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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 전진성(2017.04.16.)
![]() 역사나 기억은 과거이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관념의 일종이다. 나는 왜 존재하지 않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인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며 가끔 생각한다. 밖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노는 것 보다 몇 백년 전, 몇 천년 전의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 보다 유독 기억력이 좋았다. 그 덕분에 게으름과 착실하지 않은 학교생활에도 교대를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 한국 독일 사학회 학술대회가 있어 가보았다. 뭔가 큰 의미보다는 가까운 대구에서 있고 주제가 독일의 역사교육에 대해 하기에 가 보았다. 그곳에서 전진성 교수님을 처음 뵙고 이야기를 들었다. 모교의 교수님이지만, 졸업한지 오래되어 한번도 수업을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의 강의나 평소 논문을 읽어보니 대략적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논조로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지난겨울 광화문에서 역사와 기억에 관한 교수님의 책을 보자 사게 되었다. 이 책은 역사학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독일의 기억문화와 기억에 관한 부분의 여러 참고 문헌을 소개한다. 1부는 역사학의 비판적 성찰로 기억이론을 가져온다. 과거 역사학은 정치사와 거대 담론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세계 대전이후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역사적 사건의 수가 줄어들고, 정보화 사회의 발전으로 역사의 사적 체험이 중요시 되었다. 이는 역사가 문화재산업이나 역사산업 등 자본주의와 결합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 가지는 기억과 체험은 공적 역사와 다르다. 따라서 개개인의 역사적 체험과 기억을 살피고자 하는 방향이 떠오르고, 이전에 이야기 하던 신문화사와 같은 궤적을 하게 된다. 저자는 기억에 관한 부분을 ‘문화적 기억’과 ‘기억문화’의 두 개념 중 기억문화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어떤 사회 전반에 펴져있는 집단기억이나 문화가 기념비나 박물관, 역사 서술 등의 영향을 미치고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소수 권력층의 도구로 사용되는 위험을 지적한다. 이런 지적은 이미 신문화사의 많은 학자들 경고하였으며, 문화사 연구에서 필연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기억은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적 행위이며 과정이다. 이는 “역사는 현재와 대화이다.”라는 명제와 같은 뜻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세우는 일이며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다. 그렇다면 기억과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 기억은 개인이나 집단의 체험이고 역사는 기념비적 사건 또는 구조적 전개이다. 기억은 상상력이나 기억술에 의해 재현되지만, 역사는 증거의 분석과 논증을 통해 재현된다. 기억은 그 형식이 이미지가 감성적이며 일상적이다. 그러나 역사는 지식을 통해 지성적이며 추상적이고 강제적이다. 19세 역사학의 부흥으로 역사는 과학적 기법을 통해 논리성을 가지고자 하였다. 이는 지나치게 역사를 객관화하려고 하고 20세기 반역사주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던으로 집단기억이나 다른 사회 문화의 연계성을 약하게 하였다. 최근 예술, 문학, 정치 등 새로운 연관을 통해 역사를 살피고자 하는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내러티브적 구조와 성격을 가진다. 즉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며 이야기 방식의 성격을 가진다. 미셀 푸코는 이때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조는 내용보다는 형식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역사는 그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이 ‘진실’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변증법이 필요하다. 친일 청산, 과거 청산... 역사에서 과거 청산은 필요한가 한때 김영삼 정부에서 과거청산을 크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청소하듯 과거를 씻어내거나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 과거에 대해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극복해 나가는 ‘과거극복’을 말한다. 과거 독일에서 나치 시기의 재앙을 마주보는 것을 의미한다. 아픔에 대해, 부끄러움에 대해 피하거나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보며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글을 쓰는 오늘도 세월호가 떠난 3주년이 된다. 세월호가 가진 아픔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그만하자...”, “해난 사고일 뿐이다.” 과연 이런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우리 사회가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처리 될 것인가 나아가 위안부, 5.18, 4.19, 6.25 등...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합의되지 않은 기억과 경험이 남아있다. 우리는 이들을 애도하며 상실의 아픔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 그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이런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승화시켜 나가며 위로할지 고민해야 한다.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애도하고 위로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지난 일이니 덮어두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역사를 이렇게 쓸 수는 없지 않은가 500년 전 조선 시대에 사회적 아픔이 될 수 있는 사건을 임금이, 관료가, 이렇게 말하고 역사에 덮고 가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과거극복을 위해 ‘애도(mourning)’가 필요하다. 