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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들에게 정치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 즉 국가의 없어짐을 바라기 때문이다. 자꾸만 언급해서 죄송하지만(...) 최근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느 팟캐스트 방송에서는 아나키스트가 자연으로의 회귀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놓고 아나키스트라는 제목을 시집에 내걸고 있는 이 시에서는 도심이 만발한 국가 속에서 선심 쓰듯 피어나는 초록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꽃대 속에 피어나는 무수한 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권혁웅의 제법 훌륭한 시평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다지 고독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마초들의 세계에서 남자들간의 사랑을 주장하는, 뚱딴지같다 못해 '주먹을 부르는' 다소 도전적인 인간이다. 그의 사상을, 그의 시를 비웃는 많은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얼마나 달관했으면 두 남자 간의 주먹다짐 싸움을 사랑의 체위로 만들어 매우 새로운 BL 시를 창조해냈겠는가. 그러나 진보와 간단히 공동체로 맺어지는 결말 또한 그가 바라는 바는 아닌 듯하다. 그는 자연으로 쉽게 돌아가버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도리어 시간을 돌려버리고 싶어한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허공으로 날아서 다시 본래 있던 나무에 붙고, 죽었던 사람이 죽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살아가고, 자신이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포말로 기화하여 소멸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아나키스트일지도 모르는 이 시인도 자신의 소망이 이룰 수 없는, 혹은 먼 훗날 시인의 사망 이후에 이루어질 꿈임을 알고 있으리라.
또다시 낙타라는 시로, 시집 안에 들어있는 니체를 만났다.
타클라마칸에 내리는 눈에서도 낙타가 다시 한 번 주요 등장인물로 출현하는데, 이 두 시가 이 시집 안의 시 중에서 유머가 가장 넘치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군데군데 들어있는 섹드립도 주목할 만하다. 마리아와 SM과 술 푸는 기생을 제법 멋드러지게 연관시켜 놓았다.
우리나라 노래의 텍스트를 풀어헤쳐서 마치 매드무비처럼 늘어놓은 건 독특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출중한 섹드립에 감탄했을 뿐, 그의 풍부한 음악 지식에 감탄하진 못했다. 솔직히 시인의 나이 정도가 아니면 그닥 공감할 수 없는 음악가들이 많았다. 김추자라거나 인순이라거나 조용필이라거나. 유일하게 공감가는 게 '낙타하면 카멜이라는 담배와 캐멀이라는 밴드가 생각난다'라는 한 마디 정도였으니. 게다가 김추자에게 보내는 연서라는 시에선 로쟈 분이 미리 서평에 쓰신대로, 마지막에 촌철살인의 한 줄을 더 집어넣어야 했었다. 겁이 많았던 건지 전반적으로 시인이 추진력이 부족했던지.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게 아나키스트의 한계라고 본다.
초반부터 아주 격렬하게 근육 넘치는 건축계 노동자나 술에 취한 남자들 간의 BL을 찬양을 하시기에 이 시에 나오는 유일한 애니메이션과 메텔은 강력한 위화감까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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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대 국문과 출신의 시가 참 좋다. 이장욱 시인도 그렇고...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어본다.
'젊고,어리석고, 가난했던'
토요일 밤 9시 '리빠똥'에서 우리는 소진되었고, 문은 오로지 패배한 자를 위해 열려 있어. 10년이 지났을 뿐인데
... 혁명이 뭐겠어. 우리 결혼할래. 헬로와 헬로와 꽃들이, 헬로와 헬로와 우리들에게. 청첩을 돌린다면. 너와 나의 결합. 오래된 진리와 형체 없는 유행의 결합.
~~ 캬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시다.
80년대 90년대 초반 혁명을 노래했던 청년들은 이미 장년과 중년이 되어 결혼했다. 그런 그들에게 혁명은 거대한 무엇을 향한 부르짖음에서 일상으로 내려온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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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매혹적이고, 굉장히 따가운 시를 본 적 있는가?
느껴본 적 있는가?
장석원의 『아나키스트』에는 찔레꽃같은 시들이 요염히 피어 있다. 그 시들은 저마다 찔레가시를 감추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끔따끔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살며시 감추어두고 있는 책.
ⓒ Hyang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