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에 처음으로 모리스에 관한 리뷰를 남기게 되서 기쁘다. 그리고 한편으론 안타깝다. 정말 훌륭한 책인데 여태껏 리뷰가 없었다니....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 글로 모리스를 언급하기엔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더 훌륭하신 분이 멋진 리뷰를 써 주시기 전까지 모리스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지고 읽혀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나는 동성애 방면의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하지만 만화든 소설이든 대부분 일본인이 지은것들 뿐인지라 요번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를 보고선 다른나라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브로크백 마운틴과 함께 구입한 것이 모리스였다. 사실 브로크백을 감명 깊게 본지라 모리스는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그것은 나의 엄청난 오산이었다. 브로크백 보다 훨씬 훌륭하다. 물론 단편과 장편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좀 그렇긴 하지만 모리스는 읽는 내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모리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내용은 모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나가고 있다.(모리스는 동시에 작가이다) 또한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모리스와 클라이브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고 2부는 그들의 이별, 3부는 모리스의 방황, 4부는 모리스의 새로운 사랑 얘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사랑이야기이지만 여기에 동성애라는 사실과 작가의 섬세한 글로 읽는 이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가, 아프게도 했다가 눈물짓게 하는- 단순한 사랑얘기라고 보기엔 너무나 심오한 내용들이 모리스의 청춘을 빌어 채워져 있다. 모리스는 클라이브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만 떠나버리는 클라이브로 인해 괴로워한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악역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뀐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클라이브의 경우는 특이하다. 그는 모리스와 헤어지기 전까지 동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느껴왔었지만 모리스와 만난 이후 어떤 특별한 계기도 사건도 없이 문득 자신이 "건전"하게 돌아옴을 느끼고 모리스와 헤어진다. 그리고 곧 여성과 결혼해 정치에 발을 내딛게 되고 모리스가 자신과의 일을 발설할까 두려워한다. 작가는 모리스를 속물로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클라이브가 모리스보다 더한 속물이다. 학생시절의 그 순수함과 열정은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동성을 사랑하는 모리스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한다. 그들의 사랑은 플라토닉이었다. 플라토닉 사랑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 그러나 소년시절의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사춘기시절을 헤쳐나가는 발판으로 밖에 사용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리스는 자신의 정체성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어쩔 수 없는 욕정때문에, 젊음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것은 독자인 나에게 엄청난 기쁨이었다. 모리스의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마음을 휘벼파고 쥐어짠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잠시 책을 놓고 마음을 가다듬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원서를 읽어보지 않아 사실 이렇다 말은 못하겠지만 번역도 훌륭하다.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이 없지 않아 있는데 무리 없이 읽힌다. 또한 모리스의 마음이 아플정도로 잘 느껴진다. 결국 다 읽고 울고 말았다. 포스터의 작품 중 가장 로맨틱한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리스는 소녀취향이다. 하지만 단순히 로맨틱소설이라 하기엔 무게가 있는것도 사실이다. 작가와 모리스는 동성애자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현실을 바꾸고 싶어한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의 그런 바람대로 되어가려 하는 현실을 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명성에 걸맞게 모리스는 엄청난 작품이다. 모리스가 하는 말들을 그냥 흘려 읽지 말고 세상이 그들에게 좀 더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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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연고도 돈도 없이 계급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하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다. 그래도 영국은 그들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동행과 함께 그들이 받을 보상이었다. 영국의 공기와 하늘은 그들의 것이지. 영혼을 잃고서 작고 갑갑한 상자들만을 소유한 수백만 겁쟁이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소설과 이런 감동은 너무나 오랜만이다. 마지막 장이 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고 일년 내내 이 작품 속에 있고 싶을 정도다. 모리스……. 동성애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주제였고 아마 앞으로도 특별히 생각할 것 같지 않지만 책이 너무 좋아서 내게 편견이 있었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떠한 말보다도 이 작품 자체가 아주 감동적이다. 모리스는 캠브리지 출신의 지성인이고 훌륭하고 건강한 외모의 번듯한 직장인이다. 우리 누구도 될 수 있고 누구 보다는 사회적 위치가 나은 사람이다. 191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은 사회적인 명예를,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옛 사립학교 분위기를 보면 남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생길 수 있었단다. 주인공들은 숨기고 고민하는데.... 그러다가 누구는 사회에 순응하고 누구는 이탈한다. 누가 더 옳다고 볼 수는 없고 모리스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용기를 발휘한다.
