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처음이다. 사실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는데 "태양은 가득히" 의 오리지날 원작 소설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충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장편보다는 단편에 주력했고 작품의 재미도 단편이 더 좋다는 글을 많이 보았다. 왜 이런 작가가 국내에서 이렇게 늦게 정식으로 소개가 되었는지 아쉽기도 하다. 이 책에는 11편의 단편이 들어있고 대체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생각 이상의 재미를 주고 있다. 내용의 문체는 천천히 아주 건조하고 진행이 되지만 이야기속의 짜임세는 상당히 단편치고는 치밀하며 각각의 작품속에서 충기는 스릴과 미스터리적인 공포, 긴장된 분위기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너무나도 잘 읽힌다. 최고의 모더니즘 작가라는 그의 이력에 나타한 평론가들의 평처럼 작가는 이 소설의 여러 단편들을 통해 위선으로 포장된 중산층의 숨겨진 욕망과 위선적인 이중성과 심리적인 디테일을 잘 살려낸 추천할만한 단편집이다. 이 책을 읽었다면 그녀의 다른 단편도 분명 찾아 읽어보고 싶을 듯 하다. |
| 아~ 그리섬 반장에 대한 애정이 점차 호레시오 반장에게로 (많은 비중으로), 그리고 맥 반장에게 (그의 튀어나온 눈 만큼 쬐금) 옮겨져 가는 와중에...일찌기 호레시오 반장은 검은 썬그라스를 벗고 상반신은 포토제닉하게 살짝 틀어주시면서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 뱃지 한번 어루만져 주시고, 입술에 피어스하면서 능글맞게 웃는 용의자에게 낮으막한 목소리로, "너같이 벌레같은 놈 잡아서 감옥에 쳐넣는게 내 인생 최대의 thrill이야!"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thrill이라 함은, 그러고 보니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쓰이면서도 부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맨앞 표지에서 앞으로 이런 작품들을 쓸 것이라고 미리 예견을 한 듯한 눈빛을 날려주시는 퍼트리셔 하이스미스께서는,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를 통해 검은 천사가 대신 복수를 해주는 것도 (그것 참 이상하게 조직내에서 내 눈에 찍히는 사람은, 꼭 회사를 일찍 나가더만....이라고 감탄했더니 다들 하는 말이 누구 눈에 찍히면 그건 일단 문제가 있는 것이라나), ''검은 집''이 홀려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작가가 애드가 앨런 포우의 그로테스크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이 두작가가 시간이 지남에도 여전히 읽히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인간 심리의 검고 어두운 면을 너무나 잘 캐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다. 여기서 한번 저장해야지..오늘은 왜이리 알라딘에 리뷰 쓰기가 힘든지.... ''고양이가 물어 온 것'' 을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일보다는 점심약속이 더 중요한 인텔리글의 모습과,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라고 말하면 되지 챙겨주는 척하면서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드는 것 하고는...그러다가 ''노인입양'' 에선 정말 혀를 내두르면서 감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악한 인간심리를 현미경 샘플마냥 적나라하면서도 무척이나 얆?떠서 고배율로 보여주는 그녀의 솜씨에... 부모님은 싸우느라 정신없지, 사랑하는 동생은 저세상으로 갔는데 너무나도 보고싶지...그러다 날린 ''연''에 사람을 구한답시고 확 끌여당겨서 결국 부서지곤 추락해버리는 건 어째 누군가의 하루 일상을 조금 더 과장했을 뿐, 배려없는 배려 (차라리 가만 내버려두기라도 하지)와 내뱉어놓고 지킬 생각없는 약속들 (차라리 애초에 말을 하지 말든가 아님 지킬마음이 없다고 하든가)과 너무나 비슷하다. 절대로 쌈박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목록 위에 올라있지 않다고 해서 안읽을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다. 어떤 단편은 그다지 끌리지 않지만 (하긴 어떤 작품인들 이 찝찝함에 끌리겠는가), 어떤 단편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로 인간의 본성 밑바닥까지 알고 싶지는 않는데... 어째 잘못 만들어낸 아이스티의 텁텁함이 느껴지는 듯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몽종시리 읽어버리리라. |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이면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추리소설 이외에도 많은 소설을 발표했으며 20세기의 애드가 앨런 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의 소설은 불편하다. 누구나 인정하는 평범함과 고상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위선과 가식을 벗겨낸다. 하지만 그런 통찰은 결코 통쾌하지 많은 않다. 그 위선과 가식이 바로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물어온 것>,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노인 입양>등 에서 우리는 확실히 그것들을 확인 할 수 있다. <고양이가 물어온 것>에서 마음씨 좋고 평범한 그들은 자신들의 평범함과 살인자의 미래를 위해 살인사건을 은폐한다. 그들에게는 죄책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제목에서부터 작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같은 모임에 속해있고 서로 친한 사이인 듯 가식을 떨지만 고상한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비웃는다. 결국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죽고 말지만 그들이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까지 거식을 벗지 못한다. 이 작품은 무서울 정도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작품이 제시하는 상황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좋고 고상한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그들을 만들어놓고 그들의 형편없음을 발판삼아 우리의 고상함을 유지하고 그 행위들로 인해 더욱 고상한 우리들은 결속을 다진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히 모임에서의 타자 만들기만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바로 그러한 구조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평범하고 좋은 중산층의 신화, 고상한 엘리트의 이미지, 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그들이 경멸하는 타자들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서울 정도로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의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노인 입양>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더욱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이다. 