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4%
  • 리뷰 총점8 14%
  • 리뷰 총점6 21%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반정'으로 몰락한 연산군의 치세를 살펴보다!
"'반정'으로 몰락한 연산군의 치세를 살펴보다!" 내용보기
조선시대 역사에서 죽은 후 시호(諡號)를 받지 못한 최초의 임금은 바로 연산군(燕山君)이다. 조선의 10대 왕으로 즉위했으나, 실정(失政)을 이유로 폭군이라고 평가되어 끝내 폐위되면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역사에서는 이를 바른 것으로 돌린다는 의미로 ‘반정(反正)’이라 칭하고 있으나,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성공한 쿠데타’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당
"'반정'으로 몰락한 연산군의 치세를 살펴보다!" 내용보기

조선시대 역사에서 죽은 후 시호(諡號)를 받지 못한 최초의 임금은 바로 연산군(燕山君)이다조선의 10대 왕으로 즉위했으나실정(失政)을 이유로 폭군이라고 평가되어 끝내 폐위되면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역사에서는 이를 바른 것으로 돌린다는 의미로 반정(反正)’이라 칭하고 있으나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성공한 쿠데타였다고 할 수 있다만약 당시 권력 탈취가 실패로 끝났다면이는 반정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수많은 역모(逆謀사건 가운데 하나로 지칭되었을 것이다특히 재위 말기의 악정(惡政)으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났지만그를 동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폐위되었던 것을 당연시하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치세를 절대 권력을 향한 위험한 질주라는 부제로 규정하고 있다. 신권(臣權)을 억누른 상황에서 펼쳐졌던 연산군 시기의 왕권은 조선시대에서 가장 강력하고 견고했으나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신하들이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이러한 연산군의 폭정은 이미 성종 시절부터 배태되어 있었다고 논해지는데, 세자의 모친인 왕비 윤씨를 서인으로 만들어 쥭음으로 이끌었던 과거의 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부왕인 성종 역시 이를 우려해 이 사건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으나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뒤 이를 알게 되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더욱이 왕권을 강화하려는 입장에서 연산군이 이 사건을 통해 신권을 억누르려는 기회로 이용했다고 하겠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던 성종과는 달리연산군은 즉위하면서부터 신권을 제압하려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그 가운데 가장 첫 번째가 바로 왕에게 간하는 대간권력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이었다이러한 건력의 대립은 결국 유가 이념을 내세웠던 사림들을 일거에 몰락시킨 무오사화(戊午史禍;1498)’를 초래햇으며, 이미 죽은 김종직의 글(조의제문)을 그의 제자들이 실록에 수록하려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대규모의 숙청을 벌였던 것이라 하겠다항우에 의해 억울하게 왕위에서 쫓겨난 초나라 의제를 조문하는 내용의 글이 왕실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유자광의 참언을 받아들여 진행되었던 사건이다즉 억울하게 왕위에서 쫓겨난 초나라 의제가 단종에 비유되고제문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한 항우는 계유정난으로 장권을 차지한 세조를 지칭한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이 글의 내용이 세조와 그 자손인 예종과 성종 그리고 연산군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논법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기화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이에 동조하는 일부 신하들과의 결칵 속에서연산군의 모친인 폐비 윤씨 사건을 끌어들여 다시 갑자사화(甲子士禍;1504)’를 일으켜 수많은 사림들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두 차례의 사화를 통해서 강력한 왕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처럼 흥청망청으로 대표되는 유흥에 빠져 몰락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하겠다하지만 실록의 기록에서는 연산군 즉위 초에는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갑자사화 이후 절대 왕권이 성립하면서 폐위 당할 때까지 약 2년 동안의 폭정으로 인해 푹군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무도한 정치는 결국 반정으로 인해 왕위에서 내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유배지인 강화도에서 29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그리하여 갑작스럽게 등극한 중종은 자신을 왕위에 세운 신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논해지기도 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3.05.08. 신고 공감 1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복수의 참화로 스러져 간 연산군
"복수의 참화로 스러져 간 연산군" 내용보기
가슴 속 애잔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을 주고받은 이를 들라고 하면 대부분 어머니를 들 것이다. 자애로운 태도로 자식들을 위해 배려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은 숭고한 일생으로 다가와 자식들의 가슴 속에 아련한 추억을 새겨두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경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성종의 큰 아들로 19
"복수의 참화로 스러져 간 연산군" 내용보기

