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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점심, 혹은 네이키드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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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점심Naked Lunch윌리엄 S. 버로스(지음), 정성호(옮김), 월간 에세이 출판부, 1992년 초판 금박을 입힌 붉은 색 빌로드. 분홍색 조개 껍질로 뒷면을 장식한 로코코 풍의 야한 바. 부패한 꿀처럼 달콤한 악마적 실체가 질펀하게 질펀하게 깔린 공기. 야회복을 걸친 남자와 여자들이 반투명의 대롱으로 형형색색의 칵테일을 빨아대고 있다. 근동에서 온 거물은 핑크빛 실크가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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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점심Naked Lunch
윌리엄 S. 버로스(지음), 정성호(옮김), 월간 에세이 출판부, 1992년 초판




금박을 입힌 붉은 색 빌로드. 분홍색 조개 껍질로 뒷면을 장식한 로코코 풍의 야한 바. 부패한 꿀처럼 달콤한 악마적 실체가 질펀하게 질펀하게 깔린 공기. 야회복을 걸친 남자와 여자들이 반투명의 대롱으로 형형색색의 칵테일을 빨아대고 있다. 근동에서 온 거물은 핑크빛 실크가 덮인 의자에 벌거벗고 앉아 있다. 그는 검고 기다란 혓바닥으로 크리스탈 술잔에 담긴 미지근한 꿀을 핥아댄다. 그의 포경한 생식기는 완전히 발기한 상태이고, 검은 음모는 윤기를 발하고 있다. 입술은 성기의 표피처럼 울긋불긋하다. 곤충의 그것처럼 공허하고 적막한 눈. 향락에 자신을 유폐시킨 거물은 간장이 없다. 거물은 늘씬한 소년을 기다란 소파에 밀어붙이고 능숙한 솜씨로 그의 옷을 벗긴다. (143쪽)



내가 한참 영화에 빠져있었던 1990년대 초반,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가 윌리엄 S.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의 소설 ‘벌거벗은 점심(Naked Lunch)’을 영화화한다는 기사가 영국의 영화잡지 ‘Sight and Sound’에 실렸다. 하지만 영문학과 학생들 조차 알지 못했을 이 낯선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무리라곤, 미친 듯이 새로운 것만을 탐닉하며, 술, 담배,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 대해선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소수의 이십 대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새로운 것들이란, 실상은 익숙한 것들의 낯선 변용에 지나지 않았고, 이 세상을 향한 절망만큼 마시고 피워댄 술과 담배로, 싱싱하게 빨간 빛깔을 자랑하던 간은 어느새 낡고 지친 지방으로 잠식당하고, 검게 변해 가는 폐와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는 기관지로 인해, 한 달에도 두 세 번씩 담배를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며, 순결한 사랑에 대한 찬란하고 아름답고 낭만스럽던 구애는 결국 짧게 끝나고 말 사랑을 향한 구차하고 처절하며 자학적인 구애로 변해 있었다.

“나는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브로우벡의 헛소리 따위는 들을 기분이 아니었어. 우선 그는 나에게,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절개를 해야 한다고 우기더군. 잘못 하면 담낭을 자르게 되어 고기를 망쳐버리게 된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야. 아마도 자기가 지금 농장에서 닭을 깨끗이 씻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어. 나는 그에게 오븐 속에 머리나 집어넣으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는 뻔뻔스럽게도 내 손을 밀어 환자의 대퇴부 동맥을 절단하게 했어. 피가 튀어올라 마취사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마취사는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갔지. 브로우벡이 나의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걷어차려 했으나, 나는 수술용 메스로 그의 무릎 뒤의 힘줄을 잘라버렸지. 그는 바닥을 기며 나의 발과 다리를 찔러대더군. 나의 조수이며 내가 진심으로 아꼈던 유일한 여자인 바이올렛이 호되게 꾸짖었지. 나는 탁자 위로 올라가 브로우벡에게 뛰어내릴 자세를 취했는데, 그때 경찰들이 들이닥쳤어.” (90쪽)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던 사이, 소리 소문 없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네이키드 런치’가 DVD로 나왔으며(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품목이 되었지만), 1960년대 초반 출간되자마자 논쟁에 휩싸이며, ‘영화화는 불가능하다’라는 판정을 받은, 비트세대의 걸작 소설 ‘벌거벗은 점심’이 정식 루트를 통해 번역(?) 출판된 것이다. 단지 19세 이하는 읽을 수 없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비닐 밀봉을 하지 않은 채 시중 서점에 배포되었을 뿐(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번역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긴 비닐밀봉을 하던 안 하던 이 번역 소설의 매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테지만).

