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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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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쟁이 아버지   난쟁이 아버지가 있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아버지.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31쪽)에 나타나는 대로, 난쟁이 가족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한 자를 인정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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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쟁이 아버지

 

난쟁이 아버지가 있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아버지.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31)에 나타나는 대로, 난쟁이 가족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한 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왜냐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돈이 없으면 법의 보호 또한 받기 힘들다. 법을 제도라고 해도 좋다. 가진 자들이 제도를 만든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법을 피해 이익을 취한다. 학벌도 없고, 돈도 없는 난쟁이 아버지는 애초부터 이 사회의 변방으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쟁이 가족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 산다. 낙원과 행복이라는 말이 붙은 장소에서 그들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산다. 하루하루를 살기도 힘든데, 집을 비우라는 철거계고장까지 날아든다. 난쟁이 가족이 사는 땅이 개발된단다. 판자촌을 허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단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은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보관한다. 철거민들마다 아파트에 입주할 입주권이 나오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개발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개발이 이루어진다. 자본은 가난한 자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의 목적은 오로지 자본을 증식하는 데만 있다. 돈이 돈을 낳는 사회에서 자본은 돈이 되지 않는 이들을 가차 없이 자본의 바깥으로 내쫓는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철거민들의 입주권을 사들인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입주권을 되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난쟁이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판자촌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난쟁이 아버지가 찍은 사람들은 구청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판자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42)

 

이 소설은 난쟁이 아버지를 둔 세 남매의 시선으로 가난한 이들이 감당해야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다. 맏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공장을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공장에 다니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하려면 그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난쟁이 아버지는 채권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등을 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림을 꾸렸지만, 남은 것은 건강이 나빠진 것밖에는 없다. 그는 꼽추와 함께 서커스단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이 일 또한 무산된다. 이후 아버지는 의욕을 상실한 채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삶에 지쳐서 그런 거라며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쇄 공장에 나간다. 어머니가 이러는데 맏이가 어떻게 공부만 할 수 있을까 

 

맏이가 학교를 그만두자 동생들도 학교를 그만둔다. 공부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 맏이는 먹고살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공장에 나간다.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이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가난한 사람은 결코 게으를 수 없다. 게으르면 하루 한 끼를 먹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런데도 도통 돈이 모이지 않는다. 일은 많이 하는데 받는 돈은 적기 때문이다. 맏이가 왜 공장에 다니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하겠는가?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려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 공부에 돈을 투자해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나 할까 

 