   가슴 속 애잔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을 주고받은 이를 들라고 하면 대부분 어머니를 들 것이다. 자애로운 태도로 자식들을 위해 배려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은 숭고한 일생으로 다가와 자식들의 가슴 속에 아련한 추억을 새겨두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경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성종의 큰 아들로 19세에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의 권위가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절대 권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뚝심이 강했던 연산군은 하고자 했던 일은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마는 집념의 소유자였다. 아직껏 베일에 가려졌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임사홍이 말함으로써 연산군은 딜레마에 빠져든다. 폐비 윤 씨가 남기고 간 피 묻은 적삼을 품에 안고 오열하기 시작하였다. 윤 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던 예조 판서 이세좌를 파직하고 제거하였으며,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 숙의와 정소용을 차례로 죽임으로써 궁중의 피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여 곧잘 시를 읊었던 연산군은 딜레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피바람을 멈춰도 위기가 오고

   피바람을 계속 해도 위기가 온다.‘

   강력한 권한 구축을 위한 연산군의 가혹한 형벌은 계속 되었다. 폭압으로 황제적 권력을 구축했던 연산군은 정사를 돌보기는커녕 사냥이나 야외나들이를 즐기며 환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임금의 행차가 있는 경우 주변의 민가를 다 비워야 했을 정도로 이기적인 향락은 극에 달했다.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고운 피부를 내세워 갖은 교태를 부리며 연산군의 눈을 사로잡은 장녹수는 임금의 방탕함을 부추기는 이로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연산군은 왕권의 지나친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대간들의 활동을 일축시켜 나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쌓아나가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대신들은 임금의 광기가 부른 처참한 살인을 둘러싼 부조리한 행동을 보면서도 간언이나 직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스럽고 참혹했던 정치는 극에 달하였다. 선왕 성종의 내관으로 그 아들 연산군까지 충심으로 보필했던 내시 김처선은 팔, 다리가 잘려 나가면서도 간언할 정도로 연산군의 광포한 폭력은 더해만 갔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통해 절대 왕권 수립을 위한 피바람은 영원할 수가 없었다. 이에 역사의 심판을 받은 연산군의 피비린내 나던 무참한 살육은 폐위로 일단락 지어졌지만 아픔을 겪은 가족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절대적인 권력을 쌓기 위해 온간 힘을 쓰던 임금에게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은 피를 부르는 복수극의 굴레에서 쉽게 헤어날 수 없었다. 역대 왕들 중 누구보다 예술적 재주가 많았던 임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삶이 연민으로 다가온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과 보필 속에 안정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연산군의 왕정은 달라졌으리라. 자신의 죽음에 임박하여 예고라도 하듯이,

명예를 구하느라 수고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주 술에 취하여라.

이 세상 한 번 떠나면

황천객을 면하기 어렵나니.

폐위되던 해 그는 무상감이 강하게 배어나는 시를 썼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 한 시대를 움직이던 인물도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유혈 사태의 파장을 조절하기 힘들어 참화를 초래했다.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순리를 거역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는 있어도 불편한 진실은 유폐하기 힘든 모양이다. 권력의 무상감이 더한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n*****9 2012.03.04. 신고 공감 7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비합리적인 시대의 조명
"비합리적인 시대의 조명" 내용보기
yes24에서 발송도 너무 늦어서 정말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폭군으로 규정되는 치세는 그 냉정한 파악이 정말 힘들지요. 박시백님의 조선왕조실록은, 각각의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단편적으로 받아들여 생기는 편견을 최대한 배재하고 기록과 상황에 의거한 냉정한 평가를 하면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 점이 연산군편에서 정말 빛이 납니다
"비합리적인 시대의 조명" 내용보기
yes24에서 발송도 너무 늦어서 정말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폭군으로 규정되는 치세는 그 냉정한 파악이 정말 힘들지요. 박시백님의 조선왕조실록은, 각각의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단편적으로 받아들여 생기는 편견을 최대한 배재하고 기록과 상황에 의거한 냉정한 평가를 하면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 점이 연산군편에서 정말 빛이 납니다. 연산군이 단지 불량아에 미치광이라서 그랬던가? 단순한 규정은 속이야 편하겠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법입니다. 연산군의 횡포가 극심하여 민생이 파탄에 빠진 것은 그의 재위 최후 2,3년간에 불과했습니다. 나름의 계산을 통하여 그의 치세를 이끌어간 연산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암군이요 폭군일 수밖에 없는 연산군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권 역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ps 연산군은 하나도 안불쌍한데, 연산군 시대의 대표적 간신으로 규정된 임사홍, 이 양반은 영 불쌍하군요.. 어쩌면 치세의 명신이 될 수도 있었을 학자가 완전히 시대의 희생물이 되어 간신의 어두운, 그리고 다소 억울한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이..