여기서도 물론 고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상함과 호의를 더욱 공고히 하기위해 노인을 입양한다. 하지만 그 고상과 호의는 얼마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삶을 방해하는 노인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무서움을 드러낸다. 작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지만 노인들과 갈등을 겪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실제로 조부모님과 살며 갈등을 겪었던 나의 경험과 일치해서 소설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에서는 어리석고 끝없는 인간의 이기심을, <로마에서 생긴일>에서는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참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상류층의 권태로움을 그린다. 그 밖에도 거의 모든 작품이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인간의 이기심, 가식, 위선을 벗겨내기를 꺼리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을 들킨 것 같아 한없이 불쾌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매력을 가진다. 만약 문학이 인간의 아름다움만을 칭한다면 그것은 이미 좋은 문학이 아닐 것이다. |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표지에도 등장한 이 미모의 여성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그녀가 영화 [태양은 가득히](혹은 [리플리])의 원작인 [재주꾼 리플리씨 The Talented Mr. Ripley]의 작가라는 것 뿐이었다. 실상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기에는 실상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이스미스는 제 2의 에드가 앨런 포우라고 불리며 각종 추리소설작가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터프한 주인공이 금발의 미녀를 지키려 지독하게 악랄한 악한들과 맞서 싸우며 비열한 거리를 헤매는 것이 미국식 탐정소설이라면 그녀의 소설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인간의 비틀어진 심리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순식간에 안온한 일상을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그녀의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왜 그녀가 고국보다 유럽에서 더 많은 찬사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분명 ''미국적이지 않다.'' 에드가 앨런 포우와 비교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것은 마음의 틈에서 새어나온 인간 내면의 어두움으로 인해 벌어진 열한번의 악몽들이다. 우리 마음속에 들어찬 이기심, 잔인함, 두려움 따위가 결국 우리의 가장 지독한 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이 실은 가장 야만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그 느낌을 짐작하려면 레이몬드 카버의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나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떠올리는 것도 유효하겠다. 카버나 레싱이 하이스미스보다 모던하고 시기적으로도 뒷세대에 속하니, 하이스미스가 카버나 레싱적이라는 말보다는 그들이 하이스미스적이더라는 표현이 옳겠지만. 세상에 인간만큼 끔찍한 것이 있을까. 우리 인간들만큼 서로를 상처입히고 비웃으며 쾌락을 느끼는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둥 하며 내편과 네편을 나눠가며 그어놓은 금을 넘어오는 이를 밀쳐버리고, 나의 환상 나의 꿈 ''검은 집''에 흙발을 내딛었다며 무구한 타인을 콘크리트바닥에 패대기쳐 죽여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차라리 이런 노골적인 잔인함은 비난이라도 받겠지. 정말 무서운 것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옛 친구를 노이로제 걸리게 한 사람들, 뒤에서 수근거리며 내심 고소해했던 그들, 시퍼런 군중심리의 칼 뒤에서 비겁하게 입을 다물고 선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가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눈 앞에 들이대는 하이스미스의 날카로움 때문에 계속해서 그녀의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자해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속한 종족의 내면, 인간성이라고 불리는 무엇을 의심하고 내가 속한 무리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은 유쾌한 일만은 아니므로. 그러나 눈과 귀가 밝아지고 둔해진 감각이 깨어나는 종류의 기쁨이 있으니 잃기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나는 끝까지 읽어볼 셈이다. |
| 나날이 변해 가는 세상과 이 세상의 발전의 속도로 보건데 아마도 눈 몇 번만 깜빡이면 금방이라도 도태되고 또 금방 늙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많으면 많다고도, 적으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이런 것을 느끼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적은 쪽보단 조금 넘어선 듯한 생각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어렸을 적에 저는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저에게는 최악의 순간들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금방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제가 조금은 우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세상은 저와는 전혀 상관 없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떤 탓일까요? 관계의 중심은 전혀 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건 또 무슨 탓일까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를 읽으며 가슴 속이 참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제가 요사이 하고 있던 생각들을 너무나 사실적이고 또한 냉소적으로 보여 주는 작가의 재담에 가슴 끝이 콕콕 찌르는 듯 뭔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중산층의 이중성……, 이런 어려운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저는 이 책을 읽고 불편했던 마음이 모두 제 안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작가는 작품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가장 교양 있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예리하게 비웃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인간적인 척하고, 아무리 우월 의식을 가지고, 아무리 상대방을 생각하는 척해도 인간은 어차피 성악설에 기초한 동물이며 이기주의와 자기 본위적 논리에 사로잡힌, 불만 사용할 줄 안다 뿐이지 동물들과 하등 차이 없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작품들 속에서 등장 인물들은 가장 힘든 고민, 가장 괴로운 순간,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에 맞부딪히지만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이 모든 상황과 행동들은 우스워만 보이는 것입니다. 