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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 요즘 정명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화정'이 방송 중인 걸로 아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도 제목에 '화정'이 붙어있다. 화정(華政), 빛나는 정치라는 뜻이지만 정명공주의 삶과는 다른 정치인데다 정명공주가 쓴 '화정'이 유명해서 이런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드라마는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화정, 정명공주'라는 제목과 달리 앞부분의 반 이상이 선조와 광해군, 인목대비와 광해군의 갈등이 조명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명공주의 고난은 선조와 광해군, 인목대비와 광해군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에서 파생됐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정치구조상 공주는 권력다툼에서 종속변수였다. 주 갈등은 누가 보위에 오르느냐를 두고 부왕과 세자인 광해군, 그리고 정비인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의 존재가 광해군의 세자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권력 싸움에서 정명공주는 권력투쟁의 결과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존재였지, 주변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선조의 사후 광해군이 왕이 된 뒤 정명공주의 삶은 바늘 방석 위에 앉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공주는 평생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흙 한번 안 밟고 호의호식하면서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년까지는 마음 고생에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고 펼쳐졌던 것이다.
선조 사후 광해군이 왕이 된 뒤 인목대비와 영창대군,그리고 정명공주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세자시절 영창의 탄생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광해군은 즉위한 뒤에도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에게 경계의 눈을 풀지 않았으며,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만다. 그리고 영창은 불과 여덟살의 나이에 강화도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인목대비가 생명을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딸 정명공주 때문이었던 것이다. 자신마저 없으면 정명공주를 지켜줄 이가 없을테니. 이 시절에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는 서예로 마음을 달래고 수양을 쌓았으며, 조선 여성중 최고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전 중전이 낳은 아들이 떡 버티거나 세자가 있는 상황에서 계비가 되는 게 얼마나 살벌할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계비로 중전이 되고 아들낳고 딸낳은 죄밖에 없는 인목대비가 너무 안스러웠다. 친정 아버지며 남자 형제들은 역모 혐의로 끔찍하게 죽고, 가문은 멸문에 가까울만큼 피해를 입게 되고, 어린 아들마저 죽음을 당하고 마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중전이 된 것을 가슴 치며 후회했을 것이고, 마지막 남은 혈육인 정명공주만큼은 어떻게든 지킬 방도를 궁리했을 것이다. 인목대비의 입장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나같아도 피를 토하고 죽거나, 아니면 논개처럼 광해군을 안고 강물에 투신하고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정명공주 입장은 또 어땠을까. 어리다고는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의 처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고 인목대비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가졌을 테니, 아마도 선조사후에 정명공주는 애어른이 돼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군의 즉위로 대비와 공주에게만 비극이 펼쳐져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궐은 복마전을 방불케했다. 궁녀들은 상전과 운명 공동체나 마찬가지였는데,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뒤 인목대비를 지근에서 모시던 충성심 깊은 궁녀들도 무더기로 희생됐으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함께 견디며 인목대비와 공주 궁녀 사이에 유대감은 철옹성처럼 단단해져갔다.
그리고는 인조반정. 하루아침에 상황은 180도 급반전해, 인목대비가 칼자루를 쥐게 되고 광해군의 목숨은 경각에 달리게 됐다. 인조로서는 자신의 반정에 정통성을 부여해줄 인목대비와 정명 공주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는데, 특히 정명공주가 혼인할 때에는 과도하다고 할 만큼 많은 땅과 허용치를 훨씬 넘는 집, 재물을 하사해주었다.
