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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글, 문순태_말하는 돌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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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감흥이 없는 작품은 아예 평을 안남기고 지나가는게 보통인데, 이 소설은 너무 허접하여 화가날 지경이다 보니 짧게나마 글을 남긴다.이 작가의 이 허접한 소설이 20세기 남한의 중단편 소설을 집대성하여 실은 시리즈에 왜 실려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대략적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이 어릴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억울한 누명을 써 죽음을 당하고 주인공은 마을에서 내쫓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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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감흥이 없는 작품은 아예 평을 안남기고 지나가는게 보통인데, 이 소설은 너무 허접하여 화가날 지경이다 보니 짧게나마 글을 남긴다.

이 작가의 이 허접한 소설이 20세기 남한의 중단편 소설을 집대성하여 실은 시리즈에 왜 실려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대략적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이 어릴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억울한 누명을 써 죽음을 당하고 주인공은 마을에서 내쫓긴다.
주인공은 바닥에서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되고,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를 죽인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

그런데 대략적 줄거리도 웃기긴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팡타그뤼엘이나 고래도 아니고 아예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지극히 사실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뭔가 현실에서 가능한 얘기여야 공감을 할 것 아닌가.

제일 짜증나는 부분은 이렇다.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은 어릴적 친구네 집에 찾아가 담소를 나누고 자신의 복수 계획을 밝히는데, 주인공은 마을을 떠나기 직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시체를 친구와 둘이 산 속에 묻었었다. 

그것을 이제 마을 사람들을 인부로 고용해서 산의 가장 양지바른 꼭대기로 이장하겠다는 것이 그의 복수 계획.

이장을 하려면 아버지가 묻힌 산도 사들여야 하고, 마을 사람들도 고용해야 한다. 이것을 친구에게 술마시며 저녁에 부탁하는데, 친구는 바로 나가서 산도 사들이고, 마을 사람도 모두 고용한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복수가 이루어지는데......,

ㅋㅋㅋㅋ 일 없는 시골에서 마을 사람이야 삯을 많이 주면 고용할 수 있다 쳐도, 산을 단 몇시간만에 매매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정말 무협지도 아니고, 작가가 과대망상이 아닌이상 어떻게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을까. 앞에도 말했지만 더 이해 안가는 것은 그런 글이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에 실려 있다는 것.


f******y 2016.1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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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 송기원_다시 월문리에서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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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 절허지 않구?"진설을 마친 이 선배가 망연히 서 있는 나를 추궁했다. 나는 이 선배에게서 술잔을 받아 술을 친 다음에 허물어지듯이 엎드려 절을 드렸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내 입술을 비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시든 잔디에 이마를 비벼대며 울었다. 옆에서 이 선배가 혀를 찼다."내 이럴 줄 알구 될 수 있으면 늦게 오려구 한 거여."독방에서도 울음이 터진 것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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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 절허지 않구?"
진설을 마친 이 선배가 망연히 서 있는 나를 추궁했다. 나는 이 선배에게서 술잔을 받아 술을 친 다음에 허물어지듯이 엎드려 절을 드렸다. 그러고 나자 비로소 내 입술을 비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시든 잔디에 이마를 비벼대며 울었다. 옆에서 이 선배가 혀를 찼다.
"내 이럴 줄 알구 될 수 있으면 늦게 오려구 한 거여."
독방에서도 울음이 터진 것은 어머니가 묻혀 있을 서해안의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을 향해 북쪽 벽 아래에다 물 한 그릇 떠놓고 절을 드린 다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 그릇의 물 앞에 꿇어앉아 소리를 죽여 울면서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혼령이 계신다면...... 한 번이라도 만나야겠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기심이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혼령이라도 한 번만은 모습을 나타내야 될 것 같았다. 당신의 말마따나 너무나 드센 팔자를 타고나서 뼈가 다른 남매를 또 다른 의붓아비 그늘에서 길렀더니 이제 비로소 자식과 함께 산 지 채 이 년이 못 되어 이번에는 자식 때문에 죽었다......., 더군다나 자식은 당신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죄명 아래 갇히고, 거기다가 당신은 생모이면서도 법적인 친자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면회마저 금지되어 자식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당신의 병이라는 것도 화병으로 쓰러진 것이 원인이 되어 반신불수로 죽는 날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 그릇의 물을 떠놓고 그 앞에 꿇어앉아서 나는 어머니에게 찾아든 단말마의 순간에 어머니가 반신불수의 몸을 뒤틀며 나를 향해 부르짖었을 외마디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았다. 
"그만 울구 일어나. 몸두 성치 않으면서...... 다 지난 일 아녀?"
이 선배가 내 한쪽 팔을 붙들어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흘러나오는 두 눈을 손잔등으로 씻으며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산소를 둘러보았다.
......중략.......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나서부터 아무런 생각 없이 날마다 어머니에게 떠 올렸던 물 한 그릇만으로 하루를 견뎌내던 나는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비로소 자신의 단식에 대해서 의미를 붙였다.
좋수다. 당신의 죽음이 한스러운 만큼 나도 거기에 못지않겠수.
나는 그때 누구보다도 바로 어머니에 대해서 이를 악물었을 것이었다. 나는 굶어 죽을 결심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남기고 간 한에 대해서 나는 그런 식으로나마 이겨내고 싶었다. 어머니의 한에 대한 자신의 무력감이 이제는 한 그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번져갔는지도 몰랐다.
열흘째 되는 오후 무렵이었다. 나는 창문 바로 옆에 누워 쏟아져 들어오는 초가을의 햇살을 아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지 모르게 웅웅 귀를 울리는 이명과 함께 담장 밖 버드나무숲에서 늦매미가 울어대고 있었다. 나는 절반쯤은 잠이 든 상태에서 꿈결에서인 듯 나의 이명과 늦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그런 소리들에 겹쳐서 문득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화, 이놈의 세상을 어이 넘어갈까나......
어머니였다. 여섯 살 무렵이던 나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눕혀져 있었다. 늦봄의 긴 오후 나절을 툇마루에 앉아서 어머니는 칭얼대는 나를 달래며 시름겨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극심한 흉년 끝에 닥친 보릿고개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와 누님과 나 이렇게 세 식구는 논가의 웅덩이에 있는 물풀을 건져다 밀기울에 버무려 죽을 쑤어 먹고, 그중에 어렸던 내가 물풀에 독이 올라 온몸이 뚱뚱 부은 채 거의 죽어가는 중이었다. 그런 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육자배기의 느린 가락으로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의 노랫소리는 나의 이명처럼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며 계속해서 들려왔고, 나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베개를 흠뻑 적셨다. 나의 눈물 속에서는 여전히 초가을의 햇살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어머니의 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나에게서는 이미 어머니의 한에 대한 무력감이나 절망감 그리고 반감 따위는 사라져 있었다.
열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여전히 자리에 누운 채였다. 또다시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너무도 뚜렷한 모습과 목소리로 나에게 왔다.
오메, 내 새끼야아.
그런 어머니 앞에 나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공휴일이 되어 집으로 내려온 참이었다. 마침 장날을 맞아 길거리에 난전을 펴고앉아 멸치며 김 따위를 팔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자 이제 막 멸치 봉지를 묶고 있던 손에서 지푸라기를 떨군 채 어머니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외쳤다.
오메, 오메, 내 새끼야아.
어머니의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게 마디진 손이 나의 희고 부드러운 손을 덥석 잡았다. 멸치를 사려던 아낙네가 나를 힐끔거리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오메, 이렇게 좋게 생긴 아들이 다 있었소잉?
하문이라우. 내 아들이요. 광주서 핵교를 안 댕기요?
어머니는 연신 내 손을 어루만지며 함지박만큼 입을 벌린 채 얼굴 전체로 웃고 있었다.
오메, 오메, 내 새끼야아.
어머니의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게 마디진 손이 나의 희고 부드러운 손을 덥석 잡았다. 