[인상깊은구절]
마지막 남긴 말은 부인 신씨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다. 연산군: "아내가 보고 싶어."
a**********o 2005.12.15.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견제받지 않은 왕권의 종말, 반정을 부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견제받지 않은 왕권의 종말, 반정을 부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내용보기
폭군하면 떠오르는 황제가 로마에서는 네로황제라면 조선시대에서는 단연 연산군이 아닐까. 폭군에다 어머니와 관련한 상처나 엽색 행각, 예술가적 기질 등 다양한 면모를 간직해서인지 연산만큼  자주 극화의 대상이 된 임금도 드물 것이다. 소설 '금삼의 피' ,드라마 '장녹수' ,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나  영화 '연산군', '왕의 남자' 등등..     대체로 어머니의 비극을 알
"견제받지 않은 왕권의 종말, 반정을 부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내용보기

폭군하면 떠오르는 황제가 로마에서는 네로황제라면 조선시대에서는 단연 연산군이 아닐까. 폭군에다 어머니와 관련한 상처나 엽색 행각, 예술가적 기질 등 다양한 면모를 간직해서인지 연산만큼  자주 극화의 대상이 된 임금도 드물 것이다. 소설 '금삼의 피' ,드라마 '장녹수' ,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나  영화 '연산군', '왕의 남자' 등등..

 

 

대체로 어머니의 비극을 알고 난 뒤 광기를 폭발시키거나, 애정 결핍으로 묘사되는 연산군이지만 군주라는 점에서 역사에서는 연산군을 그렇게 정서적으로 복잡한 인물로 또 성격 파탄자로만 몰고 갈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연산일기'편에서는 연산군이 세자시절 부왕 성종이 신권의 기세에 눌려 이런 저런 제약을 받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신권을 누르게 된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연산군의 폭정을 단순히 군주의 불안정한 성격에서가 아니라 통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폭군이 된 원인을 모후의 비극에 대한 복수라는 연산군의 심리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학문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신권과 왕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연산군에 접근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흥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 장녹수가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가 됐다.

 

            

 

연산군의 경우는 세습 군주제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왕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의 자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군주가 결정되기에, 또 종신제라는 점에서 군주의 정치 스타일이나 성격이 통치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 것, 그렇기에 왕에 따라 정치에 굴곡이 심하다는 것. 그럼에도 중간에 퇴임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세습군주제의 위험성을  완화하는 길이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그 시스템 안에서 왕권을 행사하게 하는 방법이다.

여타 군주국에 비해 신권이 비교적 강한 조선에서는 비교적 왕권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연산군에 와서는 그런 기제가 작동하질 못했다. 왕의 폭정을 제어할 수 있는 신권이 한없이 추락해 버렸다. 사화가 일어나고 왕의 처벌로 관료들이 대거 희생됐고, 왕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들은 가차없이 폐지됐다.

         

 

경연이 중단됐는가 하면 왕에게 간언하는 사간원이 폐지되고, 사헌부도 축소됐다.홍문관도 폐지, 성균관과 사학의 활동도 사실상 정치,과거도 경전대신 율시로 대체했다. 왕권에 걸림돌이 되는 기구에게는 재갈을 물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로써 목을 걸고 왕에게 간언할 인물도 기구도 없어져서 연산군처럼 조선 역사상 보기 드문 거칠 것 없는 왕권, 무소불위의 절대왕권을 휘둘렀던 왕이 또 있었을까. 임사홍, 임승재 부자나 유자광 처럼 간신으로 기억되는 신하들이 연산대에 등장했던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그만큼 무능하고 충성심 없는 신하들이 득세한 조정이 돼버린 것이다.

연산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유흥과 엽색행각에 탐닉했고, 그 여파는 민생악화와 도덕적 타락이라는 악영향을 노정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 타락한 권력의 당연한 귀결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사대부들이 숨죽이고 몸을 낮추고 있다해도 조선왕조 최초의 반정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반정의 명분도 충분했고, 단지 누가 총대를 매고 주도하느냐의 문제만이 남았을 터인데, 이시기쯤 이르면 연산군도 내심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졌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유흥으로도 엽색 행각으로도 그 불안감과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보위는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에게 넘어갔고, 그 뒤 연산군은 폐주가 된지 불과 2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연산군은 처형된 것이 아니라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죽는 순간에 부인 신씨가 보고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씨는 폐위된 뒤에 연산군과 함께 있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만인지상의 권세, 그 호시절을 누렸던 그 많은 여인들은 어디에 두고,곁에서 쓴소리를 많이 한 신씨를 떠올렸다니, 달리 조강지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 이르러서야 그제서야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대했던 여인은 부인이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나보다.

