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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에 볼 수 있는 것이겠다.
하나님의 관점은 예배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으며, 이 예배가 회복되는 이것만이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열매로 알듯 이 예배 회복도 새로운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이 영향력 또한 자신의 삶에 그치지 않으며 주변사람에게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 올바로 볼 수 있는 것과 올바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을 말해준다.
이에 대한 답변은 토미와 딸이 엘리베이터를 승차하면서부터이다. 마침 엘리베이터에 승차하면서 승객들이 가득매우는 것이다. 그 어린 딸은 답답하여 밑에서 위로 올라서기를 토미에게 요청한다. 엘리베이터에서도 토미가 보는 세상과 딸이 보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인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보는 것과 인간이 보는 것이 다른 것이다. 이것을 눈높이라고 말하듯 육적인 관점에서 영적인 관점으로 바꿔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이다. 왜냐면 예배를 통해 시야를 상하좌우로 확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장 작은 자가 하나님의 팀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얻는다. 또한 가난하고 갈급함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자리를 주신다. 이것이 영점의 가치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배우는 비결이다. 또한 기드온이 많은 군사로 이끌기를 계획했으나 인간의 힘으로 승리하여 교만할 것을 짐작하신 하나님은 군사를 훈련을 통해 줄여 작은 군사를 갖고 미디안과 전쟁하기를 요구하신다. 이에 기드온은 수용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 전쟁하여 승리를 거두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또 하나를 더 알아야 영적인 법칙이 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법칙이다. 목회자 또는 인도자가 선포되는 말에는 따라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세계에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현실세계에서도 얼마나 승리를 거두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제사보다 순종이 낫듯 나의 관점보다 하나님의 관점을 추구하므로 십자가 지듯 나를 부인하는 영적 훈련이 요구되는 것이다. 유능한 바울도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빌4:13)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단이다. 이를 설명하기는 법원에서 판사가 죄인을 유기명령으로 정죄할지라도 대신 변호사의 요청에 기각되면 죄인은 무죄를 받아 이후로부터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죄는 빗나간 화살이며 이를 돌이키는 것을 회개라고 일컫는데, 빗나간 화살을 쏘던 죄인이 복을 듣고 믿어 구원 받으므로 돌이켜 회개의 삶을 추구하면 하나님은 이 사람의 편에 서서 저 참소하는 마귀를 물리쳐주시며,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얻으며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만일 베드로같이 믿음의 권세에 맥을 추리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위력보다 위기에 휩싸이며 믿음보다 두려움에 초조하여 억압된 이런 곳에서 예배를 통해 회복하면 새로운 삶이 펼쳐지게 된다. 바로 그것은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마귀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관점인 복음의 자리에 서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변화된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예배를 통한 회복이며 자기 자신을 발견함과 함께 거듭난 사람의 삶에 원리이다. 그런 하나님도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과 모든 것을 순서로 배열시키는 것을 원하신다.
예배 자는 하나님의 생명선에 가장 힘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하심에 “예”라고 대답해야만 한다. 모든 사역, 봉사, 사명 활동을 시작할 때가 이미 예배는 시작된다. 그리고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예배로 받으신다. 이 예배는 사단을 자기 자리로 돌려보내고 하나님을 그분의 자리에 모시는 것이다. 이 예배의 관점이야말로 영적인 관점을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바라보고 사단을 몰락시키는 가운데 쳐다보게 만들어 준다.
때로는 문제나 원수의 크기가 커 보일지라도 그보다 높은 관점을 정복할 때가지 예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함이 이를 때까지 예배해야 한다. 이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매일매순간 근본부터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원하신다.
서적을 독서하며 참고할 수 있는 서적은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 서적도 문제를 만나면 예수님의 관점에 서서 예수님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줄잡아 놓았듯 본 서적도 토미의 작은 딸이 엘리베이터에서 답답함을 하소연하나 토미의 도움으로 높은 위치에 이를 무렵에 자유를 누린다. 믿음의 사람도 문제가 있으면 예배를 통해 해결 받아 진리를 알아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이것이 예배의 회복이다. 믿음의 주되시며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실상대로 믿음이 성장해야할 것을 서적을 통해 교훈 삼으며 이에 대한 것을 본 성구로(롬12:1-3) 압축해 본다.
영적예배란 나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롬12:1)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롬12:2) 분별하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롬12:3) 살아가야 하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관점이요. 장성한 믿음의 분량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이겠다. [인상깊은구절]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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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은 책.. 그리고 계속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책.. 책에 있는 내용이 내 삶으로 전달되어 질때 놀랍게 큰 만족감을 누릴수 있는 책..