작가는 왠지 이런 인간 세상을 비웃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과연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작품집의 표제라서 그런지 저는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를 보고 제일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읽고서 그렇게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렇게 심한 경우까지 가진 않았지만 저도 분명 작품 속의 사람들처럼 한 사람을 남몰래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그 앞에선 세상에서 널 위하는 사람은 나 하나야 하는 얼굴을 하고 다른 이들과는 그를 비웃은 적 말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아마도 또 그런 상황이 닥치면 저는 앞선 저를 잊어버리고 다시 그런 행동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게 아마 인간의 못된 본성일까요? 이렇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 작품집을 통해, 자신의 가장 추악한 면을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여운을 남겨 주고 있습니다. |
| 페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모음이다. 표지가 그녀가 대학시절 찍은 사진인데, 20살 될까말까한 그 나이에 약간은 냉소적이지만 지적인 그 미소는 작가의 모습을 여실히 들어낸다. 알랭드롱이 26세에 주연했던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리플리 시리즈의 저자라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글의 제목은 첫번째 단편으로 Not one of Us 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정말로 잘 번역한거 같다. 미국의 상류층 어른들 그룹에서의 왕따를 소재로 한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못사나 잘사나 왕따란 존재는 비슷한 의미임을 확인시켜준다. 왕따 = not one of us 다른 단편들도 재밌는데 대부분 겉으론 고상해 보이는 상식적인 사람들의 추태를 고발한 작품들이라 읽고나선 끝맛이 좀 씁쓸하다. 리플리 시리즈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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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민승남 역
민음사
참 잔인한 말이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라는 말.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여류 작가의 단편 모음집. 그다지 유명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맷 데이먼, 주드로 주연의 영화 ''리플리''는 어떨까? 아니면 이 것의 원전인 ''태양은 가득히''도 괜찮겠지. 이 정도면 조금은 더 익숙하지 않을까.
나도 사실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저 ''미스테리 단편'' ''심리'' ''리플리'' 정도의 키워드를 보고 뭔가 내 취향인 듯 싶어 호기심이 생겼을 뿐. 날이 선 듯한 제목에 끌리긴 했지만 책 자체에도 크게 끌리거나 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소위 ''대박''이었다.
책이 얇은 편까지는 아니어서, (341페이지) 서울 왔다갔다 하면서 간간히 읽으면 2/3 정도 읽겠거니 하고 며칠 전 서울 가는 버스에 가져갔었는데, 서울 올라가는 동안 잠도 안 자고 그냥 다 읽어버렸다.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과다하게 내 취향이어서 그런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 엄청나게 흡인력을 가진 책이었다.
왜 이렇게 영화화가 많이 되고, 나름대로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단편들이 사실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무언가 반전, 살인사건 추리 등의 ''미스테리''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심리소설에 가깝다. 여러 상황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가운 어조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 것이, 사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마치 비수처럼 사람의 마음을 찌르면서 훑어내려가는, 그러면서도 정말로 와닿도록 묘사하고 있다. ''정말 너무하다'' 내지는 ''저 사람 왜 저런대?'' 싶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마음들이 이해가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유명한 정설을 깨닫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특히 사람의 ''마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또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단편을 하나하나 간단하게 살펴보면.
고양이가 물어온 것 - 그나마 가장 사람들이 기대한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고양이가 물어온 두 개의 손가락. 그리고 나름대로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들의 해결방법. 방법 자체는 아주 조용하지만.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제목이기도 하고, 가장 가슴아프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참 가슴 쓰린 단편.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다고 했고, 당신은 결국 우리가 죽였다는 것도 알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헤어지고, 잊어버릴거야.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바구니 짜기의 공포 - 아아 이거 웃기다. 사람의 과대망상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수작.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 - 가족, 마을, 사기, 업보. 모두가 자기 자신이 바라보기에 따른 것이 아닐까.
네 삶을 경멸해 - 의지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삶이란 것은, 쳇바퀴 돌듯 연속. 그 바퀴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러기는, 힘들죠.
에마 C 호의 꿈 - 사랑. 집착. 그것이 불러오는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고, 깨질 수 밖에 없는 환상.
