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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고 황태연, 김종록 공저 김영사/2015.05.25
공자가 잠든 유럽을 깨우다니 무슨 이야기지? 하는 궁금증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머리말을 읽을 때부터 충격을 주더니 책을 읽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서양의 시각에서 교육을 받고 생활하였음에도, 서양철학이나 문화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상식처럼 알고 있던 것들을 모조리 뒤집는 반전과 그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자료제시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동국대학 황태연 교수로, 독일 괴테대학교에 유학하여 동서양철학에 정통하고, 현실정치에도 참여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로는 <지배와 이성>, <계몽의 기획> 외 다수의 연구서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황태연교수의 공자 3부작 <실증주역>, <공자와 세계>,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을 중심으로 공저자인 작가 김종록이 쉽게 재구성하여 쓴 책이라 한다. 작가 김종록은 <소설풍수(1-5)>,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1,2)>, <바이칼> 등 다수의 소설과 인문서를 썼다. 이 책은 8장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은 철학자 볼프가 1721년 할레 대학 총장 이임식에서 공자의 무신론적 도덕철학을 높이 칭송했다가 프로이센 왕으로부터 추방을 당했으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뒤 귀국하여 바이에른 선후로부터 남작 직위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2장에선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화약, 나침판, 인쇄술이 르네상스의 물적인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인쇄술의 발달로 공자출판에 열기를 불어넣게 되고 사색의 불꽃을 지폈으며, 동양의 선비문화를 받아들여 로코코 문화를 꽃피웠다는 내용이다. 3장에서는 라이프니츠는 <중국의 최신 소식>의 부록에 당대 중국 및 공자 관련 서적을 소개하고, 동양철학을 인류발전의 섭리로 이해한다. 그러나 유럽에선 유무신론의 논쟁이 뜨거웠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4장에서 공자 열풍은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자예찬론자 볼테르와 비판론자 몽테스키외의 논쟁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볼테르가 일으킨 중국 도덕과 공자 열풍은 프랑스를 뒤덮고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5장에서는 유럽의 공자라 칭하는 케네의 근대경제학 창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케네는 경제학 분야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제도와 공자의 철학을 대변했고, 이를 통해 근대 정치경제학을 창시했다. 1785년 발표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 <경제표>는 경제학의 창설을 알리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6장은 유럽에서 늦게 공맹의 철학을 받아들인 영국의 정치문화에 대해 설명 한다. 흄은 서양의 역사와 철학에서 전례 없는 새로운 자유상공업론을 전개했다. 더불어 사마천 경제학을 표절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해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마천의 ‘자연지험(自然之驗)’을 표절한 것이므로 스미스의자유시장 경제학은 ‘중국산’이라고 단언하는 영국 사상가 레슬리 영의 1996년 논문에 이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7장에서는 산업혁명의 리더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으며, 그 모태가 송나라 였다는 것을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밝히고 있다, 한편 18세기까지 동아시아 경제는 세계 최강이었으며, 중국은 제국주의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나라고, 영, 정조 시절의 조선은 세계 1위 국가였다고 자신감을 북돋운다. 8장에서는 동아시아 문명의 현주소와 패치워크(이질적 조각들을 독특한 기법으로 붙여 특유한 스타일의 완성품을 창조하는 것) 문명에 대한 설명과 19세기에 잊혀졌던 공자를 다시 찾게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 갈등과 융합을 넘어선 패치워크 문명에서 다시 공자의 사상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록격인 ‘책속의 책’을 통해 중국의 신화시대를 지나 하, 은, 주나라의 제도에서부터 공자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공맹사상의 뿌리와 공자의 삶에 대해 핵심적인 것만 짚어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기에 서양철학자들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낮아졌다. 그리하여 14세기부터 동양사상이 서양에 유입되어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켰으며, 로코코 문화가 동양의 선비문화의 복사판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아니라, 17, 18세기에 공자의 도덕철학이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서양 철학자들이 몰랐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체 했을지도 모르겠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서양의 철학자들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최근에 와서야 서양철학에 대한 공맹철학의 영향, 공맹의 감각적 도덕체계와 서양의 합리론적 도덕체계 간의 차이, 그리고 공맹철학의 덕성주의적 우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p.80)’라고 저자가 말하듯, 그들은 문명개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식민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동양사상을 무시했다. 그들은 다른 문명을 파괴함은 물론, 자연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유럽인들의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 동양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문화는 무시되거나 말살 되었고, 그 주민들은 열등감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나면서 동양의 유교문화권은 저력을 발휘하여 다시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고, 지금은 서양과 대등한 위치를 확보해 가고 있다. ‘서구경험론과 굳게 연대한 공자철학이야말로 동서양의 합리론을 청산하고 인류의 새 삶을 디자인할 확실한 대안 철학이다.