예배에 대한 마음을 가질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따뜻함이 다가오는 책.. 하나님의 생각을 느낄수 있는 책.. 감동이 오래오래 남아 있는 책..
주님... 내 예배의 자리를 사수하겠습니다.. 주님... 주의 임재를 느낄 때까지 예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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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최근에 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근심의 숲에 갇혀 있었다. 한치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시야는 가려져 있었고,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좀처럼 운신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이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듯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저자가 이 책을 열면서 시작하는 딸아이와 함께 겪었던 호텔 엘리베이터의 에피소드는 나의 마음에 ‘필’이 꽂히듯 강력하게 다가왔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인 세 살배기 어린 딸의 눈앞에는 온통 사람들의 무릎과 등과 허리띠와 핸드백뿐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절박하게 외친 그 한마디 “아빠, 안아줘요. 답답해. 밑에서는 아무것도 안보여요. 여기보다 더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라는 외침은 나의 전 존재를 심히 요동케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영혼 속에 메아리쳐 울렸다. 참으로 그 외마디 말은 나의 하늘 아버지께로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위기와 도전들은 엘리베이터 같이 좁은 공간에 갇힌 듯 우리를 옭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작은 공간의 한정된 관점에 갇히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더욱 파리해져만 가고, 우리의 삶은 더욱 보잘것없어진다. 그렇기에 사실 우리는 더 높은 관점을 통해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면서, 좀더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하고픈 욕구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보이는 세상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이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후사방이 갇힌 듯한 상황에서 마음가짐만으론 눈높이를 조정할 수가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 굉장한 체험을 필요로 한다. 우리를 높이 들어올려 주어서, 세상의 모든 고통스런 문제와 장애물들이 아주 작게 보이도록 해줄, 진정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어줄 신비적이고 황홀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체험 속으로 들어가 그 환희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나간다. 그래서 저자가 우리를 이끌고 가는 곳은 바로 ‘영점(零點)’이다. 이곳은 우리의 힘과 능력, 그리고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자원이나 은사가 중화되거나 아예 제거되는 곳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영점으로 이끄시기를 얼마나 원하셨던가! 또 우리는 이곳에 오기를 얼마나 싫어하며 발버둥쳤던가! 하지만 저자는 영점은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토록 우리가 가진 자원을 줄여가시면서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겸손과 무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영점까지 이끄시기 위해 우리의 인생이 망가지도록 섭리해오셨던 걸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 영점은 우리의 불가능이 하나님의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의 장소이며,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비로소 ‘크게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진정 크신 하나님을 비로소 크게 볼 때, 우리의 시야를 가리던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때 우리 영혼은 높이 들려 높은 관점을 가지게 되고, 이처럼 크신 아버지를 우러러 보며 진정 깊은 경배를 드리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하늘 아버지가 찾으시는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옥불 화재 보험증서만 들고, 진부한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요즘 TV 기독교 방송이나 혹은 인터넷 기독교 방송을 통해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형식만 갖춘 예배가 아니라, 자녀인 우리들에게 아버지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신다. 그리고 환경과 문제에 얽매인 예배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길 기대하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높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고 또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이 저 발치에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로운 변화로 가득차게 해주며, 또한 새로운 변화를 날마다 기대하게 해준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도록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즐거운 예배와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아버지를 예배하기를 멈추고 싶지 않은, 예배에 대한 더욱 깊은 갈망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에 빠진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분명 그 모든 문제와 고민을 뛰어 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책의 저자인 토미 테니와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임하는 예배의 축복으로 당신을 초대하는 바이다.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부운영자 이 글은 기독교 서평사이트 ''크리스챤북뉴스''(www.cbook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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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앙서적들이 다양한 주제로 책을 풀어나가지만
크리스천들이 간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것 중에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자세를 용납하지 않는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자,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나는 '예배'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