이렇게 보면 난쟁이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애초부터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가난은 아버지에서 아이들로 세습된다. 열심히 일할수록 더욱 더 가난해지는 이 모순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천 건너 주택가에서 가정교사를 하는 지섭은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54) 사랑이 없는 욕망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자본을 빼어 닮았다. 자본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 자본의 욕망을 몸속 깊이 받아들인다. 자본의 속성을 내면화하지 않으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무한 경쟁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이 벌어지는 광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피라미드의 끝으로 오를 수 있고, 경쟁에서 낙오하면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가거나, 아예 피라미드의 밖으로 내쫓길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욕망이 없이 어떻게 피라미드의 끝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지섭은 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달나라가 희망이라고? 지섭의 영향을 받은 아버지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그만큼 아버지는 이 사회에서는 어떤 희망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으로 올라간 아버지는 그곳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아버지가 날린 종이비행기는 높디높게 날아올라 달나라로 가게 될까? 이것이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환상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을 난쟁이 아버지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이제는 둘째 아들 영호가 보는 세상이 그려진다. 맏이인 형이 보는 세상이나 동생인 영호가 보는 세상이나 다르지 않다. 영호는 지금 여동생인 영희를 찾고 있다. 영희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주정뱅이는 비행접시가 영희를 데려갔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 부동산 업자에게 돈을 받고 입주권을 파는 그날 영희는 사라졌다. 집을 떠나야 할 날이 왔는데도 영희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오는 것인지, 영호는 공장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형을 비롯한 공원들과 더불어 싸울 계획을 세웠지만, 앞장을 선 형과 영호만 공장에서 쫓겨났다. 회사 사장은 형과 영호가 들어간 블랙리스트를 다른 회사로 돌렸다. 살 길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이들이 커다란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공장 식탁에 간이 맞은 무말랭이가 오르기를 원했다. 회사 사장은 불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회사 규모를 더욱 더 키웠다. 공장 식탁에 오르는 무말랭이는 여전히 간이 맞지 않았고, 야간 작업수당도 많이 줄었다. 회사는 점점 커지는데 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우리 공원들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밖에는 사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땀으로 다진 기반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공원들은 일만 했다.”(59)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공원들을 회사는 주저 없이 쫓아냈다. 한편으로 회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공원들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정보를 공유했다. 노동 말고는 달리 길이 없는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생각하고 저항하는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영호가 보기에 형은 생각이 깊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항상 책을 읽었다. 일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는 공원을 회사는 싫어한다고 했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벌이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 하고,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회사로부터 더 많은 월급을 받으려고 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노조를 만든다. 노조의 힘이 커질수록 회사는 노동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회사는 노동자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어울릴 수 있는 상황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야 노조도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회사는 결국 형과 영호를 희생양 삼아 공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난쟁이 가족은 입주권을 25만 원에 팔았다. 입주권을 산 사람은 부동산 업자였다. 25만 원에 사들인 입주권을 그는 이익을 덧붙여 다른 이들에게 되팔 것이었다. 돈이 돈을 낳는다.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말이다. 부동산 업자는 살 집이 필요해서 입주권을 사들이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입주권은 곧 자본을 증식하는 도구와 같다. 입주권을 많이 모을수록 이익이 커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개발이 되면 누군가는 삶터를 잃고, 누군가는 돈을 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펼치는 게임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누군가 이익을 얻으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 부자가 손해를 볼 리는 없다. 손해는 늘 가난한 이들이 본다. 자본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난쟁이 아버지는 여전히 지섭과 붙어 다닌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단다. 지섭이 미국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써 보냈단다. 자신을 미치광이 취급하는 영호를 향해 아버지는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점점 현실을 떠나 이상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만큼 현실을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아버지는 현실에 발을 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달나라를 꿈꾼다. 달나라는 현실과 관련이 없다. 아버지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영호에게 쇠공을 쏘아 올리겠다는 말까지 한다. 쇠공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려면 중력을 이겨야 한다. 중력에 갇힌 채 어떻게 달나라로 갈까?

 

아버지는 지섭이 쇠공을 달나라로 쏘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섭이 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철거를 하는 날 아침, 지섭이 쇠고기를 들고 난쟁이네 집에 들른다. 식구들이 모여 아침을 먹는데, 철거반원들이 몰려와 담을 부순다. 뿌연 먼지 사이로 밥을 먹는 사람들과 담을 부수는 사람들이 마주한다. 한쪽은 묵묵히 식사를 하고, 한쪽은 묵묵히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식사를 끝낸 가족들이 밖으로 짐을 옮긴다. 관리자에게 다가간 지섭이 주먹을 휘두른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지섭에게 달려든다. 순식간에 난쟁이 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지섭을 사람들이 끌고 간다. 아버지가 그 뒤를 따라 나선다. 어머니는 몸을 떨면서 울고 있다. 아버지는 과연 지섭을 따라 달나라로 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달나라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면, 형과 영호는 간이 맞는 무말랭이가 나오는 식탁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는 온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중력의 감옥을 탈출한 사람만이 달나라로 갈 수 있다. 형과 영호는 아버지보다 현실적인 꿈을 꾼다. 그들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현실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중력에 매여 허덕이는 삶을 사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바꾸려고 했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회사 바깥으로 내몰렸다. 바깥을 꿈꾸는 아버지나, 어떻게든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형과 영호 모두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바깥을 상상하고 있다.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그들은 암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만든 완벽한 성채

 

난쟁이 가족은 한없이 무기력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주권을 비싼 값으로 팔아 다른 삶터를 마련하는 일이다. 난쟁이 가족의 막내이자 외동딸인 영희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입주권을 파는 날 사라진 영희는 부동산 업자와 밤을 보냈다. 아버지의 재력을 등에 업은 스물아홉의 남자는 돈의 힘으로 열일곱 여자를 꼬인다. 정확히 말하면 입주권을 되찾으려는 생각에 영희 스스로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말을 잘 들으라는 것. 남자는 왜 영희에게 관심을 가진 것일까? 예쁜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돈으로 영희를 산다. 말을 잘 들으면 입주권 한 장 쯤 아무렇지 않게 돌려줄 수 있다. 이게 돈의 힘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흥정을 해 오기도 한다.

