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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역사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깡통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문외한에 가깝다. 그 가운데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도 이름만 들어 알뿐, 그 이상은 아직도 잘 모른다.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며, 작지도 않고 엄청나게 큰 사건인데도 잘 모르고 지냈다. 이런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냐만은 유독 더 부끄럽게 생각하는 까닭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기영이 쓴 <순이 삼촌>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이 부끄러움은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왜 난 '제주 4·3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까? 그리고 우리네 교육현장에서는 왜 '제주 4·3 사건'를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대충 가르치고 마는가? 하는 의문 말이다.
언제 어디서 읽고 들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주도'를 대한민국의 식민지라고 일컫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근래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우니, 마니? 하며 논란이 한창일 때 읽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때에도 언급한 내용이 '제주 4·3 사건'이었다. 그러면서 제주도민들은 대한민국 건국이래(물론 그 이전부터라고도 얘기했지만) 제대로 대접 받아온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에는 이게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의아하기만 했었는데, 현기영이 쓴 <순이 삼촌>을 읽으니 약간이나마 수긍하고 말았다.
먼 옛날에는 '탐라국'이라 불렸던 제주도다. 삼성혈에서 나왔다는 제주 고씨 을나왕이 탐라를 세운 것이 기원전 2337년이라고 전해지니, 진위는 둘째치고 고조선과 쌍벽을 이룰만큼 역사가 깊은 곳이다. 그러다가 삼국시대 5세기 말에 백제에 복속된 뒤 통일신라 때는 교역을 한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 건국 때 다시 복속되어 조선 때까지 이어졌단다. 그러나 섬이기 때문에 육지 사람들에 비해 천대받기 일쑤였고, 열악한 환경 탓에 유배지로 각광(?)을 받는 신세였다.
제주를 다른 말로 '삼다도'라고도 부른다. 그 까닭은 돌, 바람, 여자가 많기 때문이란다. 화산섬이기에 흙보다 돌이 많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바람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고 한다. 이런 곳이기에 늘 먹거리가 부족하기 일쑤였고,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 바다에 나가 부지런히 물질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단다. 그런데 바다란 곳이 참으로 험한 곳이라서 남정네들이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그래서 섬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단다.
이런 제주도에 일제강점기가 찾아오고 더욱 살기 힘들었으며, 해방이 찾아온 뒤에도 살기 좋은 섬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 오늘날 '세계 7대 경관'을 자랑하고,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널리 알려져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요즘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이나 제주도의 역사를 볼 때 이런 행복은 비교적 최근 일일 따름이다.
우리 나라가 드디어 해방되었다. 1945년 8월 15일에 제주도에도 식민의 잔재가 사라졌으나 곧이어 닥친 '이념 갈등'은 제주 사람에게 다른 어느 곳보다 훨씬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이른바 미국을 등에 업은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등에 업은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이 극에 달했기 때문인데, 해방 직후 이런 '이념적 혼란'은 비단 '자유', '공산'에 그치지 않는다. 이밖에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으며 이회영의 뒤를 잇는 '무정부주의(아나키즘)'까지 해방 직후에 우리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다름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운동의 기치를 드높이고 36년 동안 사그라들지 않도록 각각의 '이념'에 더욱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일제시절에는 이런 점이 '공공의 적'인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손을 잡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공공의 적인 일제가 물러가자 해방된 조국에 서로 먼저 자기네 사람들로 '건국 활동'을 하려다보니 혼란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그 혼란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섬이라는 지형적 성격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반탁통치'에 기치를 높였고, 다른 어느 곳보다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를 하였단다. 오죽했으면 남한에선 다 치뤘던 '남한 단독선거'를 제주도에서는 치루지 못했을까. 한편 제주도에 '남로당원'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이즈음이었단다. 국제연합의 주도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뒤에 새로 수립된 정부가 제주도를 눈엣가시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단다. 남한에서는 다 치뤘던 투표가 제주도에서만 무산되고, 투표를 방해하도록 선동했던 세력이 '공산주의자(남로당원)'라고 찍히게 되자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빈번한 제주도에 대한 '공비 소탕작전'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일 정도였단다.
물론 '제주 4·3 사건'이 먼저 일어났고, '5·10 남한 단독 총선거'가 뒤이어 치뤄졌다. 그러나 제주도가 우리 나라 근현대사에서 미움을 받는 까닭을 서술하자면, 어떤 사건이 먼저 일어났고 나중에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제주도민을 학살한 것에 대한 정부의 사과는 학살이 자행된 지 50여 년이 지난 노무현 정부 때에서야 이뤄졌고,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한 것도 이즈음이었으니 말이다.