| 제목만 보고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쓴 책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읽어보니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그럼 하나님의 관점이란 무엇인가? 만원 엘리베이터 속의 어린들 보다는 어린아이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가 안아준다면 아빠와 같은 관점을 가지게 된다. 관점이란 이런 것이다.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말하고 아빠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만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냥 서있는 아이와 아빠에게 안겨 시선이 높아진 아이의 관점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배를 통해 당신은 높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당신의 영혼을 끌어올린다. 예배는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예배는 당신의 미래를 새롭게 한다. (19쪽) 당신이 계속해서 “우리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그래? 그러면 계속해 봐라”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마침내 “하나님, 우리로서는 부족하오니 당신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시작하신다. (59쪽)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만일 뿐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을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고 느끼는 날부터 우리는 고갈되고 실패하기 시작한다. (65쪽) 하나님의 자원은 아무리 사용해도 절대 고갈도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원은 영원하지가 않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끝에 다다르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꿈, 당신의 육체, 당신의 야망, 당신의 자아가 죽어서 냄새가 날 때에야 비로소 나타나실 것이다. (66쪽) 나는 죽어야 한다. 나는 죽고 오직 하나님만 남아야 한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사는 것이 된다. 당신이 예배 가운데 사로잡히면 당신의 관점은 변한다. (158쪽) 관점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예배가 죽어있는 사람이다. 왜 예배가 죽었는가? 그건 교회가 너무 세상과 타협하기 때문이며 예배에 하나님은 없고 나만 있기 때문이다. 사단이 당신의 예배를 도적질할 수 없다면 당신의 소유에도 손을 댈 수 없다. 사단은 예배가 자신의 계략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때문에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이 당신의 예배를 빼앗으려는 것이다. (169쪽) 예수 믿으면 꼭 교회를 다녀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배는 아무 이유도 없이 주일날 가서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바로 내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예배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만남도 없고, 사단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데에 더욱 수월해 진다. 욥기를 보면 사단이 처음으로 손 댄 것은 욥의 자녀들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손 댄 것은 소와 양을 포함한 가축이었다. 구약의 문화에서 보자면 사단은 욥에게서 예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한 것이다. (170쪽) 이보다 더 탁월한 비유는 없다. 나는 단순히 그냥 가축들을 먼저 손 댄 것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가축을 먼저 제가함으로써 예배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예배를 할 수없게 만들고 모두 앗아간 것이다. |
| 토미 테니의 글이 자주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자신과 딸의 관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갖다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무척 쉽다. 대부분 설명이 길다 보면 지루하기 쉽고, 이해하기 좋게 예화를 주로 사용하다보면 깊이가 없기 마련인데 그의 글에선 그런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가 낸 책을 연이어 찾게 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맞아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쉬운 만큼 폐부 속 깊이 다가오고 그래서 내 경우에 비추기 쉽다는 것인데, 비추인 순간 내 문제가 무엇인지 속시원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견과 그 해결점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왜 내게 특정 문제가 도드라져 있는지를 아는 것은 말 그대로 그 문제를 어디다 두어야할지를 아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난 자주 내 문제의 근원을 생각하게 됐고, 그 문제를 들고 기꺼이 하나님 앞에 가져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가져 갈 수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바라본 문제는 늘 크고 무거웠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가져간 그것이 왜 그리도 작게 보이는지, 보다 정확하게는 왜 내가 그런 하잘 것 없는 문제에 끙끙댔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며칠 전 어느 분이 내게 ‘대진표 바꾸기’라는 예화를 들려주었다. 「양치기 소년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반드시 골리앗이 이긴다. 힘없는 모세가 바로와 싸우면 반드시 바로가 이긴다. 하지만 다윗과 모세의 자리에 하나님을 두면 언제나 하나님이 이긴다. 이제부터 네 자리에 하나님을 두라.」 이 책, 『하나님의 관점』과 일정부분 연결되는 이야기다. 물론 『하나님의 관점』이 더 포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찰적 측면에선 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책은 토미 테니의 전작, 『다윗의 장막』과 후작인 『간절한 매달림』과 마치 시리즈물처럼 엮여 있다. 아직 전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후작과 이 책을 통해 나는 많은 영적인 통찰을 얻었다. 위 세 편의 책은 예배에 관한 글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피조물에게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분인 지에 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파고들어 세밀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불과 광풍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던 하나님이 세밀한 음성 가운데 나타난 성경의 예에서처럼 저자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무게감이 높다. 때때로 낱낱이 드러나는 나의 죄된 속성 앞에서 달아나고 싶다가도 이내 그런 마음을 거두게 된 것은 이 책의 그런 무게감 때문이었다. 가슴을 찍어누르는 말 앞에 어느 누가 섣불리 도망칠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막연한 공포나 어설픈 두려움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옳은, 그래서 내게 너무도 적절한 말이라는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수긍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교회에 나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자녀가 골칫덩어리인지 범생이인지 하는 배경지식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자녀를 바라본다. 그래서 언제든 자녀가 ‘그 모습 그대’로 달려오기만 기다린다. 그런데도 우린 자주 ''내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느냐''는 듯 떼를 썼다. 그런 현재의 나를 하나님이 기다리는데도 한사코 나는 아니라고 외면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초대장을 쥐고서도 나는 그런 초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어서 초대석상에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나님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 나아오는 자의 간절함을 원한다. 저자는 그런 간절함이 예배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어느 자녀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모습이 조금 더 나아지면 그 때 가겠다고 하는 나’와 ‘그러니까 난 아버지가 필요해, 하고 한사코 매달리는 나’ 중에 누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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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찌해야 하는가? 내 영혼은 회개의 영과 눈물을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래서 어찌해야 회개와 무릎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가? 내 영광은 어떻게 땅에 내려놓을 수 있는가? 눈물을 말라가고, 하나님의 임재는 내 영혼에서 멀어져만 가는데...