오메, 이렇게 좋게 생긴 아들이 다 있었소잉?
하문이라우. 내 아들이요. 광주서 핵교를 안 댕기요?
어머니는 연신 내 손을 어루만지며 함지박만큼 입을 벌린 채 얼굴 전체로 웃고 있었다.




내 손을 희고 부드럽게 키우느라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게 마디져 버린 여인의 손. 바로 내 어머니의 손.


"저건 할머니 집이다."
나는 큰아이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지?"
"아이 참, 아빠하고 나하고 동생하고 이렇게 셋이서 할머니랑 살았잖아?"
"그렇구나."
"그때 나는 아빠 따라서 나무도 하러 갔다."
처와 잠시 별거하던 무렵을 큰아이는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나던 그 무렵은 일정한 직장이 없어 하루하루의 식생활마저도 해결하기 어려운 데다가, 처는 처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대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피곤해하던 상태였고, 그러다가 결국은 별거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때 나는 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 없이 죄다 피곤해했을 것이었다. 불안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소위 먹물을 먹은 자로서 그런 상황에 대해 드러내놓고 행동할 용기가 없는 입장에서는 상황의식에 눈뜬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가슴에 바늘을 찔러대는 것에 다름없어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를 욕질이나 하고 밤늦도록 술이나 마시고, 걷잡을 수 없이 황량한 연애사건 따위를 일으키는 것뿐이었다. 더군다나 어쩌다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대하면 한 줄의 글도 씌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갑자기 밀어닥친 아이들과 나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이혼한 건 아니우.
어머니는 자식의 위태위태한 결혼 생활을 이따금씩 훔쳐보며 다짐하듯 자식에게 말하곤 했다.
뭔 짓을 하던 다 좋제만, 이혼만은 안 돼야. 날 봐서라두 그 짓만은 허지 말어라.




좋은 소설!

