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절한 금자씨는 제가 2005년 가장 열광하며 본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보다 더 좋아하는 영화로 관련 상품은 (라이터를 제외하곤) 모두 구입했습니다. 박 감독님 사인이 있는 OST만 3개 있습니다... 그 만큼 금자씨 DVD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올해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묶어서 출시됨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구입했습니다. 흑백버전과 칼라버전을 각각의 디스크에 담아 준 것은 너무나 좋습니다. 흑백버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나눠준 것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흑백버전을 보기 위해선, 아니 소리를 듣기 위해선 DTS 재생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티비에 그냥 꽂아둔 DVD 플레이어에서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홈시터가 구비되지 않은 이에겐 흑백버전은 소리없는 아우성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흑백버전을 보려면 애로사항이 따릅니다. DVD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할 (어느 환경에서도 소리가 나오는) 음성출력이 빠져있습니다. 제작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환경이 갖춰져있지 않으면 흑백버전은 제대로 감상하가 힘들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칼라버전은 되면서, 왜 흑백버전은 안 되는지도요. |
| 영화를 보는 내내 망막에 잡힌 건 눈부신 이영애였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어느 나이의 역할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도 주인공으로서 배우 이영애, '금자씨'는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정말 그네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 자체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 영화에서 그네는 빛난다. 그리고 그 이면에 이영애란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에 대중적 관심이 이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너무 당연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의 반은 이영애의 몫이다. 나머지 반, 호평의 몫은 당연히 박찬욱 감독이 받아야 할 것이다. 대박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비평에서도 박한 점수를 받은 것 같지 않다. 이런 걸 두고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한다, 흔히들. 그래서 스크린에 비친 이영애의 그 뒷편에 어른거렸던 건 감독 박찬욱의 실루엣이었다. 어떤 영화든 감독을 배제하고 어찌 영화를 말할 수 있을까만, <친절한 금자씨>에는 감독 박찬욱의 그늘이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요근래 신인 감독들의 풍년(?)인 우리 영화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중견 감독의 힘이 느껴진다. <친절한 금자씨>를 놓고 볼 때, 감독 박찬욱은 축복 받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물론 그 축복은 이미 감독 스스로 만들어 온 것일 터다. 그의 세번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들고 싶었던 것과 관객들의 호응(그것이 호평이든, 악평이든)이 조우하기 시작한 <복수는 나의 것> 이후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감독은 자신이 하고픈 것의 일단락을 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쩌면 <친절한 금자씨>를 두고 벌이는 찬반의 열띤 논쟁조차 이미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어쩌면 우리는 박찬욱의 농간에 넘어간 것은 아닐런지. 그래서 백한상(최민식 분)을 두고, 그가 죽인 아이들의 가족들이 폐교에 모여든 장면 이후부터는 내내 스크린 뒷편에서 히히덕거리고 있는 박찬욱의 모습이 떠올라, 그 비참한 장면이 조금은 웃기게 보였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온전히 자기몫인 악평조차 그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닐지. 그 의도의 실제적 유무와 상관없이, 이 영화를 보고 느껴지는 찜찜하고 개운치 않은 느낌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또하나 이 영화가 준 교훈, 영화를 보기 전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 이 영화를 묶어 '복수 3부작'이라 하고, 이 영화가 그것의 완결편이라는 것. 그 선입견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데 얼마나 큰 장애가 되었는지 어쩌면 이 글이 가장 잘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이 글이, 어쩌면 내 느낌이 영화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듯 변죽만 울리는 것은 그 선입견과 큰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연기된 <친절한 금자씨> DVD가 더욱 기다려지는 건 그 때문이다. 거기다 이 DVD에는 몇몇 극장에서만 상영되었던, 점점 흑백으로 변해가는 디지털판까지 실린다고 하니, 그 기대는 더욱 크다. |
| 제목 :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 2005 감독 : 박찬욱 출연 : 이영애, 최민식, 권예영, 김시후, 남일우 등 등급 : 18세 관람가 작성 : 2006. 01. 02. "에에. 황홀하였습니다.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금자씨!!" -즉흥감상- 이유 모를 무기력함이 곳 잘 잠식해옴을 느끼는 나날. 그런 2006년이라는 새해의 첫 영화로 앞서 소설로 접했었던 ''친절한 금자씨''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이번 작품은 재미있게 즐겨볼 수 있었다랄까요? 어느 눈 오는 날. 여자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여인들은 산타 복장의 성가대의 노래와 함께 세상으로 환원됩니다. 가족들과의 만남에 서로를 반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친절한 금자씨가 등장합니다. 13년만의 출소. 하지만 그것은 새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닌, 오직 복수를 위한 서막을 알릴 뿐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백선생을 행한 오랜 기간 속에서, 금자씨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 음∼ 개인적으로는 소설이 더 사실적이며, 잔인했으며, 흥미로웠다고 말하고싶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생동감 넘치며, 한편으로는 만화 같고, 진지하면서도 웃음과 감탄이 나오지만, 무엇인가 빠진 듯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다면 더욱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되는군요. 하지만 미리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 들었던 내용과 제가 먼저 읽었던 책과의 불일치 되는 부분의 미스터리를 멋진 화면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보니, 무엇인가 답답했던 가슴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또 다른 제목인 Sympathy for lady vengeance. 