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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 동화 같은 책이지만 '죽는다는 건?'이라는 질문을 다시금 해보게 만든다. 책에는 죽음과 관련된 사건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주인공 아이가 피아노 선생님에게 호된 야단을 맞고 세상에 대한 불신과 수치심, 반항심에 나무에서 떨어져 죽기를 결심한 사건이다. 또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막바지에 나오는데,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앞만 보고 걸어 다니던 좀머 씨가 결국 호수로 걸어 들어가 죽음을 맞게 되는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에서 아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결정적인 순간 나무 아래 좀머 씨를 발견하게 되고, 곧 자신이 죽기로 결심했던 짓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에 반해 좀머 씨는 평생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는 것으로부터 도망쳐 쉴 새 없이 걸어 다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만다. 이 두 사건을 비교해 읽다 보면 '무엇이 우릴 죽게 만드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좀머 씨와 작가 쥐스킨트가 많이 닮은 것 같다. 작가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문학상을 받는 것도 마다하며 인터뷰도 거절하는 엄청난 은둔자라고 한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던 좀머 씨의 말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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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은 20년 전이다. 중편소설로 길이도 짧은 데다 당시에 무척 좋아하던 장 자크 상페의 삽화까지 들어있어 읽기는 쉽게 읽었다. 그러나 읽고 난 뒤에 별 감흥은 없었고 끝없이 걷기만 하던 좀머 씨의 이미지만 남았을 뿐 내용은 깡그리 잊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같은 작가의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다시 읽게 된 《좀머 씨 이야기》는 20년 전에 읽었던 그 책과는 전혀 달랐다. 이 책의 화자는 좀머 씨가 아닌 어린아이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무렵부터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에 아이가 관찰했던 좀머 씨에 관한 이야기와 그 사이에 화자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사건들이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이 책을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린 성장소설쯤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향수》를 읽은 독자라면 《향수》의 주인공인 그르누이와 좀머 씨가 상당히 유사한 캐릭터라고 느낄 테고 이 책도 약간은 다르게 읽힐 것이다. 해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좀머 씨는 줄곧 걷기만 한다. 사람들은 그의 정확한 이름조차 모르지만, 그가 왜 종일 걷는지를 두고 저마다 추측한 이유를 떠들어댄다. 폐쇄 공포증 때문이라는 둥 경련을 감추려는 방법이라는 둥…. 이상기후로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지고 공만한 크기의 우박이 떨어지던 날에 차를 타고 가던 소년의 가족이 좀머 씨를 발견하고 태워주려고 한다. 차 타기를 거듭 사양하는 좀머 씨에게 소년의 아버지가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그 말에 소년은 강한 인상을 받는다. 몇 년 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데다 피아노 선생님에게 심한 꾸중까지 들은 어느 날, 소년은 스스로 세상에 작별을 고하겠다며 나무 위로 올라간다.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나무 밑에 앉아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빵을 먹어 치우고 다시 걸어 나가는 좀머 씨를 보게 된다.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 소년은 자신이 별것 아닌 일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며 나무에서 내려온다.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걷던 좀머 씨는 어느 날 밤에 호수로 걸어 들어간다.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소년은 고집스럽고도 열정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씨의 모습에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끝까지 지켜보기만 한다. 좀머 씨에게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토록 끝없이 걸었던 이유는 단지 죽음이 무서워서였을까 아니면 살고 싶은 의지의 발로였을까. 그에게 부인이 있었고 얼마 전에 그녀가 죽었다는 내용이 스치듯 나온다. 아마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부인의 존재가 좀머 씨에게는 삶을 놓지 않게 하는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를 살게 했던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에게 삶은 더이상 삶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 이르러 그는 죽음을 결심한다. 평생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던 좀머 씨가 제 발로 호수에 걸어 들어간 것은 어찌 보면 그의 삶에서 가장 적극적인 자기주장이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그가 자살이라는 방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삶의 포기’가 아닌 적극적으로 ‘선택한 삶’으로 해석되기까지 한다. 물론 개인의 삶은 각자의 것이어서 어떻게 살던 자유이고 그 의미를 타인이 판단할 수 없다. 오직 그 삶의 주인인 자신만이 온전히 평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나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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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처음 읽은 뒤에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다 좀머 씨 이야기를 추천받고 읽게 되었어요. 처음 책을 봤을 때는 책 속의 삽화들과 책 분량을 보고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으로만 생각하고 읽었는데 읽을 수록 예상과는 다른 내용의 책이라 조금 당황했지만 좀머 씨를 지켜보면서 생각할 것이 많았고 여운이 오래 남은 소설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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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는 소설 및 영화로 유명한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동화책이다. 아니, 동화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오한 느낌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책일까. 내용 자체는 간단하지만 뭔가 함축된 의미가 있는 시 같은 소설이다. 호숫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어린 아이가 동네 주민인 좀머 씨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항상 늘 바삐 걷기만 한다. 동네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고 그는 마치 배경의 일부일 뿐이다. 딱 한번 그 아저씨와 대화를 할일이 찾아왔는데 그는 한마디 뿐이었다.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그는 그렇게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늘 걸어다니기만 하다가 결국 자기발로 호수에 걸어들어간다. 그렇게 사라진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소설이라 참 순수하고, 묘사된 소설의 배경도 아름다웠는데 내용은 이렇게 심오하다. 좀머씨가 바쁘게 걸어다니는 건 무엇인가를 피해 도망다니는 것 같다. 아무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고 그저 자신이 피해다니는 것으로부터 도망만 치고 싶은 심정. 소년의 아버지가 '그러다 죽겠어요!' 라고 했을때 좀머씨가 '그러니까 나를 제발 좀 내버려 두시오.' 라고 했던건.. 죽음이 두려우니까 나는 도망쳐야하고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두라는 말이었을까?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께 큰 상처를 받고 어린마음에 나무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려했다. 그 순간 밑에서 걷다가 잠시 쉬는 좀머씨를 보게되고, 그가 잠시 멈춘 그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쫓기듯 긴 숨을 고통스럽게 몰아쉬는 장면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죽음을 피해 열심히 도망다니는 사람은 결국 제발로 죽음을 맞이하고, 죽으려고 마음 먹었던 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살기로 결심한다. 아이러니하다. 소설의 숨은 뜻은 뭘까?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지만 도망만 다니기 보다 살기를 택하라, 받아들이면 두려울게 없다.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려 할 수록 그 무엇은 나를 더 괴롭힐 것이다. 이런건가? 아니면.. 소년과 좀머씨는 작가의 두가지 자아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자라왔던 자아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자아. 그 두 자아의 이야기. 좀머씨가 사라지는 걸로 봐서 작가는 도망치고 싶은 자아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생각하면 할 수록 어려운 소설이다.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좀머 씨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쫓기듯 살아가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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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이야기가 항상 담담하게 흘러 가는듯 하면서도 기괴한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좀 따뜻한 느낌이 든다. 10년 전에 이사람의 저서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사생활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는 신비주의 작가라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었던것 같았는데, 나이를 좀 먹고 보니 그런 점은 별로 어필되지 않거니와 되려 희미한 반감도 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에 늘 세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창작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런 의미에서 작품이 조금은 미성숙하다는 느낌도 들기도 하는데, 다시 한번 천천히 음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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