f******y 2016.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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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작품 송기원_월행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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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낯익은 집 앞에 섰을 때, 사내는 문득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등에 있는 아이를 토닥거렸다."자, 이게 아부지 집이다.""이렇게 큰 집이 다 아부지 집이란 말이야?""하문, 이게 다 아부지 집이지.""이제 우리는 여기서 살 거야?""하문, 여기서 살지.""학교에도 다니고?""하문, 낼부텀 당장에 핵교에 댕겨야제."사내는 아이와 수작을 하며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리며 사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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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낯익은 집 앞에 섰을 때, 사내는 문득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등에 있는 아이를 토닥거렸다.
"자, 이게 아부지 집이다."
"이렇게 큰 집이 다 아부지 집이란 말이야?"
"하문, 이게 다 아부지 집이지."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살 거야?"
"하문, 여기서 살지."
"학교에도 다니고?"
"하문, 낼부텀 당장에 핵교에 댕겨야제."
사내는 아이와 수작을 하며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리며 사내는 기둥에 붙어 있는 입춘대길을 보았다. 그을음이 끼고 색이 바래어 있었지만 사내는 그것이 누구의 글씨체인 줄 알 수가 있었다. 대문간의 어둠 속에서 사내의 얼굴이 환해져왔다.
"살아 계셨구먼. 용케도 아직꺼정 살아 계셨구먼......"
사내가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대문을 두드린 지 한참 만에 낯선 청년이 사내를 맞이했다. 청년은 눈을 비비며 문간을 막아서서,
"뉘슈?"
사내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여기에 이용만이란 분이 안 계시는지......"
청년은 이제 확연히 잠이 깬 눈빛으로 사내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사내가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안 계신가?"
"제 할아버진데, 어떻게 오셨수?"
"......"
여전히 대문을 막아서서 잔뜩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청년에게 무어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사내가 우물쭈물 말을 고르고 있을 때,
"태식아, 밖에 뉘라도 왔냐?"
안에서 천식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분이 할아버님을 찾는데요?"
"어허, 밤늦게 어느 분이 날 찾는단 말여."
사내는 청년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랑채의 캄캄한 방문 앞에서 사내가 머리를 조아렸다.
"아부님 저, 저, 갑득이올습니다."
"뭬, 뭬라구?"
방문이 화들짝 열렸다.
"가, 갑득이올습니다."
"갑득이라구?"
방 안의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노인이 문줄을 잡고 끄응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었다. 허연 상투머리와 수염이 사뭇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떨며 노인이 침침한 눈을 들어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사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노인이 그르륵그르륵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니가 갑득이라고?"
"예, 가, 갑득이올습니다."
사내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자 노인이 사내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 읎다."
사내가 당황하여 한 발짝 더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아, 아부님."
"아, 가, 갑득이는 동란 때 발, 발써 죽은 사람여."
노인은 다시 방 안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방 안에서 심한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쿨룩거리는 노인의 기침은 마치 캄캄한 방 자체가 기침이라도 하듯이 선뜩하고 요란스러웠다.
사내가 얼굴이 납빛이 되어 정신을 잃고 서 있는데, 청년이 말을 건넸다.
"저어, 큰아버님. 좀 전엔 죄송했습니다. 잠결이라 미처 알아 뵙지 못하고...... 우선 제 방으로라도 드시지요."

아아! 이 긴장감! 서스펜스!
문자가 주는 감동! 이 소설을 다 읽지 않은 사람은 윗부분만 보고 내가 왜 이렇게 얘기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한 번 다 읽고 다시 한 번 엄청난 조우의 장면을 옮기니,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광경에 감동으로 가슴이 떨린다.

동일한 것을 표현할 때 다른 장르의 예술이 이러한 감동을 오롯이 전해줄 수 있을까? 아아! 문학의 힘이여.


청년이 나가자 노인이 정면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짓물린 눈꺼풀 속에서 뜻밖에 형형한 눈빛이 나타났다.
"니놈만 아니었어도 우리 집안은 이토록 망하지는 안 했을 것이여. 니놈이 도망간 후로도 니놈 대신에 집안 장정들이 멫이나 죽어나간 줄 아냐?"
램프의 그을음이 그림자가 되어 노인의 얼굴 위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주름살들이 실룩거렸다.
"뻔뻔도 하제. 무슨 염치로 다시 이 땅을 밟을 생각이 났단 말이냐?"
방 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이 무거운 침묵에 가슴을 짓눌리고 있을 때, 아이가 가볍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다가 몸이 녹자 졸음에 겨웠던 모양으로, 아이는 어느새 사내 곁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아이의 얼굴에 가 닿고, 그렇게 한동안 아이의 자는 양을 보고 있더니,
"애빌 빼닮았구먼. 일루 펜하게 눕혀라."
자신이 깔고 있던 요의 한 귀를 비켜주었다. 사내가 아이를 안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사내가 아이에게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못 올 덴지 알지만 어린것이 너무 불쌍해서...... 아부님 전 아무래도 오래 못 갈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에 노인이 벌컥 역정을 냈다.
"그렇게 많은 목숨을 잡아묵고도 오래 못 살어?"
그러자 사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변명했다.
"미쳤지요, 지가 미쳤지요. 세상에 지 여편네가 그런 꼴을 당하고도 안 미칠 놈 있답디여."
사내의 눈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노인도 지지 않았다.
"그런 꼴을 당한 놈이 어디 니놈 혼자뿐이었다냐. 피했으면 되는 거여. 눈 꾹 감고 피해 살았으면 되는 거여. 우리 조상님들은 다 그렇게 이 마을을 지켜온 거여."





노인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맥이 다치지 않은 데라군 이 산에서 여기뿐여."
사내는 평지의 잔솔 사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봉분들을 보았다.
사내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떠올리며 봉분들에서 눈을 돌렸다.
"사죄해라. 이게 다 니놈 때문에 생기신 원혼들이여."
"........"
사내가 머뭇거리자 노인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재촉했다.
"아, 뭘 해? 빨리 엎드려 잘못을 빌지 않구."
사내가 가까운 봉분 앞에서 재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자, 노인이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을득이여."
사내는 노인의 떨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회오도, 분노도, 슬픔도 아닌 어떤 형언키 어려운 것들이 저 골짜기 아래 가득한 만공의 달빛처럼 사내를 부풀리는 것이었다. 사내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려 마른 풀잎을 적셨다. 사내가 하나하나 봉분을 옮겨 가며 무릎을 꿇을 때마다 노인은 뒤에서 그게 당숙 둘째 자제여, 그게 사촌형님 손자여, 그게 뉘여, 사내에게 일일이 소개를 했고, 그럴 때마다 사내는 잠깐씩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다.
맨 끝에 있는 봉분에 이르러 사내가 재배를 하고 무릎을 꿇었을 때, 노인이 사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니놈에 처여."
사내가 눈을 들어 봉분을 바라보았다. 문득 사내의 시선에 아내의 시체가 비쳐왔다. 발가벗긴 채, 사타구니 사이에 단도를 꽂고 나자빠진 모습이었다. 만혼의 아내가 처음 가졌던 아랫배 부분이 유난히 불러 보였었다. 사내의 입술을 뚫고 기어코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봉분을 옮길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차츰 차오르던 어떤 것들이 급기야 거센 분류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사내는 두 손으로 아내의 시체를 파며 울었다. 노인이 길게 탄식을 했다.
"허어, 아무리 인종이 막돼먹은 세상이라지만......"
낫으로 뒤통수를 찍으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고, 공사판에서 함마를 휘두르면서도, 도살을 하면서도, 도망친 계집년을 찾으면서도, 막소주를 들이켜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다.