오로지 복수를 하기 위한 한 여인의 심정이 다들 공감이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몇몇 분들은 이영애씨가 연기한 금자씨의 모습이 너무 낭창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던데, 글쎄요. 저로서는 순수했기에 잔인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영혼의 금자씨를 너무 잘 연기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작품에서의 악당 ''백선생''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흐음. 영화에서는 밝혀지지 않는 백선생의 과거를 먼저 접했던 저로서는 여전히 누가 선이며 누가 악인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백선생의 과거 또한 영상으로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올법한 보너스 필름 같은 것으로 말이지요.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주위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하지만, 상처를 주는 등 인생의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준다고 믿고있습니다. 하지만 피로 얼룩져버린 인생. 이번 작품 속에서처럼, 두부처럼 하얗게,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그 의식만으로 모든 죄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또 한번의 심오한 고민을 가슴 깊이 되새기면서 이번 감상기록을 종료하고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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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라고 불리는 친절한 금자씨는 상당히 독특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박찬욱 감독에게서 느끼는 건조한 느낌이 무척이나 잘 살아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감정이라는 것은 조금은 건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등장 인물들이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 등장 인물의 감정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공감은 하지만, 그럼에도 그 감정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우리는 그러한 느낌을 더욱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 복수 삼부작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강화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 삼부작 중에서 가장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전의 두 영화에서 우리가 보았던 복수는 거의 철저하게 그 복수의 대상과 복수를 하는 쪽 모두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면서 영화에서 살짝 물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올드 보이에서는 아예 양쪽의 복수가 서로 충돌하면서 양쪽의 복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다른 두 영화와 확실히 다른 위치에서 서있다. 그것은 완전한 악역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인 금자 씨의 경우에 완전한 선역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악역이 너무나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기에 금자 씨의 복수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발휘가 된다. 그 복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은 코미디처럼 보이는 장면 장면을 통해서 살짝 이야기에서 한걸음 멀어져 그 복수를 지켜게 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특별 출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전의 복수 삼부작의 출연자들이 얼굴을 보일 때마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감정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가 복수 삼부작의 마무리를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건조한 박찬욱 영화의 매력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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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년 반을 갇혀있다가 교도소에서 나온 금자씨한테 목사가 두부를 먹으라고 내놓는다. 두부처럼 하얀 마음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고...그런데 금자씨는 쟁반을 내팽겨치면서 말한다. "너나 잘 하세요"
박찬욱 감독이 2005년에 만든 <친절한 금자씨 Sympathy for Lady Vengeance / Lady Vengeance>는 아이를 죽이지도 않았지만 죄를 뒤집어 쓴 탓에 젊음을 빼앗겨버린 한 아낙네의 앙갚음을 다룬 영화다.
'계집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던가. 사내든 계집이든 누구든 제 잘못이야 짊어져야 하겠지만, 다른 이의 잘못까지도 안고 갈 수는 없다. 젊디 젊은 때를 엉뚱한 일에 휘말려 다 보내고, 제 뱃속으로 낳은 딸마저 머나먼 나라에 보냈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누굴 죽이면 속이 시원해질까?
2.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앙갚음 하러 나선 이금자(이영애). 지나간 제 삶을 되짚어 본다. 어디가 꼬여서 착하게 살고팠던 마음이 몹쓸 짓에 휘말려 큰집에까지 가게 되었는지...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사내를 잘못 만나 아이를 갖게 되었으나 그 사내는 같이 살 수가 없었고, 집을 나와 교생 실습때 저를 예쁘다고 한 백한상 선생(최민식)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 곳이 제 삶의 무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선생이 돈에 눈독을 들이면서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미친 사내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돈에 마음을 팔아버린 백선생은 잘 사는 사내 아이를 데려가 그 어버이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돈만 빼앗았으면 될 것을 아이가 운다고 그 어린 것을 백선생이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금자씨의 어린 딸을 볼모로 잡고 금자씨가 한 것으로 꾸며댔으니...
살아가면서 맺는 인연이 다 좋은 것이면 좋으련만, 때로는 어처구니 없이 나쁜 것이 되기도 한다.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한테는 차라리 그런 인연을 만나지 않는다면 별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애초에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잘잘못을 가리거나 지켜보는 하느님같은 것은 없으므로, 우리한테 일어난 일은 누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일어났을 뿐일까?
3. 큰집에 들어갈 때부터 백선생한테 앙갚음 하려고 꾀를 낸 금자씨. 너무너무 커다란 작전을 세워 하나씩 풀어간다. 먼저 억울하게 지내는 이들을 돕는다.