(p.306)’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구경험론과 동양의 공자철학을 융합하면 21세기를 동양이 선도하는 세계로 만들어 갈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서양의 시각으로 인류문화를 바라보고 생활하여 우리의 동양 유교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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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의 공든탑이 모래성처럼 우루루 무너지는 과정은 짧고 허망하다. 동아시아의 급추락은 1830년~1840년대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중국의 급격한 탈산업화에서 왔다. 산업혁명과 과잉생산에 시달리던 유럽의 무관세 덤핑에 대항하지 못한 무능한 권력이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불평등 조약 속에 그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파국 속으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문화 차에 대해 19C 초까지도 1인당 국민소득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서 동아시아가 우세했다고 조목조목 찝어낸다. 이 책에 의하면 이 때까지 문학, 과학, 의학, 예술, 철학, 제도, 경제, 상업, 농업 등 모든 부분에서 중국이 유럽보다 우세했다. 서양의 발전에 가장 큰 정신적 근간이 된 계몽사상의 발상 그 자체가 공자 사상에서 유래한다. 만민평등교육제도와 과거제도에서 유럽의 교육제도가 왔고, 중국의 농본주의와 자유상업론을 바탕으로 케네의 근대 경제 모델이 완성된다. 중국의 내각제적 제한군주정에 탄복한 영국은 공자의 ‘임금은 영유하나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번역하여 불문율이 되었다(‘King reigns, but does not rule'). 18C 계몽주의 시대 내내 유럽 사상계를 공자 철학이 지배했고, 그 계승자는 루소, 볼테르 중국 문물로 넘쳐나던 17C 18C 중국의 선비 문화에서 왔다. 중국 사상의 우월성을 서양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문화와 섞음으로써 비로소 천년 이상 어두운 신의 침대 속에서 잠자고 있던 문화의 꽃이 기지개를 펴며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7C 말 라이프니츠는 기독교 선교사를 중국으로 파견할 게 아니라 공자 선교사를 유럽으로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 18C에는 공자 비방의 대가 몽테스키외와 공자 예찬론자 볼테르가 각각 <법의정신>과 <철학사전> 등을 통해 치열하게 논쟁하며 프랑스를 달군다. 볼테르를 이은 케네는 중국을 모델로 근대 경제학을 창시한다.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위스는 알브레히트 폰 힐러 <우성 황제 : 어느 아침의 나라 이야기>를 토대로한 무위이치 사상을 바탕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한다. 조용히 영국의 철학을 받아들인 영국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사마천의 자연지험에서 표절한 애덤스 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론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또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19세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는 증거와 근거들을 보여준다. 영국 산업혁명보다 600년 빠른 송나라 10C에는 이미 제철혁명으로부터 시작도니 제조 기술의 혁명이 이어져 생활용품의 대량생산과 재부가 형성되었고(261) 기원전 4C 경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를 요리와 조명에 사용했고 10C경에는 가정용 석면램프가 널리 보급되었다. 중국의 항해 기술에 대해서는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2000년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 불가능한 가장 앞선 선박 항해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18C 말에도 유럽인의 선박은 중국선박에 비해 열등한 선박을 사용했다(템플 p263) 영국 선박이 16C말에야 4백톤 급에 겨우 도달했을 때 중국은 16C 이전 이미 3천톤급에 도달했고, 기원전 1C경부터 나침반을 사용했다. 10C에 지폐가 발명되어 자유 경제 시장은 더욱 확대되었고 화폐납세는 11C 중반 52퍼센트에 달했다. 과세없는 자유 시장 경제는 거대 도시를 탄생시켰고, 14C 도시민은 37%에, 항주의 인구는 최대 500만명으로 18C 유럽의 도시화 수준을 상회했다. 서양으로부터 유포된 이른바 아시아 정체론이란 동아시아가 잠시 서양에 뒤졌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시기에 형성된 부정적 동양관을 그 이전의 역사에까지 일반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허구에 지나지 않음...인류 문명사를 줄곧 앞서오다가 고작 근대화시기 백년 남짓한 기간동안의 과학기술적 열세를 가지고 문화 전반에 걸쳐 너무 극심한 서구 콤플렉스를 지녀온 셈이다. (p267~268) 다른 종교와 신념을 인정치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인정치 않는 서구 중심의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희제는 유럽 선교사들이 가톨릭 교리를 선교하는 것을 허락했다. 국가와 종교가 일치했던 서구 선교사들에겐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추방된다. 남의 나라에 와서 수천년동안 이어온 전통을 깨고 자기들 신을 믿으라고 하며, 위패를 불태우고 신도들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것은 누가 무엇을 전해주러 왔는지를 의심할만한 행동이다. 하나의 신 아래의 서로 다른 종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행위 또한 당신 중국인들의 눈에는 다양성의 하나로 보였을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화형이나 태형 같은 무지막지한 순교가 이루어지는 대신 어떤 가혹행위도 박해도 없이 단지 추방당했을 뿐이라고 한다. 참혹한 종교갈등을 겪은 서구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받은 대접이다. 그들을 추방했던 건 조상에 대한 경배를 막고 소녀들과 동석하고 그 소녀들을 무릎꿇린 문화적 차이에서였을 뿐, 종교에 대한 탄합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서구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의 차이, 나아가서 그 우수성을 읽을 수 있다. 이 책과 함께라면 이제까지의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감은 사라진다. 중국과 서양의 비교에 있어 중국 우세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지나치게 중국 우월론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엄청난 양의 참고 자료에 일단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는 걸로 한다.