 

영희는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을 떠올린다. 어둘 녘에 모래 섞인 바람이 분다. 선 하나로 표시될 그 지평 끝에 내가 알몸으로 서 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머리도 반쯤 숙여 나의 머리카락이 나의 가슴을 덮었다. 눈을 감고 열을 세면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78) 영희는 이 세계를 회색으로 표현한다. 죽음으로 덮인 세계이니,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는다. 입주권을 산 남자의 세계는 어떨까? 아무도 그에게 안돼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영희가 지옥불보다 뜨거운 세상에 태어났다면, 남자는 편안하고 달콤하고 따뜻한 세상에 태어났다. 회색이 아닌 천연색의 세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

 

영희는 남자에게 몸을 주었고, 남자는 영희에게 입주권을 주었다. 부모와 오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영희는 해냈다. 그녀는 어리고 예쁜 여자였기 때문이다. 남자와 있는 동안 영희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빨리 일어나 옷을 입으라고 외쳤다.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했다가 사매질을 당한 증조할머니 동생 이야기도 했다. 영희가 자신은 그와 다르다고 외치자, 어머니는 어린 게 벌써부터 그것을 좋아한다며 힐난을 한다. 몸을 팔아 입주권을 되찾는 일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영희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영희는 몸을 판다. 이 방법이 아니면 입주권을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 너머에 돈이 있다. 도덕을 넘지 않으면 영희는 손에 돈 한 푼 쥘 수 없다.

 

남자는 영희가 처한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다. 그는 영희의 몸을 좋아할 뿐이다. 돈만 주면 그는 영희의 몸을 마음껏 탐할 수 있다.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므로 헤어지기도 쉽다. 영희는 돈을 원하고, 남자는 영희의 몸을 원한다. 영희의 몸을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남자는 도덕이니 하는 사회통념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이 도덕을 만든다. 남자가 영희에게 요구한 것은 안돼요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안돼요라는 말은 곧 거부의지가 아닌가. 남자는 영희의 자유의지를 돈으로 구매한다. 참으로 신비로운 힘을 가진 돈이 아닌가. ‘이라는 기호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지독한 욕망을 이해할 만도 하다.

 

구청 주택과에서 입주 신청을 마친 영희는 아버지와 잘 아는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벽돌공장 굴뚝을 허무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동시에 이 굴뚝은 아버지가 지섭과 함께 저 먼 하늘 위로 쇠공을 쏘아 올릴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굴뚝 속으로 떨어져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영희의 뇌리에 헐린 집 앞에 서 있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 몸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영희는 오빠들과 함께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가는 장면을 본다. 벽돌공장 굴뚝 위에 선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보인다. 환상이다. 입주권을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이미 저 먼 곳으로 떠났다.

 

목 놓아 우는 영희를 큰오빠가 달랜다. 영희는 큰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을 죽여 버리라고 외친다. 큰오빠가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영희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이다. 영희는 아버지를 죽인 세상을 용서할 수 없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며 깔보는 세상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비로소 중력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스스로 쇠공이 되어 하늘 저 너머로 날아간 아버지가 서러워 영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에 대한 영희의 분노는 사그라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영희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난쟁이 가족이 겪은 이 끔찍한 지옥도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일만 하려고 한다. 생각을 한다고 변할 세상이 아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을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다. 모난 생각을 하면 피라미드 바깥으로 내쫓긴다. 자본은 그 누구도 허물지 못하는 완벽한 성채를 만들어, 자본의 뜻을 어기는 사람들을 성채 밖으로 몰아낸다. 성채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의 뜻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자본이 되어 자본 증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난쟁이 가족보다 더한 비극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되는 것일까?

o*****s 2020.02.18.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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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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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인 수학 담당 교사가 손에 책을 들지 않고 교실에 들어온다. 학생들이 의아한 눈으로 교사를 바라본다. 그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뗀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 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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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인 수학 담당 교사가 손에 책을 들지 않고 교실에 들어온다. 학생들이 의아한 눈으로 교사를 바라본다. 그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뗀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 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 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가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묘한 질문이다. 둘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니? 교사는 학생들에게 둘 중 누가 얼굴을 씻을 거 같으냐고 묻는다.

