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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딸에게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거야"-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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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이번에는 혼자 된 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하느라 혼기가 꽉찬 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스물 일곱 된 딸이 걱정돼, 더 늦기 전에 결혼을 권하지만 딸은 아버지 곁에서 사는 것이 좋다면서 결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가 재혼하는 것처럼 말하자 그제서야 딸은 고모가 해주는 중매에 나서고 결혼이 성사되는데..   내용은 정말 단순한 작품이다. 런닝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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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이번에는 혼자 된 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하느라 혼기가 꽉찬 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스물 일곱 된 딸이 걱정돼, 더 늦기 전에 결혼을 권하지만 딸은 아버지 곁에서 사는 것이 좋다면서 결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가 재혼하는 것처럼 말하자 그제서야 딸은 고모가 해주는 중매에 나서고 결혼이 성사되는데..

 

내용은 정말 단순한 작품이다. 런닝 타임도 지금까지 봤던 두 편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 작품이 두시간 넘었던 것에 비해서 많이 짧았다. 1시간 48분정도니. 지금까지 본 오즈 야스지로의 세 작품은 모두 가족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생활양식이나 개인의 가치관이 서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전통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였다.

혼자 된 아버지 걱정에 선뜻 결혼하지 못하는 딸, 그런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아버지는 재혼한다고 거짓말까지 하는데..일본 영화를 보면서 같은 동양이면서도 이질감을 느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이 작품은 부녀가 서로 걱정해주는 것에서 우리나라 아버지-딸의 정서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딸 노리코에게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있는건가 싶게..아버지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싶게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오즈 야스지로는 딸의 집착이 부녀지간의 정이라는 선을 넘지 않게 잘 지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몇 대사가 와닿았다. 애정도 없이 중매로 한번 본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딸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말 중에서,

"행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결혼이 곧 행복이 아니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행복이다" 는 대사는 여운이 남았다.

 

오즈 야스지로는 작품은 대체적으로 장면 수가 적다. 한 장면을 오래 잡고,등장인물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으니, 편집이 많이 필요한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딸과 아버지의 표정을 오래 담은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들의 심리가 그 표정에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 장면은 딸과 아버지가 같이 공연을 보러 갔다가, 아버지가 지인 여성과 눈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본 딸의 표정변화였다. 그 여인을 보고 질투를 느낀 딸, 더이상 공연에는 눈길을 두지 않고, 서서히 일그러지면서 어두워지는 딸의 표정 변화를 카메라는 꽤 오래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장면은 아버지의 표정을 담은 것이었다.  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아버지가 과일을 멀쩡히 잘 깎다가 표정이 멍해지고 시선이 멍해진다. 딸을 여읜 뒤 그 빈자리를 느낀 건지, 아니면 이젠 홀로 됐다는 걸 실감하게 된건지..그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마는 아버지..

여러 마디의 대사보다,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감성이나 심리 묘사는 보는 이들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배우의 연기력이 발휘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만춘'은 흡사 70년대 우리나라의 홈 드라마를 보는 기분에 젖게 하는 작품이다. 빠르게 서구화가 진행되는 생활 곳곳에 남아있는 전통적인 가족 간의 우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이 작품을 찍는다면 아버지의 재혼 역시나 강력하게 추진되지 않을까, 극중 아버지의 나이가 50대 중후반으로 설정돼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 진 것이 49년도라고 하니, 약 60년 사이 일본이나 세상은 많이 변했다. 평균 수명도 그렇고, 재혼을 보는 관점도 그렇고. 그럼에도 혼자된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의 마음, 결혼할 나이가 된 딸이 마음에 맞는 배필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 이것만큼은  백년이 지나도 천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e****0 2013.02.06.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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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거짓말을 하다...[만춘 :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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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나지나 어버이들은 제 새끼들이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집을 떠나서 살림을 차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 사이는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렵다. 같이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라서 서로가 저보다 좋은 사람을 찾고자 하니까 짝이 맞지가 않는다. 그래서 마음씨가 좋아 눈높이가 맞지 않아도 사랑해주는 이가 생기거나 알맞게 눈높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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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나지나 어버이들은 제 새끼들이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집을 떠나서 살림을 차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 사이는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렵다. 같이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라서 서로가 저보다 좋은 사람을 찾고자 하니까 짝이 맞지가 않는다.

그래서 마음씨가 좋아 눈높이가 맞지 않아도 사랑해주는 이가 생기거나 알맞게 눈높이를 맞춘 사람만이

제 짝을 찾아 알콩달콩 사랑하게 된다.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1949년에 만든 <만춘 : 늦봄 Late Spring>은

나이가 든 딸이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는 어버이의 마음을 담은 영화여서 안타까웠다.