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다. 중국이 공산주의적 몽상에서 막 빠져나와 꿰줴줴한 모습으로 $1~$2짜리 조잡한 물건들을 미국에 덤핑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중국은 몸집만 크고 지나간 과거마저도 열세한 나라였다. 이제 경제 사정이 달라진 것과 중국의 문명에 대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문화적으로 서구의 것에 열광하고 선호하는 우리가 중국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현재를 재조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A사 6월 이달의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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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불었던 동아시아 열풍은 14세기 르네상스의 물적 토대가 되었고, 공자 열풍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으며 동양 선비문화의 복사판인 로코코 문화를 꽃피운다. 프랑스에서 멀어진 동양 비방과 예찬의 중심에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있었고, 경제학의 창시자 프랑수아 케네가 있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마천의 ‘자연지험(自然之驗)’을 표절한 것이므로 스미스의자유시장 경제학은 ‘중국산’이라고 단언하는 영국 사상가 레슬리 영의 1996년 논문에 이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p.7)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료에 따르면 동아시아 경제는 18세기까지 줄곧 세계최강이었다. 중국은 제국주의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문명국이었고, 영, 정조 시대 조선은 중국을 능가한 세계 1위의 문화국가였다.(p.8) 근대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성격을 띤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을 발견하는 시대다. 문제는 제국주의화다. 19세기 내내 서구 열강은 세계를 약탈하면서 ‘명백한 운명’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폭력의 세계화’였으며,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일 뿐이다. p.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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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공자의 사상이 서양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제목부터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공자의 사상에 매료되어 심취하고 나아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를 이끌어 냈을 정도로 공자의 사상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준다. 우리나라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중국.. 동양철학을 공부했거나 철학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면 공자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중국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담은 책을 본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인지 어느 인물의 사상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게 읽게 되고 읽고 나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가닥 몇 개를 제외하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동양철학에 무지하다. 세계 4대 성인에 공자와 예수가 들어 있다. 처음 시작부터 독일 계몽주의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볼프는 공자와 예수를 동급으로 보았다. 동양인... 중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기독교 사상이 뿌리 깊은 서양인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면 지식인들 중에는 공자와 그의 사상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자철학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말한 볼프의 발언을 놓고 랑게란 인물이 집요하게 이용한다. 추방을 당한 볼프는 학문의 깊이에서 랑게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에 결국 프리드리히 1세 사망 후 자신이 있어야 할 학교로 돌아온다. 동양에 느끼는 신비주의와는 다르게 17세기 중, 후반부터 서양에 알려진 공자의 사상이 여러 인물들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다. 중세 기독교철학이 중심에 홉스, 로크 등의 인물이 공자의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데 반해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계몽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던 볼테르는 공자를 숭배했다. 모든 것이 기독교의 판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대에 반기독교적인 공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목숨을 건 사생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중국내 선교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탄압이 없었던 나라다. 오히려 유일신을 믿으라며 기독교만을 내세우는 서양종교와는 달리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인물들에 대한 제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선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선교 활동으로 인해 중국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천주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것과는 달리 중국황제는 선교사들이 중국의 고유한 미풍양속, 사상, 종교, 학문 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인해 반란이 생기고 나라가 위기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선교사들에게 남다른 호의를 베풀며 그들을 돌려보낸다. 또 다른 인물 루소는 처음에 중국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어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치경제론을 통해 중국 정치와 황제를 찬양한다. 