 

이를 보면 조선에서 폐위가 된 전 왕을 대하는 방식에 눈길이 간다. 조선은 반정으로 폐위된 왕이 둘있었지만 연산군과 광해군 모두 처형하지 않았다. 그런데 폐주의 세자와 단종은 죽음을 당했다.

연산과 광해의 경우 반정의 명분이 뚜렷했고 그렇기에 연산군과 광해군의 복위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에 단종은 그렇지 못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를 명분이 부족했고, 그렇기에 정권의 정통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단종의 복위운동이 추진됐고, 세조 정권에 큰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세조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단종은 제거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명분은 현실과 힘 앞에서 꺾일 수 밖에 없었다. 

 

연산군의 폭정은  비판받지 않고 견제 받지 않은 절대 권력은 부패할 수 밖에 없고, 그 종말이 어디로 향하는지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유교적 덕목에 기초한 방식으로  왕권을 견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이런 방법이 무력화 되면서 그 견제의 취약함을 증명해 주었다. 세습왕조 체제가 갖는 한계인 것이다.

왕권이 신권을 제압해 군강신약(君强臣弱)의 구도를 띄게 되었지만 견제받지 않은 권력, 그 반작용이 결국은 사대부들로 하여금  진정대군을 택군(擇君)해, 반정을 부르는 것으로 연산군은 파멸을 자초한 것이었다.

 

e****0 2014.05.14. 신고 공감 2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왕조실록 07 연산군일기
"조선왕조실록 07 연산군일기" 내용보기
'군'자가 들어간 왕이 나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연산군이라는 왕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 생각을 바뀌게 만들어 준 왕이 있는데, 바로 광해군이다. 그래서 연산군도 광해군처럼 괜히 신하들의 시기로 폐위된 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내 생각대로 처음에는 정말 어진 임금이었다. 앞서 아버지 성종이 온화한 왕이 었기 때문에 연산군은 권위
"조선왕조실록 07 연산군일기" 내용보기

 '군'자가 들어간 왕이 나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연산군이라는 왕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 생각을 바뀌게 만들어 준 왕이 있는데, 바로 광해군이다. 그래서 연산군도 광해군처럼 괜히 신하들의 시기로 폐위된 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내 생각대로 처음에는 정말 어진 임금이었다. 앞서 아버지 성종이 온화한 왕이 었기 때문에 연산군은 권위있는 왕의 모습을 추구했다. (조선왕조사는 이 패턴이 반복되는 듯 )
 태조와 세조보다 더 강력한 왕권을 추구한 연산군은 마침내 대간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행정기관을 폐지를 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점점 미쳐가는 연산군의 모습을 보며 정치는 언제나 피가 연루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를 옹호했다.(정말 잔혹하긴 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복수의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내 머릿속의 폭군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바로 왕으로써의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한대의 권한은 가지고 책임은 지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철없는, 고생 한번 안한 티가 났다.
 백성들은 돌보지 않고, 오히려 탄압만 하니 어찌 밉지 않을 수 있는가? 터를 잡고 잘 살던 백성들을 쫓아내고, 언제나 연회를 배풀고, 춤과 노래를 즐기고, 여자만 탐내고 하니 백성들의 고통은 날이 갈 수록 깊어진다.
 명나라의 홍무제가 그렇게 잔인한 짓을 했어도 결국 어진 임금의 표를 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주었기 때문인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의 마지막도 좋지 못하게 끝났는데, 결국 자기 업보가 아닐까?

a****5 2011.11.0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7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7" 내용보기
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연산군, 장녹수, 연산군 부인 신씨, 신수근 노사신, 이극돈, 김일손, 유자광 오른쪽 : 이세좌, 임사홍과 그의 아들 임숭재, 윤필상, 성준, 이극균, 한치형 신윤무, 성희안, 박원종, 인수대비, 월산대군 부인 박씨   7권은 조선에서 최초로 실록이 아닌 일기로 기록 된 연산군 시대를 다루고 있다. 연산군 시대에서 인상적인 인물을 몇 명만 살펴보겠다.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7" 내용보기

7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연산군, 장녹수, 연산군 부인 신씨, 신수근

노사신, 이극돈, 김일손, 유자광

오른쪽 : 이세좌, 임사홍과 그의 아들 임숭재, 윤필상, 성준, 이극균, 한치형

신윤무, 성희안, 박원종, 인수대비, 월산대군 부인 박씨

 

7권은 조선에서 최초로 실록이 아닌 일기로 기록 된 연산군 시대를 다루고 있다. 연산군 시대에서 인상적인 인물을 몇 명만 살펴보겠다.

