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모든 존재에 상처를 남기면서 자신이 흐른다는 것을 알린다. 굳이 시계를 달지 않아도, 달력에 가위표를 치지 않아도 시간은 사방에 자신의 이빨자욱을 남김으로써 우리에게 말한다. 너도 지금, 늙어가고 있다고. 늙어서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은 그가 시간과 맞부딪으며 살아 온 것들을 상징하는 유동적 아이콘이다. 어떤 이는 그 노쇠함으로부터 풍부한 삶의 지혜와 경험을 생각하고, 어떤이는 지독한 시간의 흠집내기에 인이 박히며 살아왔을 노인의 고집스러움과 고루함을 생각한다. 인간에만 국한된 시간이 아니다. 온갖 애교로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강아지도 시간의 풍파를 맞고 나면 세상 일에 무관심한 한마리 노견이 되어 변두리에 주저앉아 햇볕만을 쬔다. 그 노쇠함, 단순히 낡고 고루하고 퇴색된 무언가라는 느낌만을 남기는 것일까? 저자는 시간이 주는 감각적 이미지 너머의 무언가를 본다. 낡아서 반들반들해지고 생기잃은 무언가가 겪은 시간만큼 쌓이는 그 무언가. 파르테논 신전이 그렇게 다 낡고 부서지지 않았더라면 그 폐허 한가운데 앉아서 옛 추억에 잠길 수는 없는 것이다. 디지털로 100% 정확한 복제와 재생이 가능한 정보 사회의 컨텐츠들은 그 낡음에서 비켜나 있기에 늘 생생하지만, 오히려 그 생생함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옛 것에 대한 고즈넉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컨텐츠에겐 허전함이다. 그 허전함을 메꾸기 위해 어떤 디지털 세상에서는 옛 추억들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은가보다. 쫀듸기라던가.. 그런거. 좀 건방지고 권력에 욕심내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싫어했던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줄기차게 복원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데 그와도 상통하는 맥락이 아닌가 싶다. 복원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삭제다. 오래된 절집의 고색창연함은 처음 지은 절집 + 시간이라는 또다른 예술가의 가공이 만든 합작품인데, 그 시간의 작업을 애써 삭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훼손이다. 창조 당시와 관람자의 시각 사이가 갖는 시간의 차를 무시하는 것은 현재의 횡포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역사에서의 자기중심주의랄까.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현대'라고 부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를 사는 인간들은 동서양 선후진국 가릴것없이 지금 우리가 가진 시간의 틀 안에서는 분명 자기중심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이후를 살기 때문에 근대적 시간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시간과 다른 시간과의 차이를 삭제하여 내 시간 안에 상대의 시간을 꿰어맞추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근대의 성격은 참으로 참으로. 사실 책의 내용은 낡아감을 다루는 방식이나 소재에 있어 진부함이 없지 않다. 자연과학과 문학의 범주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글빨을 펼치긴 하지만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의 시간과 타자의 시간을 대조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 점에 있어서는 이 책으로부터 얼마간의 빚을 진 것이 틀림없는 나이다. 그러나 제목처럼 시간의 이빨자국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그 이상의 고찰이 부족하다는 점은 그다지 오랜 세월 새겨읽을만한 고전의 축에는 들지 못할 이유가 될 것이다. 결국 시간의 이빨이 이 책도 아그작아그작 씹어먹어버리지 않을까.. |
| 어느 소설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연한 사건으로 죽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게된 남자가 있었다. 수백년을 살면서 세상의 온갖 경험을 해보다 마침내 삶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숲속에 들어가서 100년동안 잠을 자다가 나온 사람에게 한 여인이 그녀를 사랑해 달라고 매달린다. 죽어가는 자신을 기억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남자의 기억속에 살아있도록 해달라고... 그렇다. 모든 사물은 낡아가고,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이 책은 날카롭고도 풍부한 지성의 시각으로 그러한 과정을 성찰한다. 시간은 모든 생명과 모든 물체를 물어뜯고 상채기를 낸다. 그 상채기가 쌓이면서 눈부시던 피부는 쭈글쭈글하게 되고, 아름답던 물건은 윤기를 잃어간다. 그러한 낡아감에 대한 성찰, 늙어감에 대한 성찰을 깊이있게 제공하는 이 책은 많은 교훈을 주었다. |
|