항상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치를 펼치는 황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지나칠 수도 있지만 도통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할 때 몇 백 년 전의 황제도 이런 정치를 펼쳤는데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있는 현대에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우리의 대통령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퐁파두르 부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케네는 중국을 통해 깨달은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사상을 갖는다. 라이프니츠, 볼테르, 케네 등은 공자의 사상이나 중국의 앞선 여러 정책이나 기술에 매료된 인물들이다. 단락마다 다 흥미로운 요소가 담겨져 있는데 공자의 사상과 그에 따른 서양의 철학자, 역사가, 문학자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무척이나 흥미롭다. 당신들은 중국인을 기독교도로 만들기를 바라오. 당신들의 법이 그것을 당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아오. 그러나 당신들이 성공하는 경우 우리는 무엇이 되겠소? 당신네 왕들의 신하가 될 것이오. 당신네 기독교도들은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않소. 혼란의 시기가 오면 당신들 자신의 소리 외에는 누구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오. -p133- 가장 위대한 임금은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고, 그다음 임금은 아랫사람들이 친근히 하며 칭송하고, 그다음 임금은 아랫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다음 임금은 아랫사람들이 그를 깔본다. -p206- 공자와 공자의 사상, 중국철학이 흥미롭게 담겨져 있어 재밌게 읽게 된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자와 공자철학이 유럽의 계몽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으며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상세한 설명이 더 들어갔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서양철학에 더 많이 익숙해 있고 서양인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보았던 면이 적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동양철학이 서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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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치고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자의 제자, 유교의 시조,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며 사상을 전파한 그는 어쩌면 서양의 크라이스트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현세에 와서 공자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안다. 물론 이는 공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양사상과 관련된 학문에 결부되는 말이다. 합리성과 과학으로 대변되는 오늘에 진부한 충효, 예 등의 인격적 완성은 밀려나는 뒷 물결에 해당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이 책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황태연 교수와 전주대 문화산업대학원 김종록 교수가 공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는 사실을 수많은 실증 사료와 흥미진진한 동서양 교류담을 통해 자세하게 소개한다. 특히 공자가 유럽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겼다. 동양은 역사시대 내내 서구사회를 앞섰다. 때문에 일찍이 유럽에 불었떤 동아시아 문명의 열풍은 14세기 르네상의 물적 토대가 됐다. 시간이 흘러 공자열풍도 18세기 계몽주의의 정신적 토대가 돼 동양 선비문화가 기반인 로코코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저자는 책을 통해 공자철학이 깊이, 현실성에서 기독교신학과 그리스 전통 서양철학의 일반을 원리적으로 압도했다고 설명한다. 기독교를 전하러 중국에 왔다가 오히려 공자의 매력에 빠져 돌아간 유럽인들. 로코코문화는 동양 선비문화가 투영돼 있으며 영국의 젠틀맨들은 선비의 삶과 모습을 동경했다. 볼테르에서부터 라이프니츠, 루소, 케, 흄, 애덤 스미스 등 18세기 최고의 지식인들이 숭배했던 현자가 공자인 것이다. 1721년 7월 12일 프로이센제국의 할레 대학에서 총장 이임식이 열렸다. 순번직 총장 크리스티안 볼프가 요하임 랑게에게 총장 직무대행을 물려주면서 매우 이례적인 이임사를 발표한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허한 명예욕에 유혹당하지 않고 백성의 행복과 복리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기의 재능을 전적으로 발휘했습니다.(...) 중국의 옛 황제들과 제후들은 정치가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철학자들이 다스리고 제후들이 철학하는 곳에서 국민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p.15) 볼프는 공자철학을 그리스철학과 비교하며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 연설의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신론자로 몰린 볼프는 프로이센을 떠나야 했지만 그의 연설내용은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며 지성인들을 자극했다. 2천년 동안 동아시아를 풍미했던 공자사상은 18세기 유럽을 강타하여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으며, 오늘날 파탄에 처한 서구 합리주의를 청산하고 인류의 새 삶을 디자인할 확실한 대안철학이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황태연,김종록/ 김영사/ 2015. 5.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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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도 천칭 같은 것이 있어, 양쪽에 각각 동양과 서양을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근대 이후론 확실히 서양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동양은 서양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 역방향의 영향이란 전무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엔 개화가 있었고, 일본엔 메이지유신이 있었으며 중국엔 양무운동이 있었다. 