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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은 리쾨르 공부하기의 원년! 그러나 과연...
"2011년은 리쾨르 공부하기의 원년! 그러나 과연..." 내용보기
폴 리쾨르를 이제야 만난다. 그것도 입문서로.   때는 언제? 2007년인가, 2008년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때 선생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 보니, 김재영 선생님이었군. 한길 그레이트북스에서 나온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번역한 학자다.   그 선생님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폴 리쾨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러니까. 난 멍청이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2011년은 리쾨르 공부하기의 원년! 그러나 과연..." 내용보기

폴 리쾨르를 이제야 만난다. 그것도 입문서로.

 

때는 언제? 2007년인가, 2008년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때 선생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 보니, 김재영 선생님이었군. 한길 그레이트북스에서 나온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번역한 학자다.

 

그 선생님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폴 리쾨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러니까. 난 멍청이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선생님이 주로 언급한 학자가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그리고 뽈 리꾀르. 그렇다. 선생님은 굳이 뽈 리꾀르라고 하셨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는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리쾨르로 두 주 정도 수업을 했다. 과제도 있었다. 페이퍼 제출을 위해 폴 리쾨르의 자서전인 『타자로서 자기 자신』도 1/3 정도 읽었다. 결과는? 난 폴 리쾨르가 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졸업해버렸다.

 

이 경험이 지적 부채감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얕고 넓게 알자는 게 내 신념인 바. 원전은 어차피 언어 문제 때문에 못 읽는 거고. 어디선가 사상 문제에서 꿀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입문서라도 읽어야 한다는 게 독서 원칙이다. 그 과정에서 애용한 게 LP 루틀리지 시리즈와 살림 출판사에서 내는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마침,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 17편이 폴 리쾨르를 다룬다. 자, 읽기 시작.

 

독서 끝.

 

책을 쓴 윤성우 씨는 리쾨르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른바 리쾨르 전문가다. 리쾨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어쨌든 윤성우 박사의 설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리한 리쾨르는.

 

우선. 해석학자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간 자리는 폐허다. 이런 시대에 해석학이라...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무너졌다. 근대 철학의 핵심에 자아가 있고 자아는 의식적인 존재다. 의식이 몸을 규정하는 게 근대철학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이후로 주체는 파괴된다.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토대가 상부구조를 형성한다는 유물론. 니체는 지식이 권력의 문제이며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말했다. 신이 어딨니? 죽었지. 프로이트. 두말할 필요도 없이, 데카르트 코기토를 가장 극단적으로 전복한다. 반성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의식이, 인간에게 정상이 아니라 예외의 상태이며 무의식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애너지라고 그는 봤다.

 

이른바 의심의 세 대가로부터 복사물이 무던히도 쏟아졌다. 20세기 사상가치고 어떤 형태로든 이 세 명의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으리라.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학자, 폴드만. 폴드만은 모든 독서란 오독에 불과하며, 텍스트의 의미는 잡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주장을 들은 듯? 데리다도 비슷한 말을 했거덩. 데리다가 말한 차연이 바로 그거다. 시니피에는 없고 시니피앙, 시니피앙, 시니피앙만 계속 만들어진다고. 대리보충이 그런 개념이지.

 

아니, 이런 상황에서 해석학을 하겠다니. 해석학이란 이름 그대로,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종교학자가 종교를 부정하지 않고, 사회학자가 사회를 부정하지 않고, 경제학자가 경제를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해석학 역시 해석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해석이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올바른 해석을 하자는 게 해석학이다.

 

리쾨르는 올바른 해석이 있다고 믿엇을까? 글쎄. 그도 물론 안다. 상징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이 해석은 서로 갈등한다. 그의 명저 『해석의 갈등』은 이런 문제를 다룬다. 읽어봤냐고? 안 읽어봤다. 죽기 전에 한 번은 읽겠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것에 대한 해석들 사이에서 갈등은 불가피하기 마련이다. 왜일까? 그 누구도 진리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갈등은 외재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적이며 내재적이다. 리쾨르 철학은 이 점을 굳건히 견지한다. 이렇게 열림과 개방과 소통의 정신을 갖는 것이 리쾨르 철학과 이 저작의 진정한 미덕이작 교훈이며, 강조해야 할 철학적 중요성이다. (22쪽)

 

의심의 세 대가, 마르크스와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 중 리쾨르가 천착한 학자는 프로이트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로이트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엿을 먹인 장본인이다. 리쾨르는 프로이트를 어떻게 넘으려 했을까.

