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직접 읽은 뒤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어떤 책은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그러나 '우리'의 '우리'가 과연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에서의 '우리'는 퀴어 여성 커플 캔디와 력사. 결코 울지 않는 무지갯빛 투사처럼 보여지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기에 아프고 슬펐다. 특히 력사는 오래 아팠다. 상큼 발랄 로맨틱 퀴어 소설과는 어울리지 않는 난소암으로. 그러니까 이건 소설 아닌 에세이였으니까, 책장을 덮는다고 끝나버리지 않으니까. 남겨진 자의 삶은 소설에서처럼 ‘몇 년이 흐른 뒤 어느날’로 압축되지 않는다. 기나긴 투병과 돌봄, 죽음과 장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모든 시간 동안, 그 단 하나 뿐인 사랑과 삶에서 캔디는 오직 친구라는 자격에 갇힌 채로 존재한다. 호의와 선의에 의지해 사랑이 번번이 설명되고 증명되어야만 하는 현실은 옛날 옛적 먼 나라 저편 아닌 오늘날 지금 여기. 개인의 주관을 덧붙이는 일이 누군가의 고유한 고통을 쉽게 가로지르는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나 또한 상실을 경험했으나 함부로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종이 너머로 함께 고통했다고 해서 퀴어 당사자가 겪는 제도적 배제의 밀도 역시 내가 완전히 체감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제도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투명해지지 않는 세계. 사랑하고, 손을 잡고, 아프면 돌보는 과정에서 설명이나 증명이 필요 없는 세계. 나의 ‘우리’와 그들의 ‘우리’가 서로 다른 층위로 분리되지 않는 세계.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세계. 그러한 세계가 반드시 ‘우리’가 도착해야 할 미래이기를. 내가 감히 희망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며 오래도록 부끄럽다. |
|
#도서제공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퀴어들에게는 오히려 더 빨리, 더 젊은 나이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죽음 앞에서 가족으로서, 배우자로서 당연히 갖는 위치를 갖지 못하는 퀴어 커플들의 목소리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사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산지니 출판사의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떠올렸다. 장례 방식에서 고인의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견, 동성 파트너도 장례 과정에서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나 생동법, 차금법에 대한 책과 칼럼을 꾸준히 읽어 왔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애도의 목소리에 더 가까웠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나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책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떠나보내기까지의 과정과 심정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요양병원과 호스피스를 오가고 유언장 쓰기를 시도하거나 장례식장, 장지를 고민하는 과정들, 그리고 고인의 원가족인 어머니의 배려로 임종을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읽는 매 순간 슬펐고, 대단했고, 또 동시에 괴로웠다. 고인은 커밍아웃을 거의 하지 않은 퀴어였기 때문에 이 많은 과정에서 저자 캔디는 자신이 고인의 ‘친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원가족의 동의로 임종도 지키고 상복도 입을 수 있었으나 상주는 될 수 없었고, 활동가였던 저자의 지인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을 때 그들이 누구인지 이리저리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간병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이야기지만 애도는 온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그 애도의 과정에서 자신이 고인과 얼마나 깊은 관계였는지 말할 수 없다는 건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추억하며 스스로의 방법으로 충분히 애도한 뒤, 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자가 존경스러워진다.
너무나도 많은 퀴어들이 법의 테두리 바깥에 서 있다. 이들은 파트너의 간병과 장례 과정에서 법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따라서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은 물론이고 장례 절차에서조차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없애 보고자 활동가들이 항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는, 지금은 레퍼런스이지만 어느 미래에는 단순한 회고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동성혼이 당연해지고 동성 배우자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비슷한 사례들을 어렵게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그저 슬픔과 애도의 목소리로만 이 책을 다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소 낙관적인 결론임에도 어쩐지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씩씩한 글이다.