 

2.

소미야 슈키치 교수(류 치슈)는 제가 하는 일에 빠져 살다 보니까 다른 데는 눈길이 안 간다.

아내가 일찍 하늘나라로 간 탓에 집안일은 딸인 노리코(하라 세츠코)가 맡아서 한다.

그런데 노리코는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누이인 타구치 마사(수기무라 하루코)는 슈키치에게 노리코를 시집 보내도록 부추긴다. 

 

그런데 노리코는 오락가락한다.

"제가 시집가고 나면 아버지는 혼자 남아 힘드실 거에요" 하며 아버지 때문에 시집을 못가겠다고 밝힌다.

아버지는 딸을 달랜다. "그런 걱정 안 하게 한다면 어쩔래?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같이) 살 수는 없어..." 

 

아버지가 미와 부인이랑 살림을 차리겠다고 나서니까, 고모가 만나게 해준 사내와 잘 해보려 하다가도

"아버지는 미와 부인과 같이 사세요. 저는 그냥 곁에만 있으면 돼요. 아버지랑 있어야 행복해요.

이대로 살면 안 될까요? 사타케와 같이 산다고 행복하단 보장은 없잖아요?" 하며 눌러앉으려 한다. 

 

3.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딸한테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아버지가 가르쳐주는 게 좋았다.

이제껏 영화 속에서 이렇게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말고는 드물었다.

 

"혼인하거라. 행복해질 게다. 어려운 게 아니야"

아버지와 사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노리코한테 아버지 슈키치는 차근차근 말한다.

 

그렇지만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가꿔야 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혼인만 하면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틀렸다...행복은 기다려서 생기는 게 아니고 만드는 거야.

새 삶을 함께 시작하는 게 행복이란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닿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가르쳐준다.

"행복을 만들 때까지는 한 해, 두 해 아니라 열 해도 걸리겠지. 그 때에 비로소 참된 가시버시가 되는 거야"

 

노리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음도 깨우쳐준다.

"믿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거라...나에게 했듯이 옆지기에게도 따뜻하게 해줘.

그러면 참된 행복이 떠오를 게다"

 

4.

나이가 든 딸을 시집 보내려는 아버지를 보여주는 건 이 감독이 만든 <꽁치의 맛>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영화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손을 봐서 보기 좋게 만든 게 <꽁치의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꽁치의 맛>이 곳곳에서 통통 튀면서 가볍게 다룬 듯하지만 산뜻하게 다가왔고,

이 영화는 무겁게 나아가다가 끝무렵에 가서야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별은 넷만 주었다.

노리코의 고종사촌 아우인 부가 나오는 대목은 그나마 즐겁게 볼 수가 있었다.

 

둘 다 딸이 마음에 들어 한 사내와 바로 엮이지 못해서 아버지가 아쉬워하고,

나중에 다른 사내를 골라 시집을 가게 만드는 일은 같았다.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 밑에서 조교를 맡은 하토리와 엮이길 바랐고,

<꽁치의 맛>에서는 오빠 일터의 아랫사람과 엮이길 바랐다. 놓친 고기가 크다고 했던가?

그렇지만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도 좋았다. 감독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했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에서 딸하고 만나게 될 사내를 아버지가 먼저 만나 보는 것으로 나왔다.

우리네도 요즈음에야 젊은이들만 만나지만, 옛날이라면 젊은이들과 집안 어른들이 같이 만나서 보았다.

그런데 일본은 1940년대에 이미 젊은이들만 만나고, 아버지는 궁금해서 미리 따로 만났을 따름이라면,

우리보다 한참 앞서간 것이 된다.

 

5.

노리코를 맡은 하라 세츠코는 일본 사람으로선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콧날이 오똑하게 섰고 웃는 얼굴이 예뻐서 사내라면 마음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가 뒷바라지를 힘들게 하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다른 아줌마와 다시 살림을 차릴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섭섭함이 가득 올라오는 마땅찮은 얼굴을 보여주는 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버지 슈키치를 맡은 류 치슈는 1962년에 만든 <꽁치의 맛>에서도 같은 아버지 노릇을 하는 이다.

열세 해 앞서 보여주는 모습이나 뒤에 보여주는 모습이나 다르지 않았다. 물 흐르듯 보여주었다.

노리코를 시집 보내려고 제 누이와 짜고 눈도 깜짝 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때와

딸을 보내는 아쉬움을 나타낼 때가 돋보였다. "시집을 안 가면 걱정이 되고, 가고 나면 마음이 쓸쓸해..."

