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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새해 벽두부터 고삐를 늦추지 않는 동장군, 맞서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점심 손님을 받기 위해 가게 앞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를 쪼아대는 사장님, 일본 어디이던가 해마다 열린다는 얼음조각 전시회장의 조각가 같다. 사방으로 튀는 얼음조각들, 사내는 지금 콘크리트 바닥에 거친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 흰색과 잿빛물감이 뒤섞인 유화 느낌이다.
김용택의 시에서 얼음이 막 어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해가 지고 있었다/그녀가 돌아앉더니/그녀의 가슴에 내 머리를 묻어주었다/수면이 가만히 흔들리며 얼고 있었다/그녀가 내 머리를 쓸어주며/하늘을 보고 있었다//그녀가 울고 있다고 느꼈을 때/내가 그녀의 손을 더듬어 찾고/그녀가 내 머리에 얼굴을 부볐다//해는 어디나 지고 없었다//침침한 하늘에 별이 뜨고/집이 없었다"
「집이 없었다」 전부인데, 시집 『집이 없었다』에 수록된 표제시다. '수면이 가만히 흔들리며 얼고 있었다'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그 쓸쓸함 때문에라도 얼음은 얼기 시작하였으리라. 유속이 아주 느린 물이니까 얼게 된 걸까요, 살얼음이 얼어가는 때이므로 물의 느릿느릿 흐르는 것일까요?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이수익의 「결빙(結氷)의 아버지」에 이르면,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다정한 말씀을 좀처럼 들려주지 않지만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따뜻한 아버지를 만납니다. 얼음은 차갑다, 두터운 얼음은 소통보다는 불통에 가깝지만 그 말하지 않음에 더 절실한 아버지의 정을 느낍니다. 박남준 시인도 이러한 얼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그의 시집 『적막』1부에 수록된 시입니다. 두터운 얼음이 하는 일은 이수익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그는 흐르는 물이 아니라 연못이랄까, 한겨울에도 얼음 아래에 사는 생물들에 주목합니다. 얼음이 투명한 것은 햇살 한 줌을 막지 않기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봄을 기다립니다. 안도현의 다음 시에서 봄을 기다리는 역설적은 얼음 꽁꽁 언 겨울 냇가의 풍경을 만납니다.
보고 싶어도
시 「봄이 올 때까지는」은 그의 시집 『바닷가 우체국』 (문학동네)에 실려 있습니다. 「바닷가 우체국」, 「고래를 기다리며」널리 사랑받는 시들과 함께 실려있는 시입니다. 얼음은 보기에도 만져보아도 차갑고, 딱딱랍니다. 그러나 얼음 이전의 물은 한없이 부드럽다 못해 형체가 없었지요. 딱딱함은 부드러움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운 겨울은 따뜻한 봄날로 가는 징검다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
| 시인은 전주 모악산 자락에서 긴 세월 외로움을 홀로 견디며 이전 시집에서 ''그립고 그리운 것들, 산중의 삶도 세상사와 다름아니었습니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시인에게서는 숲 속 여린 새의 이미지를 읽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길 위의 구도자''로 다가옵니다. 거처를 옮기고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길 위의 구도자''로서의 모습은 신문 기사와 그때마다 발표하는 작품으로부터 먼저 왔습니다. 도법 스님, 수경 스님, 이원규 시인 등과 함께 생명평화탁발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처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같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작가들과 함께 현대상선을 이용, 부산에서 아라비아만 두바이까지 바다여행을 떠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는 여성 문인들을 ''이끌고'' 20일 동안 항해 체험을 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시인은 이제 숲에서 나와 아예 그리움의 ''길'' 위에 선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길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는 것은 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떠나간 것들이 돌아올 길을 찾아 나선 ''길''에서 참 여러 가지를 경험합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를 갔던 제주에서는 ''붉은 철쭉꽃 아래 으깨어진 /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 형제들의 비명''(「바람과 돌들이 노래 부를 때까지」)을 듣고, 밀양에서는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가 껴안을 수 없는 이름''(「밀양에 가서 눈물짓다」)을 부릅니다. 그런가 하면 ''강의 이쪽과 저쪽 국경선에 건널 수 없는 철조망이 / 완강''(「압록강에 배를 저어 나갔다」)하게 버티고 선 곳에서는 열여섯 살 누이 같은 북녘의 소녀들을 만나고, ''무덤과 무덤들의 기도를 이루는 곳 / 카파도키아를''(「카파도키아 흰 돌산」)걷기도 합니다. 다양한 길 위에 서 있더라도 시인이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여전히 그리움입니다.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화살나무」)는 화살나무처럼 말이지요. 얼음에서조차 따뜻함을 보는 다정다감한 눈에 때로 눈물 떨어질 것 같은 감정도 노출하며.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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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안고 노래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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