그 모두가 자신보다 더 강하고 발전한 서양을 본받고자 한 움직임이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서양과 조금도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 한 권 나왔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황태연과 전주대 문화산업대 객원교수인 김종록이 공저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가 그것이다. 제목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맹점으로 남아있었던 근대 시기의 동양에서 서양으로 뻗어나간 영향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나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공자로 대표되는 중국 사상이 서양에 끼친 영향이 생각 이상으로 컸던 모양이다. 솔직히 난 동양에서 서양에 끼친 영향이란 고흐와 고갱을 비롯한 인상주의학파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우키요예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이런 것을 알려주는 책에 더욱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공자의 사상이 유럽에 전해지게 된 것은 중국에 온 선교사 덕분이라고 한다. 당시 선교의 주류적 경향은 '적응주의 선교'라고 해서 쉽게 말하면 선교 대상인 지역의 문화를 먼저 긍정하고 거기에 눈높이를 맞춰 선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선교사들은 대상이 되는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고 공유를 위해 보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일환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공자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서양은 한창 기독교의 헤게모니가 서서히 침윤되고 있었던 시점으로, 공자를 새로운 가능성의 사상으로 환영한 것도 당대의 기독교 중심주의를 공박하던 지식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독교는 지성 또한 신의 은총이라 여겼는데 공자는 무신론자이면서도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좋은 반박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공자가 살던 중국은 유럽과 달리 하나의 종교가 지배하지 않는, 종교 자유주의의 나라였다. 그러니 르네상스의 이성에 근거한 인문주의적 태도와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기존 기독교에 대한 개혁주의적 태도를 공유하고 있었던 유럽 지식인들에겐 무신론의 바탕 위에서 합리주의적 태도로 사상을 만들어간 공자라는 존재가 아무래도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양의 공자에 대한 열렬한 수용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책은 이런 역사적 추이를,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은 중국의 선비 문화를 복사한 것이며 경제학 원론에서 한 번은 꼭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제학자이기도 한 케네의 중농주의도 실은 서양보다 생산력이 훨씬 높았던 중국의 농업 경제를 모델로 했다라는 식으로 하나 하나 상세히 짚어나가며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대부분 역사 속에 실재했던 누군가의 주장이나 현실에서 이뤄졌던 논쟁을 가져와 이뤄지므로 근거가 확실한만큼 꽤나 설득적이다. 솔직히 이토록 많이 인용 하려면 정말 문헌을 많이 뒤졌어야 했을 것 같아서 새삼 한 권의 책에 투여한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일반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아무래도 과도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으려 하다 보면 그것이 급경사일수록 억센 힘을 필요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만한 힘을 내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리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확실히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일방적 영향 관계는 우리에게 오랜 세월 굳어진 생각이며 그런 의미에서 고정관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굳어질 대로 굳어진 고정관념과 싸워야 하는데 상대가 워낙 억세다 보니 주장의 날을 더욱 벼려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만 조금은 아전인수적 해석과 상대에 대한 비하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걸 무엇보다도 중국에 대한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의 논쟁에서 느꼈는데 물론 저자들 보다 쥐뿔도 아는 것이 없는 처지에 이런 말 하는 것이 좀 저어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변호삼아 말한다면 다소 주관적인 해석의 남용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몽테스키외의 방법이란 '사물의 본성'에 치중해 그 대상을 평가하는 것이다. 즉,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장단점을 따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여러 나라의 풍속을 연구했는데 거기엔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본다. 분명 몽테스키외는 중국을 많이 비판했다. 그런데 그것이 저자들 말대로 온전히 시기심 때문이었는 지는 모르겠다. 물론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몽테스키외의 비판도 나름 객관적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몽테스키외는 당시 유럽 전제 정치의 문제점을 견제와 균형의 삼권 분립이라는 것으로 바로잡으려 했으므로 중국의 전제정치 또한 곱게 보일 리는 없었을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중국 비판은 어쩌면 그러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결과일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다 보니 나오게 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몽테스키외에게 반발하고 중국에 찬사를 보냈다는 볼테르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볼테르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으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볼테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종교의 자유였다. 패권적 종교가 없는 상태. 그것이 볼테르가 꿈꾸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테르는 중국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리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둘 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랐다. 