정명공주는 당시로선 혼기가 많이 늦은 21세에 혼인했는데, 풍산 홍씨 홍주원과 연을 맺게 됐다. 문제는 홍주원에게는 이미 혼처가 있었다는 것. 조선시대에서 정혼했던 남자와 파혼한 사대부 여인의 앞날이 어땠을 것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기에 인목대비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권력이란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건지. 이번에는 인조가 대비와 공주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내려고 한다는..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추궁하지 못했지만 인조는 내심으론 전같은 예우를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차 대비가 세상을 떠나자, 정명공주는 인조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세상사에 관심을 끊고, 가사에만 매진했다. 극도로 몸을 낮추며 숨을 죽이며 살 수 밖에 없었으니 광해군 시절과 같은 암흑시절이 다시 닥친 셈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정명공주 편이었나 보다. 인조가 승하했고, 그 뒤에 즉위한 효종, 현종, 숙종으로부터는 왕실 최고의 어른으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거기에 가정적으로는 7남1녀의 자손을 낳았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한 장수를 누려,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에서 가장 오래 산 공주였다고 하니, 중년까지는 파란만장의 연속이었지만 말년만큼은 평탄하고 다복하게 복을 누렸던 것이다.
예전에 거리에서 파는 간단하게 정리된 내 성씨 족보를 산 적이 있다. 그 족보 서문에 우리 집안에서는 중전을 한명도 배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레 내세우고 있어서 간택이 못된 걸 이렇게 미화하나..싶어서 혼자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동안 아..그게 정말 잘한 일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권력의 생리를 아는 집안이라면 딸을 궁 안에 보내고 싶을까, 호랑이 굴안으로 떠다미는 것하고 뭐가 다르지 싶었다. 왕자를 낳아서 왕의 처가, 왕자의 외가 그리고 차후에 왕의 외가가 돼 누리는 권력이 탐나기는 했겠지만 차마 딸을 궁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왕과 나이 차 많이 나는 계비라면.. 아마도 내키지 않았지만 신하된 도리로 눈물을 머금고 중전이 되게 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인목대비도 그렇고 정순왕후도 그렇고, 아무리 왕비라지만 그 꽃다운 청춘에 나이차 많은 지아비라니 그것도 자의로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청춘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공주의 운명은 중전에 비하면 풍파가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명공주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말년을 평화롭게 보낸 것은 다행이었는데, 그것은 인목대비나 정명공주가 인조 반정 성공후 보여준 복수를 절제한 것으로 받은 보답이 아니었을까. 정명공주보다는 인목대비의 결정이겠지만, 대비는 자신을 배신한 궁녀들에 대한 처벌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정리했다.
권력과 가까운 거리일수록 안으로 파고들면 놀라운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 궁의 속사정은 복마전처럼 복잡다단했다. 궁녀란 상전의 지위에 의해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상전에 따른 계파도 생기고, 살아남으려고, 혹은 이익을 위해 상전을 배신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인목대비가 그런 경우를 당한 것이다. 전 왕비 의인왕후의 궁녀들을 받아줬지만, 대비에게 불리한 자백을 한 것도 이들 중에 있었는데, 그로 인해 대비는 엄청난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16명의 궁녀만 처벌하는 것으로 더이상 궁녀에 대해 치죄하지 않았으니, 유폐시절 공주와 함께 불경을 붓으로 옮기면서 수양했던 보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도 유폐생활을 겪으면서 물질의 결핍과 권력의 무서움을 체험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평소의 공주였다면 알지 못했을 세계였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공주는 생존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인조가 감시자를 붙여둘 정도로 극도로 정명공주를 의심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던 것이다.