 

잠시 후 한 학생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말한다. 교사는 즉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른 학생이 그 이유를 묻는다. 교사의 대답.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지만 타인의 얼굴은 볼 수 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얼굴이 깨끗한 아이를 볼 테고,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운 아이를 볼 것이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운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러울 것이라 생각하고는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교사는 말한다. 학생들이 아, 하는 탄성 소리를 낸다. 과연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답다. 아이들이 놓친 부분을 단번에 알아내다니.

 

교사가 똑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다시 반복한다.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씻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학생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교사는 아까와는 달리 그 답은 틀렸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의아하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게 어떻게 가능한가?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주기 바란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교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앞에서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굴뚝 청소를 했으면 둘 다 얼굴이 더러울 수밖에 없다.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하다면 그 아이는 굴뚝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다. 교사가 분필을 들어 칠판에 뫼비우스의 띠라고 쓴다. 설명을 하기 전 교사는 다시 이것은 입학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입학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수학시간에 하다니! 소위 강남 학부모들이 들으면 당장 달려와 교사 멱살을 쥐고 흔들 상황이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뫼비우스의 띠는 한마디로 말하면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으면 안과 밖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일 테니까.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뫼비우스의 띠는 근대사회가 형성된 원리를 부정한다. 근대사회는 인식 주체 앞에 인식 대상을 세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인식 주체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인식 대상을 자연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길을 가야 하는데 산이 가로막으면 인간은 어떻게 하는가? 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내버린다. 산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은 과학으로 자연을 정복함으로써 문명을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 인간은 자연의 역습이라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자연의 일부라는 걸 망각한 인간은 이제야 자연을 전체로 파악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안과 밖으로 분리된 존재들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자연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말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안과 밖을 나누면 언제나 강자와 약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강자는 약자를 어떻게든 자기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나타나듯 강자와 약자, 자연과 인간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한 길로 연결되어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조세희 연작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실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철거민 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 개발 대상지로 지목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이 투기를 위해 몰려든다. 투기꾼들은 철거민들에게 배분되는 소위 아파트 입주권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수법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 돈이 돈을 버는 꼴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이야기 속 이야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겉 이야기에는 교사와 학생들이 나오고, 속 이야기에는 앉은뱅이와 꼽추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난쟁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가난한 서민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난쟁이 가족도 그랬지만, 이들 또한 시세보다 싼 값으로 투기꾼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넘긴다. 투기꾼에게 십육 만원을 받고 판 입주권은 지금 삼십팔 만원까지 올랐다. 돈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기가 찰 노릇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란 말인가. 십육만 원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철거민 촌에서는 그나마 무허가 집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을 나가면 말 그대로 허허들판이다. 철거반원들은 무리를 이루어 신속하게 집을 허문다. 꼽추와 앉은뱅이는 허물어지는 집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가족들도 속수무책이다. ()에서 벌이는 일을 힘이 없는 철거민들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꼽추와 앉은뱅이는 이렇게 당하기만 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억울하다. 그렇다고 데모를 하기도 힘들다. 경찰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이니까. 게다가 관에서 주도하는 재개발이 아닌가. 두 사람은 다른 방법을 취한다. 투기꾼을 위협해 시세대로 돈을 받는 것이다. 두 사람은 휘발유를 들고 방범 초소 앞 공터로 간다. 승용차 안에 있는 사내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있다. 사람들은 아파트 입주권을 모으고, 사내는 그에 따라 돈을 지불한다. 일을 끝낸 사내가 차를 운전해 공터를 벗어난다. 꼽추는 콩밭에 숨고, 앉은뱅이는 차가 지나는 길 위에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앉은뱅이를 발견한 사내가 경적을 울린다. 그래도 앉은뱅이가 피하지 않자 사내가 욕을 퍼부으며 차에서 내린다. 앉은뱅이는 서슴없이 사내에게 자기를 죽이고 가라고 말한다. 사내는 앉은뱅이가 자신에게 입주권을 판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앉은뱅이는 이십만 원을 더 줘야 한다고 소리친다. 그래도 사내에게는 이만 원이 남는다. 동네 입주권을 몰아서 샀으니 사내는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거라는 게 앉은뱅이의 얘기다.