몽테스키외에겐 중국의 전제 정치가 시야에 먼저 들어온 반면, 볼테르에겐 종교의 자유가 먼저 들어온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결부되었고 하여 둘은 중국에 대한 평가를 두고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견지하는 입장이 있으며 외재하는 것들을 그 입장에 따라 평가하기 마련이다. 뇌과학자들도 입을 모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두뇌는 교묘한 이야기꾼이라 외부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조작한다고.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둘 다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본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라고 다를 것 없다. 정리해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이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이었으면 좋아겠다는 것이다. 보다 중립적인 서술로서 거기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도록 했으면 어떨까 싶다. 시각이 한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저자들이 날 '계몽'하려 하는구나 싶어 조금은 불편했다. 진심을 전하고픈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쪽에 치우친 설득은 듣는 이에게 강권으로 다가오기 쉽고 그러다 보면 아무리 좋은 진심도 '됐거든요' 하면서 사양할 수 있다. 외판원과 고객과의 관계가 여기서도 통용되는 것이다. 두 개의 물건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팔려는 물건의 장점만을 말하기 보다 둘 다를 온전하게 보여주고 가장 객관적인 상황에서 독자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사람은 내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이 모든 걸 보며 듣고 있구나 할 때 가장 설득되기 쉬우니까 말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지향하는 패치워크 문명에 맞는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297페이지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패치워크 문명의 특징은 어디까지나 자기비판적 개방성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내가 오류일 가능성을 긍정해야 한다. 자기 비판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가능성의 긍정에서 객관성은 도래하고 개방도 '타자 중심의 포용'이라는 보다 온전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좀 서술이 아쉬운 것이다. 물론 내용은 전체적으로 내가 그동안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라 좋았다. 금상첨화랄까? 서술까지 내가 원했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었으면 정말 만족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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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쓰는 글이라 내용의 세부적인 점을 기억하지 못함은 미리 밝혀둔다. 이 책은 처음에 나도 호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서구 문물이 동양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 자료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지나치게 중국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우기가 매우 어렵다. 저자는 유럽에서 공자 및 유교사상이 비판적으로 수용된 면은 많이 줄이고 단지 일부 사상가들이 공자를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다는 점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군데군데 보면 그리스의 윤리학을 공자의 사상이 훨씬 뛰어넘었다든지 애써 서구 사상에 비해 공자 사상이 우월하다는 것을 역설하려는 흔적이 너무 강하게 보인다. 모든 유럽 사상가들이 공자를 흠모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헤겔은 공자의 논어를 읽어보고 사변철학의 특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실망했다. 노자의 도덕경은 어느 정도 깊이가 있음을 인식했으나,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자의 인생철학이나 그의 윤리규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너무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조선에서 현대의 한국까지에 이르러 (왜곡의 유무를 떠나) 끼친 폐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자가 탄생한 현대의 중국을 보라. 중국은 역사를 통틀어 줄곧우리 나라의 과학 및 문화 정치 발전을 저해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사드 보복과 미세먼지 국내 흉악 범죄 등 갖은 피해를 끼치고 있다. 저자가 중국에 대해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책을 저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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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학원 수출 공자학원? 중국이 소프트파워전략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컨텐츠로 한 ‘공자학원’을 수출한다고 할 때, 교양 수업 수출 정도로 치부했었다. 공자, 맹자를 우숩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철학’이라는 개념보다는 약한 ‘인문교양’ 범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선입견 때문이겠지. 플라톤, 데이비드 흄, 칸트, 비트켄슈타인, 하버마스, 데리다를 공부한다고 하면 심오해 보이고, 공자, 맹자를 공부하면 왼지 나이 지긋한 부장들이 인문교양으로 읽는다는 편견이 있었다. 공자에 선듯 손이 안가는 이유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유교의 수직적인 가르침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허! 나이가 어린 놈이! 시키면 시키는데로’ ‘조직문화에 순응해야지! 회식을 빠지면 도에 어긋나’ ‘장유유서! 어른이 한 잔 주면 원샷!’ 공자가 장유유서를 이런 개념에 쓰라고 가르친것은 아닐텐데, 장유유서를 ‘엑스 마키나(Ex Machina)’ 마냥 악용하는 ‘유교 꼰대’들이 있다보니 편견이 생겨버리네. . 이 책<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으며 내가 가진 두 가지 편견을 마주한다. 첫째, 동양철학은 서양 철학 보다 못하다는 편견. 책에서 딱 꼬집는다.