알렉이 배에 오지 않은 것을 알고 모리스가 기뻐하며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고 알렉의 결정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깨닫고 행복해 하며 뛰어가던 장면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에서 스칼렛과 비슷해 보인다.
모리스와 알렉은 정말 용기 있었고 행복한 연인들이다. 알렉 처럼 다정하고 건강한 연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을 희망으로 보고 싶다. 만약 알렉이 이민 배로 떠나버리고 모리스는 짧은 추억과 연인을 놓친 외로움 등을 뒤늦게 깨닫고 힘들어 하며 힘없이 있음을 문학적 표현으로 길게 말하면서 끝냈다면 이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캠브리지에서의 젊은이들의 변화와 너무나 젊었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추억도 젊은 날 그대로 모습으로 간직하자. 클라이브는 노년에 그런 때가 있었는지 조차 확신이 안갈 정도였다. 모리스에게는 모리스 자신의 성향을 발견하게끔 했지만 클라이브는 다른 사람들 처럼 된다. 그 당시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회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성애자가 된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은 바로 알렉이라는 인물이다. 그를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은 너무도 로맨틱하다. "이 사람이 네 친구다" 모리스는 결국 친구를 얻었고 일생을 할 애인을 얻었다. (모리스가 소년일 때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친구이기도 했던 정원 심부름꾼 소년의 꿈을 나중에 꾼다. 결국엔 알렉으로 완성되어서 나타난다.)
알렉이 떠나지 않아서 얼마나 기쁘던지!
포스터 생전에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라고 영국에서 판결 받았지만 그래도 출판할 수 없었다. 포스터가 생전에 이 작품에 바쳐질 찬사를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표지도 하드커버이고 색이 은은해서 순수 문학 책과 어울리고 책 크기도 가지고 다니기에 좋고 아주 딱 문학에 맞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벅찬 구절을 옮기는데(내 리뷰에서 처음이다.) 이 대목은 앞에서 죽 이어지는 것이라서 이렇게만 본다는 것이 별로지만 아주 좋아서 옮긴다.
“그들은 연고도 돈도 없이 계급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하고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다. 그래도 영국은 그들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동행과 함께 그들이 받을 보상이었다. 영국의 공기와 하늘은 그들의 것이지. 영혼을 잃고서 작고 갑갑한 상자들만을 소유한 수백만 겁쟁이의 것이 아니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소설을 읽고 이런 느낌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 오랜만에 가슴 벅찼다. 현실에서 우리는 현실을 무시 못하고 가치관의 비중을 다른 곳에 둔다. 그래서 갑갑한 상자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모리스와 알렉은 많은 갑갑한 상자 속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포스트는 작가로 성공 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고 이 작품을 통해 말했다는 심정이 이해되며 작품이 참 순수한 느낌이 든다. 무척 감동적인 이야기고 자신의 한 부분도 만족스럽게 표출했다. 이런 감정을 아직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앞으로 포스터를 종종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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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이 어쩐지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영화 감상문을 쓸 때 벤을 라디오에서 들어서 참 좋아서 붙였더니 그 곡도 어쩜 그리 어울린다냐...
배경인 트리니티 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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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포스터의 책을 많이 읽어본것은 아니다. 두권을 읽어보았는데 전망좋은 방과 모리스였다. 두 소설 모두 그를 느낄수 있는데, 모리스 쪽은 읽는 내내 그의 숨결을 느낄수 있다.