콩팥이 나빠져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한테는 콩팥을 떼어주고, 다른 사람들을 못된 짓으로 괴롭히는 마녀한테는 락스를 먹여 죽이고, 밴대질로 다른 이를 괴롭히는 사람한테는 비누로 바닥을 미끄럽게 해서 넘어지게 하고, 북한에서 넘어와 오랫동안 큰집에서 지낸 늙은 염탐꾼한테는 똥도 치워주고...
그러니 큰집에 들어온 계집들한테는 금자가 그냥 금자씨가 아니다. 모두 "친절한 금자씨'로 우러러본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아니지... 빵집에서 일하는 근식이마저 뗄래야 붙은 것도 없는 사이인데도 금자씨한테 몸까지 준다.
그런데 백선생이 한 짓이 하나뿐이 아니다. 죽인 아이가 넷이나 된다. 선생의 탈을 쓰고 돈 때문에 아이들을 죽이는 백선생...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죽인 아이들의 어버이들은 마음 속으로 칼을 갈텐데...그 맺힌 한을 어떻게 짊어지려고 몹쓸 짓을 하는지...
4. 영화 밖의 다른 아낙네가 금자씨의 삶을 영화를 따라가며 이야기 해주어 남다른 영화가 되었는데, 박찬욱 감독은 금자씨의 삶을 그리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 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잘못을 빌어야 한다. 뉘우치는 사람은 봐주어야 하지만, 잘못 하고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므로 봐줄 수가 없다...
옛날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해야 할까? 사랑하는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죽인 놈을 찾아 그 놈을 내가 죽여야 속이 시원해질까? 나쁜 놈을 죽였다고 나는 아무 일도 없을까? 그런 놈은 죽어도 싸...이런 말로 덮여질까?
그런데 감독의 뜻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우리의 금자씨가 억울하고, 다른 어버이들이 피눈물을 흘렸겠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리 속이 아프고 가슴이 떨리더라도 법을 버리고 손으로 앙갚음을 할 수는 없는 법. 나쁜 짓을 한 사람한테는 그에 맞는 벌을 주면 된다. 그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게다가 아무리 금자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백선생의 아내 자리에 들어간 이가 제 옆지기의 뒤통수를 치면서 금자씨가 앙갚음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앞뒤가 안 맞다.
광고 따위에 나와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무너진 삶을 보여주는 금자씨를 맡은 이영애의 연기는 새롭고 놀랍다. 예쁜 얼굴로 아무 생각없는 듯 한 마디 할 때는 소름이 끼친다. "안녕히 가세요..." 꿈에서 백선생을 잡아 총으로 쏠 때 하는 말이다.
"기도는 이태리 타월이야. 껍질이 벗겨지도록 빡빡 벗겨. 그러면 하얀 속살이 드러날 거야." "난 괜찮았는데 넌 어땠어?" 근식과 살을 섞고는 말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나가면서 한 마디를 더 보탠다. "여기 있는 다른 물건을 마음대로 건드리면 머리에 구멍난다..." (무서운 사람과는 사랑하기도 힘들다.)
5. 디브이디는 깔끔하다. 화면이나 소리가 좋다. 게다가 보너스도 나름대로 잘 만들었다. 조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독과 나온 배우들이 느낌을 털어놓고, 베니스 영화제에 나가 황금사자상 후보에 오른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런데 사려고 해도 없다. 우리나라 영화 디브이디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 잘 나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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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위한 선의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되뇌어 본다.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백선생 대신 감옥에서 13년간 복역하게 된 금자씨. 더더군다나 20살 가장 꽃다운 나이에 말이다. 그녀는 오로지 복수만을 꿈꾸며 선행을 한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살인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해만 끼치는 나쁜 죄수라 해서 그녀의 살인이 용인 받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천사같은 얼굴로 친절한 미소로 위장하고 3년간 식사에 약을 타서 교도소 안에서까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길고긴 투쟁의 시간들을 지나, 출소하게 된 금자씨가 처음으로 내뱉은 대사는 "너나 잘 하세요"였다. 두부같이 하얗고 깨끗하게 살라고 건네준 목사의 성의를 한칼에 잘라버리는 금자씨지만, 결국엔 그녀가 원한 것도 그런 삶이었다. 한 명이 아니라, 네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살해한 유괴범 백선생은 유가족들에 의해 처참하게 고통받다가 살해된다. 책에서는 이런 백선생에게도 피해자였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나온다는데 그에게는 어떠한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교도소에서 가장 기도를 배우기 쉽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금자씨가 내뱉은 이 말이 바로 이 영화의 모티브가 아닌 가 싶다. 모두들 깨끗한 척, 순수한 척 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는 어김없이 잔인한 속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악에 물들기 쉬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그런 성격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처럼,,, 두부처럼,,, 하얗게 살기는 그리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티끌만큼의 과오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자신의 아이들을 살해한 범인에게 잔인한 고통을 주고서도, 그가 앗아간 그들의 돈을 받기 위해 하나같이 계좌번호를 적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좀 역설적이기도 한 제목, 친절한 금자씨. 그녀가 완벽한 선함을 가지지 못한,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눈처럼 하얗게 살고 싶은 마음은 세상 누구나가 품고 사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너나 잘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