둘째, 유교 사상이 현재 사회에 도움이 많이 될까라는 회의.
좀 더 들여다 보자. . . . . . . . 초장 부터 시선을 끈다 시작부터 시선을 확 끈다. 별 기대 없이 읽던 난 일요일 오전 출발 비디오 여행에 빠지듯 읽어내려 갔다.
1721년 7월 12일 프로이센제국의 할레 대학에서 총장 이임식 자리, 전임 총장 크리스티안 볼프가 요아힘 랑케에 총장직을 인계하며 한 연설이다. 날짜가 1721년이다. 1700년대는 아직 마녀사냥이 있는 시기. 예수 천국, 불신 진짜 불지옥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종교의 힘 없이 인간 본성의 힘만으로 놀라운 윤리적 행위가 가능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언 듯 계몽주의 이전 중세와 중국을 쉽사리 연결하기 어려웠다. 상품교역은 했겠거니 했지만, 공자의 사상이 어떤 식으로 중세 지식인층에 전달된 건지 자못 흥미로웠다. .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
이 책은 한마디로 서양 사상사에 공자의 역할에 대해서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 우선, 공맹 사상은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다. 기독교를 전파하러 중국에 간 선교사들에 의해 공맹 사상이 역으로 들어왔다. 이는 서양 철학에도 변화를 줘다.
이쯤에서 에이 이거 너무 확대해석 아냐? 라고 생각할 때마다 서구 학계의 이야기로 기반을 다진다.
진짠가 보네. . 읽다 보면 낯익고 놀라운 이름들이 나온다. 우선, 이가 갈리는 양반인 라이프니츠. 이 양반이 뉴턴과 작당하고 미적분을 만든 덕에 수학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학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이프니츠는 수학자이기 앞서 철학자인 것을 새삼 실감한다. 열렬한 공자 추종자. . 그리고 케네. 케네? 경제학사를 배우면 애덤 스미스를 소개하기 바로 직전 한 페이지 정도 소개되는 중농주의자 창시자 케네. 경제학에서는 그저 그런 지나가는 인물인데, 철학사에 나름 비중 있는 인물인 것에 놀란다. 동서양 철학 가교에 큰 역할을 한다. 정말? 사실이야? 라는 물음표를 계속 쏟아내며 읽게 된다. 왜냐하면, 그 마르크스가 인정한 사람이 중농주의자이자 경제표의 창시자 캐내다. 마르크스 자본론에도 큰 영향을 줬다. 그 말은 공자 사상도 마르크스 자본론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것 아닌가? 책을 읽으며 막장 드라마 삼각, 사각, 팔각관계 보듯 공자, 맹자와 얽힌 철학자를 보며 휘둥글해진다.
. 그리고 공자, 맹자 철학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나라들에 대해 나온다. 영국 그리고 스위스. 더 놀라운 것은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제도인 의원내각제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거다.
.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때면 또 어김없이 뒷받침해주는 인용구가 튀어나온다.
. 이외에 한 장, 한 장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한 가득하다. 이 책과 '출발 책 여행'하길 추천한다. . . . . . . . 얻어간 것 철학에 대해 아주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여기저기 구멍이 숑숑 뚫린 지식이다. 서양 철학을 동양 철학과 비교 그리고 그 역사를 동양에서 설명하는 동안, 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 합리주의, 경험주의,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공맹 사상의 비교를 통해 도대체 뭐가 다르고, 왜 이렇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동양사상에 따라 서양철학을 설명하니, 뿌리를 서양철학으로 해서 이해하기보다 훨씬 쉽다. 마치, 누구를 묘사할 때 그 사람의 특징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보다 누구나 아는 사람으로 비유하는 게 편하듯이. ‘김태희?’ 서양 철학도 몸에 밴 유교사상을 기초로 설명하니 좀 더 와 닿는다고 할까.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이런 나의 얇은 서양, 동양철학 지식을 안 찢어지도록 질기게 만들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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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자孔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고? 불과 100여년 뒤 선교사들이 남긴 글과 사진들을 보면 조선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미개한 나라였다. 공자사상이 지배해온 동아시아의 형편이 거의 다 그랬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공자철학의 역할이 전혀 달랐다. 그간 우리가 공자를 너무 오해해왔던 것이다. 동서양 철학사에 정통한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황태연 교수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김종록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는 이를 증명하는 사료들로 가득하다.