주인공인 모리스와 그가 사랑했던 클라이브가 캠브릿지 대학에 다녔던 시기는 1910년도 정도인데 그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라는 것은 지금처럼 개방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범죄였고, 수치와 치욕을 동반하는 '병' 이라는 시선이 다수였다. 그랬기에 모리스를 썼던 E.M포스터 역시 그 소설을 사후에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속 주인공 모리스는 그런 사회현실 속에서 자신의 성 성향을 어릴적부터 어렴풋이 느끼는데, 자신의 집에 있던 하인쯤 되는 '조지' 라는 소년에 대한 희미한 갈망을 통해 볼수있다. 그 희미한 갈망의 이유를 그가 대학생이 되어 클라이브를 만났을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클라이브는 모리스보다 더 엄격하고 보수적인 인물일지도 모른다. 비록 사랑을 먼저 깨닫고 고백한것은 클라이브지만, 지성이 더 발달되어있고 이성이 발달되어 있는 그에게 '동성애' 라는 것은 자신이 푹 빠져있던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지성에 대한 동경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연인이 된 이후에도 신체적 접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클라이브야 말로 정말 '영국적'인 남성일지도 모른다.
전에 '브로크백 마운틴' 에 푹 빠져 원작소설을 몇번이고 읽곤했었는데, 모리스를 다시 읽고나서 두 소설을 동시에 떠올리자 기분이 묘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 속의 인물들은 모리스 의 등장인물인 모리스나 클라이브와는 몹시 다른 유형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대학을 나온것도 아니었고, 그들처럼 많은 책을 읽고 지성이 담긴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친 말투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서툴게 전달할뿐.
모리스 안의 동성애는 '지성'에 목메고 그것을 동경하는, 그런 인물들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있는 순간에도 사랑의 기쁨을 순수하게 느끼지는 못하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이 캠프릿지 대학이 있었던 그 시절,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리에 기대어 앉아있던 그 순간을 빼놓고는 클라이브의 동성애의 육체적 접촉에 대한 기피와 모리스의 불같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희미하게 충돌함으로써 그들은 서로를 100% 채워주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것을 배웠고 인습에 메여 있었기에 그 찬란한 순간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클라이브는 자신이 살아가던 '평범하고 건전한' 삶으로 돌아가 버리고 모리스는 홀로 외로움과 사회와의 갈등속에 남게 된다. 처음에 클라이브는 그를 속물적이라고 언급하지만, 그는 클라이브와의 지성과 젊음이 떠돌던 사랑에 의해 성장했던 자신의 내면을 후에 만난 알렉을 통해 자유롭게 만든다.
반면 모리스를 가차없이 떠난 클라이브는 다시 인습과 세상에 얽매여 그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전형적인 영국의 신사계급이 된다. 그가 결혼을 한 뒤 모리스와 나누는 대화에서 그것을 느낄수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발각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모리스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자 겨우 태도를 풀어 부드럽게 모리스의 손에 키스하는 장면은 이제껏 클라이브를 좋아하던 나에게 그를 질리게 만들었다. 모리스는 결국 그의 지적이지만 그것에 갇혀버린 모순과 속물됨을 느꼈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알렉의 순수한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클라이브에 관한 오래된 추억의 껍질을 걷어버린다.
모리스는 E.M포스터의 놀라운 지성과 섬세함이 결합된 소설이다.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써 한 영국의 중산층 젊은이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순수한 사랑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벗어 던질수 있는 용기있는 인물로 성장하기까지를 그려내는데, 그 과정에서 클라이브와 모리스가 느끼는 감정들을 그가 묘사해놓은 장면은 놀랍다. 깊은 내면적 성찰과 인간과 인간사이의 말로는 설명할수 있는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여 대화와 시간의 변화에 따른 감정들을 그린 문장들은 정말 멋지다.
모리스는 내가 E.M포스터를 더욱 좋아하게 만든 소설이었고, 동성애에 관한 생각을 넓혀주었던 고맙고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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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이 책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표지에 남자 두명이 보이긴 하지만 전혀 동성애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 왜 책 제목을 "모리스"라고 지었을까. "모리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요즘 사람들의 시선속에도 '동성애'에 대해 그리 너그럽지 못한데 포스터가 "모리스"를 쓴 것이 1913-1914년이었으니 그 시대에 얼마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으로 비춰졌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판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 포스터, 그가 집필한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모리스가 퍼블릭 스쿨로 떠나기 전, 졸업식 날 듀시 선생은 모리스에게 앞으로 겪게 될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며 "10년 뒤 오늘, 우리 부부가 너와 네 아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마"라고 이야기한다. 그저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이 말은 훗날 모리스에겐 이루어질 수 없는,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은 모리스에겐 정말 꿈 같은 일이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라도 육체적인 교합에 대한 내용이 없어 두 남자의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클라이브를 만나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최면술까지 받아보는 모리스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다. 모리스에게 먼저 다가온 클라이브는 이젠 모리스가 싫다며 모리스의 여동생 '에이다'에게 마음이 있다고 얘기한다. 클라이브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던 나는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의 행동에 화가나고 모리스가 애처롭다. 하지만 클라이브와 헤어진 이후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남자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모리스를 보며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만난 시간이 길어야만 그 사랑이 진짜다"라고 이야기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서로를 알아가는 충분한 시간을 필요하지 않을까. 클라이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방황하며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모리스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클라이브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는 알렉과 모리스의 사랑은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사랑이지만 알렉이 모리스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떠나지 않음으로써 이 책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물론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맞서야 한다는 것에 대해 혹자는 "결코 행복한 결말이 아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알렉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모리스에겐 행복일 것이다.
