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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증명하려는 자와 신분을 속이려는 자의 두뇌싸움의 역사
"신분을 증명하려는 자와 신분을 속이려는 자의 두뇌싸움의 역사" 내용보기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개인신분증이 생긴 것은 길게 잡아도 사진이 발명된 19세기 이후이지만,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역사는 훨씬 길다. 많은 전설에서 신분을 속였다가 들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는 있으리라. 옛 이야기에는 유명인이 타지를 여행하다가 이런저런 소동에 휘말린 후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 전개가 자주 나온다. 반대로 주
"신분을 증명하려는 자와 신분을 속이려는 자의 두뇌싸움의 역사" 내용보기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개인신분증이 생긴 것은 길게 잡아도 사진이 발명된 19세기 이후이지만,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역사는 훨씬 길다. 많은 전설에서 신분을 속였다가 들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는 있으리라. 옛 이야기에는 유명인이 타지를 여행하다가 이런저런 소동에 휘말린 후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 전개가 자주 나온다. 반대로 주인공이 웬 불한당과 혼동되는 바람에 애꿎에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했을까?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했을까? 그리고 정체를 밝힌 본인은 대체 어떤 증거로 그 사람들을 납득하게 했을까? <너는 누구냐?>는 이 테마로 중세 이후 수백 년동안을 넘나든다.

 

개인신분증이 생기기 이전, 신분을 증명하는 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자신이 어떤 단체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것과, 자신이 범죄자 수배인 등 특정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그림은 사실을 왜곡하기 쉬웠기 떄문에, 개인의 신분을 판별하는 데 이미지가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소속이나 출신지를 증명하는 데에는 특정 단체의 일원만이 배부받는 배지나, 특정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배지가 자주 쓰였다. 수배자 명단에는 흉터, 피부색 등 신체적 특징을 주로 기재했다. 하지만 교류가 잦아져 타인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지를 구할 수 있고, 컬러 이미지 없이 글로 된 표현만으로 신체적 특징을 혼동의 여지 없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근대 이후 개인 증빙 서류가 출현하게 된다.

 

하지만 서류가 만능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버젓이 증빙서류를 발급받기도 하고, 서류 자체를 위조하기도 했다. <너는 누구냐?>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각종 신분 사기 사건을 상세하게 다루는데, 신분을 사칭하는 데 사용한 방법이 실로 다종다양해서 그 발상에 감탄하게 될 정도이다. 기발한 사칭 방법이 관청에 적발되면 관청은 그 사칭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고, 그러면 또 규정의 빈 틈을 용케 찾아내 새로운 사칭 방법을 개발한 범죄가 등장하고는 했다. 법이란 마치 튼튼한 천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튼튼하게 천을 짜도 누군가가 구멍을 뚫으려 작심하고 한 군데를 자꾸 뚫다 보면 결국에는 뚫리게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는 했다. 여러 군데를 동시에 막으려는 노력이, 한 군데에 구멍을 뚫어보려는 집중공략에 무너지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럼, 각종 전자증명 제도가 발달된 지금은 어떨까? 본인임을 인증하는 절차를 철저하게 거친 후, 각종 정교한 위조방지장치가 장치된 신분증을 발급하면 개인 신분 도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이 내놓는 해답은 비관적이다. 신분증의 위조 방지 기술이 발달하면 범죄 기술도 진화한다는 것은 부차적 문제다. <너는 누구냐?>에서는 어렵게 발부받은 입국여권을 나이와 얼굴이 비슷한 친척에게 빌려주어 공유한 사례를 언급하는데, 멀쩡한 여권을 얼굴 비슷한 사람이 쓰는 것이니 들킬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신분증명서에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의 외모나 인상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지나치게 엄밀한 신분증명제도를 도입했다가는 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딜레마 떄문이다. 게다가 개인 신분증에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실었을 경우, 만에 하나 유출되었을 때 범죄에 악용될 경우의 수도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는 점도 문제이다. 진정 범죄를 막으려면 범죄조직에 유출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유출되었을 때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할 방도까지 생각해 두어야 하는 법이다. 개인증명서처럼 개인의 삶과 직결된 정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너는 누구냐?>의 신분증 역사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다. 바로 그렇기에, 수백 년 전 이야기이면서 현대 독자도 위화감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리라.