정명공주의 존재는 왕좌에 위협이 되지 않은 공주라서 살아남았고, 덜 견제당한 면이 있다. 또, 그렇기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권력 투쟁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권력에 희생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말년에 자손 번청하고 천수를 누리는 행운의 주인공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대비와 함께 한 세월에서 권력의 힘과 부질없음 그 양면성을 파악하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남긴 '화정'은 반듯한 서체였다. 결코 빛나지 못하는 정치의 시대였음에도 그렇기에 정명공주의 '화정'은 그 고난을 넘고 기어코 살아남은 자의 바람, 권력을 빛나는 정치로 승화해주기를 바라는 정명공주의 의지를 한 획 한 획에 담아 써내려간 작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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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베르에서 출간된《화정》이후 두번째로 만나는 정명공주에 관련된 소설이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사에 더 호기심(혹은 궁금증)이 생기고 알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진다는 뜻일까? 예전에는 책으로 만족했다면 지금은 드라마가 나오면 그것을 책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예전 드라마로 <선덕여왕>을 방영될때 난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7권이나 찾아 읽었던 적도 있다. 요즘 드라마로 방영되는 <화정>을 보면서 다시금 소설 '화정'을 읽는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이해가 되려나? 소설은 소설일뿐 그것 자체가 역사가 아님을 알면서도 책을 통해 역사의 일부분이나마 알아가는 것이 재미나기에 선택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선조와 계비 인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공주의 칭호를 받은 정명공주, 광해군이 공빈 김씨가 아닌 의인왕후의 태를 빌려 태어났다면 오랜 시간 불합리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텐데,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만약이란 단어다. 후궁 소생의 광해군이 세자위에 있고 뒤늦게 정궁 소생으로 대군이 태어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면 배다른 아우라고 이뻐해줄수는 없을 듯, 그것이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멀리한 이유기도 하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입장차가 확연히 달라진다. 난 광해군 위주로 보는 편이지.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여인이 왕후로 들어왔고 어미로 대접해야 했을때 광해군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더구나 그 여인이 낳은 적자로 인해 후계지위가 위협을 받는다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하들의 반정에 의해 배다른 형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중종과 달리 인조(능양군)는 자신의 의지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어떤 형태로 왕위에 올랐다해도 반정을 통해 왕위를 차지한 사람이 왕권을 강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인조 또한 재위시절 내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던 시절, 책속의 인물관계도를 살펴보면 정명공주와 홍주원은 혼인을 했음을 알게 된다. 선조는 나이 51세에 19살의 계비 인목왕후와 재혼 일년만에 정명공주라는 어여쁜 딸을 출생했다. 왕자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출산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정명공주는 왕실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렸을때 선조와 인목왕후의 사랑을 듬뿍받아 말괄량이로 보여졌던 정명공주가 부왕의 사후 동복형제인 영창대군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되지. 정궁 출신의 후손이나 후궁 출신의 후손이나 왕에게 있어 다 같은 아들일터 선조는 왜 그리 광해군을 미워하고 차별했던 것일까? 선조와 인목왕후의 나이차가 32살이라면,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나이차는 영조가 정순왕후와 혼인했을때 그의 나이 66세요 정순왕후는 15세로 그들의 나이 차는 51세로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많은 차를 보이고있다. '영원히 번창한다'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 영창(永昌)대군은 선조의 사랑과 총애를 얻었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일찍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골육상쟁의 비극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일까? 왕위에 올라서기 위해 동복형제인 임해군을 사사하고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 또한 사사한 광해군, 그것이 단순히 그가 원해서 벌어진 일일까? 