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너무나 쉽게 천재과학자라고 부르는 아인슈타인의 노년의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상대성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살고, 어떤 목적으로 과학 연구를 했으며,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에세이는 인간 아인슈타인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해줄 중요한 자료일 터였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편견이 없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의 사진 한장이 내가 바라던 그의 이미지였으니까. 혓바닥을 내미는 장난스런 모습을 이 책에서 나도 모르게 기대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러한 나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왜냐... 이건 그냥 노년에 심심해서 끄적거린 내용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재과학자의 숨겨진 면모를 끄집어내려고 기획한 작품도 아니었다. 아무 생각없이 천재과학자는 뭘 먹고, 무슨 취미를 가졌을까 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너무나 진지하고 진정이 담긴 그의 생각, 그의 사고, 그의 철학이었다. 세상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과학에 대한, 민족에 대한 고찰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책에서 그가 생각하는 신념과 믿음, 과학에 대한 해설, 공적인 일에 대한 의견, 인생과 세상에 대한 조언, 여러 인물들에 대한 그의 느낌, 유대 민족에 대한 그의 설명을 풀어놓았다. 여섯 파트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사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정말 두, 세 번씩 읽은 문장이 대부분이다. <과학>에 대한 부분은 정말 벌을 받는 심정으로 읽었다. 양주동 박사님의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기며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파트는 이해한 것도 별로 없었다. <위험과 궁핍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걱정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원래="" 게으르다.="" 만일="" 인간을="" 자극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인간은="" 거의=""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습관적으로="" 자동기계처럼="" 행동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생존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소한="" 것만="" 생각하고="" 그의="" 동료들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때,=""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처럼="" 판에="" 박힌="" 가면의="" 배후에="" 실제로=""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볼="" 수="" 있다.="" 습관이나="" 말로="" 인해="" 우리의="" 참다운="" 인격은="" 모포에="" 감싸여="" 있는="" 것과="" 같다.=""> 이로써 내가 읽은 아인슈타인은 단순히 천재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세상사에 인간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문제제기를 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애쓴 한 인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적극적인 태도, 진정성이 살아있는 사고, 모든 문제에 진지한 모습은 어지럽고 혼란스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읽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느끼고 밑줄 그은 대목이 많은 만큼 다시 읽을 때는 수훨하리라 생각한다.위험과>과학>과학>상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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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을 어릴 적 위인전에서 만났던 기억만 있던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하면서 한 위대한 과학자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 미소 지으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빨간 책 표지의 아인슈타인 할아버지는 내 예감이 확실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좀 전에 책을 덮기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한번도 미소 지을 수 없었다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 그는 내가 임의로 생각했던 평범한 한 과학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조목조목 정리해서 우리들 손에 건네주고 갔다. 그는 첫 페이지, 자신의 자화상에 대해서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물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이 책에서 몇 명의 인물들에 대해 격찬하는 그 말들이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임을 알는지 모르겠다.
1차 세계대전, 나는 1차 세계대전을 겪지 않았고 그 상황이 어떠했다는 건 몇 편의 영화나 책에서나마 간략하게 보고 들어 이해하는 정도이지만, 아인슈타인은 거침없는 비인륜적 만행이 국가적으로 이뤄지던 1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현장, 냉전의 세계 가운데서 이토록 위대한 고민들을 쉼 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배적인 관념들이 인간을 다른 시기에 다른 시각으로 보이게 할지라도, 또한 현재와 같은 동시대의 상황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슬픔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오직 고통스러운 몇 장면만이 역사책 속에 남아 있어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선조의 어리석음을 간략하게 전할 것이다 21p'' 라고 말한다. 마치 내가 지금 멍하게 아인슈타인의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름 앞에 늘 붙어 다니던 과학자, 물리학자라는 명패가 불식되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의 기록의 4분의 3은 순수과학과 멀어만 보이는 사회문제, 공적인 것들에 대한 것, 그리고 ‘지식인’들에 대한 호소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세계의 진정한 평화와 진정한 자유가 구현되는 사회를 위해 지식인들이 나설 것을 호소한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싸움을 피하지 말자 24p'' .‘우리는 수많은 국가의 지식인과 학자의 신분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막중한 역사적 책임을 안은 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대한 목표, 즉 세계적인 평화와 안보를 촉진하기 위해 ‘현자의 영향력’을 활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197p. (24.지식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호소하는 대상인 ‘지식인’의 진정한 책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생존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소한 것만 생각하고 그의 동료들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때,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처럼 판에 박힌 가면의 배후에 실제로 무엇이 존재하는 지를 볼 수 있다. 습관이나 말로 인해 우리의 참다운 인격은 모포에 감싸여 있는 것과 같다. -중략-인간은 고통을 당할 대 비로소 경제정책의 실패와 국가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고통과 변혁만이 국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현재의 변혁이 좀더 나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 현시대에 대한 이러한 평가를 넘어서 우리는 미래의 의무를 하나 지고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선조들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순수하고 풍요롭고 고귀한 것을 계승해줘야 한다. 195-196p‘. 나는 얼마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사는가? 모포에 감싸여져있는 인격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닌지..