1장 "삶의 사다리"에 나오는 삶의 여정도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이 인생인데 언젠가부터 나이 든 사람들은 무관심의 대상이 된지 오래이고, TV에서는 젊고 싱싱한 모습만이 나오고 늙은 사람마저 억지로(?) 젊음을 유지한 사람들만 보게 된다. 우리도 고양이처럼 늙어간다면, 가령 인간의 나이로 환산해서 20대부터 대략 한 60까지 비슷한 모습이라면 ? 아니 새처럼 죽을 때가 늙은 건지 아닌 것이 알 수 없다면? 죽음에 대한 언급은 보통 부정적이고 사회적으로는 묵시적인 금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런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아니 죽어 가는 것, 아니 썩어가는 것에 대한 과정과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필자가 너무 박식하다 보니 하나의 주제를 유지하기가 힘든면도 있다. 자칫 이야기가 산만하게 펼쳐지기도 하지만 필자의 박학다식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건 호르몬의 작용일 뿐일까? 동물들을 보면 시계처럼 작동하는 호르몬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기르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죽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 이건 뭘까라는 생각을 할까?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동물의 본능이라고 하겠지만. 몇해에 걸쳐 둥지를 틀지 않고 제대로 한번 만들면 나중에 덜 수고스러울텐데. 길게 생각하지 못하는 걸 봐도 호르몬의 작용인가 보다. 인간은 어떨까? 도파민이니 세라토닌이니 하는 호르몬의 작용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의지로도 꺽지 못하는 그러나 말년에 가서는 후회할 짓거리들을 하면서 살게 되는 것일까? 질병이 아니면 왜 인간은 100세를 넘겨 살기가 어려운 것일까? 세포 자체가 40~50번 밖에 복제를 하지 못한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신이 우리 세포안에 무언가 그런 장치를 해 놓은 것일까? 식물 중에 꺾꽂이는 결국 동일한 존재가 계속 복제되는 것이고 세균 중에는 그런 것들이 태반이다. 즉 세균은 몇억년을 고스란히 살아 왔다는 것인데 왜 포유류는 자신은 죽고 새끼를 낳아야 하는 것일까? 복제양 돌리가 금방 노화가 된 것은 결국 성체를 복제했기 때문이라는데. 실험실에 헬라라는 증식 세포로 지금도 살아 있는 '헨리에타 렉스' 이야기를 보면 암은 노화에 의한 '자살'이 작동하지 않는 무한 증식의 세포이기에 오래 살아 남는 것일까? 결국 암이라는 건 영생을 위한 세포의 반란이기에 숙주(사실은 자신)을 죽게 하는 것일까? 마지막 두 장은 "영원한 삶"과 "몰락인가 아니면 완성인가?"인데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에 나오는 죽지 않는 종족인 스트럴드브럭스의 이야기가 그 내용을 대신할 듯 하다. "스트럴드브럭스들은 일반적으로 30세가 될 때까지는 보통의 죽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러다가 점차 그들은 우울해지며 의기소침해한다..... 그들이 80세가 되면 ...... 보통의 다른 죽는 노인들처럼 예기도 사라지고 기력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현상, 즉 자신들이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참담한 사실로부터 오는 온갖 고통을 겪게 된다. 그들은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이고, 탐욕적이고, 늘 불평만 하며, 괴팍하고, 수다스로울 뿐만 아니라 그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며,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놓지 못하고, 기꺼해야 자신들의 손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 그리고 그들이 혹 상여행렬이라도 보게 되면 자신들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편안한 생의 종착점에 다른 사람이 갔다고 부러워하면 한숨을 내쉰다." 걸리버 여행기가 원래는 성인을 위한 이야기인데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축약해서 아동용판이 된 것처럼 위의 메시지는 어릴적 어린용으로 봤던 "은하철도 999"를 생각나게 한다. 어린 시절이지만 영생("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라는 의문을 던졌듯이 이책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로다. 그러니 삶에 대해 집착을 할 필요도 없고, 그 끝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겠지만 늙어가는 걸 단순히 아름답게만 바라보기에는 허망하고 또한 허망하도다. 틱낫한 스님의 말대로 "나는 늙는다. 그걸 피할 길이 없다..." 6/24/2012
|
|
책 전반에서 낡아가는 것과 죽음을 향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합니다. 필자의 지식이 상당히 방대한 것을 볼수있는데, 하나의 주제를 과학적,인문학,사회학적,미학적 예시를 모두 끌어서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형식입니다. 스토리는 하나지만 약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는 경향도 있어서 한번에 주~욱 읽기에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내용이 풍부해서 책을 끝까지 다 보던지, 중간만 살짝보던지 해도 다른 분야의 독서를 부르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저 영림카디널에 아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책들 너무 좋은것 같지 않나요? 추천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