요즘 드라마 <화정>을 보면서 주변인물들의 요구에 의해 어쩔수없이 떠밀려 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의 역사를 살피면 백발백중 실패한다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대군이나 공주로 봉작받으면 그에 다른 재산도 분배받게 된다는 것이다. 광해군에게는 늘 검소함을 강조하며 재산을 주지않던 선조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에게 많은 재산을 하사했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처사다. 그들의 불화가 다름 아닌 선조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행동이다. 다행인 것은 저자 신명호가 누구의 입장이 아닌 중립적 시선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옹호하는 듯한 편파적 시선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작가로서 금해야 할 사실이다. 저자는 정명공주의 입장이나 인목대비의 입장 혹은 광해군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해주고 있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결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인목대비는 서궁(경운궁)에서 풀려나 대비의 지위를 되찾는다. 영창대군과 정명공주의 역시 신원이 회복되어 대군과 공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드라마와 달리 홍주원은 어느 처자와 정혼을 약속한 상태라는 것, 드라마 속의 홍주원은 정명공주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럼 정명공주(화의/이연희)를 사랑한 또 다른 사내 강인우(한주완)은 어떻게 되는거야? 아비 강주선(조성하)를 봐선 그들은 절대 맺어질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친구와 사랑하는 여인이 맺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이 있다. '폐모살제'가 반정을 일으킨 명분이었기에 인조가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에게 최선을 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조의 본심이었을까? 사실상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는 인조에 있어서도 불편한 존재들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소설은 소설로 봐야지 그것이 역사 자체라고 착각하며 보면 안된다. 인조반정이후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의 삶은 평안했을까? 그랬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자신과 같은 도전을 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 것을 우려했고 그의 우려는 '유효립 역모사건'으로 괜한 걱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반정의 명분이 되어주었던 인목대비의 사후 정명공주가 인조에게 찬밥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 할만하다. 서기 1603년(계묘년)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딸로 태어나 적통으로 대우받던 정명공주, 6살 나이에 부왕 선조를 잃고 광해군의 픽박속에서 10여년의 세월을 고통스럽게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정명공주가 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 6대 조선 국왕과 시대를 함께 하며 83세까지 장수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왕을 아비로 두었고 배다른 오라비가 왕으로 있다 조카 인조에 의해 폐위당하는 것을 지켜봤으며 오랜 삶을 살아온 그녀, 조선은 여인들 그중에서 왕실에서 태어난 여인들의 삶을 잘 보여주지 않았기에 후세들이 그녀들의 삶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명공주를 주역으로 하는 드라마나 소설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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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이 30세 안팎이며, 관리를 제대로 한 왕들 조차 46~7세에 불과한 시대에 무려 83세라는 나이로 장수한 여인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정명공주이다. 공주의 신분으로 이렇게 장수를 했으니 그녀가 왕실의 오랜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바라본 목격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서에서 왕실의 실존했던 여인들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기란 어렵다. 더군다나 작가의 사견과 추측, 상상력들이 개입된 TV 드라마에서 역사적 인물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꺼내들은 책이 바로 신명호 부경대 교수가 쓴 이 책이다. 그동안 조선시대 왕들의 딸들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분은 바로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가리어진 또 하나의 왕실 여인이 요즘들어서 부각되고 있는데, 바로 정명공주이다. 