오랫동안 내 북스타그램을 보아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체로 이런 서평의 말미에는 차금법과 동성혼 법제화를 촉구하며 <투쟁.>을 붙인다. 그러나 저자의 다정한 목소리와 또 다른 인연, 이 글을 함께 읽은 많은 퀴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서평은 더 평온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사적인 애도를 세상에 내보여 준 저자에게 감사드리며, 오늘도 모든 소수자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가마지막순간을함께할수있을까 #캔디 #윤다림 #들녘 #공삼_북리뷰 #서평 #서평단 #북리뷰 #북스타 #북스타그램 #책추천 #책리뷰 #책스타 #책스타그램 #에세이 #한국에세이 #퀴어 #애도 |
|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도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는 그 너무도 익숙한 문장을 처음부터 흔들어놓는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때로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파트너 '력사'의 병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돌봄과 이별의 과정을 기록한다. 읽는 내내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무력감이었다. 사랑은 분명 존재하는데, 그 사랑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순간, 관계는 너무 쉽게 바깥으로 밀려난다. 병원에서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배제되는 장면들은 감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야기라면 쉽게 눈물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는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크게 와닿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슬픔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지만, 이 책은 그 전제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드러낸다. 혈연이나 법적 관계로 묶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어도 중요한 순간에 배제될 수 있다. 그 사실은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동시에 쉽게 외면되어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함께할 수 없고, 때로는 제도적인 장벽 때문에 마지막 순간조차 공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함께함'이란 무엇인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이 책은 애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보통 애도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옅어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 속에서의 애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다가도, 특정한 순간에 갑자기 무너지는 감정.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슬픔이 다시 돌아오는 경험. 저자는 그런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애도가 결코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애도는 삶 속에 계속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 감정에 가깝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는 슬픈 이야기이지만 슬픔에 머물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관계와 제도, 그리고 함께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이 남기는 가장 큰 변화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해왔던 '함께'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서평단 #도서협찬 10년 넘게 사귄 애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스스로를 친구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들은 ‘나’를 진정한 보호자로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애인은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고 의사와 애인의 가족과 주변 환자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했던 것이 너무 슬펐어요. 그들은 십 년이 넘는 부부와 비슷한 관계였지만, 사실혼 관계도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 커플이었으니까요. 유품을 정리하는 순간을 담은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돌아가신 “력사”님은 가까운 지인외에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은 유품을 정리할 때 그 분이 알리기를 원치 않았던 정보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알려질까봐 불안하셨다고 해요. 다행히 력사님이 돌아가시고 력사님의 어머니와 함께 유품을 정리할 수 있게 되어(어머니께서 동의해주셔서) 력사님이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사진과 편지, 퀴어 관련 물품들 등을 따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너무 슬펐어요. 퀴어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숨겨야할 것들이 있구나. 그러면서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누구에게 미리 부탁을 해야할지 등의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후에 다른 동성의 연인과 결혼을 하셨는데, 한국에선 동성혼을 인정 받을 수 없어 혼인신고를하고 불수리증명서를 받는 것으로 혼인신고를 갈음한대요. 우리가 언젠가 혼인신고를 했단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이자,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동성커플이 결혼하길 원하는지 보여줌으로써 동성혼 합법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요. 작가님 부부는 관광객도 동성혼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덴마크에서 결혼식을 하시고 혼인증명서를 받았다고 해요!! 그 후 한국에서 결혼식까지.. 너무 감동적이니 꼭 읽어보시길..!!! |
|
#도서제공 #서평단 우리 둘은 그래서 참 외로웠고, 그래서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다. 외로운 사람 들끼리 만나니,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었다. 력사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사람들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자존심이, 나와는 너무나 달랐던 그 모든 것이, 갈수록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그 차이점들이, 그래서 싫은 것'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은 것'이 되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 는 사람이 되어주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사이는 될 수 있었다.
너를 만나는 동안 나는 정말로 행복했어.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언제까지나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야.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를 하면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여야할까? 나라면 어떻게 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읽은 책 이었습니다. 특히 동성 애인과의 이별은 다른 이들의 이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동성 애인과 연애를 할 때, 이성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애인을 단짝친구가 아닌 애인이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아쉬움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의 보호자가 될 수 없으며, 마지막까지 나는 애인의 친구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동성 애인 뿐만아니라 모든 사랑에서의 돌봄/이별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애인과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이후에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저에게 애인과의 이별이 찾아온다면, 이 책이 저에게 레퍼런스가 될 거 같습니다. |
|