p*******1 2012.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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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잃어버렸다. 주민등록증과 각종 신용카드 등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도 같이 잃었다.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드는 과정은 더디게만 진행되었다. 여전히 난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덕에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순간은 지금껏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는다면, 내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일 수밖에 없는지를
"나는 누구일까?" 내용보기
지갑을 잃어버렸다. 주민등록증과 각종 신용카드 등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도 같이 잃었다.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드는 과정은 더디게만 진행되었다. 여전히 난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덕에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순간은 지금껏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묻는다면, 내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일 수밖에 없는지를 묻는다면 그 땐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있을 수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류의 생활 반경이 좁았던 시절이라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특정 권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집 ##'' 라는 식의 명칭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 통신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인류는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 요즘, 한 인간의 정체성을 개개인의 친분에 의존해 확인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강력하게 중앙에 집중된 권력에 의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우리의 힘에 의해 구성된 사회가 다시금 우리를 인정하는, 개인과 구조의 끝없는 교류를 이보다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없으리라. 주민등록증, 여권 등은 국가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심지어 개개인에 관한 모든 신상은 13자리의 짧은 숫자만 있으면 증명이 가능하다. 어찌나 짧은지, 몇몇 이들은 이 번호를 마음껏 제조[?]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와 같은 체계는,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보면 고도로 진화된 산물이다. 언젠가 <담배, 돈을="" 피워라="">라는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선배는 "넌 그런 책도 사서 읽니?"라는 질문을 했었다. 제목에 소위 ''삘''이라고 하는 것이 꽂히면 어쩔 수 없다 했던가? ''너는 누구냐''라는 제목의 도발성 앞에서 나는 또 다시 제목이 주는 묘한 매력에 취약한 내 단점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제목만큼 내용이 도발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두께의 풍성함만큼이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신분 증명의 역사 앞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치밀함과 허술함의 양 박자에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인간이 특정 집단을 뛰어넘어 한 개인으로서 그 정체성을 인정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신을 뛰어넘어 인류를 재발견한 위대한 사건으로 르네상스를 평가한다. 하지만 15-16세기에도 인간은 개인을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식하기보다는 특정 부위에 흉터를 지녔는지 여부, 어떠한 의상을 착용했는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분,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같은 피부색도 붉다, 검다 따위로 전혀 다르게 묘사되었으며 종교개혁 시기에는 자신과 같은 종파에 속하는 이를 걸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신분증이 각광받았다. 신교도 혹은 구교도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신분증, 특정 지역에 입성하기 위한 신분증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으니, 오히려 신분증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엄격한 신분 조회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것도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고 하니 신분증을 소지하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하나의 특권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모방심리 역시 만연하여, 곳곳에서 신분증을 위조하려는 행위가 행해졌고...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은 모두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는 오늘날 이는 이해하기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인류가 이룩한 가장 자유로운 시대, 하지만 통제는 고도로 정교해져 모든 이들은 국가의 감시 체제하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는 보다 정밀해질 것이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문양들이 개발될 것이고, 한 개인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담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이 이용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신분증을 소지한다는 것이, 한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통제할 능력이 증대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신분증으로 인해 우리는, 분실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할 수도 있고, 특정 집단에게 보다 쉽게 자신을 노출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책의 가장 앞부분에서 만날 수 있는 마네티의 목수 이야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뚱보 목수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목수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의 정체성은 변질되었다. 그 과정에선 어떠한 신분증서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렇듯 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정보를 고도로 수용하고 있는 특정 증서가 아닌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신분증은 말해줄 수 있을까.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 나의 정체성과 연결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신분증서의 발달 여부와는 별개로 우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닐지...
q*****2 2006.03.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