정말 좋은 소설!

꼭 한 번 읽기를 추천한다.

f******y 2016.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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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_미망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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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답에 어머님이 마루 걸레질하시다 할머니가 흘린 담뱃재를 봤지 뭐예요." 양복 윗도리를 들고 뒤에 섰던 아내가 말했다."그래서 어머니가 할머니 들으시라고, 시어머니 담배 끊는 꼴 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한마디 하신 게.......""알았어. 그만해둬." 윗도리를 받아 입으며 내가 건짜증을 냈다."정말 속상해서...... 어쩜 좋지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투정했다. "어짜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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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답에 어머님이 마루 걸레질하시다 할머니가 흘린 담뱃재를 봤지 뭐예요." 양복 윗도리를 들고 뒤에 섰던 아내가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할머니 들으시라고, 시어머니 담배 끊는 꼴 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한마디 하신 게......."
"알았어. 그만해둬." 윗도리를 받아 입으며 내가 건짜증을 냈다.
"정말 속상해서...... 어쩜 좋지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투정했다. 
"어짜긴 어째. 한 이틀 견뎌보고 정 안 되면 또 고모님을 부르는 거지 뭘."
"당신이 어떻게 한마디 해보세요. 가장이란 사람이 늘 윗사람들 눈치만 보니 오히려......"
"이 여편네가 이제 못 하는 말이 없어." 내가 아내 말을 막고 눈을 부라렸다. 아내에게 화를 낼 입장은 아니었으나 나는 나 자신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두 분 싸움을 나는 못 말려. 하루 이틀 보아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잘못이 있다면 앙숙인 두 분을 모실 수밖에 없는 내 처지지.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 내 목소리가 어느 사이 풀이 죽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운명으로 돌려야 하나? 어떻든 당분간 참고 사는 수밖에 더 있겠어. 할머님이 사시면 언제까지 사실 거라고...... 양쪽 눈치 보기가 어렵더라도 당신이 좀 참아줘야지."
나는 아내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아내가 얼굴을 떨군 채 머리를 주억거렸다. 참고 순종하는 데는 어느 여자보다 길들여진,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아내였다. 
내가 제대하고 울산으로 내려가 어머니 밑에 빈둥거리다, 자립해서 네 밑 네가 닦으라는 어머니 닦달질에 견디다 못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신문 광고를 보고 취직한 곳이 월부 책 출판사 수금사원이었다. 별 기술도 필요 없었고, 다리 힘 하나와 성실과 정직으로 버틸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때 아내는 야간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집안 형편상 진학을 포기한 채 관리부 사환으로 입사해 있었다. 일 년 반을 서울에서, 삼 년을 전국 지사를 순회하는 지방 수금사원으로 일한 끝에 본사로 올라왔을 대, 아내는 스물이 된 그때까지 사무실 청소하고 책 배달이나 돕는 사환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맞았다. 그로부터 삼 년 동안 길거리에서 만나고 길거리에서 헤어지는, 돈 안 들이고 별 재미 없는 연애 끝에 결혼했을 때, 서로는 서로의 가난과 정에 주리며 자란 성장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젊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자는 꿈 이외 아무 가진 것 없이 우리 신혼은 사글셋방부터 출발했다. 야채 행상으로 사 남매를 키운 장모나, 서른둘로 홀몸이 되어 두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로 볼 때, 우리는 서로 밑질 것 없이 잘 만난 한 쌍이었다. 
마루로 나오니 밥상은 그대로 놓였으나 어머니와 아이 둘은 보이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를 눈치 챈 준구는 재빨리 가방 챙겨 학교로 간 모양이고, 아직 학교 갈 시간이 안 된 준옥이는 어머니가 데리고 골목길로 놀러 나갔을 것이다. 나는 부엌방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려 모로 누워 계셨다. 작고 여윈 몸매라 한 손으로 들어 올려도 가벼이 들릴 듯 애처롭고 앙증스런 모습이었다. 쪼그락진 마른 얼굴에 눈을 살풋 감은 할머니가 문 여는 소리에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찌찌그레 고인 할머니의 묽은 눈길에는 힘이라곤 없어, 내 코끝이 찡해졌다. 
"어무니가 바깥에 나갔심더. 인자 일어나셔서 눌은밥이라도 좀 드시이소."
할머니는 입술만 달싹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말할 힘도 없는지 만사가 귀찮아지셨는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복통이 심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된콧숨을 내쉬던 할머니가 어깨를 오소소 떨었다.