“경전의 첫 번역집이 유럽에 출현한 그 순간부터, 공자철학은 유럽대륙의 식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색의 불꽃을 지피는 번갯불 지팡이가 되었다.”
_미국 노트르담 대학 문화학과 교수 라이오넬 젠슨 독일의 유명 철학자 볼프가 추방당한다. 공자를 예수 반열에 올려가며 중국을 예찬한 연설문 덕분이다. 대학에서 파문당하고 조국에서 쫓겨난다. 볼테르가 비분강개한 이 사건은 결국 독일 계몽주의의 신호탄이 된다. 미적분의 창시자 라이프니츠도 공자철학을 인류 발전의 섭리로 이해하고 유럽에서 중국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보낼 게 아니라, 유럽의 추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공자 선교사를 보내줘야 한다고 개탄한다. 중국을 몹시 싫어한 몽테스키외와 공자 숭배자 볼테르 간의 치열한 접전, 사마천의 ‘자연지험’과 이름만 다를 뿐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유럽의 공자’라 불린 경제학의 창시자 케네, ‘무위無爲’사상을 통해 유럽 최대 빈국에서 지상낙원으로 변모한 스위스 등 놀라운 사실들이 텍스트와 지면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금껏 서구 콤플렉스에 빠져 서구 지향적 삶을 살아온 동아시아인들에게는 18세기 공자가 유럽 사상계에 일으킨 한바탕 소동만큼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들은 책 후반부에서 독자라면 품을 직한 마지막 궁금증, “그랬던 동양이 왜 개화기를 거치며 서구에 참패당하게 되었다지?” 그 이유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공자가 고리타분한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21세기 서구 합리주의의 병폐를 치유하고 보완할 대안철학임을 논증한다. 부록 같은 <책 속의 책>에는 공자철학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공자철학의 뿌리와 세계관을 쉽게 정리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딱 좋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통쾌함과 자부심이 밀려왔다.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의 추천사처럼 이 책을 통해 서구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 세계무대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되고 변용되어, 부정적이기만 했던 공자의 심장을 훔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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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동양에서 매우 유명한 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의 사상에 대해서 학교 다닐 때 대략적으로 배웠지만, 사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조금 변형된 사상으로 사대부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듣고 싶은 것만 따서 믿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남존여비 사상이라든지,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풍습이라든지 그것은 다양하다. 사상의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채 겉으로 드러난 것만 따지는 유학사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학의 근원은 서양이라고 생각하며 인문학이란 자고로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책이 나왔다. 바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라는 책인데 이 책을 읽어보면 과연 서양사상의 대변혁을 일으킨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꼼꼼하게 풀어낸다. 처음에는 과연 이런 논리가 가능할지 의문을 품었었는데, 읽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의 거래가 잦아지면서 중국의 철학도 유럽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중국어를 제대로 번역한 책이 부족하다보니 중국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다소 부족하나, 공자가 논하고 있는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살아남아서 유럽 근대 계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랫동안 봉건사회의 그늘에 깃들어있던 유럽사회가 공자의 사상이 전파됨에 따라 드디어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물론 단순히 공자의 사상만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사상이 일부분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고있자면 문명의 교류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동양도 서양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듯이, 서양에서도 동양의 깊은 정신세계를 받아들이면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옛날에는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느렸으나, 요새는 실시간으로 해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구촌이라는 말이 이제는 일상화가 될 정도로 다양한 정보의 교류가 활발하다. 덕분에 앞으로 사회 변화는 공자가 유럽을 깨우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럽 사상의 다양한 원천 중의 하나가 공자 사상이라는 사실이 무척 신선하면서도 이런 방식의 접근이 무척 재미있었다. 근대 서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