그는 자신이 표방하듯,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인다.
자유와 도덕, 교육과 종교,국제평화,흑인문제,그리고 과학 그는 대부분의 방면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일일이 피력한다. 그리고 그런 ''깨어있음''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진리에 대한 지식은, 그 자체가 상실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대리석과 같아서 모래의 이동으로 끊임없이 매장의 위험을 받고 있다. 대리석이 계속해서 햇빛을 받기 위해서는 늘 봉사의 손길이 있어야 한다. 나의 작업도 이러한 봉사의 손길에 속할 것이다. 48-49p''.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대리석'', 매장의 위험을 끊임없이 받는 대리석을 위한 봉사의 손길이라는 기막힌 표현이 와 닿는다.
아인슈타인은 이상주의자이다. ''항구적인 평화는 위협이 아닌 상호 신뢰를 구축하려는 정직한 시도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 이 지구에서 품위 있는 생활양식을 만들고, 파괴의 위험을 피하려는 소망이 책임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격정을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이여, 그대들은 격정을 신뢰할 수 없다. 젊은 세대를 이러한 의미로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은 광범위하게 평화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그럼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과거 어느 세대들이 했던 것 이상으로 나라와 자손에게 봉사할 수 있다. 183p''그의 바램처럼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세계가, 이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래본다.이상이 없다면 꿈도 없는 것이고, 희망은 없다. 이상주의자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이 세상에대해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인물들''이라는 주제로 일일이 나열한 사람들에서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사물의 본성에 대한 명료한 통찰이 참다운 인간성을 요구하는 강렬한 감성 및 전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결합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한 세대를 통틀어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한 사람은 떠나는 순간에도 뒤에 남는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빈자리를 남겨놓는다. 294p''.지금 이 책을 통해 아인슈타인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이 폴 랑주뱅을 두고 한 이 말이 자신에게 가장 접합한 말일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런 아쉬움의 고리가 ''현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래본다.