모리스와 알렉. 이 두 사람의 뒷 이야기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클라이브에게 모리스가 찾아와 "알렉과 함께 한다"고 이야기 한 후 모리스를 그 뒤로 볼 수 없으니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클라이브는 모리스의 마음을 버린 자책감을 늘 가지고 있었기에 모리스의 알렉에 대한 마음을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클라이브의 마음속에 모리스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자리하고 있었기에 모리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게다. '남녀사이의 사랑이 아니다'라는 불편함이 전혀 들지 않았던 "모리스".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선사해 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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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살짝 언급해 주셨던 책이었는데, 자신이 죽이 전에는 출판할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작가가 했다고 하기에 어떤 내용인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 없었기에 사버리고만 책이다. 내용은 작가 포스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으로 동성간에 사랑에 대한 내용이었다.
모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한 클라이브와 그런 클라이브와의 사랑과 배신, 이별이 함께한다. 이런 아픔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모리스와 또 다시 찾아온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가볍지 않으며, 모리스가 껶는 심정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그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약간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읽지는 않았다. 모리스의 상황을 같이 느끼기에 쉽사리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그래도 모리스가 행복하게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도 모리스가 행복하게 끝나길 바랬다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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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책이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소설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가 어떤 기회에 선물을 받게 되어 고마운 마음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첫인상은 약간의 충격이었다고나 할까, 한번도 생각지 못했고 할 이유도 없었던 남성간의 동성애 이야기. 뭐랄까, 뭔가 개운하지 않으면서도 그 다음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결국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내려간 책이다.
책은 작가가 무엇을 전달하려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책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내 자신에 맞게 재해석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남들과 성적 취향이 다른 주인공이 겪게 되는 성정체성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사회적 규범의 틀이라고 하는 교육, 직장, 지역사회 그리고 심지어는 가정이 기대하고 강요하는 기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 라는 개인의 의식과 행동 역시 기나긴 교육과정을 통해 획일화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의 모습도 남들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은 아닐까 반추해본다.
이 책은 저자가 쓴 많은 책들 가운데 가장 쉽고 빠르게 써내려간 책이라고 한다. 아마도 순전한 상상의 산물이 아닌 개인적 경험과 가치에 기반한 소설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출간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쓰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남겨진 글이기 때문에 그런지 스케일적인 면이나 완성도면에 있어서 여타 대작 소설에 비해 모자라는 면은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열정과 감정의 순수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선 성정체성 문제를 느끼기 이전부터 우리사회가 얼마나 이러한 문제에 획일적이고 자기모순적인지를 보여주고, 일견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성간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통해 숨겨진 자아를 찾아가며, 플라토닉한 사랑의 변질과 함께 찾아온 육체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동성애로의 진보(?)를 통해 또 다른 자아의 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평론가들의 주장처럼 육체적 관계가 동성애를 완성시킨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플라토닉한 사랑 역시 기존 제도권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틀이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면서, 육체적 사랑은 이성애이건 동성애이건 사랑의 또 다른 차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감이 가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 글이다. 그러나 상당히 잘 쓰고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나는 '섬세한 열정'이 가득찬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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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추천! E.M. 