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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함께 걷는 길 >>
책의 표지부터 참 따뜻하고 이쁜 책이다. 이 책은 아들과 아빠가 함께 길을 걷듣 같이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무면 좋을것 같은 책이다. 우리집에도 형제가 있어서 이런 내용들이 남일 같지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아이들도 이제는 조금 크면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같이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한다는것도 어렵다고들 한다. 크기전에 많은 이야기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었으면 하지만 어릴때 부터 너무 바쁜 요즘 아이들이라 아쉽기만 하다. 할아버지 댁이 대관령근처라는 좋은 조건으로 아들과 아빠는 오늘 함께 걸으면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따로 시간을 내서 어떤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면 서로 어색할터. 요즘은 등산도 많이하고, 날씨도 좋아서 이렇게 함께 걷는 시간을 마련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읽자 마자 아들과 아빠를 묶어서 시간을 내어보기로 했다. 우리집도... 나도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무엇을 이해받고자 하는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우리 가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서정적이고 참 따뜻한 표지만큼 내용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을수 있어서 우선 길을 떠나기전에 이 책을 한번 서로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좋을것 같다. 그리고 길을 떠나볼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줄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소설가 이순원은 국내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다양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데 이 아들과 함게 걷는 길로 다른 책도 관심을 가지게 한다.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었다고 하니 고학년이 되기전에 미리 한번 읽어보면 참 좋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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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적인 영화를 본 느낌이다. 잔잔한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평화로운 느낌이다. 책에서는 주변환경을 주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음에도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것이 아름다운 영상을 펼쳐준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가족의 의미 특히 아버지의 자리를 부모로부터 대대손손 이어받은 아름다운 소통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책은 주인공이 아들과 함께 대관령을 넘는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집을 찾아가며 아니 아버지집을 찾아가며 아들에게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이야기 그것은 가장 평범한 진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대관령 고개를 한구비 한구비 넘어가면서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아버지가 대대로 듣고 자라웠던 영양분이었다. 흙과 농사와 친구와 가족과 삶이라는 이야기 이런 류의 평범한 이야기들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삶이 너무 메말랐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급함과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에 삶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쳐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바로 정신인 것이다. 농사나 짓는 삶이 아니라 생명을 짓는 농사를 배우는 정신이 바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관령을 넘어 가며 전해준 가치인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삼스레 과거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한 회상은 아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스런 삶이 바로 전해주고픈 희망인 것이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나에게도 열세살 아들이 있다. 올해에는 가까운 산이라도 오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물론 그전에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하는 결코 쉽지않은 고민을 해서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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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나눌까? 살아오면서 얼마나 자주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얼마나 자주 아버지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어
주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걸는 동안 바람도 불었을 것이고 걷고 있어 땀이 흘렸을 것인데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었다. 계속 되는 중간 중간 서로를 바라 보았을 것이고 계속 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아들을 아버지를 배려하는 마음도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그것이 부자지간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을 고민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일까? 강원도에서 태어난 작가답게 높은 고지의 고개는 예전부터 함께 걸었던 길이라 몸소 아들에게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인생의 길이며 그것이 말로 하는 것보다는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게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나도 그렇게 아버지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귀를 기울여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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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일까? 소설일까? 잠시 생각을 해본 작품이다. 소설이다. 이유는 작가가 소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좀 객쩍고 말이 안 되는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수필 같은 소설이다.
강릉 할아버지 댁으로 가면서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아들과 소설가 아버지가 대관령을 넘는다. 그 아흔아홉 굽이라는 대관령을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서 넘는 것이다. 굽이 하나를 돌 때마다 아버지와 아들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성숙한다.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말하기라고는 하지만 나는 가끔 할 말이 없다. 이런 말, 아들에게 들려준 아버지의 말들이 나도 듣고 싶고, 나도 들려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족보와 가문이야기를 하다가 조상 중에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자른 조상님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만약 말을 했다면 살아남았어도 할아버지는 ‘귀를 자르고도 입을 연 사람’으로 불릴 테고, 또 집안도 ‘귀를 자르고도 입을 연 사람의 집안’으로 불렸을 거다. 옛날 선비들은 그런 걸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거야.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을 봐라. 많은 사람들이 저만 살고 저만 잘 되겠다고 없는 말까지 만들어 가며 남을 헤치고, 또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걸 보면 어떻게든 말을 만들어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더냐.”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 특유의 직관을 잃어버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관령을 넘는 것과 같다. 대관령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내가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함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관령 고개는 넘어갔다가 다시 넘어올 때에 아이를 잃어버린다. 는 내용. “아빠 옆에는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참 많았단다. 또 그런 친구들을 선생님이 칭찬해주시고, 그런데 지금 그 친구들은 아무도 글을 쓰지 않아.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친구들이 그때 글을 잘 썼던 건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선생님한테 칭찬받을 글만 썼던 거야. 그러는 동안 더 크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자기 세계를 좁게 만들면서. 그래서 아빠는 앞으로도 네 글을 가만히 보기만 하기로 했어, 너희가 아무리 잘 써도 어른만큼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신 너희의 상상력은 끝이 없거든. 자칫 잘못 칭찬하거나 또 가르치려고 들면 오히려 너희의 큰 세계를 작게 만들 수 있는 거란다.” “자기보다 나은 친구 못한 친구 얘기를 하는 건 친구에게 배울 점을 찾으라는 이야기인 거야. 또 나쁜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함께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더구나 너희처럼 자라날 때는 말이지.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친구란 내가 외롭거나 어려울 때 서로 믿고 도울 수 있고, 또 당장 어렵거나 외롭지 않더라도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란다. 서로 붙어 다니며 놀기만 좋아하는 친구보다는 이다음 서로 믿고,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