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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렇게 심란해지는 책은 또 처음이다 쉬워서 술술 읽히는데 넘 내 얘기 같아서 턱턱 막힘 ㅠㅠ 30대로 들어서며 자취 10년차가 되니 버티다 보면 삶이 좀 나아지겠지... 연봉 좀 오르고 그러면 더 사람답겠지... 했는데 다들 그렇게 버티고 살고 있었고 살아간다는 게 너무나도 충격적 가끔 돈 많이 벌고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선배인데도 묘하게 인간적 여유가 없어보여서 돈으로 커버 못 치는 생활력이라는 게 있나? 생각했던 적 있는데 여기에 그 답이 다 있는 것 같다...... 답까진 아니고 삶에서의 실마리라도 좀 보이는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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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존재다. 근래 자유를 추구하며 비혼을 선택한 개인들이 많아졌다면, 이 또한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그 누구도 순수하게 혼자서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결혼을 '안' 했든 '못' 했든 그것은 한 사람만의 선택도 아니고 한 사람만의 책임도 아니다.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대단히 큰 차이다. 그냥 이 사회를 충실히 살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된 것, 그것이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얼마 남지 않은 설날, 왜 결혼 안 하냐고 또 물을 큰아버지 얼굴에다 던져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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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프로그램 통해서 읽게 된 전업자녀. 이 책의 저자는 굉장히 전업자녀에 대해 희망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느낌상 저자는 전업자녀의 부모이지 않을까 싶다. 전업자녀의 범위를 확실하게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단순 백수 혹은 캥거루족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해야할까. 일을 하면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 전업자녀를 과연 나쁘게만 볼 수 있을까. 일을 하면서 독립하지 않은 자녀들을 전업자녀로 부르는 것인지 혹은 부모의 돈과 시간을 향유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를 전업자녀로 할것인지. 제대로 정의해주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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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50여년을 혼자서 차분하게 살아온 입장에서, 그저 다른 이들의 홀로 사는 태도에 대해 알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내 삶의 주인공 노릇에 만족하며, 이런 나의 일상에 감사하는 내 입장이 대중적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른 거야 그저 그 방식을 존중햐 주면 그 뿐이니. 이 책을 읽고 내 삶의 만족도와 지존감이 더 좋아졌다.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일상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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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전영수 교수의 ‘전업자녀’를 재미있게 읽었다. 현재 한국사회를 정확히 분석하면서 ‘전업자녀’의 선택을 평생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축적했으나 다가오는 노년이 불안한 부모, 그리고 경쟁이 격화되고 추정소득도 불확실한 시기에 분명한 용돈과 주거 보호막을 받고 대신 부모 봉양이란 의미있는 의무를 선택하는 자녀란 매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트레이드 오프로 ‘전업자녀’란 현상이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 중요한 보통의 트랜드가 될 것이라 예견한다. 과거의 한국은 인구증가-노동집약-교육특화-우수인재-도시집중-집적효과-고도성장 , 서울중심자원집중, 학력특화성공, 고비용형가족결성, 성차별적육아환경 의 구조였다. 현재는 생존전략이 확장이 아닌 위험회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모델로 얻을 부가가치 자체가 줄어들었다. 거센경쟁에 비해서 얻어낼 성과가 적다. 결국 결혼과 출산이란 가족분화는 고위험, 저수익의 선택이 되었기에 포기하는 청년이 늘었다. 과거 정규직, 대기업, 복지, 연공서열, 종신고용은 가족분화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췄지만 지금 이 약속과 희망이 깨졌기에, 가족을 만드는 것은 도박이자 위험이 되었다. 이제 전업자녀는 낙오된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자 나이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익의 트레이드 오프가 되었다. 독립적 분화보다 동거합체가 유리한 사회다. 자녀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부모와 살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훗날을 도모하고, 부모는 자녀의 불완전한 독립보다 안전을 확보하고 가사와 돌봄을 대신 제공받는 교환을 하며, 외부로 자본소비를 하지 않는 내부소비를 완성한다.