도서무료제공 담담하게 흘러가는데, 읽을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는 이야기였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병간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만 ‘연인’이 아닌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어야 했던 이야기. 연인이 아니고 친구이기에 끝내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는 마지막,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까지 담겨 있어요. 특히 장례 과정에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택권을 가질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남았어요. 분명 사랑하는 사람인데 법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 마음 아팠어요. 사랑이 사회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현실이 생각보다 더 많이 아팠어요.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성 소수자에 퀴어에 초점을 맞춘다기보다는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잃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부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을 종합해 봤을 때 성 소수자에다 관심이 없는 퀴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추천합니다. |
|
*도서제공* 아침에 읽다가 눈물 줄줄 흘림 그냥 다른 회고록 읽듯이 읽을 수는 없었어요 내 삶에 너무 맞닿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읽고 어떤 방식으로 기록해야할지조차 막막했는데 할일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가볍게 쓸 수 있었어요 당사자는 얼마나 더 긴 시간을 고통에 할애했을지 상상도 안가더이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과정과 장례 절차의 개인화에 대해 외로움도 책임감도 느낄 수 있겠지만 제가 느낀 감정은 매번 책임감에 가까워요 3일간의 장례식조차 사치라고 생각되는 환경에 있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죽음은 자주 겪는데 장례식은 자주 안가는 상태에 있다보니 또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맞는 죽음은 과정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기도 했어요 책이 굉장히 깔끔하게 잘 쓰였고 분량이 많지 않기때문에 각자 생각을 나누고싶은 동료들과 애인이 있으면 같이 읽고 서로의 가치관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음! |
|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에는 함께하고 싶다. 나는 보호자였다. 하지만 진정한 보호자는 될 수 없었다. 동성 커플이었기 때문에. 나는 력사를 떠나보내야 했다. 나는 가족으로 인정받으며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 상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저는 아직 모르겠더라고요. 에세이를 읽는 여러분은 행복하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역시 그 안에 포함되기를 바라며. |
|
오랜 시간 함께 한 연인을 떠나보낸 캔디님을 글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고, 고민해왔던 돌봄과 죽음이라는 것을 반추해봤다. 끝까지 연인의 존엄을 지켜주려는 캔디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선택권이 거의 없어지는 어느 순간의 내 친구와 그때 내가 느꼈던 좌절감이 떠오르기도 했고, 나의 마지막이 존중받는 죽음이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인간으로서 각자 생각하는 존엄과 품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자기 신체를 통제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효능감과 유능감, 어떤 이에게는 또 다른 것이겠지. 이것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처한 상황마다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한 가지는, 이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나 혼자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삶이 존엄할 수 있도록 바라봐주고 말 걸어주는, 기댈 수 있는 옆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70 우리는 모두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성소수자에게 그 현실이 얼마나 다른가, 는 차별적인 가부장적 문화와 제도를 보며 알 수 있고, 그런 순간들에 캔디님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감정 또한 깊이 와 닿았다. -동성 파트너 관계에서 돌봄은 특히 사망이 동반되는 돌봄 경험은, 나의 위치를 절절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선의에 기대댜 하는 모든 순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겨야 하는 모든 추억이, 어떻게 해서라도 함께해야 하는 순간들이 내가 동성 파트너임을, 숨겨진 사람임을 실감하게 했다. ’그럼에도‘ 해야 하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146 무엇보다 캔디님과 력사님, 그리고 그 친구들의 이야기로 인해 삶이 그러하듯 (돌봄을 포함한) 죽음에서도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서로 연대해주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비혼으로서 돌봄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내게도 또 다른 희망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 마음들로 인해 이렇듯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죽음은 단절된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그 전후의 시간들과 밀접히 이어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기나긴 여정을 지나는 동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160p 감정이 흔들리게 울컥울컥 한 적도 있었지만, 너무 잘 쓰여진 책이라 일요일 하루동안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읽다가 잠시 한 눈 팔면 저 표지때문에 거꾸로 놓은 것이라 착각하기도.. |
|
#우리가마지막순간을 함께할수있을까 #캔디에세이 #윤다림에세이 #사랑과돌봄에관한퀴어한참조 이 책을 읽는 내내 몇번이나 먹먹해져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죽음에 압도되지 않고 자기다움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관계망에 대하여’ 라고 적혀있는 부분을 몇번이나 들여다본다. 어쩌면 퀴어들에게 ‘살아낸다.’ 라는 그 자체는 투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의 곁을 끝까지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지만 단단하고 강인한 일인가 깊게 깨닫고 또 느끼며 읽는다. 파트너와 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는 성소수자인 나에게 ‘죽음’ 이나 ‘장례를 치른다.’ 라는 개념은 머릿 속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나에겐 다가오지 않을 미래처럼 여겨졌다. 그런 막연한 어떤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견뎌내고 감내해낸 캔디님이 정말 깊고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슬프고 버거웠을 상황들을 캔디님답게 씩씩하게 견뎌낸 것에서 어떤 희망의 끈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도 내 삶의 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상상하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힘을 얻었다. 읽는 내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고통스러운 감각에 몸부림치면서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두려움이고 또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일 것이다. 파트너의 암투병을 곁에서 지켜낸 그 경험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어찌되었든 마주해야하는 ‘성소수자로서의 나이들어감’에 대해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나는 어느새 40대가 되었고 흰머리가 제법 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나이들어가게 되고, 또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막연한 나의 노년에 대해 좀 더 용기를 내서 마주할 수 있게 해준 캔디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