"들은 이바구로 니 할매 친정은 친가 외가를 따져 사촌조차 읎는 두 칸 초가에 삽짝 앞만 나서모 사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단데이. 니 할매 친정애비는 배를 타다 젊어 물귀신이 됐고, 친정에미가 청상에 과수 되어 딸 둘을 키우미 미역을 따다 호구나 이었다 카더라. 바다라 카모 하도 원한에 사무쳐 뱃늠한테는 절대로 딸을 안 줄라고 벼르다가 우째 모화 땅에 상처한 니 할배와 혼삿말이 있었던기라. 지금도 보모 얼굴이 갸름하고 이마가 반듯한 기 할매가 처녀 적은 꽤 새처벘을(예뻤을) 끼라. 니 할매가 시집와서 딱 두 분 친정걸음을 했다는데, 한 분은 동상이 시집간다는 기별이 와서 갔고, 한 분은 두 딸을 다 출가시키고 가랑잎맨쿠로 갯가에서 혈혈히 살던 친정에미가 쉰 몬 된 나이에 죽었다는 기별이 와서 하서로 갔단다. 그것도 다 내가 시집오기 전 일이고, 나는 들은 이바구니라. 내가 시집을 와서 니 할매가 한 분도 친정 가는 걸 몬 봤으이께. 가봐야 누가 있겠노. 그러이께 친정 이바구를 한 분도 입에 담지 않더라. 담배 피우며 저 동쪽 하늘을 보다 혼자서 눈물 짓는 모습이사 수천 분도 더 봤지러. 죽은 부모나 감포 쪽으로 시집가서 소식도 모르는 동상 생각이 나서 그랬겠지러. 아아들이 우짜다가, 늛고 늛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라 카는 노래 안 있나. 그 노래라도 부므로 그기 듣기 싫은지 귀를 막곤 했지러." 어머니가 내게 들려준 할머니 이야기였다. "추석이나 설날이나 제사 지낼 때 니 할매 하는 짓, 니도 봤제? 제사 다 지내모 제상을 문 쪽으로 반쭘 돌리놓고 꼭 따로 밥 두 그릇을 새로 떠서 올리놓고 할매 혼차 두 분 절 올리는 거. 그거는 제상에 밥 한 그릇 올리놓을 아들 자슥을 몬 두고 죽은 친정 부모님 제사를 니 할매가 대신 지내주는 기다."