포스터의 파격적 자전소설, 마스터피스 영화 <모리스>로 재탄생! (네이버 포스트 http://naver.me/F1pEo5eC)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리스>의 원작 소설 [모리스]의 작가 E.M. 포스터는 [인도로 가는 길]을 통해 2005년 [TIME] 선정 '100대 현대 영문 소설'에 작품이 선정되기도 한 영국의 대문호이다. 아울러 <모리스>를 연출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또 다른 연출작인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를 포함,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과 찰스 스트릿지의 <몬테리아노 연인>까지 그의 주요 작품 5편이 모두 영화화될 정도로 전 세계 감독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 T.S. 엘리엇 등과 함께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로도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인 그는 자신의 케임브리지 재학 시절과 실제 연인이었던 '휴 메러디스'와의 이야기를 [모리스]에 담아 시대를 앞서나간 파격적인 연애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E.M. 포스터는 [모리스]의 집필을 마친 후,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에는 출간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1914년에 완성된 [모리스]는 그의 뜻에 따라 집필한지 반세기를 훌쩍 넘은 1971년, E.M. 포스터 자신이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출간될 수 있었다. 비록 E.M. 포스터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출간할 수 없었으나 '더 행복한 나날들에 바친다'라는 인상적인 헌사, 그리고 [모리스]를 탈고한지 47년이 지난 후에 다시 저자의 말을 덧붙였을 정도로 작가의 애정을 듬뿍 담은 이 책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손길을 거친 감성 로맨스 영화로 재탄생, 문학과 영화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시대를 초월한 만남으로 영화 <모리스>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한편, <아가씨>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부상한 박찬욱 감독이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영화를 만들 때 자양이 됐던 원천’이 되는 문학 작품으로 영화의 원작 소설 [모리스]를 꼽은 것으로 알려져 문학팬들과 영화팬들에게 영화에 대한 또 다른 화제로 주목받고 있다.
"영화를 만들 때 자양이 됐던 원천은 사실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책을 알리는 것은 영화찍는 일 못지 않게 소중하다." (출처: 2008.8 박찬욱 감독 인터뷰 기사 https://bit.ly/2Bk1L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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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랑엔 '작의'가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번개에 맞듯 자신에게 번쩍하고 나타나는 게 사랑일 수 있지만. 혹, 그 짧은 순간에도 '저 사람은 내가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라 감지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든, 실패하든, 불륜이라 욕을 먹든 사회의 테두리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것이고... 알고는 아버지가 친딸을 여자로 사랑하거나, 여동생이 오빠를 남자로 사랑하는 일은 없다. 사람이 개나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지 않듯이... 즉, 우리는 해도 되는 사랑만 하도록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 온 것이 아닐까. 이성애가 절대 진리인 것이 아니라, 그저 보편화된 것일 뿐이다. 결혼과 출산이 계속되어야 인류가, 사회가 유지되니 이성애 이외의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과 맞는,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픈 욕구가 있다. 그 대상이 혹, 동성이라 해서 사랑하면 죄악이 된다는 건, 그저 다수의 잣대에 불과하다. 평생을 일관되게 이성만 사랑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혹,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리 안에 잠재된 다른 사랑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 자체가 정해진 룰대로 생기고 자라고 없어지는 게 아니 듯,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더더욱 그렇지 않나. 소녀시절, 단짝 친구와 죽음을 건 영원한 우정의 맹세를 했다. 고교시절, 멋있는 선배를 늘 동경했다. 눈빛 하나로 몸 안에 천둥이치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마치 이성에게 반하듯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누군가는 질투로 인해 일주일을 내게 침묵으로 항의했었다. 우정, 설레임, 질투, 소유욕, 그런 진실한 감정들이 몸을 더듬거나, 입술을 부비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반대로 성장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동성에 대한 우정과 동경을 금지된 사랑인 양 이단시 할 수 있나.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동기이고, 인류를 지탱해 온 힘이다. 모리스가 창문을 넘어, 클라이브의 침대 옆에 서자, 클라이브가 잠결에 모리스를 애타게 찾는다. 이 때의 모리스 처럼, 벅차오르는 기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만함. 무엇이든 되고 싶고 해 주고 싶은 고결함. 이런 게 사랑인 것이고, 그런 사랑을 막는 것은 오만함과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E.M.