과학분야에 대한 글은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리뷰에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척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가치있는 책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생존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소한 것만 생각하고 그의 동료들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때,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처럼 판에 박힌 가면의 배후에 실제로 무엇이 존재하는 지를 볼 수 있다. 습관이나 말로 인해 우리의 참다운 인격은 모포에 감싸여 있는 것과 같다. -중략-인간은 고통을 당할 대 비로소 경제정책의 실패와 국가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고통과 변혁만이 국가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현재의 변혁이 좀더 나은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를 기대한다. 현시대에 대한 이러한 평가를 넘어서 우리는 미래의 의무를 하나 지고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선조들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순수하고 풍요롭고 고귀한 것을 계승해줘야 한다. 195-196p‘. |
|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이룬 과학적 업적은 전 세계 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아인슈타인이 쓴 글을 찾기는 쉽지 않은 가운데 본서는 그의 노년에 생각들을 기록한 글들이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책장을 폈다. 이 글들은 짐작컨대 노년에 기고하였던 기고문들을 모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라 느껴진다.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기고되지 않았던 수필도 포함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의 뇌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사람, 천재적인 머리를 소유했던 사람, 아인슈타인 노년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생각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념과 믿음, 과학, 공적인 일들, 과학과 인생, 인물들, 나의 민족’으로 총 6장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소논문에 해당한 글과 에세이들은 그 시대의 주요 이슈와 갈등의 요소들이 그대로 녹아져 있으며,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견해들은 인류를 향한 그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여러 곳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으며,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과학만능주의 한 복판에서 그 과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의 발언은 내심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과학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넓은 시야를 가졌던 지식인이었음을 입증하는 바이다.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며, 과학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그의 소신은 과학을 단순히 돈벌이의 도구나, 개인적 영달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다 나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헌신한 한 사람의 과학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본서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내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이다. 그가 말년에 국제 정치와 경제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그는 이 무서운 살인 병기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그의 마지막 삶을 소진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교육과 국제정치, 경제 사상들에 다 동의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당시 상황과 정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판단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과학자로서의 책임감에 모두 그를 위대한 과학자라고 부르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며, 계속 성장 해야만 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본서 또한 그것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의 사용이다. 본 장의 내용을 차라리 과학쪽에 붙이고 5장으로 편집을 했었더라면 큰 실수는 피해 갔으리라 생각되지만 지식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거창한 ‘과학과 인생’이라는 주제에 과학만 있고 인생은 빼놓았다는 것은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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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모습에 대해서 요즈처럼 우리나라 사회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예전에 의학박사님들이 나오셔서 엔돌핀이나 신바람 건강을 논한적도 있었던것 같기도 하지만 창조적 과학자로서는 황우석박사님의 거의 처음의 대중적인 과학자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최근의 소식은 불행히도 반가운 소식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접한 이책은 실험실에서 고뇐하는 창조의 고뇌속에 있는 과학자가 아니라 어느 사회학자 못지 않은 세상에 대한 고민과 안타까움에 서있는 그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기에 책을 덥는 순간 그런 그 이기에 그러한 존경을 현시대까지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퀴리부인의 성품을 말한 그 말이 곧 그 자신에 대한 평가의 좋은말이 될 것 같다.
"한 세대나 역사에서 지적인 업적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점은 그것을 주도하는 인물의
도덕적 자질이다, 지적인 업적조차도 상당부분은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고매한 성품에 달려있는 것이다" (P.289). 또하나 막스 플랑크를 기억하며
"위대한 창조적 이상으로 세계를 축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후대의 칭송을 기대할 필요없다. 그의 업적 자체가 이미 크나큰 은혜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옮긴이의 놀라운 번역의 부드러움에 감탄을 연발했다.
특히 대부분 SKIP이라는 편법을 통해 간신히 통과한 Part II 과학 부분에서는
대단하였다.
1. 신념과 믿음
2. 과학
3. 공적인 일들
4. 과학과 인생
5. 인물들
6. 나의민족
으로 이루어진 이책은 결코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과이 친절하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높은 지성의 아인슈타인의 거침없는 세상보기와 공감하기에는 버거운 과학자로서의 그의 시선이 너무 위에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으로서 과학을 이해하고 정당화하는 논리적 토대를 갖추고 싶으면 이책을 보시고
교육자로서 참다운 교육에 대한 지지자를 찾고 싶으면 이책을 참고 하시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생각했던 향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책이 반가우실 테고
과학을 전공하신 전문가분들에게는 내게는 어려웠던 2장의 과학부분또한 즐거움이 될것 같다.
유대인의 현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와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유대인의 목소리에서 측은함과 이해를 가질수 있을것이다.
이 책을 읽는 불편함 이상으로 이상의 REVIEW에서 오는 기쁨은..
저자가 책 곳곳에서 강조하였던..
고통과 불행이 발전과 행복의 기반이 된다는 저자의 이론을 정당화 시키기에 충분하다. [인상깊은구절]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그가 동료들에게 행한 봉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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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게는 오직 ''존재''만 있을 뿐, 어떠한 소망이나 가치 또는 선이나 악은 없다. 어떠한 목적도 없다.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에게도 청교도적인 자세 같은 것이 존재한다. 즉, 모든 주의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이다. (57쪽)
아인슈타인이 [과학]에 대해서 본인의 총체적인 생각을 나타낸 구절이다.