늘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며느리. 처음엔 거북스럽기도 하고 왜 저러나 싶었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사연을 알아갈수록 이해되는 누구도 탓하기 힘든 비극. 우리의 현대사. 가슴이 먹먹하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가 벌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해방이 되고 아버지가 본격적인 좌익운동에 나서고부터였다. 아버지는 남로당 모화책에 울산지부 조직부장책을 맡아 뛰었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고, 지서 순경들이 거의 우리 집에 살다시피 했다. 순경과 서북청년단원, 대한청년단원들은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지서로 연행해 갔다. 연행당해 가면 어머니는 얼마나 타작매를 당하셨던지 온몸에 피멍이 들어 돌아왔다. 한번은 실신해 가마니에 실려 돌아온 적도 있었다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전짓불을 비추며 저들이 또 들이닥칠까봐 밤을 무서워했다. 할머니라도 집에 있어주면 그 무섬증이 덜하련만 할머니는 체구처럼 간이 작아 아버지가 좌익운동에 나서고 순경들이 집 출입을 하고부터, 태평양전쟁 말기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둘러 결혼한 호계 고모네 집에 숫제 눌러 사셨다.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나를 안고 밤이면 밤마다 공포에 떨며 뜬눈으로 새벽을 맞기가 일쑤였다.
"......내가 니를 업고 호계 시누이 집으로 가서, 니 할매한테 울며 불며 을매나 애원했겠노. 지발 집에 오셔서 내하고 같이 계시자꼬 말이다. 그래도 씨가 믹혀 드가야제. 순사도 어데 거게마 가는 줄 아나. 여게가 성모 여동상 집이라고 여게도 자주 와서 분탕을 친다 카미. 거게나 여게나 똑같다고 한사코 안 올라 카더라. 그때는 니 할매가 귀신한테 씌었는지 죽자 살자 내 얼굴을 안 볼라 안 카나. 말 같은 메누리가 이 집 귀신 될라고 간택되는 바람에 멀쩡한 서방 죽고 자슥까지도 좌익에 미치갱이가 됐다고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댕기니, 시집 잘못 온 죄밖에 읎는 내 팔자가 와 그래 서럽던동...... 그러던 차에 머신 법이 새로 생기서 자수하지 않는 빨갱이는 몽지리 잡아 영창에 쳐넣고, 그중 악질은 총살시킨다 카이. 그때서야 니 애비가 어디선가 모화로 돌아와 지서에 자수를 한 기라. 보도연맹인강 먼강, 거게 가입해서 겨우 도망 안 댕기도 되는 살길을 찾았지러. 그래 되이까 시어미가 그제서야 딸네 집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옮겨 오더라. 참말로 사람도 좁쌀만 한데, 하는 짓까지 얼매나 얄밉던지...... 보골(화)이 났지마는 그래도 니 할매가 집에 오니까 반갑데. 꼬라지도 보기 싫은 니 애비 사이에서 말도 부치고 하이께 집 안에 훈기가 쪼매 돌았지러. 그런데 알고 보이께 니 애비가 자수를 하고도 지서 몰래 그 짓을 계속했던 모양이라. 일제 때는 야학당 한다고 시아비가 안 묵고 안 쓰고 장만한 논마지기를 쪼개서 팔아묵더이. 육이오전쟁이 날 때꺼정 지 에미 몰래 나머지 논마지기를 또 몽땅 다 팔아서 그늠으 빨갱이 자금으로 쓴 기라. 그라고 전쟁이 터지자, 니 애비가 메칠 만에 온다 간다 말읎이 사라지뿌린 기 아니겠나.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예비검속한다 카는 소문을 어데서 들은 모양이라. 미친늠으 서방. 그늠 믿고 자슥 둘까지 싸질러가미 살은 내가 등신이지러. 니 할매는 지금도 이북 어데 자슥이 살아 있겠거니 하지만서도, 내 생각키로 버얼써 뒈졌다. 홀에미한테 불효하고 처자슥 버리고 도망질 간 늠이 땅에 두발 딛고 우째 살 수 있겠노. 그렇게 니 애비가 읎어지고 나자, 하메 소식이 올까 올까 하고 기다리는 기 두 달, 시에미마저 보따리를 싸가지고 또 호계 딸네 집으로 가뿌린께 내가 무슨 청승으로 빈집을 지키겠노. 남은 논마지기도 읎으이께 하루 두 끼 묵기도 심이 들어, 내 젖이 안 나오이께 니 동상은 비실비실 말라서 다 죽어가제, 밤이모 순사들이 또 찾아오제...... 그때사 증말로 약이라도 묵어 죽고 싶더라. 그래서 내가 모진 결심을 안 했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사 마찬가지인께. 이 언슨시러분(지긋지긋한) 모화 땅을 떠나자고 말이다. 너거 두 성제간을 걸리고 업고, 걷고 걸어 부산으로 나갈 때, 들판에 곡식이 자알 익었더라. 가랑잎은 날리고, 곧 엄동은 닥치는데 낯설고 물설은 울산으로 나오자, 집도 절도 읎이 자슥 데불고 우째 살꼬 싶어 눈앞이 캄캄하더라. 딸린 새끼만 읎었다 캐도 그때서 마 내 혼자 서까래에 목매달아 죽었을 끼라. 울산에서 내가 너거 성제간 데불고 추위는 닥치는데 남으 처마 밑이나 역 대합실이나 헛간이나 비 피하고 바람 막을 데모 가리지 않고 너거 성제간을 양쪽 가슴에 꼭 붙안고 그 체온으로 삼동 겨울철을 넘긴 그 시절, 츠음 이 에미가 한 짓이 먼공 아나? 바로 걸뱅이 짓이었데이. 깡통 들고 퉁퉁 부은 손발로 남으 집이며, 미군부대며 문전걸식 동냥질을 했니라. 몸에 이가 수백 마리나 끓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낯짝도 몬 씻은 얼굴에, 입성이라고는 똥두더기 같은 찌든 이불을 둘러 썼으이께 너거 성제간 꼴은 말하모 머 하겠노. 그때 니가 다섯 살, 니 동상이 두 살이었다. 울산서 내가 호계 사람도 만났으이께 니 할매한테 울산 땅서 걸뱅이질 하고 댕기는 메누리 소식도 전해졌을 끼다. 그런데 말하모 머 하노. 죽으모 제상 채리줄 친손자가 그 지경인데 할미란 사람이 핏줄 찾을 생각도 않더라. 남남이라도 어데 그라겠나. 내가 메루치 장사로 방 한 칸을 얻을 때꺼정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 오냐, 내가 이 두 자슥을 질질이 키아서 옛말하고 살 때, 내 괄세한 이늠으 시상, 어데 두고 보제이. 내가 무명지를 깨물어 맹세하미 나올 젖도 읎는 쪼그라진 가슴팍에다 피로써 십자가를 그렸니라. 지금도 보이제, 이 살점 날아간 손가락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밤, 중고품 교복만 사입히던 내게 처음으로 새 교복을 맞춰주시고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앉혀놓고 이 말을 하시며 눈이 붓도록 우셨다. 살아온 당신의 역정과 그 울음이 너무 절절하여 나와 아우도 따라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세 모자는 울음으로 밤을 밝혔다. 거칠고 매정하며, 두 자식을 매질로 키워온 어머니를 내가 뜨겁게 이해하게 된 것이 그날 밤 이후였다. 우리 형제를 숯포대 매질로 키워올 때도, 그 매가 서른둘에 청상이 되신 뒤 홀몸으로 세파를 이겨온 분풀이와 설움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았고, 나는 순종으로써 어머니의 한풀이를 달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f******y 2016.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김원일, 어둠의 혼(2)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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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굶고 기다리는 줄 알면서 어머니가 왜 안 오시는지 모르겠다. 지서로 갔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다면 어머니도 펑펑 울까? 아니, 어머니는 지서에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 험담만 퍼부었다. 조금 전만도 처자식 이렇게 고생만 시키니 죽어도 싸다고, 아버지를 두고 악담을 퍼지르고 나갔으니 지서로 갔을 리 없다.나는 대문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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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굶고 기다리는 줄 알면서 어머니가 왜 안 오시는지 모르겠다. 지서로 갔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다면 어머니도 펑펑 울까? 아니, 어머니는 지서에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 험담만 퍼부었다. 조금 전만도 처자식 이렇게 고생만 시키니 죽어도 싸다고, 아버지를 두고 악담을 퍼지르고 나갔으니 지서로 갔을 리 없다.
나는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다시 하나, 둘 하고 수를 센다. 옆집 박 선생네 누렁이가 지나간다. 머리와 꼬리를 늘어뜨린 힘없는 걸음이다. 언제 보아도 누렁이는 야위었다. 우리 오누이들처럼 갈빗대가 도드라졌다. 오래 못 살고 죽을는지 모른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올 때,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적이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았다. 조회 시간에나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나는 몇 차례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럴 땐, 이렇게 죽는구나, 작년 여름 여래못에 빠져 죽은 병쾌처럼 나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가 고프면 그런 소리가 났다. 나는 더 참을 수 없다. 오늘도 점심을 굶었다. 찬길이 녀석이 부러웠다. 녀석은 날마다 도시락에 쌀밥을 싸 왔다.나는 찬길이보다 공부를 잘한다. 박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갑해야, 넌 가정환경만 좋으면 대학까지도 갈 수 있는데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곧 입학할 중학교는 이모부님이 학비를 대겠다고 말씀하셨다. 
.....아흔아홉, 백. 나는 벌써 백까지 세었다.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장터마당으로 가는 다리 쪽에 눈을 준다. 나무다리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사람이 지나갈 땐 삐거덕 소리를 낸다. 달구지가 지나갈 땐 찌거덕거린다. 다리 건너에서 만수 동생이 볼록한 배로 혼자 제기차기를 한다. 녀석 집도 우리 집만큼 가난한데 오늘 저녁밥은 오지게 먹은 모양이다. 볼록한 배가 촐랑거린다. 우리 집은 왜 가난할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머니 말처럼 모두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는 농사꾼이 아니요, 장사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월급쟁이도 아니다.