이제 ‘가사와 용돈의 맞교환’이 일어난다. 가사를 미안해하면서 부탁하지 않고, 당당히 용돈을 받고 가사를 담당한다. 어른이 되고 교육이 끝난 후 집에 남아있는 열등한 자식이 아니라 부모, 자식 모두 생존이 힘들어진 이 세상에서 유용한 생존전략이 ‘전업자녀’가 되었다. 한국 특유의 내리사랑과 가족내 상호작용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90년대생 부모의 탄생은 이를 가속화한다. 밖에서 위험하기보다 안에서 행복하길 먼저 제안한다. 사회의 저성장화는 본인만족형 전업자녀란 형태를 서로 선택하게 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관찰되는데, 일본에서는 ‘아이방’이라고 부른다. 독립하지 않은 중년자녀가 학창시절 지내던 방에서 계속 생활하는 경우다. 히키코모리와 다른게 직업이 있고 일상생활은 정상적이다. 한국의 전업자녀 출현배경은 취업난, 비정규직의 양산, 주거비용의 급증, 비혼, 내리사랑, 과잉보호, 자아정체감 형성지연, 자율성 부족과 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것들의 복합으로 저자는 일종의 불가피한 트렌드로 본다. 처음에는 저성장속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내리사랑 부모의 의지로 ‘과보호’가 더해지면서 독립을 포기하고 서로의 동의로 전업자녀를 선택한다. 앞으로를 조망한다. 일본이 8050 문제를 넘어서서 9060으로 넘어가고 있다. 50대 자녀의 무직빈곤과 자택고립, 80대 부모의 연금소득에 의지, 유병생활의 노년의 부모에 대한 간병으로 더 이상의 의미있는 50대의 사회생활 어려움. 이어져서 이제 50대 자녀도 자기 돌봄이 힘들어지는 9060으로 넘어간다.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다. 현재 세대는 그래도 ‘전업자녀’의 등장으로 부모가 축적한 재산을 서로 쉐어하면서 외부에 간병과 돌봄을 의지하지 않고 부모의 돈을 자녀가 용돈과 생활비로 함께 쓰면서 ‘지나친 저축’으로 인한 사회적 돈잠김도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대가족형 가족복지 사회에서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1인복지에서 그 비용은 자녀에게 지출하는 내부소비형의 새로운 신가족복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시장비용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대세가 되면 이 선택은 이상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은 불행하지 않다. 삶의 기대치를 낮추면 충분히 만족도는 유지된다. 회사에서 적은 돈을 받고 구속당해 사느니 집에서 자유롭게 나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부모와 나답게 살겠다는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전업자녀가 나이들었을 때다. 이들은 비혼, 직업없을 가능성 높음, 자산축적이 부족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업자녀의 부모가 사망하고 이들이 노인이 되면 그들을 돌볼 사람은 누가 될까? 그게 30년정도 후의 불안이다. 지속적 세대순환이 전업자녀 형식의 두 세대 동거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전업으로 하는 마지막 세대이지만 자신은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서른 넘어 자기 방에서 코골고 자다가 게임하다가 차려주는 밥먹고 가끔 알바하면서 용돈벌이하는 자식이 실은 나중에 내가 노쇠해졌을 때 병원 같이 가고, 집안일 같이 하고, 외로움을 덜어줄 그럴 귀한 자식이 될 수 있다. 내가 젊을 때 마련해 놓은 이 집에서 어릴 때부터 쓰던 방에서 지내면서, 내 연금과 저축으로 함께 생활하면서. 그게 자식과 부모 모두, 인생실패가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가능한 선택,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이 ‘전업자녀’에서 말하는 부분이다. 안심이 되는 것인가 서늘한 것인가. |
| 김수영 저자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 책을 구매하였다. 사회는 핵가족화의 폭발적 증가와 혼술, 혼밥은 이제 옛말이 된것처럼 일상화되었다. 이제 결혼을 기피사는 지금 노후 준비도 혼자해야되고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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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내가 만난 1인ㅊ가규들은 하나같이 일에 헌신~> 이런 표현들이 자주 나오니까 "그냥" 혼자 살고 싶어하는 입장에선 난 딱히 일에 미쳐있지도 않고.. 직업도 워라밸이 없는 일도 아니고.. 한데 뭔가 일에 미쳐있거나 여가시간을 자기계발에 쓰지 않으면 비혼하면 안될 거 같은 기분을 들게 해서 괜히 구매했나. 그냥 빌려볼 수 있거나 구독서비스에 뜨면 기다렸다 볼 걸 싶음. 혼자사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는데.. 나는 오히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벌어야 할 거 같아 그냥 적당히 부지런하면서 적당히 게으르게 살고싶어서 결혼생각이 없는건데.. 인터뷰이들이 빡센 업계들이라서 그런가.. 딱히 공감은 가지 않았고.. 다만 1인가구의 불안한 측면을 인지해서 이런류의 책도 한번 보다보면 미리 준비할만한 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책도 그렇게 읽어본 거였는데 결론은 뭐 똑같다. 혼자여도 돈만 있으면 다 되는거 아니라니까? ㅇㅇ 근데 있으면 더 좋음. 돈공부 잘하고 예방이 치료보다 싸다는 마음으로 건강가꾸며 사는 것.. 근데 이건 사실 1인가구 핵가족 대가족 어떤 모습이든 다 당연하게 적용되는 내용이라.. 이런 책을 본다한들 기본원칙은 달라지는 게 없고 굳이 찾아서 읽어볼만한 필요성은 없어보임. 구매는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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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혼자를 선택한 것일까. 혼자 산다는 것은 곧 고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혼자 살아가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립심일까, 아니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일까.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1인가구 천만 시대의 풍경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는 2019년부터 100명의 1인가구를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나이와 직업, 경제적 조건은 서로 달랐지만 그들의 삶에는 공통된 불안이 흐르고 있었다.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생활의 문제, 충분히 쉬지 못하는 일상, 그리고 아프거나 늙거나 죽는 순간까지 혼자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저자는 1인가구의 증가를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비혼과 개인주의의 확산뿐 아니라 노동시장과 주거환경의 변화, 가족구조의 재편, 경쟁과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사회의 압력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되었다. 문제는 삶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회의 제도와 돌봄은 여전히 가족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사회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왜 혼자 사는가’를 묻지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가일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립’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었다. 혼자 벌고, 결정하고, 해결하고, 견디는 능력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은 약해질 수 있다. 