나는 주변의 잃은 영혼들에게 '또 하나의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싶지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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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점이란 책 제목보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말했듯이 예배를 회복하면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게 될꺼란 생각으로 글을 쓴 느낌이 든다.
우리는 꿈을 꾼다. 당신이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본다. 비행기를 타고 창공에 올라 지상에 있는 것들을 내려다 보면 정말 아무리 높은 건물도, 아무리 높은 산도, 모두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어떤한 것들을 바라볼때 지금가지 우리가 보아온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우리들에게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푸른색의 편집한 글씨로 중요구를 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 었고, 자신의 경험(3명의 딸들)을 예로 들어 편하게 우리에게 전하는 토미테니의 글이 인상적이 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그 관점을 가지는 방법을 10가지를 들어 설명했지만, 내가 내린 결로는 한마디로 예배의 회복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다는 사실..
나머지의 9가지들은 모두 예배가 회복되어지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까? [인상깊은구절]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길은 바로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다. (30 page) 바로 그 영점이야말로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49 page) 다시 말해서 그분의 가장 큰 문제는 무리가 그분을 진심으로 예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07 page) 문제의 크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에 초점을 맞추라 (154 page) 문제는 그들이 영적인 망원경을 거꾸로 집어 들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크기보다 문제의 크기를 확대시켰다. 그들은 믿음이라고 적힌 쪽으로 본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적힌 쪽을 들고 보았다. (153 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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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있어서 예배가 무엇이냐?’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다. 저자가 도입 부분에 전해주는 엘리베이터 사건, 이 이야기는 단순히 도입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 전체의 내용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저자의 어린 딸. 잠시 후 그 아이는 아빠에게 양손을 들고 그렇게 외친다. “아빠, 안아줘요”
예배의 단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으로 돌려서 다시 한 컷 한 컷 순서대로 사진에 담고 싶다. 첫 번째 컷; 그 아이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당혹스러워 하는 장면. 예배자의 현실이다. 두 번째 컷; 아이가 아빠의 눈을 애절하게 올려다 보며 손을 들고, 입으로는 뭔가 말을 건네는 상황. 예배의 내용이다. 세 번째 컷; 아빠가 허리를 굽혀 그 아이의 옆구리에 손을 넣는 장면. 저자가 ‘다윗의 장막’에서 그렇게도 애절하게 그리워 했던 하나님의 임재다. 네 번째 컷; 아빠 품에 안겨서 행복한 얼굴로 밖을 내다보는 장면. 예배의 결과이다. 저자가 제목으로 잡은 ‘하나님의 관점’은 성공적인 예배자가 누리게 되는 삶의 방식이다. 사실 이 책은 예배의 결과인 하나님의 관점보다, 예배의 내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하나님의 관점을 누리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어떤 유익과 능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보다는, 어떻게 성공적인 예배에 접근할 것인지가 저자의 주된 관심이며 목표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의 사람들이 각 페이지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불쑥 등장한다. 바울(46p), 기드온(54p), 요아스(73p), 신약의 치유함 받은 병자들(86p), 여호수아와 갈렙(154p), 삼손(179p), 모세(182p), 아브라함(200p),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219p). 모두가 성공적인 예배는 이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의 걸음을 막고 설득한다. 이들이 힘주어 말하는 성공적인 예배의 비결은 사모함과 열정이다. 예배 성공자들이기에 그들의 설득에는 힘이 있다. 그래도 그 중에서 내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도전은 아브라함의 설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가장 감사한 것은, 그렇게도 많이 들어왔던 모리아산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감동으로 내게 다시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모리아산을 오르는 아브라함. 자식을 칼로 찢어 번제로 드려야 하는 그 길을 아브라함은 새벽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열망 때문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이 주문하시고 기대하시는 그 예배를 드리겠다는 영적 고집이다. 저자는 이삭을 대신해서 드려진 양의 출처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다. 깜짝 놀랄만한 상상력이다. 