 

앉은뱅이의 말은 맞다. 하지만 사내가 앉은뱅이의 말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사내는 더 많은 이익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본을 투자하는 이유는 더 많은 자본을 얻기 위해서다. 앉은뱅이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사내라면 애초부터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내가 비키지 않으면 집어던질 거라고 앉은뱅이를 위협한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구둣발로 앉은뱅이의 가슴팍을 차기도 한다. 앉은뱅이의 얼굴을 큰 주먹으로 쥐어박더니 번쩍 들어 풀숲으로 내던진다. 손을 털며 사내가 차안으로 들어간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의 명치 밑을 힘껏 찬다. 콩밭에 숨어 있던 꼽추다. 차 밖으로 떨어진 사내는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힌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사내를 운전석으로 올린다. 앉은뱅이가 사내 옆에 앉아 검정색 가방을 연다. 돈과 서류가 있는 가방이다. 앉은뱅이는 꼭 이십 만원씩 두 뭉치의 돈만 꺼낸다. 원하는 돈을 얻었으니 이제 일은 끝난 것일까? 앉은뱅이가 꼽추에게 휘발유가 든 통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통을 건네주고 꼽추는 동네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동네 입구에 들어선 꼽추는 외딴집 마당가로 들어가 펌프 물로 입을 축인다. 앉은뱅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어오고 있다. 앉은뱅이 몸에서 휘발유 냄새가 난다. 꼽추가 펌프 물로 앉은뱅이 얼굴을 씻긴다. 앉은뱅이는 얼굴에 난 상처가 쓰라려 눈을 감는다. 갑자기 폭발 소리가 들린다. 놀람도 잠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 두 사람은 알고 있으니까. 꼽추가 앞서 걷고 앉은뱅이가 뒤를 따른다. 앉은뱅이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와 리어커, 그리고 강냉이 기계를 사야 한다고 말한다. 꼽추는 운전만 하면 된단다. 꼽추는 말이 없다

  

나는 사범을 따라갈 생각야.”

그 약장수?”

.”

미쳤어? 그 나이에 무슨 약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완전한 사람은 얼마 없어. 그는 완전한 사람야.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그 무서운 대가로 먹고 살아. 그가 파는 기생충 약은 가짜가 아냐. 그는 자기의 일을 훌륭히 도와줄 수 있는 내 몸의 특징을 인정해 줄 거야.”

꼽추는 이렇게 말하고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이야.”

그러니까, 알겠네.”

앉은뱅이가 말했다.

, 막지 않겠어.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어쨌든.”

꼽추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무슨 해결이 나야 말이지.”

  

앉은뱅이는 내일부터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꼽추는 정작 그 일에 낄 생각이 없다. 꼽추는 약장수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는 약장수를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그 무서운 대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앉은뱅이의 마음이라고. ‘마음이라는 말을 들은 앉은뱅이는 꼽추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꼽추는 지금 앉은뱅이가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앉은뱅이 또한 그것을 인정한다. 앉은뱅이는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라고 말한다. 꼽추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앉은뱅이는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한다. 투기꾼 사내가 살아 있어도 꼽추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꼽추는 앉은뱅이의 그 욕심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앉은뱅이가 욕심을 부리는 순간, 그는 사내와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사내의 마음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니!