노인 입양 - 뭐든지, 생각하고는 다른 법이지요. 어차피 예상되었던 파국.
로마에서 생긴 일 -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는 참담함.
양손의 떡 - 항상 생각하는 바이지만, 양다리는 안 좋다.하지만 양다리 걸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싶다.
연 - 현실은 암담하지만, 연과 동생이 가져다주는 환상이 있어서 살 수 있었어. 물론 짧았고, 바꾼 결과는 컸지만.
검은 집 - 터부. 라는 것이 있다. 그 터부는, 사람들의 유일한 낙이었어. 그리고 그것을 깨면, 죽어.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또한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무서울 정도의 침착한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이런 부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께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고, 나도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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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동물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든 품게 되는 때가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은 바로 그 순간들만을 골라서 모아 놓은 듯한 책이었다. 그러한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비난하면서도,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닌 같은 인간이 저지르는 일이기에 곧장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일들. 나 역시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평소에는 무의식 속에 꽁꽁 감춰 두는 생각들을 하이스미스는 잔인하게 끄집어내어 눈 앞에 들이민다.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은 인간 집단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느새 암묵적인 규칙이 생겨나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려 하는 자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이 일탈을 시도한 자의 결말은 거의가 죽음이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요한 괴롭힘으로 조용히 타들어가듯 죽어 버린 이도 있었고,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과 결별한 이도 있었고, 광기에 젖은 순간적인 폭력에 희생당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폭력은 단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된다. 자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평화를 앗아가는 것. 이러한 아이러니는 경멸도 과장도 느껴지지 않는 하이스미스의 건조한 문체를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모자의 한 명이 되어 표적이 되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놓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으면서도 동료들과 암묵적인 시선을 주고받으며 찜찜한 쾌감을 맛보는 것, 인간이 은밀히 즐기는 추악한 즐거움의 정체를 보아 버린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언제 주변에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 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서로를 아군과 적군으로 가르기 위해 머리속으로 열띤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화 [혈의 누]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피를 뿌렸던 씁쓸한 영화의 결말이 겹쳐 떠오르면서 가슴이 더욱 답답해진다.
그러나 이 책이 모두 어두운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 유머의 대가답게 군데군데 센스있는 위트가 보이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의외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기도 한다. [고양이가 물어 온 것]에서는 우아한 영국 중산층 가정이 하녀 한 명에게 쩔쩔매는 모습이라든지, 미국인을 천박하다고 경멸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더 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다. 또 [연]에서는 죽은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만든 연을 타고 날아오르는 어린 오빠의 마음이 가슴을 꽤나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어찌됐든 하이스미스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임이 틀림없다. 조만간 그녀의 다른 선집들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마약같은 글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그를 죽였어. 루시엔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가 그를 죽였어요, 안 그래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워질 거에요." 이윽고 루시엔이 진심인 것처럼 말했다. "그래요." 누군가 루시엔과 똑같이 엄숙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들은 곧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택시 세 대에 나눠 탔다. |
| 나는 잔인한 폭력은 견딜 수 있지만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다. written by Oscar Wilde 우린-니체가 말했던-삶을 피해 사막으로 달아나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끊임없이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가혹한 사막에서 끝없는 갈증에 몰린 나머지 자신의 곁을 지켰던 무리에게조차 날카로운 이빨을 곤두세우며, 그들의 피로 자신의 갈증을 풀고자 하는 사나운 짐승들은 대체 누구인가? 오늘날의 고도로 조직화된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대량생산이 가져온 풍요로 인해 수많은 산물과 상품이 거리 곳곳에 넘쳐나도록 하였지만, 그 풍요는 오로지 돈이란 것을 가져야지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써 그 풍요의 대가로 우리에게 동정보다는 비정을, 정의보다는 이익을, 삶보다는 생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그 사나운 짐승들에 관해 함께 얘기 하고자 한다. 인간의 삶이 아닌 짐승으로서의 생존을 선택한 그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풀기 위해 무리 중 가장 약한 이를 희생자로 선별한다. 그리고는 선택된 희생자 앞에서 차가운 냉소와 비수 같은 적의로 이루어진 그들의 이빨을 천천히 드러낸다. 잔인한 이성은 어느새 증오로 일그러진 짐승의 얼굴들을 친절과 교양이란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다. 희생자의 피로 자신들의 갈증을 푼 짐승들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 희생자가 자신과 같은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희생물로 선택되었기에 그건 자신들과 같은 무리가 아닌 그저 희생물일 뿐인 것이다. 자신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물을 애도하는 장례식에서 짐승들은 슬픔을 가장한 희미한 미소만을 머금을 나름이었다. 미칠 것 같았던 갈증을 희생자의 피로 푼 짐승들은 다시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는 언젠가 짐승들은 다시 모이겠지. 다음 희생물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