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리놀로지 #이현진 #미디어 #미디어아트 #영상예술학 #컴퓨터공학 #공학 #인문학 #예술 #철학 #기술 #문화 @eulyoo
#을유문화사 로부터 #도서지원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독서 동기
어떤 클릭을 하는가 파악만으로도 사람의 심리와 가치관을 통찰할 수 있다는 시절. 까닭에 이런 매체를 이해하고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매체와 사람 사이 역학을 이해하는 과정이 절실할 시대다. 더 나은 사회도 더 긍정적인 시대도 이에 대한 이해와 성찰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아 관심이 갔다.
+ 본서 빛깔
: 저자 약력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 분야 미디어아트 전공 교수. 미술대학 서양학과에서 페인팅과 비디오 설치 수학 후 인문학과 디지털 미디어 분야 박사학위 현대미술/디자인 연구자 미디어아트 작가
: 저술 성격 예술과 인문학과 기술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책.
저자가 회화를 전공하며 들어서 비디오 설치라는 현대 미술적 분야의 특색을 살려 인문학과 디지털 미디어 분야를 천착한 까닭에 본서와 같은 미술과 철학과 심리학에 기술적 발전 상황까지 아우르는 저작이 등장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 감상 포인트 저자의 서술은 저자가 스크린으로 정의한 기술과 매체로 예술과 인문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현재까지를 논하고 있다.
스크린 이야기의 시작은 캔버스로부터이며 미술로 시작하는 저자의 서술이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회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저자는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을 소개하며 짐작하게 한다. 거울을 통해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조명한다(나는 거울 혹은 타자의 눈을 통해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게 거울 이론이기 때문이다.
캔버스를 최초의 스크린으로 보고 회화를 해설하는 저자의 귀결은 “스크린을 통한 경험은 거울사이에서 상호작용하고 맴도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는 동시에 우리를 비추게 만든다.”며 스크린을 통해 자신과 세계와 그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갖게 해주기 위한 저작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캔버스든 모니터든 액정이든, 스크린은 경계를 통해 그 경계를 넘어 세계를 연결하고 또 서로를 이해하며 사회를 이어나가게 한다는 것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 생각된다.
프로이트의 “스크린 기억”에 대한 내용도 전개되는데 프로이트는 인간은 성인이 되며 억제하고 감추며 자신의 일부를 억압한다며, “유년 시절을 꿈으로 꾸는 스크린 기억은 개인의 본능적 관심과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선택자-매개자’ 즉 무의식과 억압된 환상에 이르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의 꿈인 영화와 영상들 그리고 정보를 제공하는 스크린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과 내밀한 환상을 경험하며 자신에게로 향하며 스스로를 알아가는 여정을 거친다”는 것일 것이다.
철학을 통해서는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을 이야기한다. “현존재는 ‘세계-속의-존재’를 뜻하며 ‘존재와 세계가 분리될 수 없음’을 함의한다”고 “인간은 항상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획득하기에 세계 속 사물 및 도구들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 자체를 묻고 경험하고 해석하는 존재인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 스크린이 서로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불러오고 경험하게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는 또 “하이데거에게 세계는 인간의 행위를 위한 대상이자 배경일 뿐 매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매개 안에서 현존재의 행위가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지향성 속에서 세계는 ‘도구적’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여기서 세계는 환경만이 아니라 타자를 이야기하는 듯한데, “환경과 타자는 인간이 행위 하는 과정에서 인식하고 판단하고 욕망하고 결행하는 대상이자 수단이며 그 무대”라고 말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진다.
스크린 속 사건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즉시성의 환영’이라고 한다는데, 이 “실제라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 경험은 몰입하게 하고 소외감을 느끼게도 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인간이 자신과 타자 곧 세계를 고찰하게 하는 것”이란 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참여하거나 소속된 듯한 몰입감과 제한되거나 배제된 느낌의 소외감이 스크린을 통해 전달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은 스크린이 ‘경계의 대상물’ 즉 가상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에 놓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도구이자 수단인 스크린으로 우리는 참여하고 소속되고 제한되고 배제되는 여정을 거치며 세계와 스스로를 인식하고 고찰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영화관, TV, PC, 스마트 폰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가상세계를 접하는데 그 과정은 인간 심리에 “가상의 것에서도 실제적 감각을 하고 정서적 감동을 하며 욕망까지 하는 여정을 낳는다”. 더욱이 공감 기계가 될 법한 “VR 기술은 서로를 더욱 상대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게”도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의 시선에서 서로를 보게도 하고 사건 현장에서 실제 체험처럼 사건을 대하는 경지를 체험하며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서로에게로 다가서고 있다. 이 무경계는 문제시될 바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를 보다 깊고 친밀하게 해주는 기능도 분명 있는 것이다.