아인슈타인을 읽으며 특히 저 글을 보며 황우석 교수님이 생각났다.
과학자가 과학을 추구하는데 과연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황우석 교수님의 양심만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책은 우리가 정말로 잘 아는 아인슈타인이 쓴 글이다.
내가 만약 부제를 붙인다면 [손녀에게 보내는 편지]로 하고 싶다.
난 이책을 읽으면서 한적한 어떤 시골에서 끝없는 푸른 풀밭 위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아인슈타인과 내가 차 한 잔을 같이 나누면서 나즈막한 목소리의 아인슈타인이,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얘기하듯, 나에게 삶의 조언을 들려주는 듯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신념과 믿음/과학/공적인 일들/과학과 인생/인물들/나의 민족 이라는 큰 단원에서 알 수 있듯이 할아버지가 먼저 철학적인 큰 개념들을 먼저 얘기해준다.
물론 본인이 바라보는 본인의 모습... 자화상이 제일 먼저이다.
그리고는 본인의 평생 업인 물리에 대한 부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를 얼마나 생각했는지는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교육, 민족에 대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 평화에 관한 문제, 노동자에 관한 문제, 민족에 관한 문제, 그리고 친절하게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폴 랑 주뱅, 발터 네른스트, 파른 에렌페스트,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런 사람들도 알려준다.
특히 232쪽의 내용에서 보면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반세계화에 대한 50년전의 그의 생각이 맞아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화... 진정한 평화를 원하던 그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각 분야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진지하게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의 민족에 대한 얘기-유태인이나 우리 한민족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써는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물론, 상황은 그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지만.. ^^)
대부분의 책이 다루고 있는 그의 초년의 모습이라던지 그의 과학적 업적을 다룬 것이 아니라, 늘그막의 성숙한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정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책표지가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쉽게 닳아버리는 재질이긴 하지만 한 권의 낡은 편지나 일기장 같은 그런 분위기와 아인슈타인의 평화를 사랑하는 자상한 할아버지같은 그런 느낌이 참 좋았다.
물론... 물리법칙이 나오는 부분이라든지, 긴 내용, 또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담겨 있어서 한 번에 읽기는 힘든 책이다.
하지만 물리쪽은 비교적 쉽고 간단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한 번 훑어보거나 아님 그것도 힘들다면 뛰어넘고 읽어도 된다.
(아마 두번째 단원에 나오기 때문에 미리 질려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읽으면 되는 부분이니까 절대로 포기하지는 말고 차라리 이 단원을 건너뛰자~ ^^)
그렇더라도 아인슈타인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을 시작할 때 처음에 한 번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그래야 그의 과학적 업적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의 아인슈타인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인슈타인이 꿈꾸던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꼭 오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외적,내적 자유가 끊임없이, 그리고 의식적으로 추구될 때에만 정신적인 발전뿐 아니라 완성 가능성도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간은 외적, 내적 삶을 개선할 수 있다.(28쪽) 도덕은 결코 완결되지 않은 과제이며, 인간의 판단을 지도하고 행위를 고취하기 위해서 현존하는 어떤 것이다. (34쪽) |
| [아인슈타인 나의 노년의 기록들]에서 본 아인슈타인은 기존에 내가 고작(?) 알고 있던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였다. 세상을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될 만큼 그는 이미 위대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였는데, 그는 노년을 그냥 편히 살기를 거부하며, 세상에 무관심을 보이며 살아가는 기타의 학자와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가는 용감한 ''행동가''였다. 다음 세대를 위한 메시지에 얘기하는 가 하면, 지식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사회주의에 대한 의견, 지금도 존재하는 흑인문제, 핵전쟁, 유대인 동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나치주의에 대한 혐오 등... 정말이지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며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나의 노년의 기록들]를 쓴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56~72세라는데, 노년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보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을 읽기가 한 편의 소설을 읽듯이 수월했던 건 아니지만... 인간 ''아인슈타인''을 재발견하게 된 좋은 시간여행이였던 거 같다^^ |
