는 존재이므로. 어렸을 때 인형놀이를 참 좋아했던 나지만, 만화영화만큼은 로봇이 나오는 것을 선호했다. 나의 부모님은 어린 나의 취향을 존중해 주셨다. 굳이 남자 것 여자 것을 구분하지 않으셨고,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친구의 네 살배기 딸에게 커피 대접 받는 건 매우 근사한 일이다.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겉으로는 양쪽을 같게 취급하려 노력하는 모양새가 보이기도 하지만. 만사를 자신의 편견으로 걸러 버리는 저자의 글을 끝까지 읽는 것은 무리였다. 70쪽이 나의 한계였다.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 오히려, 읽겠다고 하면 뜯어말리고픈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