세계를 오해 속에서라도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에 대한 깊은 생각과 관찰로 이르게 하며 나와 타자에 대한 연결을 높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스크린이란 매체는 우리가 우리와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하며 행위하게 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서 역할하며,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서 현실 같은 감각과 감정과 욕망을 경험하면서 그를 통해 연결되어 성장하고 공생하고 공존하게 하는 매체”라는 게 아닌가 싶다. |
|
표지의 문구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는 스크린으로 연결되었다.' 이 문장 그대로 우리는 수많은 스크린에 둘러싸인채 살아가고 있고, 관계 또한 스크린을 통해 맺어가고 있습니다. '스크린 중심 사회'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이지요. 미디어 아티스트 분야의 이론가이면서도 창작자인 저자는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뛰어 넘으며 인간이 만들어내고, 영향을 받고 있는 스크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솔거가 그림을 그린 벽,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세상을 옮겨 담은 캔버스가 결국 스크린이었고,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망막스크린, VR-HMD,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또한 스크린입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백번씩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화면, SNS, 미디어 파사드 등으로 광고를 하고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스크린에 대해서 밀도 있게 생각해보아야할 필요가 분명합니다. 스크린을 통해서 말을 건네는 사회이기에 소통을 위해서는 스크린 이해가 필수적이니까요. 전반부에서는 스크린의 역사를 조망합니다. 회화시대에서 사진, 영상에 이르기까지 스크린이 어떤 흐름을 가지고 이어져 왔는지를 이야기하고, 후반부에서는 스크린 기술의 발전 양상을 저자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녹여 냈습니다. 이론서 인 것 같으면서도 일련의 에세이와 같은 형식을 띄고 있어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지점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해야하는 것과 함께 어떻게 이야기해야하는지가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앞으로도 모양은 달라지겠지만 어떠한 형태의 스크린을 통해 소통하게 될 것이기에 이 책은 지금도 앞으로도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_스타북스북클럽 instagram.com/starbooks_insta |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스크린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에서 스크린의 정체성을 길어올린다. 그는 90년대 후반 완전 평면 TV의 광고를 보고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을 느껴 이를 회화로 구현해보고자 한다. TV 주사선의 떨림을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 표면에 굵은 털실을 붙이고, 그 위에 광고 장면을 그린다. 기술은 완전한 평면을 구현했다고 선언을 하지만, 오히려 평면이 아닌 회화적 물성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평면성이란 무엇인가. 직접 캔버스 틀을 짜고, 제소를 바르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평면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점이 바로 다른 어떤 책도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지 않을까. 저자의 예술적 깊이가 이 책을 완성한다. 스크린이란 매체를 예술과 기술이라는 경계를 넘나드며 자유롭게 탐구하는 맛이 있다. 2. 스크린 속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스크린은 우리의 삶을 바꿨다. 스크린을 이용한 소통은 우리와 유사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만족을 추구하도록 한다. 사회는 세대, 성별, 취향 등에 따라 균질한 소집단으로 분화되는 것이다. 스크린은 이들 간의 간극과 갈등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스크린이 바꾼 문화는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도 느낄 수 있다. 눈 앞의 예술 작품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감상하기 보다, 우선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스크린은 우리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도 삶의 밀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16장의 '도둑 맞은 집중력'이란 챕터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컨텐츠는 짧고 단순해지며, 우리는 사유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간다. 스크린은 우리의 경험을 더욱 매끄럽게 도와주지만, 스크린 밖 우리의 삶은 점점 매끄럽지 않게 된다. 3. 국내 출판계에서 정말로 희소한 주제를 다루고 선구적인 가치가 있는 책이지 않나 싶다. 스크린에 대한 논의가 해외에서는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통합적이고 개괄적으로 다루는 담론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매우 시의적절한 책인 거 같다. 예술, 기술, 사회, 철학의 관점을 엮어 스크린이란 하나의 키워드로 만들어낸다. 다들 이 책을 읽으면 독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평명성 논의와 삼성의 평면 TV 광고가 연결되며,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 인터페이스의 관계를 읽어낸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밑바닥 지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가 잠시 멈춰 서서 곱씹어 볼 수 있는 사유의 지점을 마련해준다. 4. 이것은 고고학 책이다. 우리가 사용하던 미디어 스크린의 원형과 계보를 파고든다. 스크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사와 철학을 알 필요가 있다. 르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였던 알베르티는 그림을 일종의 창문으로 보았다. 이것은 오늘날 컴퓨터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인 '윈도우'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컴퓨터 화면을 볼 때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적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스크린 인터페이스의 고고학적 발굴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에서 손을 휘젓는 순간은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란 개념을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다. 재밌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스크린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경험을 주도하는 스크린을 깊이 알 수 있는 최고의 지혜가 담겨있다. #스크리놀로지 #이현진 #을유문화사 |