| ''변형생성문법''을 공부하면서 노암 촘스키라는 미국의 언어학자를 알게 되었다. 그 때, 그는 ''SYNTAX''를 공부해야하는 학생들에게는 살아있는 최고의 논리적은 언어학자로 영웅이였는데, 관심을 갖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다보니, 촘스키는 정치며 사회에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살아있는 양심인 것이였다. 광전자 가설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노년의 기록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져있을까,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빨간책,,,너무 나도 예쁜 크림슨책을 펼치자, 그의 자화상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젊은 시절은 고통스러웠지만, 노년에는 유쾌하기까지 한 그런 고독 속에 살고 있다.''라는.... 그리고 그는 의식적인 인간은 인생을 하나의 모험으로 인식하고 죽음과 끊임없이 씨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자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인류 모두가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도덕적 선을 실천할 때 진정한 자유가 인류의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발표했다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 발견''이 원자폭탄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는 자신의 업적이 불온한 목적에 쓰여지는 것에 격분하고 반핵운동을 펼친 살아있는 시대의 양심이고 선도자였다. 이 책은 그의 신념과 믿음, 과학, 공적인 사안, 과학에 관련된 자신의 인생, 그리고 그의 사상에 도움을 주었거나 자극이 되어준 인물들, 그리고 자신의 뿌리인 유대인으로 크게 나뉜다. 우선 과학 파트에서 다룬 내용은 솔직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와도 같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문자는 해독할 수 있으되, 진정한 의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솔직히 몇 페이지를 읽다 그 부분은 건너 뛰었다. 대신 나는 그가 전하는 공적인 사안과 유대인에 관련된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읽으면서 그가 주장하는 것이 인류 전체의 안보와 평화, 그리고 복지 보장이라는 단일한 목표하에 세계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UN 조직도 변화되어 된다며 UN 총회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그의 과학은 철학 없이 이루어진 사상누각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과학자....우리는 보통 실험실에 갖혀 지내는 그런 학자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것이 학자의 길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말년의 대 천재 과학자는 자신이 스스로 실험실 밖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학문적 업적으로 얻어낸 성과가 잘못 사용되어 지구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도로 호도될까 걱정하며 진정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무엇이 유대인인지 유대인을 정의 내림으로서 왜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배격을 당하고 픽밥을 받았는지, 그 원인을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에게 일차적으로 묻고 있다. 그런 후에 진정한 인간 실존의 목표를 위해, 반사호적이고 파괴적인 본능들이 전스오디는 것으로부터 유대 민족 스스로가 자신들을 해방시켜 행복한 인간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서자고 다독인다. 물론 이런 자세에는 은근한 시온주의자의 정신이 보이기도 하고 있지만, 설득의 효과는 그런 식이 더 클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책 한 권을 읽는 일이 어느 때 보다 쉽지가 않았다. 연말에 시작된 책치고는 너무 존재감이 컸을까? 하여간,,,, 이 밤, 바이올린을 켜고 고독하나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에 방에 홀로 있는 아인쉬타인을 생각해보니,,,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너무나도 작은 빙산의 일각임을 확인하게 된다. |
| 한 사람의 인생을 ‘성공’이라 규정짓기 위해서는 그 말미를 보아야 한다고 했던가. 역사는 과정보다 결과를 쉽게 기억하는 성향을 지닌 듯 싶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인생에 대하 조바심을 내게 된다. 숱한 사람들이 걸었을 기나긴 과정을 생략한 체 평생을 통해 그들이 이룩한 것들을 하루에 획득하려 드는, 그것은 욕심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물리학자, 하지만 그가 말한 상대성 이론은 100% 문과적 머리를 소유한 나에겐 난해하기만 할 뿐이다. 학자로서의 아인슈타인을 알지 못한다 하여도 상관없다.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이었고, 나보다 조금 먼저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렇기에 인간으로서의 아인슈타인을 이해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특히, 그가 남긴 기록들은 결과에만 집착하는 우리가 종종 잊곤 하는 과정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인슈타인 스스로 남긴 기록들은 제2, 제3의 인물에 의해 포장되고 희석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에디슨이 그러하듯 아인슈타인 역시 정규적인 제도권 교육 하에서는 낙오자에 불과했다. 그의 솟구치는 생각들은 결코 제어될 수 없는 것으로, 수학적인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호기심은 균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착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그를 이해치 못했기에 그는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절대적으로만 여겨지던 패러다임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세상에 충분히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하게도 뛰어난 이들에게 더 높기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곤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만으로도 나는 그가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노년의 기록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나이듦이 허락한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나의 관심을 관심 이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삶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 나의 생각이 옳다는 강고한 신념 따위로 무장되지 않은 이에게 관심은 그저 관심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움의 경지로 몰아넣는 것은, 물리학의 난해함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쳤으면서도 더 큰 힘을 창출해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채찍과도 같은 것이다. 