 

첫째, 노사신의 역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전형적인 훈구대신이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낼 때는 집현전의 사육신 동료들과 달리 세조의 편에 섰으며, 세조와 성종 치하에서는 평범한 관료 중에 한 명이었고, 연산군 치하에서는 원로였으면서도 그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따른 훈구대신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이 나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최항과 함께『경국대전』편찬을 주도하는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이었으며, 강순과 남이의 건주위정벌 때도 종군한 공신이었다. 또한 연산군 시절에는 대간들이 연산을 공격할 때 거의 홀로 왕의 편에 서서 대간에 맞섰다. 그로 인해 대간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다시피 했다. 그러나 그는 무오사화 때는 거의 홀로 대형옥사로 번지는 것을 막으며 사림의 목숨을 많이 구했다. 자신을 비판하던 대간들을 구하는데 앞장을 선 것이었다. 그는 연산군 시기를 대표하는 거의 유일한 명신이 아닌가 싶다.

 

둘째, 임사홍과 유자광에 대한 양면적인 시선이 돋보였다. 임사홍과 유자광은 당대는 물론 조선 왕조를 망라해서 간신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름의 용기와 지혜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세조나 성종 시절에는 긍정적으로 활용되었다. 서출로 태어난 유자광은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것이었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소년 등과한 임사홍은 학자로서의 명성과 함께 명필이었고 중국어 실력 역시 뛰어났다. 또한 두 사람은 김종직 등 사림에 뒤지지 않을 만큼 패기 있게 바른 말을 하던 신하였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당시 이름난 인물 비평가 허소에게 찾아가 자신을 평해달라고 하자 “당신은 치세(治世)에는 능력 있는 신하(能臣)이고 난세(亂世)에는 사납고 용맹스러운 영웅(梟雄)이 될 사람이다”라고 말했다던가. 임사홍과 유자광은 세종 같은 성군을 만났다면 황희같은 명신이 되고, 세조 같은 주군을 만났다면 한명회나 신숙주 같은 능신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연산군을 만났기에 간신이라는 오명을 덮어쓴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셋째, 연산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그는 초기에는 상당한 정치적 수완과 판단력, 그리고 뚝심을 지닌 군주였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있을 수 없겠지만, 쿠데타를 만나지 않았다면 태종이나 세조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정국을 주도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서모인 엄숙의와 정소용을 죽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복수였다. 아버지인 성종은 부인을 죽였고, 중종·인조·영조는 각각 아들인 복성군·소현세자·사도세자를 죽이지 않았던가? 오히려 누구보다도 연산의 총애를 받았던 박원종이 반정의 선봉에 선 것이 더 큰 배신일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작가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인물의 조명을 통해 독자의 다양한 판단을 이끄는 것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인 듯하다. 38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조선왕조에서 영조에 버금가는 재위기간을 누린 중종에 대해 다룰 9권도 기대가 된다.



y******3 2014.01.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폭주 절대권력
"폭주 절대권력" 내용보기
연산군은 임금인 아버지라는 보호막 없이 자라 왕이되어 신하들의 손에 자란 셩종과는 달리 든든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적자라는 당위성에서 오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연산군은 아마도 무자비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태종을 닮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시대가 변한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태종 만큼 똑독하지도 않았나 보다. 연산군의 시대가 끝나면서 조선조에 있어서 절대 왕권
"폭주 절대권력" 내용보기

연산군은 임금인 아버지라는 보호막 없이 자라 왕이되어 신하들의 손에 자란 셩종과는 달리 든든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적자라는 당위성에서 오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연산군은 아마도 무자비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태종을 닮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시대가 변한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태종 만큼 똑독하지도 않았나 보다.

연산군의 시대가 끝나면서 조선조에 있어서 절대 왕권은 사라진 듯하다.