|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크린을 바라본다. 손안의 스마트폰부터 도시의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까지, 이제 우리의 삶은 스크린 없이 설명되기 어렵다. 이 책은 예술·철학·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스크린’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창처럼 세상을 보여 주고,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화면. 그 안에 우리의 경험과 정체성까지 저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되묻는다. 함께 보던 하나의 화면에서 각자의 작은 화면으로 이동한 시대.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스크린을 매일 마주하는 지금, 잠시 멈춰 서서 내가 보고 있는 세계의 방식부터 생각해 보게 한 책. |
|
#도서제공 #서평단 『스크리놀로지』 , 이현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제 당신의 스크린 타임은 5시간 21분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저자의 스크린 타임이 왜 저렇게 많이 나왔을까? 정답은 생활용품이나 반찬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하고 포털 뉴스창에서 기사를 읽고 업무 메일 등을 확인하는 일상적인 시간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스크린 없이는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스크린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스크리놀로지』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스크린 환경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문화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조임을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스크린을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장치로만 보지 않고 우리가 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창(window)이자 거울(mirror)'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크리놀로지』는 회화, 철학, 기술, 문화적 사례를 넘나들며 스크린이 우리의 감각과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페이지 곳곳에 QR코드를 첨부하여 글의 이해를 돕는 자료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1부 ‘스크린 감각들’에서는 우리가 스크린을 바라보는 감각 구조에서 시작해 스크린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를 해석한다. 스크린을 창문과 거울의 다중적 은유로 읽고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에서 달라지는 스크린의 역할을 비교한다. 2부 ‘스크린 장면들’에서는 아이폰, VR과 AR, 미디어 파사드 등 구체적 기술과 사례를 가져와 스크린이 현대의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예시로 등장하는 관광지의 '포토 스폿'이나 서울 삼성동의 '초대형 LED 스크린' 덕분에 스크린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크리놀로지』가 단순히 스크린의 역사를 나열하거나 미디어 속 스크린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스크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예술과 생각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어렵지 않은 철학을 곁들이며 함께 살피는 동안 우리는 이 화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지를 질문한다. 이 시대에서 스크린은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스크린을 마주하는 순간이 얼마나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덧붙이는지 자각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스크리놀로지』을 통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
|
"이 글은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화나 TV의 화면을 일컫는 말. 스크린이라 하면 '화면'이나 '장막' 등을 떠올리곤 했다. 의식적으로 접해야만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휴대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등 개인이 소지하고 있는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하루에 대부분을 피부처럼 가까이 스크린과 밀접해 있다. 이런 스크린 시대, 우리가 이 방대한 스크린이라는 영역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고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이를 활용해 더욱 주체적이고 생산적으로 스크린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주어지는 자극에 순응하듯, 자연스럽게 발전되며 생활 깊숙이 들어오는 스크린의 영역을 아무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이 스크린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였는지, 이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스크린이라는 방대한 세계를 조망하고 재구성하며 스크린의 모든 것을 풀어내고자 했다. 순수미술을 시작으로 미디어를 공부했으며 캔버스와 스크린을 통해 세계를 비추고 해석하는 글을 쓰는 이현진이 쓴 〈스크리놀로지〉이다. 스크린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스스로를 돌아봐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영화관의 화면이나 TV가 내가 접했던 가장 최초의 스크린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영화나 TV가 등장하기 전에는 스크린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을까? 