 

프로이트의 위상학 모델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다양한 심리적 힘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그것은 인간이 한때 바로 그 자신이었던 아이의 포로가 될 수 있고, 태곳적 상처로 퇴행적 삶을 살 수도 잇기 때문이다. 최선의 사회적 조직이나 최선의 교육과 배려로도 인간을 그런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없기에, 갈등은 하나의 우연이 아니라 오직 갈등함으로써 인간을 인간다운 문화적 세계 속에서 살도록 하는 어떤 필연이다. (150쪽)

 

프로이트의 이러한 입장에 리쾨르는 동조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은 갈등때문에 퇴행하기도 하지만, 인격적 통합을 위해 부단히 미래로 전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쾨르 해석학은 밝다. 긍정적이다. 이러한 면 때문에 보드리야르는 리쾨르를 '정신병자'라고도 했다. 이해한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기독교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하고 인간 행위의 능동성을 높게 평가한 리쾨르는 우파의 괴상한 변종처럼 보였으리라.

 

리쾨르는 이런 사람이었나 보다.

 

장 이폴리트의 뒤를 잇는 사상사 교수 자리에 리쾨르는 푸코에게 패한다. 리쾨르를 비판한 라캉은 『에크리』로 대박을 쳤다. 1970년에는 마오주의를 추종하던 학생에게 뺨을 맞고 쓰레기통을 머리에 덮어 쓰기도 했다. 오래 살았지만 그의 온건한(?) 해석학은 여러 학자에게 조소거리였다. 그 당시 시대정신이 그랫으니까. 푸코가 아닌, 리쾨르가 사상사 교수 자리에 올랐다면 현재 사상 지형이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많은 사람이 추측한다. 하긴, 미국이 프랑스 지성을 수입하는 건 유명한 일이니,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리쾨르 역시 미국에서 활동을 했지만, 20세기는 리쾨르의 시대라기보단 푸코의 시대였다.

 

난 어떻게 생각하느냐? 글쎄. 리쾨르의 저작은 읽은 게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스텝은 『악의 상징』! 끝으로 이건 덤이다.

 

어쨌든 현대성이든 근대성이든 이를 가장 첨예하고도 민감하게 드러낼 지평이 바로 해석들 사이의 갈등이다. 그래서 리쾨르는, 해석을 위한 보편적인 규칙이 이다거나 두루 통용 가능한 일반적인 해석 이론이나 해석학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이런 갈등 때문에 해석학이 내부적으로 산산조각 났다고 리쾨르는 보고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기만이나 위장을 벗겨 추악한 환영을 들추어내어 탈신비화하는 해석의 방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성한 메시지나 선포의 방식으로 우리 인간에게 의미의 복원이나 드러남을 갈구하는 또 다른 해석의 방향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선두에 서 있고, 하나의 사물에서 성스러움을 보고자 한 엘리아데의 종교현상학을 후자의 경향으로 이해해도 좋다. 다시 말해 의심해보고 까뒤집어보는 의지가 충만한 해석이 있는 반면, 의심 대신에 심오한 메시지를 경청하면서 그것이 지닌 의미의 목적에 순종하고 따라가려는 해석이 있다는 것이다. 상징들을 두고 긴장하는 해석적 노선들이 분명 발생한다. 인간이 자신의 절망과 희망, 어둠과 빛, 과거와 미래, 처음과 마지막, 충동과 신성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창조했고 또 받아들이는 풍부하고 수수께끼로 가득한 언어가 바로 상징이 아니던가? (157-158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1.03.0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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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공저가 아니구요, 리쾨르 저서인 [해석의 갈등]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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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공저가 아니구요, 리쾨르 저서인 [해석의 갈등]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반드시 수정해서 올리시구요, 부제[인간 실존과 의미의 낙원] 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독자나 구매자들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당당자님의 확인을 부탁드리고 이글은 리뷰가 아닌 만큼 리뷰란에 올리지 마시고 지워주셔도 좋습니다. 살림 출판사의 동일한 시리즈의 다른 저서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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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은 공저가 아니구요, 리쾨르 저서인 [해석의 갈등]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반드시 수정해서 올리시구요, 부제[인간 실존과 의미의 낙원] 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독자나 구매자들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당당자님의 확인을 부탁드리고 이글은 리뷰가 아닌 만큼 리뷰란에 올리지 마시고 지워주셔도 좋습니다. 살림 출판사의 동일한 시리즈의 다른 저서들도 다 그런 방식으로 집필 된 것들입니다. 잘 참고해주세요. 이 저작은 공저가 아니구요, 리쾨르 저서인 [해석의 갈등]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반드시 수정해서 올리시구요, 부제[인간 실존과 의미의 낙원] 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독자나 구매자들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당당자님의 확인을 부탁드리고 이글은 리뷰가 아닌 만큼 리뷰란에 올리지 마시고 지워주셔도 좋습니다. 살림 출판사의 동일한 시리즈의 다른 저서들도 다 그런 방식으로 집필 된 것들입니다. 잘 참고해주세요
YES마니아 : 골드 s*******2 2005.12.01.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