하나님이 모리아산 반대편에 있는 양에게 명령하셨고, 그 양은 아브라함과 같은 속도로 모리아산 정상을 향해 올라온 것이란다. 자칫 만화 같은 이 주장을 듣는 중에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처럼 그렇게 그대로 믿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떨리는 중에 내 마음 속에는 선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그림을 한번 실제로 그려보고 싶다. 척박한 모리이산, 그 산을 중심으로 왼쪽 편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산을 오르고, 오른쪽 편 같은 위치에서는 양이 올라가는 그림이다. 그렇게 양편에서 올라가던 아브라함과 양은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교차점’(210p)에서 만난다. 그 자리는 모리아산 정상이다. 예배와 은혜가 만나는 자리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을 수 없는 영점(零點)의 자리요, 나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는 전환의 자리이다. 돌아보니 이해할 수도 없고 너무도 힘겨운 그 길, 모리아산을 향해 올라가던 아브라함의 한 걸음, 한 걸음. 그 걸음들은 하나님만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갔던 아브라함의 열정적인 예배였던 것이리라.
‘예정된 교차점’. 예배는 그런 것이다. 그 정확한 교차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예배자를 가로막고 있지만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의 벽을 뛰어 넘어 그 교차점으로 나아가는 것, 사람들과 문제들 틈에 끼여 숨이 막혀 오지만 저자의 딸이 그랬던 것처럼 문제들 사이로 손을 들고 아빠에게 눈을 맞추며 안아 달라는 싸인을 보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하는 열정의 예배이다. 이 책은 예배 실패자들을 향한 책망이라기 보다는,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 교차점을 향해 다시 오르기를 거듭 시도하는 자들을 위한 진지한 격려문이요 힘찬 응원가이다. 다시 시작될 예배 전투를 위해 저자는 모병(募兵)을 한다. 모병대상자는 죽기를 각오하고 모리아산으로 오를 사람, 하나님의 관점을 점령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이 땅의 아슬아슬한 예배들, 그 예배들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저자의 간절한 풀무질 소리들로 가득한 이 책 위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예배의 길이 드러난다. 모리아산으로 향하는그 길이 말이다.
한사람 세우기. 백덕기 목사 [인상깊은구절] - 당신은 예배자로 부름을 받고 태어났다. 그 외에는 무엇을 하든 임시직일 뿐이다. 11p - 예배야 말로 하나님께서 작은 공간의 한정된 관점에 갇혀있는 우리들을 들어 올려 그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도록 하시는 방법이다. 17p - 예배를 통해서 당신은 높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당신의 영혼을 끌어 올린다. 19p - 절대 사단회사의 주식을 사지 말라. 현재의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라. 지금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절대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22p - 환경을 넘어서서 예배를 드리라. 23p - 당신이 바라보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올려다 볼 것인지 내려다 볼것인지’가 결정된다. 25p - 천상의 소비자인신 하나님은 교회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신다. 그러나 우리들은 교회가 우리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결정해 버린다. - 때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머무시는 순간을 우리가 놓치는 이유는 ‘교회 놀이’를 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 분을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33p -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분량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량과는 비교할 수 없다. 34p - 우리는 이발이나 수술 날짜 스케줄을 잡는 것처럼 부흥이나 기적의 스케줄을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흥이나 기적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37p - 하나님께서는 손목시계가 없으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당신이나 나의 시간에 연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37p -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자레인지식 초 간편 부흥을 허락하시기를 기대한다. 마치 그 분의 임재를 할인점의 물건처럼 받아다가 판매할 수 있는 것처럼. 38p - 하나님은 오직 그분의 임재를 맛보기 위해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에게만 영광 가운데 방문하시고 또 거주하신다. 38p - 모두가 드라마틱한 간증거리를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간증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시련을 겪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9p - 진정한 부흥을 위한 하나님의 공식은 오랜 기다림을 통해 이뤄지는 열정적인 탄생이다. 지름길이란 없다. 서둘러 출산을 하려고 하면 유산이 되고 만다. 41p -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가능성도 개연성도 없는 일에 투자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야 인간이 손을 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49p - 당신의 비전, 당신의 사역, 당신의 환경이 기적을 요구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기적의 영역 안으로 불러들이실 때까지 당신의 자원을 줄여 가실 것이다. 54p -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끝 지점에서 처음을 보고 계시는 분이다. 63p - “기억하거라. 