이미 훌륭히 달리고 있는 말을 향해 더 빠른 속도를 기대하며 내리찍는 채찍… ‘찰싹’하는 순간 온몸을 요동쳤을 고통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이 책은 학자로서 그리고 인생을 논할 정도로 충분히 나이가 든 존재로서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말하기 위해 쓰여졌다. 자신의 상대성 이론과 물리학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9 - 16장과, 자신보다 앞선 세대를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연구를 가능케 했던 학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37 - 45장이 다소 학문적(?)이라면 그 외의 장들은 사회학, 윤리학적이라 할 수 있다. 그 글들은 자신이 꿈꾸는 사회에 대한 강렬한 믿음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뜨거운 의지로 가득하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자신과 같은 민족에게 가해진 고통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그에게 적지 않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강요된 ‘희생자’의 이름 앞에서 그는 민족의 단결을 부르짖는다. 지난 세기, 인류가 낳은 최대의 비극을 통해 그는 인간이 보다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하며, 그와 같은 법칙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터득했으리라. 하지만 그에겐 유대인의 문제가 너무도 컸고,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낙관 역시 과도했다. 시온주의가 유대인들에게 당시의 비참함으로부터 희망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을진 모르나 그것은 또 하나의 배타적 이데올로기였다. 그는 유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 국가이기보다는 ‘평화적인 공생에 기반한 아랍인과의 합리적 합의’라고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은 경작해놓은 들을 아랍의 광신적 무법자들로부터 빼앗기지 않도록 무장 보호해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그리고 유대 민족이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고백했던 시온주의가 자민족의 우월함을 바탕과 신화적 상상력(?)에 기반해 또 다른 민족을 향한 폭력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그는 정녕 몰랐을까? 오늘날 이스라엘이 아랍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폭력을 정당화한 국가 폭력의 주체가 되어버렸음을 그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세계 평화를 위해 그가 주장한 세계정부론 역시 현실화되긴 힘든 것이었다. 오늘날 UN이 강대국 중심적 세계질서를 고착화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며,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시대에도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존재했다. 책의 209쪽부터 수록된 바빌로프(Sergei Vavilov) 외 3인의 공개 서한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국가간 권력 차로 인하여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의 휴머니즘은 이러한 차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력을 주목하지 않았다. 인류 문명의 총체적 파괴를 피해야만 한다는 신념이 더욱 강렬하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권력의 문제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핵폭탄 보유도 선량한 목적, 즉 핵으로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다른 국가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허락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으로부터 국가에 대한 지나친 믿음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인슈타인의 노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원숙함으로부터 오는 사려깊음이나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것은 치열함이었고, 어떤 면에서 그 치열함은 젊은 이들의 그것보다도 더욱 뜨거웠다. 하지만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고 했다. 존 레논이 노래했던 Imagine 이라는 곡이 진정 잘 어울리는 인물, 그가 바로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한다. |
|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슨 우유상표에도 아인슈타인이 나오고, 일전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아인슈타인 얼굴에 로봇 몸통을 가진 알버트 휴보라는 로봇을 개발한 적도 있다. 게다가 백발에 혓바닥을 쏙 내민 익살스런 표정의 아인슈타인 얼굴이 인쇄된 컵, 쟁반, 티셔츠, 광고물 등등은 이리저리 오다가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아인슈타인 만큼 친숙한 과학자도 아마 없을 것이다. 동네 할아버지같은 느낌이다. 쥐 파먹은 백발머리에 혀를 쏙 내밀고 있는 표정은 위대한 과학자로서는 다소 경망스럽고 점잔하지 못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왠지 그에게는 자연스럽고 또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가지고 있는 천진함,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그 자유분방함이 결국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빛나는 과학적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리라. (이건 여담이지만, 우리의 위대한 학자인 퇴계나 율곡에게서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민스러운 일일 것이다. 