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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 사람을 처음 죽여봤어요?" "응. 고등학교때..." "왜요?" "내가 계집애랑 같이 잤다고 아버지가 꾸중하시기에 아버지를 죽였어..."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건, 쉽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거죠?" "강한 사람이 저는 좋아요." "나는 강하지 않아...강하면 권총같은 건 안 쓰지...무서우니까 총을 쏘고 그래..."
물음이나 그에 맞대꾸를 하는 말이나 그냥 좋게 들을 말이 아니다. 말은 물 흐르듯 쉽게 하지만 들을수록 가슴이 오싹해지는 말들이다.
1993년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만든 야쿠자 영화 <소나티네 Sonatine>는 아무나 좋아할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냐"는 말씀은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한테 맞는 말이지,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쉽게 사람을 죽이는 야쿠자한테는 삶과 죽음은 그저 놀이일 뿐이다.
2. 세 번이나 제 머리에 스스로 총을 겨누고 쏘아대는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는 도쿄의 야쿠자다. 큰 우두머리 밑에서 작은 우두머리를 하고 있는데,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그냥 죽여 버린다. 물에 빠뜨려 죽이든, 총을 쏘아 죽이든 눈도 깜짝 하지 않는 무서운 사내다.
그런데 오키나와에 있는 무리가 도움을 바란다며, 큰 우두머리는 무라카와 패거리를 보내려 한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난번 홋카이도에 갔을 때도 세 사람이나 잃었어요..." 우두머리를 걱정해주는 가타기리(오스기 렌)가 말하지만, 무라카와는 달랜다. "괜찮을 거야. 협상으로 끝이 날 거라고 하니까..."
서울(도쿄) 깡패와 시골(오키나와) 깡패는 뭐가 다를까? 서울 물을 먹었으니 때깔이 조금 나을까? 아니면 하는 짓이 쌈박할까? 깡패가 깡패일 뿐, 다를 게 뭐가 있으랴. 그냥 힘없는 사람들의 등을 쳐서 돈을 빼앗아 살아갈 뿐...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패거리끼리 칼질 하고 총질 해서 싸울 뿐...
3. 무서운 야쿠자 노릇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보여주는 무라카와를 맡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놀랍다. 도쿄에서는 늘 찌푸린 얼굴이고,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 얼굴로 살다가, 오키나와에서는 아이처럼 깔깔 대고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는다. 바다와 외딴집이 깡패를 아이로 만드는지...아니면 도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 그런지...
도쿄에서는 "나, 이제 야쿠자를 그만 둘까봐..." 하며 힘든 삶에 지친 무라카와가 말하자, 똘마니 켄(테라지마 스스무)은 거든다. "그동안 너무 억세게 살았죠. 이젠 돈이 있는 게 이상해요..."
피붙이는 나오지 않고, 피붙이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자칫 잘못 하면 목숨이 날아갈 판인 야쿠자한테 피붙이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칼과 총을 갖고 다니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깡패가 뽀시랍게 사랑을 이야기 하랴...
씩씩하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무라카와를 좋아하는 오키나와 아낙네가 같이 비를 피하다 숲에서 옷을 벗어 가슴을 보여주자, 기껏 한다는 소리가 "가슴까지 보여주고 멋진데..." 하고 마는 사내다.
4.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되는 영화다. 남들이 화끈하다고 우러러보는(?) 깡패인 야쿠자의 삶이 너무도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술집에서 다른 패거리들과 총싸움을 벌일 때, 아무도 숨지 않는다. 그냥 서서 상대방을 쏠 뿐이다. 맞으면 죽고, 안 맞으면 산다.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 영화도 아닌데...)
같이 일하게 된 다른 패거리 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냥 칼로 배를 찔러버리는데, 그걸 보는 다른 야쿠자들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런 꼴을 한 두 번 봐. 내 알 바가 아니야...) 같이 일하던 사람이 총에 맞아 죽어도 그냥 다리를 잡고 끌어다 버리거나 산에 버린다.
그렇지만 일을 떠나면 아이들로 돌아간다. 바닷가에서 일본 씨름인 스모를 하거나, 공 던지기를 하거나, 놀이를 하면서 낄낄 거린다.
그렇게 잘 놀다 도쿄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지하철이 들어서 땅값이 오르고 장사가 잘 되는 곳을 맡은 무라카와를 세상은 시샘하기 때문이다.
곳곳에 웃기는 대목이 넘친다. 러시안 룰렛을 하듯 가위 바위 보를 하고는 진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쏘는 모습이나(속은 벌벌 떨리지만), 물이 없어 비가 올 때 벌거벗고 온몸을 씻는 데 하늘이 곧 개이고 말 때의 머쓱한 모습, 무라카와가 몰래 구덩이를 파놓고 졸개들을 빠뜨리는 모습 따위는 영화에 뛰어들지 않았을 때 익살꾼이었던 감독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들이다.
따스한 사랑을 하기가 어렵고 앞날을 알 수 없는 거친 사나이들을 다룬 영화라, 이런 쪽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보기가 껄끄러울 수 있고,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무라카와의 말없는 얼굴을 카메라가 빤히 보여주는 장면은 마음에 걸리고,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나이들을 좋은 마음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
5. 디브이디는 나름대로 깔끔하다. 화면이나 소리가 좋다. 도쿄에서 살 때는 조금 어둡게 비추고, 오키나와에서 놀 때는 밝게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와 심영섭씨가 나와 영화를 보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고편이 있어 좋다.
그런데 내가 산 디브이디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을 모은 것이라, 하나씩 파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감독이 몸소 들려주는 말은 없다. 나온 배우들을 어떻게 뽑았는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도 밝혀주면 좋으련만, 모음집에 들어있는 디브이디에는 이런 게 없다. 조금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