하긴 현기영이 <순이 삼촌>을 쓴 것도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꼭 30년이 지난 1978년이었다. 30년 동안이나 그 양민학살 사건은 독재자의 연이은 등장으로 쉬쉬 해야만 했고, 이 소설이 '제주 4·3 사건'을 다룬 최초의 소설일 정도로 침묵을 강요당하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현기영 글쓴이는 이 소설을 쓴 뒤에 수 차례 경찰 등에게 불려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하니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사실을 반증하고도 남을 테다.
<순이 삼촌>은 바로 이 '제주 4·3 사건'을 몸소 겪은 글쓴이가 '순이 삼촌'이란 과부(제주에서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엔 촌수가 멀고 가깝고, 그리고 남녀를 따지지 않고 '삼촌'이라고 부른단다)의 한 많은 삶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을 두고 작중화자의 입을 통해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그려냈다.
1948년 음력 섣달 열아흐레날에 일어난 북제주도 북촌에서 자행된 양민학살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소상히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책을 지금에서나마 읽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 분명 내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도 지금에서야 읽은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삼다도. 그 가운데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에 이토록 큰 비극이 감춰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지금 '제주도'가, 또 '제주도 사람들'이 달리 보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이토록 발전한 이면에 제주 사람들의 아픔 또한 가볍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디 제주 사람들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나라인가? 지금 이 나라가 <1%를 위한 나라인가? 99%를 위한 나라인가?>로 고민하는 요즈음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를 또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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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이 많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 처절한 현장을 목격한 분들이 아직도 살아 있고, 그 후손들이 잊지 않고 있는데, 또 한 편에는 제주4.3사건이 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요. 우리의 근현대사가 복잡한 이유는 그 아픔을 직접 겪은 이들과 그 아픔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해 충돌이 얽혀있기 때문일 겁니다. 책임있는 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고, 그 피를 목격한 유족들만이 남아있죠. 이 상처를 감싸고 극복하도록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순이삼촌>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가, <도둑견습>을 읽으시면 포복절도하게 되실 거예요. 의붓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 대목에서는 미소가 절로 납니다. 김주영선생님 정말 대단한 작가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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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 순이 삼촌. 20세기 한국소설.
현기영. 창비 학창시절에는 제주 4,3 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알게된 제주 4,3 사건은 물음표가 되어준다. 초등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아동도서로도 제주 4.3 사건은 출간되기도 하여 다시금 관심이 가는 사건이 되었지만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듯해서 4월에 읽은 책이다. 막연한 사건이며 뚜렷하지 않은 사건이였다. 그래서 읽었다. 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서 읽게된 책이다. 오늘이 4.3 이다. 신문에도 포털사이트에도 챙김을 받는 굵직한 사건이 되었다. 관심가진만큼 보이는 것 같다. 창비에서 나온 이 책은 여러 작품이 실려있다. 주목적이 순이 삼촌이라는 작품이였으니 순이 삼촌만 정리해보게 된다. 읽으면서 참 다행이구나라고 느꼈던 작품이다. 이렇게 작품으로 기록해준 작가분이 있었기에 잊혀지지 않을 수 있어서 참 고맙운 작품이다. 출간되도록 노력한 출판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한번 고마움을 표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용어설명이 필요한 작품이라 책 뒷편에 용어설명이 되도록 편집된 도서이기도 하다. 무수히 뒷 장을 찾아가면서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덕분에 제주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순이 삼촌이라는 작품 속으로 몰입되어갈수록 참 아프다고 느꼈던 작품이다. 아프게 그려지는 우리의 역사. 사실이라는 사건이 바탕에 그려진 작품이라 더욱 더 그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대한 아픔이 커지는 작품이 된다. 제주. 관광지로써만 그려졌던 나날들 속에 이제는 제주 4.3 사건도 함께 떠올림이 되어 제주의 밭을 그저 풍경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 싶다. 제주걷기. 다들 차를 몰고 다닐 때 일부러 섬을 걸어다니며 섬을 느꼈던 여행의 기억속에는 제주의 밭도 자리잡혀 있다. 그때는 아름다운 풍경이였는데 이 작품을 읽고나서는 더 이상 제주의 밭은 아름다움이 아닌 아픔의 기억이 될 듯하다. 혼돈의 시대. 슬픔의 시대. 죽창에 찔려 죽었어야 할 그 시대의 이야기들. 이 작품을 읽으면서 < 을의 노래>라는 작품이 자꾸만 떠올르기도 한 작품이다. 시대가 달랐을 뿐 결국 모두가 원하는 건 크지않은 바램인 것 같다. 그 바램이 부서진 사건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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