나는 결코 늦지 않는단다.” 64p - 우리가 하나님의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고 느끼는 날부터 우리는 고갈되고 실패하기 시작한다. 65p - 우리가 영적세계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반응하는가에 따라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큰 승리를 거두는가가 결정된다. 81p - 당신이 누군가에게 손을 얹을 때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당신 손 위에 있는 그 분의 손이라는 것을 깨달으라. 83p -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인간의 열정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그 분을 위한 자리가 세워지지 않는다. 84p - 교회는 인간이 주도하는 종교의 어마어마한 접대를 받느라 거의 질식할 지경이다. 87p - ''애정표현은 금지‘라는 말은 지옥이 내뱉는 인간 종교의 끝없는 주절거림입니다. 95p - 적당한 신분을 갖지 못하면 집착과 열정이 있어도 힘이 없다. 97p - 하나님은 거룩한 신분과 자녀들의 열정이 결합되기를 원하신다. 116p - 당신은 하나님의 심장 한 가운데로 나아갈 특권을 갖고 있다 당신에게 생명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지역적인 위치나 외부적인 경계에 갇혀 있지 않으신다. 129p - 믿음이 차를 앞으로 가게 하는 전진 기어라면 두려움은 동일한 차를 뒤로 가게 만드는 후진 기어다. 149p - 아마 당신의 문제가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은 당신의 고도가 그만큼 낮기 때문일 것이다. 악이 아니라 선을 위해 확대의 힘을 가동시킬 때이다. 160p - 당신의 힘과 원천을 넘어서게 만드는 시험을 받을 때 비로소 간증이 만들어진다. 165p - 하나님은 세상에서 우리가 드리는 보잘 것 없는 예배를 받기 위해 천상의 고상한 완벽함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신 분이다. 167p - 사단이 당신의 예배를 도적질할 수 없다면 당신의 소유에도 손을 댈 수 없다. 169p - 주의 보혈의 상처자국들이 우리를 주님의 몸된 교회로 들어가게 하는 입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175p - 하나님이 끝났다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절대 당신이 먼저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 180p -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30초는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182p - 하나님은 사무실을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그저 주소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진정 당신의 마음을 바꾸기 원하신다. 185p -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려면 당신의 힘과 안전을 보장하는 지팡이를 던져라. 186p - 예배하라. 바로 지금. 하나님이 당신을 실망시키신다면 당신은 역사상 하나님이 실망시킨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190p - 하나님이 당신의 최우선의 사랑이 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불가능할 것이 없다. 196p - 아브라함의 문제와 하나님의 해답이 동일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정상에 오르는 대가를 지불하기까지 문제는 해답을 만날 수 없었다. 205p - 당신이 산의 한쪽 편을 오르고 있을 때는 반대편에서 무엇이 올라오고 있는지 볼 수 없다. 그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해답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210p - 가장된 하나님가의 친밀감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라. 213p - 접근의 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마이크가 되어 이 당에서 그분의 위엄 있는 목소리와 인생을 변화시키는 손길을 확대하고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214p - 사실 사단이 밤낮으로 우리에게 작업을 하는 것은 우리가 결국에 어떻게 될 것을 모른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다. 228p - 모세나 예수 시대에 사단이 유아들을 전부 살해한 것과 오늘날의 낙태의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기술력의 차이일 것이다. 237p - 사단의 유일한 권세는 속임수이다. 그것이 없으면 당신을 붙잡거나 가두거나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없다. 241p - 예배는 사단을 자기 위치로 돌려보내고 하나님을 그분의 자리에 모시는 것이다. 245p -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기를 원한다면 매일 우리의 삶을 드리는 대가 지불이 있어야 한다. 257p - 하나님은 수동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조용한 교회를 세우시는 대신에 예배하고 또 일하는 전투적인 교회를 세워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262p -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하심에 “예”라고 대답하고 행하는 모든 사역, 봉사, 사명, 활동을 시작할 때 이미 예배는 시작된다. 264p - 이제 우리의 시야가 막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26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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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검은색 도화지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르고 갖가지 색깔의 셀로판지를 붙였다. 그 도화지를 가지고 유리창에 대보니 어느부분에선 빨간색 빛이 들어오고, 또 어느부분에선 노란색 빛이 들어오고, 다른 부분에선 파란색 빛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