자유로운 시간마저 초과근무와 자기계발로 채워지고, 자기관리는 다시 일을 잘하기 위한 또 하나의 노동이 된다. 이 지점에서 1인가구의 문제는 현대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서 외로움과 돌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배달과 세탁 같은 생활의 번거로움은 줄일 수 있지만, 돈은 관계와 돌봄까지 자동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살림’의 의미가 오래 남는다. 살림은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게 하는 기본적인 돌봄이다. 아프고 지친 순간 누군가 밥은 먹었는지 묻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생활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거창한 돌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선의만이 아니다. 이웃과 지역공동체에서 안부를 나누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관계망, 즉 사회자본이 필요하다. 혼자 사는 사람을 고립된 개인으로 남겨두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연결된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반이다. 책은 가족의 의미도 다시 묻는다.
가족을 혈연이나 법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책임지는 행동으로 바라보면, 1인가구를 가족 밖의 존재로만 볼 이유는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모두를 다시 가족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담당해온 돌봄의 기능을 사회 전체가 나누는 일일 것이다. 고독사에 대한 논의도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존엄한 죽음은 죽는 순간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봄을 주고받으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기억되고 있다는 감각을 가질 때 비로소 준비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혼자 사는 데 생각보다 지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가 편하다고 믿었던 시간이 사실은 ‘괜찮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두가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서로 기대고 보듬으며 함께 살아갈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1인가구를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확장한다. 누구나 생애의 어느 순간에는 혼자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더 강해지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혼자여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다. 독립을 존중하되 고립을 방치하지 않는 사회. 개인의 선택을 인정하되 관계의 단절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는 사회.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 책을 덮으며 ‘혼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삶이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오래 남았다. 혼자 살아도 좋다. 혼자 사는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혼자인 듯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에게 닿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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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지 4년차 직장인이고, 30대 중반입니다. 돈을 더 벌고 승진하고 혼자 살면서 내 살림을 꾸려도 왜 이렇게 사는게 팍팍할까. 앞으로 결혼을 못하면 어쩌지. 그럼 어떻게 살지? 내가 죽으면 사후 처리는 누가 해주나. 이런 생각 한번이라도 해보셨으면 읽어보세요. 그냥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더 외로워졌다면, 혼자살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어딘가 마음이 구깃해졌다면 여기서 그 이유와 길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고 사회가 조금 더 서로 서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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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제목 보고 바로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원래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편하고, 좋아하는 편이라서 제목부터 좀 공감이 갔다. 책 내용도 그런 내 생각이랑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점점 혼자 살게 되는지,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 혼자 있는 걸 특별한 상태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하나의 기본값처럼 보는 시선이 괜찮았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같이 내향적이고 혼자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좋게 보지 않는 사회라 내향성을 감추려고 노력도 해봤다. 그런데 사람의 다양성이 점점 존중받게되고 이상함이아닌 한 타입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걸 보면서 조금 더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느꼈는데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차분히 잘 정리해준 책이다. 읽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꼭 외롭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 단순하게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생각도 정리되고, 내 리듬대로 살 수 있다는 부분은 원래 내가 느끼던 삶이었고, 그래서 이 책이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한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던 걸 좀 더 정리해서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책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걸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책이랄까, 혼자 있는 삶이 좋아도 결국 관계가 아예 없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얘기도 있어서 그 부분은 조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혼자 잘 지내는 것과 완전히 고립되는 건 다른 점이라는 부분은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혼자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걸 편하게 받아들이게 해준 책이었다. 읽고 나서도 부담스럽기보다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라고 정리하고 인생에 마저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 강력추천!! #필연적 혼자의 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