포스터의 소설 '모리스'는 연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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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아직 태형이 존재하고 성적취향의 차이가 처벌의 대상이 되던, 야만의 자취가 남아있던 시절. 두 남자가 만났다. 사랑했다. 미친 듯 사랑했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사랑이 두려워진 남자가 먼저 떠난다. 버림받은 남자는 매달렸지만 마음을 굳힌 연인은 몹시도 매정했고 곧 결혼을 했다. 버림 받은 남자는 부부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부부의 저택에서, 다른 남자를 만났다. 어린 표범 같은 눈을 가진, 창틀을 넘어 남자의 방으로 찾아온 소년. 남자는 망설인다. 그는 사랑이 두려웠다. 하지만 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자신을 버렸던 옛 연인에게 고백한다. 사랑에 허우적거리는 연인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자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버렸던 남자는 생각한다, 아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창문을 닫으며. 창문 너머에 미소짓던 수년 전의 그를. 그 시절 온전히 그의 것이었고 영원히 그의 것일 수도 있었던 그 남자. 모리스 홀을.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사서 읽었다. 영화를 다 보자마자 소설을 안 사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의 향기는 대부분 영화보다 더 깊은 법이니. 냉큼 주문을 해서 받자마자 다 읽어버렸다. E,M,포스터의 작품은 <인도로 가는 길>을 별로 감흥 없이 봐서 편견이 있었는데 <전망 좋은 방>도 <하워즈 엔드>도 기회되는 대로 사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난 뒤에 E.M.포스터의 애독자가 되어버렸다. 영화에서보다 소설에서 더 눈부시게 드러난 모리스와 클라이브의 속물근성, 그와 비견되는 케임브리지 출신다운 지성,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과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두려움... 실제 동성애자였고 몇번의 연애를 지속했으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애인이 결혼한 해에 몇번이고 자살을 기도하곤 했던 작가의 여린 심정이 반영된 것일까. 인물의 감정선이 너무 감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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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와 클라이브. 두 사람의 이름이 머리속에서 뱅뱅 맴돌기만 한다. 둘의 사랑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그래서 헤어진거야. 이내 끝나버린 그들의 사랑을 보고 있자니 지속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부정하기 위해 나는 이런식으로 위안을 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온전히 둘의 사랑만이 존재할 수 있는 때가 있을까.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서글퍼진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 그 둘을 지켜보면서 나는 속으로 슬퍼했다. 손짓 하나에 감정이 스며들어간 그들의 연기가 나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영화를 본 후 읽은 E.M 포스터의 이 책은 나를 더 참담하게 만들었고 심란해졌다. 섬세한 듯 다가오는 클라이브와 어딘지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듯한 모리스. 클라이브는 자신의 숨길 수 없는 마음을 모리스에게 고백해버렸지만 모리스는 이내 달아났다.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클라이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척 숨기고 싶었을까.
그러나 둘은 사랑하게 되었고 헤어진다. 금기사항을 지켜내버리기에는 서로에 대한 갈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 여행을 갔다 온 뒤 클라이브는 앤과 결혼을 하게 된다. 클라이브의 마음이 돌아서버렸다. 모리스는 혼자 남아버렸고 그 슬픔의 몫은 온전히 모리스 혼자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클라이브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이제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모리스에 대한 마음이 없어져 버렸을까.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가슴에서 떼어낸 게 아니라 아마 가슴 속에 묻어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뱉어버린 그 말이 나의 진심이 아닐 때가 있듯이,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을 사회적인 통념, 도덕성에 위반되는 것이라 여겨지던 그 시대의 부산물이자 찌꺼지처럼 내던지지는 못하고 그저 자신의 가슴 속 공간을 하나 남겨두었을 것이다. 모리스를 위한 그만의 사랑.
시간이 흐른 뒤 더이상 클라이브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리스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버렸다. 함께 도망쳐버렸다. 나는 아직도 의아하다. 모리스에게 그 새로운 사람, 알렉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클라이브를 잊기 위한 도구도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의 돌출구도 아니라 느껴진다. 그저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나를 알아주는 그 누구,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사람,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얻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나는 항상 갈망한다. 모리스는 얻기 힘든 그 사람을 찾았고 사랑했고 헤어졌지만 가슴 속에 남아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부럽기만 한 것이 되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