이모부님은 점잖은 분이시다. 이모님은 욕쟁이로 술장사를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모부님을 학자님으로 떠받든다. 이모부님은 중학교 한문 선생보다 한자를 더 많이 아신다. 하루에 몇 차례씩 큰 소리로 어려운 한서를 읽는다. 붓글씨도 잘 쓴다. 난초와 대나무도 잘 그린다. 활터에 활도 쏘러 다닌다. 그런데 이모부님은 술장사하는 이모님과 함께 산다. 말수 적고 점잖은 이모부님이, 목소리 크고 성질 괄괄한 이모님과 어떻게 한솥밥 먹고 살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는 일본에 가서 대학 공부까지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어떻게 맺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지난겨울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고함지르며 대드는 소리를 들은 적 있었다. 밤중인데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뜨니, 놀랍게 아버지가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수염이 더부룩한 아버지가 언제 나타났는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남루한 회색 바지저고리에 개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울면서, 아아들 데불고 부산이든 서울이든 떠나서 살자고 아버지께 말했다. 이젠 지서로 더 불려 가 매질당할 수 없고, 남 손가락질 받고 살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아버지는 방문 쪽만 살피며 말이 없었다. 나는 오줌 눌 생각도 잊은 채 이불깃 사이로 아버지를 훔쳐보며 귀를 모았다. 두려웠다. 곧 순경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지서에 자수하든, 멀리 도망가든 한길을 택하란 말임더. 그래, 임자가 사람 탈을 쓴 인간인교, 아니모 짐생인교. 짐생도 지 식구를 이래 내삐리지는 안 할 낌더. 어머니 목소리가 높아갔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사상에 미친 작자, 떠돌아댕기는 거리구신 들린 서방이라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쥑이고 가, 쥑이고 가란 말이다. 이 미친 사내야, 자슥새끼들하고 날 쥑이고 내빼, 내 죽어서 혼백이라도 임자 따라댕기미 망하게 하고 말 끼다! 어머니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늠으 짓이 처자슥보다 그래 중하모 일찍 불알 떼놓고 그 짓 하제 멋 때메 처자슥 이 꼴 만들고 그늠으 사상에 미쳐! 아버지는 우리 오누이 쪽에 잠시 눈을 주다 어머니 손을 뿌리쳤다. 아버지는 뒷문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슬프고 가난한 우리의 근현대사!

f******y 2016.10.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김원일, 어둠의 혼(1)_최모창(CHOI, Mo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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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책 메모에 송기원의 '월행'이 있었다. 빌려 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단편소설이었다. 사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메모해 둔 것이었다. 내 볼 책 메모에는 그런 책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그의 소설만 따로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편들과 엮여 있었는데, 그렇게 들고 온 책이 창비에서 나온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이다.책 제목은 황당하게도 다음과 같다.<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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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책 메모에 송기원의 '월행'이 있었다. 빌려 보기로 하고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단편소설이었다. 사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메모해 둔 것이었다. 내 볼 책 메모에는 그런 책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그의 소설만 따로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편들과 엮여 있었는데, 그렇게 들고 온 책이 창비에서 나온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이다.

책 제목은 황당하게도 다음과 같다.
<김원일 송기원 외>

ㅋㅋㅋ 대체 이 제목 지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자신들도 느꼈는지 최근에는 제목이 이렇게 바뀌어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빌려온 책으로 인해 나는 이름도 모르는 다른 두 작가의 글도 보게 되었고 소설을 읽으며 많은 생각과 울림을 느꼈다.

그래서 폼 잡는다고 시가 피우다가 엄청 아팠다. ㅠ.ㅠ
http://blog.naver.com/ffuckboy/220824209186



그리고 찾아온 아아! 이렇게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많은데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일단 창비에서 엄선해 놓은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를 한 번 다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라 느낀 소설은 그 감상평을 바로 여기 단편소설 카테고리에 올릴 것인데, 사실 감상평보다는 내가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 발췌해서 옮겨놓는 것 위주로 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판단은 각자의 몫인 것이고, 나는 나를 통해 투영/편집된 작가의 말을 조금 소개할 뿐.

자! 김원일 씨의 어둠의 혼으로 대망의 단편소설 카테고리를 시작해 보자.