저자는 서양화라는 순수미술을 전공한 만큼 회화 캔버스와 영상 스크린을 비교하며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크린의 한정된 시선을 벗어나 좀 더 포괄적인 시선에서 스크린이라는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포문을 연다. 캔버스, 액자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스크린의 의미, 또 다양한 그림 속에서 등장하는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스크린'이라는 물성이 가진 한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1부에서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런 미학적 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양한 회화적 화면과 공간, 작품을 통해서 스크린의 본질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데 찍어서 화면에 띄운 것을 스크린이라 여겼던 나의 기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스크린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의 곁에서 밀접하게 있었는지, 또 그 속에 담긴 감각과 이를 통한 사람들의 생각과 의심을 얘기하며 앞으로 얘기할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독자들로 하여금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2부에서는 이렇게 다양하고 확장된 경험을 하게 하는 스크린의 다양한 장면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며 새롭게 등장한 것들도 있고, 사실은 ALL NEW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개념들도 있다. 아날로그-디지털 시대의 과도기를 모두 경험한 작가만큼이나 나 역시도 같은 시대를 겪어봤기 때문에 (조금 늦고 어리기는 하지만) 작가가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더욱 공감을 하며 와닿기도 했다. 마냥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 그려왔던 상상의 것들이 현실로 그려지는 요즘. 무언가 예술과는 다른 '기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스크린의 본성에는 사람들의 예술과 감각이 얽혀있는 원초적인 그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강하게 들었다. 터치스크린이나 VR AR 스크린, 미디어 파사드 등 직접 겪어온 스크린의 발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포인트들 역시 함께 짚어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개인 미디어의 시대이기도 한 요즘 스크린은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스크린이 많아졌고, 과거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았던 것과는 달리 휴대폰 등 스크린에 저장하여 다시 꺼내보는 재생산 방식은 예전과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스크린이라는 소재의 무궁무진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결국은 물성을 가진 스크린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이중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것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주관을 가지는 사용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보이는 대로 그저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며 파생되는 경험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있는가? 미디어 아티스트이면서도, 스크린의 경험이 그 자체로 중립적이지 않다며 의식적으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스크린 밖에서의 시간을 가지자고 마무리하는 작가의 진심이 더욱 짙게 다가왔다. 앞으로 더 다양화되고 많아질 스크린의 시대! 현대의 스크린에 대해서 더욱 광활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
단순히 화면을 보는 기계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스크린을 예술과 철학의 관점에서 해부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벤야민과 라캉의 통찰을 빌려 응시의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탁 쳤어요. 우리가 왜 스크린 없이는 스스로를 정의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지, 타인의 삶을 전시하는 스크린 앞에서 왜 피로감을 느끼는지 날카롭게 짚어줍니다. 특히 전혀 몰랐던 예술 작품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미디어의 정점에 선 저자가 역설적으로 종이책의 여백과 아날로그적 사유를 강조하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을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해요. #스크린 #인문학추천 #현대철학 #미디어비평 #예술작품 #사유의힘 #필독서 #서평단
|
|
스크리놀로지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크린’을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감각과 사고, 문화가 교차하는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스크린을 둘러싼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술·예술·철학의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읽는 동안 스크린에 대해 ‘안다’기보다는 ‘쌓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Apple의 사례였다. 이 책은 애플을 단순히 혁신적인 기술 기업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그 자체보다도, 사용자가 느끼는 감각과 정서, 즉 디자인과 경험을 통해 어떻게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스크린이라는 인터페이스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창을 넘어, 브랜드의 감성과 세계관을 체험하는 공간이 된다는 설명은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화면 역시 이미 하나의 문화적 장치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 책의 저자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현진이 자신의 작업을 직접 예로 들어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론서에서 흔히 느껴지는 거리감 대신,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미디어 아트가 제작되었는지, 그 기술적 과정과 함께 어떤 문제의식과 의도를 담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그 설명 덕분에 미디어 아트가 단순히 ‘보기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동시대의 스크린 환경을 사유하는 하나의 언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스크리놀로지는 스크린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 안에서 어떤 감각을 잃고 무엇을 새롭게 얻고 있는지를 차분히 묻는다. 그래서 이 책은 미디어나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스크린에 둘러싸인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충분히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책을 덮고 난 뒤, 화면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 독서는 분명 오래 남을 경험이었다. #을유문화사 #스크리놀로지 |