종종 나는 과연 이 작은 반도국가에 현대 소설에 대한 진정한 독자가 몇 명쯤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장르의 현대 예술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창조적 표현과 문법을 구사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열어가는 소설을 소화시킬 수 있는 독자가. 하긴 그런 소설가도 손가락으로 꼽을 마당에 독자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윌리엄 버로스의, 실험성, 문학성, 작품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1960년대 출판된 미국 현대 소설들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번역된 소설로 알 수 있는 것은 고작 실험성 정도일 것이다. 마약과 섹스, 자극적이고 비상식적인 표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새롭게 창조되는 어떤 세계. 종종 만나게 되는 탁월한 표현들과 알레고리는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지만, 긴즈버그나 노먼 메일러가 옹호했던 문학성이나 예술성에 대해서 알기는 어렵고, 단지 추측할 뿐이다.

강건너 석회암 절벽 위에 부는 서늘한 봄바람 속에서 웅웅거리는 도구 창고의, 회반죽을 칠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부서진 의자 위에 … … 중국의 푸른 하늘에 달무리가 걸려 있다. … … 먼지 낀 바닥을 가로질러 나는 기다란 정액 줄기 위에 걸쳐 … …
모텔 … … 모텔 … … 모텔 … … 망가진 네온의 아라베스크 무늬 … … 밀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강, 기름이 낀 조용한 강물 위에 울리는 무적 소리처럼 외로움이 흐느껴 울며 대륙을 가로질러간다.
껍질에 벌레가 든 마른 레몬을 꽉꽉 쥐어짜서 만든 구체를 가지고 엉덩이에 테를 두르듯 과거 한때의 나를 가리키는 너덜너덜한 수도관 조각 - 보글보글 물이 샌다 - 을 칼로 잘라 붙인다. (342쪽)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자 할 때, 예술가는 종종 전혀 다른 어떤 세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세상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예술가가 만든 그 낯선 세계에서도 이 세상의 그림자는 비치기 마련이다. 이 소설 속에 비상식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난무하는 것은 이 세상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소설 의식의 심각한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마치 거친 호흡으로 바라보고 묘사하는 듯한 소설 속 세계는 종종 황혼 녘의 쓸쓸한 거리를 보는 듯하고 믿을 것은 자신의 의식을 자유롭게 방기시키는 마약과 섹스뿐이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검색되는 한글 연구 논문은 거의 없으며(현대 영미소설에 대한 성실한 연구자가 그만큼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저, 출판되어도 팔리지 않을 이 소설을 번역 출판한 출판사의 기획자에게 찬사를 보낼 뿐이다. 그것이 완전한 의미의 번역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국 현대 소설과 연관된 어떤 이들에게는 조금의 자극이 될 수 있었을 테니.

“완벽한 세포적 표현의 마지막 결과는 암이야. 민주주의는 암적인 존재이고, 관료는 그 암이지. 관료는 국가의 어디에나 뿌리를 붙일 수 있고, 마약 단속반처럼 악성으로 변해버리거나 점점 더 자라서 통제되거나 훈련받지 못한 숙주를 질식시켜버릴 때까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해내곤 하지. 관료는 진정한 의미의 기생충과도 같아서 숙주 없이는 살아나가지 못해. (반면 협동조합은 국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 바로 그것이 따라가야 할 길이야. 단위의 기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독립된 단위를 만드는 거지. 관료는 존재를 정당화하는 요구를 창안하는 반대되는 원칙을 작동시키지.) 관료주의는 암세포 만큼이나 나쁜 것이어서, 무한한 잠재력과 분화와 독립된 자발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인간의 진화 방향을 바이러스의 완벽한 기생주의로 변화시켜 버리지.” (222~223쪽)


인간의 깨진 영상은 시시각각 세포 하나하나를 잠식해 들어간다. … … 가난, 증오, 전쟁, 경찰 - 범죄, 관료주의, 정신 이상 등등은 모두 인간 바이러스의 징후들이다.
인간 바이러스는 이제 고립시켜 치료할 수 있다. (264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s***s 2011.08.31.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