애도는 다른 사람의 상실을 지속적으로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착을 의미하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두며 지속적으로 관심과 연민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즉, 과거 희생자에 대해 잊지 않아야 하지만, 정치적 미화나 이용을 경계하며 그들의 죽음과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2부의 독일의 기억문화에서는 홀로코스트와 나치와 관련된 기억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도 과거청산, 친일, 민주화와 독재 등 가까운 근현대사에서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계층이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독일의 국수주의적 기억문화의 비판을 설명하며, 홀로코스트의 기념비를 통한 과거의 상흔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어떤 역사적인 곳을 방문하며 꼭 정면에 큰 기념비들이 있다. 국립 4.19묘지라든지, 국립 현충원이라든지.. 이런 기념비들은 그 곳의 행위와 특징을 잘 나타낸다. 여기서 죽은 자에 대한 숭배는 산 자를 위한 것이고, 과거는 현재에 봉사한다. 이곳에 죽어 있는 고귀한 희생을 부각시키며... 이런 기념비는 승전을 통한 위대함, 신화를 향한 기억, 슬픔을 나누는 기억 등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저자는 독일의 여려 형태의 기념비를 통해 과거를 어떻게 제시하며 극복하려는지 보여주고 있다. 2부의 내용을 구제적인 예시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여겨 보고 생각할만한 내용은 1부의 역사학과 기억에 관한 폭넓은 설명이다. 4.16을 즈음하여 읽던 책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다시 몇 번 더 정독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길의 방향이 기억과 인식,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되는지.. 역사 인식과 문해이다 보니 나의 끝없는 숙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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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담론을 태동시킨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양측은 모두 근대성의 위기를 지적하며 과거에 대한 종래의 역사적 사고방식을 재고하도록 종용한다. 과거의 지평은 이제 합리성과 객관성, (자기도취적인) 주체성의 영역을 넘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천적 결론에 이르면 양측은 매우 대조적인 노선을 취하게 된다. 기억담론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향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한족은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려는 반면, 다른 쪽은 과거를 재신화화하려고 한다. 과거의 전유를 놓고 벌이는 이와 같은 이념 경쟁은 이와 관련된 제반 영역들, 즉 박물관, 기념비, 기념식, 역사 드라마, 역사화(歷史畵), 역사교육 그리고 역사학 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중 시간의 과학을 자처해온 역사학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역사의 진행이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로 상정되는 데 반해, 기억은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주목하게 된다. 과거의 재현이란 다지 개별적 인식 행위만이 아니라 문화를 전승하는 현실적 과정에 속한다. 이야기 구성을 통해 각 문화의 고유한 성격과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억의 문제는 단순히 역사의 객관성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 문화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보다 진전된 이해를 촉구한다. 기억의 문제는 양면적이다. 그것은 역사의 중심성을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진보적 가치와 맥을 같이하지만 다시금 뿌리 깊은 문화적 정체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보수주의적 가치와 연계된다. 역사학 영역에서 진보적이고 보수주의적인 기억담론이 가장 치열하게 맞서는 지점은 바로 타자의 문제이다. 타자의 다름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자기정체성을 재고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진보적이다. 역사학은 줄곧 민족정체성의 형성을 본원적 목표로 삼아왔고 이를 위해 소수 엘리트의 주체적 의지를 애써 강조하며 이것의 계승을 역사의 연속성으로 규정해왔다. 이제 역사학은 이러한 기억의 서열을 철폐하여 민족적 타자, 사회적 타자, 시간적 타자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타민족의 과거, 주변인의 과거, 현재와 무관한 아득한 과거는 더 이상 적대적 시선을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애도(mourning)' 개념에 따르면 과거의 희생자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미화되어서도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그들의 죽음과 고통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희생자를 기억한다함은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보다는 상실의 아픔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은 고인의 넋을 기리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로 자리매김됨으로써 오히려 간접적이나마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규범적 전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35쪽
- 홀로코스트라는 非 의지적 희생자(유태인 등)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4.19나 5.18의 희생자를 동일선 상에서 이해하는(혹은 애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