|
#스크리놀로지 #이현진 #을유문화사_서평단 #도서제공 이책은 오늘날 스크린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에 이 매개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또 우리의 정신적 태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지 함께 성찰해 보자는 저자의 제안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크린, 그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과 의미를 자각하고 각자의 고유한 에피소드와 해석으로 확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한다. 저자가 경험한 스크린 감각들과 스크린 장면들을 이야기 해나가며 이론적으로 불어간다. 스크린 감각들을 이야기하는데 거울과 창문을 제시하며 회화를 통해 풀어가는게 반갑고 재밌었고 회화를 통해 경험하는 거울과 창문의 다양한 의미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그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스크린의 속성들을 알아간다. 책에 코드를 찍어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게 하여 매우 흥미롭다. 저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문화적 기술적 스크린의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내 자신이 다양한 스크린 장면들을 경험했더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겠다 생각되면서 내 주위에 마주하며 지나가는 많고 다양한 스크린 장면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각자가 경험하는 스크린 장면들은 지역과 세대와 개인의 생활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는 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만들 수도 있는듯 하다. 평면 스크린에서 입체 스크린, 움직이는 스크린, 터치스크린, 가상을 체험하는 스크린, 투명스크린, 홀로그램, 실감 미디어, 미디어 사파드,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스마트 폰과 sns, 그뒤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우리 삶에 더욱 깊이, 밀접하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마주하는 스크린 장면들 흥미롭기도 하고 매우 큰 편리함과 유익함, 재미와 감동,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의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가상적인것 이상적인 것에 매몰되게하며 사고하고 선택하는 것을 맡겨버리게 되는 상황들에 대한 우려와 경고들, 지켜져야할 경계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
조금 어렵고 딱딱한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 재미있고 몰입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은 ‘스크린’에 대해 철학적 정의를 시도하는 부분이었다. 앞쪽에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왔는데, 1부 스크린 감각들 중에서도 1장과 2장에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나왔다. 각 장의 제목은 ‘투명한 창문과 반영하는 거울’, ‘불투명한 창문과 왜곡된 거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묘사는 모두 스크린을 나타낸다. 우리는 스크린을 생각할 때 그저 어떤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매개체, 그러니까 존재감이 거의 없고 콘텐츠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볼 때, 그 영상 내용에 집중하지 휴대폰 자체에 집중하진 않는다. 그러나 각 장의 묘사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당연히 어떤 스크린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휴대폰으로 영화를 본다면 이동하는 환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이 적고 언제든지 내가 시작하고 멈출 수 있다. 반면 영화관은 아무것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간, 심지어는 화장실을 가거나 불을 켜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두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차별점이 생기는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매개가 ‘매개’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마치 번역처럼. 홍한별 저자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를 최근 읽고 있어서 그런지 스크린을 번역으로 바꾸어 서술해도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몇 있었다. 불친절하지만 사실적인 직역과 친절하지만 원문과는 많이 멀어진 의역 사이 무엇이 더 정답이라 말하긴 어렵다. 스크린 역시 수동적인 상태로 그저 묵묵히 입력과 출력을 반복할지, 아니라면 스크린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방식의 전달을 이뤄낼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스크린은 능동성과 피동성이라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지닌 대상이다“라는 한 문장이 이를 설명한다. 나는 도수가 없는 블루스크린 차단 안경을 끼는데, 이것만 껴도 보이는 것들이 약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아직도 이북 리더기로 책을 읽을 때,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데’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티비를 보다가도 이를 끄고 부러 폰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의 여러 스크린 경험 속에서도 난 이미 스크린으 조금씩 감각하고 있다. 문득 이질감이 느껴질 때, 책의 내용이 파편처럼 떠오른다. *도서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