아버지가 드디어 잡혔다는 소문이 읍내 장터마당 주위에 퍼졌다. 아버지는 어제 수산리 그곳 장날 장거리에서 사복 입은 순경에게 붙잡혔다 했다. 어제저녁 늦게 읍내 지서로 오라에 묶여 왔다는 것이다. 장터마당 주변 사람들은 오늘 중으로 아버지가 총살될 거라고 쑤군거렸다. 지서 뒷마당 느릅나무에 묶여 즉결 처분당할 거라고 말했다.
병쾌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그런 일을 했던 읍내 젊은이 일곱이 그렇게 죽었기에, 그 일에 앞장섰던 아버지야말로 총살을 당할 게 분명하다. 이제 아버지는 연기처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 게다. 사라진 연기를 다시 모을 수 없듯, 이제 우리 오누이는 아버지라 부를 사람이 없게 된다. 그 점이 슬플 뿐,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태 넘이 집을 비웠다. 경찰에 쫓겨 밤을 낮 삼아 어디론가 늘 숨어 다녔다. 산도둑같이 텁석부리로, 선생님처럼 국민복을 입고, 경찰을 피해 문득 나타났다 잽싸게 사라져버리는 아버지의 요술도 이제 끝났다. 그 요술의 뜻을 내가 미처 깨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게 슬플 뿐, 나는 당장 해결해야 할 절박한 괴로움에 떤다. 배가 지독히 고프다. 어머니는 아직 안 오신다. 양식거리를 구해 오겠다며 나간 지 한참 전이다. 두 시간쯤 되었을 게다. 내가 영어 숙제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뒤질 늠은 뒤지더라도 어디서든 양식을 구어 오겠다며 대문을 박차고 나섰다. 여러 집에서 양식을 꾸어다 먹었기에 더 꾸어줄 집도 없을 터이다. 어머니는 믿을 데가 거기뿐이니 이모님 집으로 갔겠거니 여겨진다. 지서에 잡혀 있을 아버지를 두고 이모님께 넋두리를 늘어놓을 게 분명하다. 어머니를 곧잘 닦아세우지만 이모님은 마음씨 착하니, 서방 잘몬 만낸 불쌍한 이것아 하며 쌀 한 되쯤, 보리쌀 두 되쯤 뒤주에서 퍼내어줄 것이다. 그럼 모레까지 배곯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그 양식으로 죽을 쒀 먹는다면 며칠은 견딜 수 있다. 우리 집은 그동안 이모님 집에서 양식을 많이 가져다 먹었다. 그걸 언제 다 갚을는지 모른다. 몇 해 동안 돈이나 먹을거리를 집에 들여놓지 못한 아버지이긴 하지만, 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면 어머니가 이모님 술집 품앗이를 해준다면 모를까 갚지 못할 빚으로 남게 될 게다. 나도 이제부터 아버지가 없는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왜 그 일에 적극 나서게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모두 쉬쉬하며 두려워하는 그 일에 아버지가 왜 발 벗고 나서서 뛰어들게 됐는지 나는 그 내막을 자세히 모른다. 
몇 해 전, 해방되던 날만도 아버지는 읍내 사람들과 함께 장터마당에서 조선이 해방됐다며 만세를 불렀다. 여름 한낮, 태극기 흔들며 기세껏 해방만세, 독립만세를 불렀다. 재작년 겨울에 무슨 법이 만들어지고부터 아버지는 갑자기 집에서는 물론, 읍내에서 사라졌다. 지서며 사람을 피해 숨어 다니기 시작했다. 밤중에 살짝 나타났고, 얼굴을 보였다간 들킬세라 금방 사라졌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맡아 그러고 다니는지 어머니도 잘 모른다. 장터마당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를 두고 좌익질 한다며 쑤군거렸고, 순경이 자주 우리 집을 들랑거렸지만, 재작년 겨울부터 누구도 아버지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지, 스스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아버지에 관해서 그 사연을 들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숨어 다니는 아버지의 요술을 두고 사람들은 쉬쉬하며 귀엣말을 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읍내 유식꾼 이모부님조차 알면서 모른 체하는지 입을 아예 봉했다. 봄철이 되면 꽃이 피는 이유를, 꽃이 향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내가 모르듯, 이 세상에는 아직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이 정도 읽은 것만으로 슬펐다. 원래 우리나라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없었다. 그런데....., 사상이 무엇일까? 약했던 우리는 우리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갈라졌고, 그 결과로 한 쪽에서는 사상이 공산주의라는 이유로,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그 사상이 민주주의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한 쪽에서는 목숨을 빼앗을 일이 다른 쪽에서는 영웅의 행위인 이상한 세상. 그러한 사상을 가진다는 것이 과연 죽일만한 일인가? 그들이 품은 그 사상은 나치즘도 아니고, 파시즘도 아닌...... 또, 자신이 그것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착취하겠다는 것도 아닌, 이 나라 잘 살게 해보자는 동기에서 각각 그러한 사상을 품은 것인데.

그때부터 시작된 두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은 우리 사고체계에 심각한 편협과 경직을 가져왔다. 그놈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통제되었다. 정치야 당연한 것이고, 교육이나 예술에까지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금지곡이었대 하고 받아들이지만 대체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70년대 수많은 대중가요가 금지된 이유가 뭘까? 그곳은 남이든 북이든 사상의 차이에 의한 사회현상이 아니었다. 사상으로 포장하여 독재를 강화시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지금. 탈 이데올로기의 시대인 지금까지도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를 소모하고 있다. 우리의 슬픈 자기학대는 아직도 진행 중.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다음에 이어서.

f******y 2016.10.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