 

노리코의 벗으로 나오는 아야(츠키오카 유메지)는 감초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고모가 자리를 놔주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노리코한테 잘라 말한다.

"연애 결혼을 하려면 좋아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같이 살자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까 너는 중매가 딱이야..."

또 제가 꼴 보기 싫은 옆지기와 헤어졌지만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같이 살 수도 있다며,

야구에 빗대서 말한다. "원 스트라이크니까 아직 두 번 더 칠 수 있어"

다시 하면 이제는 잘 할 수 있다며 기죽지 않는다.

 

6.

세월을 앞서간 느낌이 드는 꼭지도 더러 보였는데 나로서는 반길 수가 없었다.

노리코와 아야가 2층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아버지가 차와 먹을거리를 쟁반에 담아서 갖다 주는 대목이다.

아무리 옆지기가 없어 아버지가 할 수 있다고 해도 1940년대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요즈음의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우리와 일본이 달라서 그럴까?

 

또 슈키치와 아야가 술집에서 만나 술 한 잔을 하면서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는 건 그렇다고 쳐도,

노리코가 시집을 가면 제 집으로 자주 놀라오라고 하는 쉰여섯 살의 슈키치한테

아야가 그 말을 좋게 받아들이며 이마에 입을 맞추는 일은 조금 앞서간 느낌이 들었다.

 

일본 영화를 보면서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느끼는 게 따로 있다. 술을 따르거나 받을 때가 그렇다.

우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술을 따를 때는 두 손으로 따른다. 받을 때도 공손히 두 손으로 받는다.

아니면 한 손으로 술병을 잡고 다른 손은 다른 팔이나 몸에 붙여 공손히 따른다.

그런데 이 영화를 비롯한 일본 영화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누구든 그냥 한 손으로 술병을 잡고 따르거나 받을 뿐이었다.

차를 마실 때는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이 어째 술은 다를까?

어느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우리만 겉치레에 빠져있는 것일까?

 

또 교수와 조교가 맞담배를 하는 것도 우리네 동양 사람들 같지 않았다.

우리네라면 버릇 없는 놈으로 찍히기 딱 좋을 것이다.

영화 밖에서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술이나 담배 따위로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서양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벌어져도 서로 사이좋게 동무가 될 수 있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7.

만든 지 벌써 예순세 해나 지난 흑백 영화여서 디뷔디도 그리 좋지는 않다.

화면은 깨끗하지 못할 때가 있고 때론 떨리기까지 했다. 소리는 괜찮았지만.

덤으로는 볼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예고편도 없다.

2,900원짜리 디뷔디라 그저 텔리비전 영화를 보는 듯이 봐야 한다.

b******g 2012.04.19. 신고 공감 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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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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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만춘(늦봄): 다다미 숏의 진수와 시간-이미지의 출현 그리고 조화 다다미 숏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들뢰즈가 󰡔시네마󰡕에서 정면을 보여줌으로써 얻어지는 정지되고 경직된 이미지, 그리고 이것이 시간이미지를 드러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다다미 숏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지각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 󰡔시네마&#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내용보기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늦봄): 다다미 숏의 진수와 시간-이미지의 출현 그리고 조화

다다미 숏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들뢰즈가 󰡔시네마󰡕에서 정면을 보여줌으로써 얻어지는 정지되고 경직된 이미지, 그리고 이것이 시간이미지를 드러낸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다다미 숏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지각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 󰡔시네마󰡕를 읽고 있는 중이라,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오즈의 다다미 숏은 그 높이 때문에 관객이 겸허하게 세계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다다미 숏은 이러한 겸허함을 넘어서 세상을 향한 꼼꼼한 관찰과 관조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숏을 보고 있으면 영화 이미지 속으로 뛰어들고픈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관객은 관조하게 되고, 극단적으로 ‘정물’의 드러남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만히 기다리게 된다.
성급한 관객이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바로 오즈 다다미 숏의 진수 아닐까?
그 점에서 들뢰즈가 정물, 특히 아버지와 딸이 결혼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난 장면에서 드러나는 대나무 그림자가 비친 창문 앞에 놓인 꽃병에서 ‘시간-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한 점은 탁월하다.
관객은 여기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해 지루해 하기 보다는 ‘시간-이미지’의 출현을 무의식적으로 보고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긴장감조차 주지 못하는 느린 영화, 그리고 일상적 내용을 담은 영화에 관객, 그것도 감각-운동도식에 절어 있는 나 같은 관객을 ‘시간-이미지’로 초대한 위력을 갖춘 감독은 몇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t******3 2008.05.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