과거 우리의 선비들은 신독이라 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것을 학문하는 자들의 기본 자세로 보았으니 다소 경직된 그런 분위기가 과학적 성취에는 걸림돌이 되었겠지만 지조와 신념의 꼬장한 선비정신을 강화하는 데는 영양가있는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고 민족성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두가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하며 마치 그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백발의 친근하고 온화한 그 얼굴과 빛나는 명성뿐일 것인데, 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본 책 2장에 등재된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논문들은 역시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내머리로는 무리였다. 서력기원이 예수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기원전, 기원후로 나누어지고, 역사가 문자발생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듯이, 오다가다 줃어 듣기에 과학사라는 것은 아마도 뉴톤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어 지는 듯하다. 가히 뉴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위대한 뉴톤을 훌쩍 뛰어넘은 사람이 바로 유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이다. 정녕코 놀랍고 위대할진져!!. 어린 시절에는 조금 멍청했다는 다소 희망적인 전언과 원폭개발에 관여했다는 이야기, 그후 평화운동에 기여하였으며, 이스라엘 대통령직 제의를 거절했다는 에피소드 등은 너무도 유명하다. 알베르트에게는 천재요절, 미인박명이라는 말도 허사여서 76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이 천재 과학자의 노년의 기록들이 본 책 한권에 담겨있다. 1934년부터 1950년에 이르는 약 15년간의 기록으로 연설문, 논문, 서한, 단상, 인물평 등 여러 방면의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만 유대민족에 대한 그의 감상에대해서는 당시의 유대민족이 처했던 비참했던 형편과 작금의 득의하고 득세한 상황을 비교해 보자면 자연 격세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찬사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중으로부터 인간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인슈타인을 보면서 금번 황우석 사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황우석 교수가 아직까지 원천기술 운운하고 있지만, 이른바 원천기술이라는 것이 있든 없든, 그 과학적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이제 황우석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과 사랑은 모두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다. 그를 그르친 것이 자신의 과도한 욕심이든 주위의 부추김이든 아니면 국민대중이 암묵중에 동의한 황우석 신화의 우상화 작업의 결과이든 뭐든 여하튼간에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인간 황우석은 이제 죽었다. 애도를 표한다. 생명윤리문제에서 출발하여 연구성과자체에 대한 의혹으로까지 일파만파로 무슨 바람타고 산불 번지듯 퍼지면서 이전투구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된 그 복마전 같고 미로속 같은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결국은 우리 모두가 자폭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
|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부러워서 위인전도 많이 읽곤 했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다보면 뭔가 나도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서 알게 된 것은 타고난 것과 노력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이 책을 봤을 때 ''아인슈타인의 노년 전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 표지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새하얀 머리와 콧수염 사진 때문일까. 아무튼 붉은 색과 흑백 사진의 묘한 조화는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뻔질나게 들고 다니며 지하철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동기에서였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제 3자가 쓴 형식의 위인전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쓴 칼럼이나 연설문 등을 모아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독자는 아인슈타인의 목소리를 좀 더 직접적으로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걸러진 것보다 한층 더 가까이 아인슈타인을 느낄 수 있어서 바로 옆에 그가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첫 인상과는 다른 내용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었으나 읽으면 읽을 수록 흥미로운 책이다. 다만 두번째 장인 ''과학''부분은 어느정도 물리학에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었더라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이 과학에 무지한 사람은 상대성이론 하나만으로도 이해하기가 벅찼다. 또한 아인슈타인이 살던 시대 상황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가 하는 말에 논리적으로 논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아인슈타인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놓은 책이라 유대인의 입장에서 쓴 글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유대인과 그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이에 관련된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