성리학의 시대는  윤씨의 비극을 거쳐 연산군의 폐위로 그 완성을 보았다.

e******s 2015.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절대권력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무너진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
"절대권력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무너진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 내용보기
연산군.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도 으레 연산군이란 이름을 듣게 되면 폭군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왕이라는 위치에 올라 아랫사람들의 목을 마음대로  거두었던 왕. 사치와 향락에 눈이 멀어서 자신이 조선의 임금임을 잊고 지내던 왕. 끝내는 신하들의 손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끌려나오고 죽음을 맞았던 왕. 박시백의
"절대권력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무너진 조선의 10대 임금, 연산군." 내용보기

 연산군.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도 으레 연산군이란 이름을 듣게 되면 폭군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왕이라는 위치에 올라 아랫사람들의 목을 마음대로  거두었던 왕. 
사치와 향락에 눈이 멀어서 자신이 조선의 임금임을 잊고 지내던 왕. 
끝내는 신하들의 손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끌려나오고 죽음을 맞았던 왕.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7권은 연산군에 대한 책이다. 
시작은 연산군보다 먼저 왕위에 앉았던 태조 이성계였다. 그리고 그의 뒤의 이었던 아들들. 그 중 10대 임금 연산군의 아버지는 성종이었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에서 유교적 소양이 뛰어났고, 언제나 신하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던 성종. 그는 빽빽한 군주수업으로 인해 도학군주로 성장했고, 역사도 그를 도학군주로 기억한다. 
그러나 빡빡하리만큼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자신의 아들에게는 다소연약하다 할 수 있는 교육을 한다. 세자였던 연산군은 그런 아버지의 의견에 잘 따랐으며 별 문제없이 세자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왕이었다. 더욱이 폐비 윤씨 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이 고위직에 올라 있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시대였기에  폭탄의 위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만화 속에서 표현된 연산군은 역시 폭력적인 부분이 많았다. 
임금이라는 지위에서 어찌 그렇게까지 거친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만큼. 그리고 그 시절엔 왜그리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거나 권력욕만을 가진 신하들만이 넘쳐났던 것인지. 안타깝기까지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산군을 표현 할 때면 언제나 그가 지닌 아픔보다는 그가 보였던 폭군의 모습만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왜?에 해당하는 답은 쏙 빠져버리고 늘 결과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부분에선 조금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마 다루었기에 그런 아쉬움이 조금 덜했다.

 이 책은 기나긴 역사를 글로 표현하기보다 만화로 표현 한 책이었다.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는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이 덜하고 내용 이해에 있어 어려움이 덜하다. 또한 책을 읽는 속도 또한 빠르다. 
그렇기에 혹 역사 공부를 하다 지루함을 느껴 지쳐있는 청소년들이 읽기에 좋은 수업 도구(?)란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청소년이 아닌 경우에도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w*******y 2010.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권력을 향한 무한 질주
"권력을 향한 무한 질주" 내용보기
과거 태조가 조선을 세우면서 많은 왕씨를 살육한 것이 이후 조선의 왕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태조의 후손들은, 특히나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골육상쟁의 다툼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바람이 몰려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태종, 세조, 연산군 등등이다.   권력이란 무엇일까?   과거 아버지인 성종의 그늘에 가려 늘 본인의 생각과
"권력을 향한 무한 질주" 내용보기

 

과거 태조가 조선을 세우면서 많은 왕씨를 살육한 것이 이후 조선의

왕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태조의 후손들은, 특히나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골육상쟁의 다툼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바람이 몰려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태종, 세조, 연산군 등등이다.

 

권력이란 무엇일까?

 

과거 아버지인 성종의 그늘에 가려 늘 본인의 생각과 마음, 행동을 감춰야

했던 연산군은 과연 어떤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했을까?

 

실록에 기록된 연산군은 폭군의 정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실록은 이미 승자의 기록이라는 틀에서 본다면 연산군은 마냥

태어날 때부터 폭군의 형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상황은

그를 폭군으로 만들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의 연산군이 탄생한 것이다.

 

너무나 깊게 각인된 연산군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재평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n********s 2009.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7번째.
"7번째." 내용보기
연산군은 조선왕들 중 폭군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또한 상당한 인기를 끌엇던 영화 왕의 남자의 배경도                    연산군 시절이었을 것이다. 과연 폭군으로 깊이 각인 찍혀있는 연산군을 박시백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흥미로운 책이었다.
"7번째." 내용보기

연산군은 조선왕들 중 폭군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또한 상당한 인기를 끌엇던 영화 왕의 남자의 배경도                   

연산군 시절이었을 것이다. 과연 폭군으로 깊이 각인 찍혀있는

연산군을 박시백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흥미로운 책이었다.

o*****1 2008.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