 

앉은뱅이도 꼽추의 이 마음을 이해한다. 앉은뱅이는 어둠 속에서 멀어지는 친구의 발짝 소리를 듣는다. 조금 있자 발짝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꼽추는 정말로 앉은뱅이를 떠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잠든 천막으로 기어가며 서럽게 운다. 몸이 불구여도 앉은뱅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성한 몸을 지니고도 남들 속이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앉은뱅이는 지킬 걸 지켜가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깨져버렸다. 사내 가방에서 사십만 원을 꺼내 꼽추와 이십만 원을 나눌 때만 해도 앉은뱅이 마음은 이렇지 않았다. 자신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그 너머로 나아가 욕심이 되는 순간, 투기꾼 사내와 자신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자신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밤새도록 이 생각을 하며 잠을 못 이루리라는 걸 앉은뱅이는 마음 깊이 느낀다.

 

꼽추와 앉은뱅이 이야기를 끝낸 후 작가는 다시 교사와 학생이 있는 교실로 돌아온다. 교사의 말도 막바지에 이른다.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로서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한 후 교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수업을 끝낸다. 내가 마지막 시간에 왜 굴뚝 이야기나 하고, 띠 이야기를 하는지 제군은 생각해 주리라 믿는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굴뚝 이야기와 뫼비우스의 띠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다면 둘 다 얼굴이 더러워야 한다. 굴뚝 속에서 두 사람은 둘이면서 하나라는 얘기다. 안과 밖이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도 마찬가지다. 안과 밖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작가는 이런 원리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들여다본다. 투기꾼 사내의 욕심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꼽추와 앉은뱅이가 사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꼽추가 앉은뱅이를 떠난 이유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꼽추가 보기에 앉은뱅이 또한 사내처럼 욕심을 부렸다. 욕심은 언제나 더 큰 욕심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뫼비우스의 띠로 만들어진 공간을 달리다 보면 앞서가는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의 뒤를 쫓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앞서면서 동시에 뒤를 따르는 역설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신이 부리는 욕심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치리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바로 이 점을 절실한 마음으로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o*****s 2019.08.0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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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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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소설이다.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장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도 많은 울림을 준다. 그들은 왜 그렇게 소외받고 궁핍해야 했는가? 그들에게 그런 아픔을 내린 것은 누구인가? 그러나 고통을 받는 자는 있을지언정 그 고통을 내린 자는 정작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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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소설이다.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장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도 많은 울림을 준다. 그들은 왜 그렇게 소외받고 궁핍해야 했는가? 그들에게 그런 아픔을 내린 것은 누구인가? 그러나 고통을 받는 자는 있을지언정 그 고통을 내린 자는 정작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집에서 쫓겨나고 난장이가 죽으며 끝내는 패배 아닌 패배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난장이 가족을 파멸로 이끌어간 것이 어떤 자의 소행인지 알고 있다. 그 당시 난장이 가족이었던 수많은 사람들, 터전을 잃으며 성남 등 경기로 쫓겨나고 오늘 내일을 걱정해야 했던 그들을 춥고 배고픈 땅으로 내몰았던 것은 그 자였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난장이 가족들의 아픔을 유발했음에도 거리낌없던 모습이 분노하게 만든다. 사회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는 난쏘공을 읽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듯 하다. 난장이 가족은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춥고 배고프며 사히의 사각지대에서 타인의 관심에서 소외된 이들. 우리는 천국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그들은 지옥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2***m 2019.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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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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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는 큰아이의 요청으로 구매했습니다.원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구매해달라고 했는데, 기왕이면 여러작품을 같이 읽었으면 해서 이책으로 선택했어요.사실 저는 이작품을 대학입학하고 읽었는데, 그때도 조금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여러번 반복해서 정독했던 기억이 있네요.그리고 읽고나면 들었던 아픈 우리의 과거.읽히는게 맞는건지 아직 확신은 들지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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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는 큰아이의 요청으로 구매했습니다.
원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구매해달라고 했는데, 기왕이면 여러작품을 같이 읽었으면 해서 이책으로 선택했어요.
사실 저는 이작품을 대학입학하고 읽었는데, 그때도 조금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여러번 반복해서 정독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읽고나면 들었던 아픈 우리의 과거.
읽히는게 맞는건지 아직 확신은 들지않지만 읽겠다고하니 구매해요.
y****5 2019.0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