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출간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수필집, <문명의 우울>과 신작 장편소설 <장송>을 읽었다. 세세히 적어내릴 수는 없지만 과연 지의 거인다운 풍모, 스케일의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문명의 우울>은 짧고 경쾌한 이야기들 속에 다소 염세적이나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여겨지는 개성이 돋보였다. <장송>은 19세기 파리를 마치 세밀화처럼 그려나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없는 갈증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그 세계에 좀더 다가가고 싶다는 갈증이요, 이야기를 읽게 하는 갈증이다. 명민하고 고아한 문체로 쇼팽과 들라클루아, 죠르쥬 상드 등의 인물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또 멀어지며 그들의 일상, 그들의 예술, 그들이 살아숨쉬던 시대의 기운을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재현해낸다. 이제 겨우 서른이며 <문명의 우울>을 썼을 때 스물넷, <장송>을 썼을 때 스물여섯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히라노 게이치로를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렇게 긴장을 요하는 독서, 자극적인 책 읽기였다. 하지만 또다른 의미에서 격려로도 느껴진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산과 같은 한계에 맞닥뜨려진 이 시점에서 그는 이전의 산으로 올라가 앞으로 가야할 산세도 지켜보고 길도 모색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전의 산이 쌓아올린 그 지점에 이른 것만도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적어도 그는 그 작업을 잘 헤쳐나간 것이 틀림없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로 방법을 찾고 있다. 나도 나대로 그것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래의 청년이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고 다행으로 여겨진다. 나도 열심히 해보겠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그 또한 하나의 큰 산이다.- 그의 문장을 대할 때면 내가 너무 탐욕스러워지는 것 같다. 만지고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이런 식의 집요한 욕망에 익숙치 않은 탓에 다 읽고 나면 벌거벗은 것처럼 창피하다. 일어를 할 줄 모르는 것이 조금 한스럽기도 하다. 워낙 고어를 많이 쓰는 탓에 전공자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있다지만. |
| ''장송''을 읽기 전에 그의 작품을 읽어 두었더라면 아마도 ''장송''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너무도 작가에 대해 아는 것 없이 시작한 ''장송''은 두께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작가가 19세기의 프랑스라던지 예술과 정치등등을 잘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쇼팽과 들라크루아, 그리고 쇼팽의 연인인 조르주 상드가 뒤썩여 풀어가는 이야기는 음악과 예술과 사상을 가로지르며 마치 그들이 현대의 예술인이라도 되는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들라크루아의 천장화 묘사나 쇼팽의 연주회 묘사는 작가가 얼마나 준비하면 써내려 갔는지를 알수 있다... 듣지 않고도 음악이 들리는 쇼팽의 연주회 장면은 작가의 역량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160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소설의 리뷰를 이렇게 짧게 밖에 쓸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하라노 게이치로''를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작가''라고 평했다는데 과연 그 평가가 작가의 천재성을 확실하게 말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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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이다. 일식과 달에 이어 드디어 장송이다. 그외 그의 작품은 마치 뭔 의무감인양 두루 섭렵했지만 이 책은 일련의 고대 아니 근대소설 '문고'같은 고전 유럽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을 검색해보면 다 같은 반응이 "아이고, 결국 읽으셨군요.."나 " 대단하십니다. 그 책을 끝까지 다 읽다니..." 뭐 이런 글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런 줄 알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 책같이 감명깊고 눈물을 쏱은 책은 없었다. 지루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리만치 여기에 온 생각이 머물러 있어서 문득 머리에서 이 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나무의 뿌리처럼 갈라져나와 나를 멍하게 했었다. 마지막 즈음에 나온 쇼팽의 누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리고 쇼팽의 죽음을 앞둔 장면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것은, 그간 감정에 무뎟던 내 깊숙한 감성이 터지듯이 폭발한 것같아 스스로도 놀라워 했었다. 1권이 700쪽 좀 더되고 2권이 900쪽 정도니, 사실 질릴만도 했었다. 한 손으로도 들기 힘들정도의 책을 들고서 훌쩍거리고 있으려니 그 장면이 우스워 씩 웃기까지 했다. 쇼팽, 외젠 들라크루아, 조루즈 상드.... 동 시대를 살았던 천재 예술가들의 세세한 상황과 심리묘사를 마치 같이 살아 같이 숨쉬었던것 같이 써내려간 또 한 사람의 천재, 히라노 게이치로...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그들만이 느끼는 감성이 따로 있어서 세월을 뛰어 넘어서도 서로 감지할 수 있는 천재끼리의 무언가가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내게는 한 순간도 지루하지않은 책이었고 감동이 물결치는 책이었으며 이질적인 것이 동화되는 순간이었고 음악과 그림에 대한 이해가 한층 고조되는 책이었다. 수년전에 스페인에 간적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누라 덕분에 그 나라의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봤었다. 아무 감흥이 없는 내 자신이 스스로 이상했는데, 지금 다시 가게된다면 분명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고 분투했는지를 짐작하게 됨으로써 그림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쇼팽의 음악을 들으면 그 때의 고뇌하던 쇼팽과 죽을 당시의 쇼팽에 감정이입되어 복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책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 하나 남기지 않겠다. 그 수많은 이야기와 밑줄 그은 주옥같은 말들을 여기에 어떻게 그려 놓을 수 있을까... 4년이 걸린 이 책이 그의 천재성 보다 성실성에 더 촛점을 두어야 한다는 옮긴이의 말에 공감하며, 언젠가 다시 이 소설을 읽을때에는 도데체 어떤 느낌을 다시 받을지 사뭇 기대가 되고, 지금 나는 이 책으로부터의 감동들을 잘 갈무리해 온전이 내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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