선조가 인목대비를 계비로 맞이하여 처음 본 자식이 바로 정명공주이고 그 다음이 영창대군이다. 하지만 이미 선조에게는 광해군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당연히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결국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지 얼마되지 않아, 영창대군은 역모죄로 처형당한다. 아들과 동생을 잃은 슬픔도 가실 새 없이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는 서궁으로 유폐되고, 정명공주는 옹주로 강등되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다. 1623년 서인 세력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내려가고 대신 인조가 그 자리를 이어 받는다. 반정으로 왕위를 이어 받은 탓에 인조에게는 정당성이 중요해고 그 역할을 바로 인목대비가 해주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인조 즉위 초반까지만 해도 인목대비와 딸 정명공주는 다시 왕실의 법도대로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목대비가 세상을 떠나고, 정명공주아 자신을 저주한다는 의심을 품게 된 인조로 인해 정명공주는 다시 고난을 겪게 된다. 이런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평온한 말년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고 하니 확실히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인 화정은 정명공주가 어머니 인목대비와 함께 광해군의 의해 서궁에 유폐되던 시절에 쓴 글씨이다. 빛나는 다스림이라는 의미의 이 화정은 결국 오늘날의 정치세계에도 통하는 글씨일 것이다. 정명공주는 단지 왕실에서 공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정쟁에 휘말려 여러 고생을 하였다. 그녀가 이 글씨를 쓴 배경에는 물론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런 정치를 보며 느낀 바를 글로 표현하고픈 맘도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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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 -생각정거장(신명호 지음)을 펼쳐들었다. 역사드라마인듯.. 조금은 생소한 제목의 드라마를 만났다. 얼마전 삼시세끼를 통해 차줌마로써의 유명세를 탔던, 실제로 초보 아닌 요리꽝 주부1인인 내가 보기에 참으로 대단한 보이는 그 차주부가.. 요리 뿐 아니라 오랫만에 선보이는 드라마가 관심이 가기도 했고, 또 역사 이야기이기에 차주부로써의 친근한 캐릭터가 아닌, 본래 갖고 있던 모델겸 연기자로써의 배우 '차승원'의 카리스마가 다시금 그리워질려던 찰라였다. 그렇게 보게된 드라마 화정.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듯 낯선 정명공주의 이야기.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통해 .. 아니 그것을 꼭 통하지 않았더라도 너무도 잘아는 명성황후, 그리고 선덕여왕.. 이정도의 여왕들만 알고 있었는데.. 정명공주라니.. 차줌마의 카리스마를 궁금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스쳐지나갈뻔했던, 정명공주. 차줌마에 대한 애정으로 의리로 화정을 켰지만.. 지루한 스토리에?? 내가 알고 느꼈던 .. 광해의 다른 느낌에.. 이내 티비는 꺼버렸지만, 잊고 지나갈뻔했던, 정명공주. 그녀의 일생이 궁금해졌다. 그것도 몹시..... 그래서 나는 생각정거장(신명호지음) 화정, 정명공주를 펼쳐들었다. 드라마의 제목을 광해군, 혹은 정명공주라 짓지 않고, 왜 '화정'이라 지었을까. 대체 '화정'은 무슨 뜻일까..
'화정'이란 華政 꽃화 빛화, 다스릴정자를 써서 '빛나는 다스림'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생각정거장(신명로 지음)의 [화정, 정명공주]의 책에 써있다.) 정명공주의 대표적인 서예작품으로.. 선조를 아버지로 인목대비를 어머니로 광해군을 의붓오빠로 둔 정명공주이니 그 삶이 오죽했을까 싶었던, 그녀의 작품 중.. 하나이다. 그녀가 쓴 서예작품에서 제목을 본땄고, (실제로 TV에서 방영중인 화정이 그녀의 서예작품에서 본따서 제목을 지었는지, 순수하게 광해의 나랏일에 대한 의미(빛나는 다스림)에 대해 지었는지 정확히 그의도를 알수는 없으나.. 나는 그리 추측한다. ) 그것이 [화정]이다. 본디 역사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 나는, 즐기기는 하는데.. 그 지식이 참으로 미약하다. ^^;; 그렇기에. 어느 역사 이야기에 듣거나 읽거나 보거나 할때 약간의 검색을 통해 미리 그 시대의 상황을 짚어보는것을 좋아한다..........기 보다. 꼭 하는 필수 코스이다. 그래야만 보다 지은이의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수 있으니, 읽던 보던 간에 아깝지가 않은 이유에서다. 그런 나의 습관(?)을 꿰뚫기라도 한듯 이책은 책을 읽기에 앞서.. 인물관계도부터 정릉동 행궁의 조감도부터 정명공주를 둘러싼 궁녀들, 그리고 년도별로 굵직한 사건들을 요약해놓은 부분들이 앞부분에 나와있어주니, 참으로 좋았다. 그동안 선조와 광해군에 대해서는 종종 접했던 부분에.. 의미와 관심을 두었던 포커스라 하면, 광해는 어떤 왕이었는지.. 어떤 정치를 폈는지.. 왜 왕이 아닌, 군으로 남았어야 했는지.. 였는데.. 오늘은, 이번 책 화정, 정명공주는.. 그녀를 중심에 두고, 중심에 두고(?) 그녀를 주변에 두고,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광해는 굉장히 리더쉽 통솔력있는 실리외교를 펼치는 맘에 드는 왕이었으나, 강단(?)없는 아버지를 둔것이 슬프고, 정통신분(적장자)이 아닌것이 아쉬웠고, 어떤 일이나 늘 그렇듯, 당시의 현실이 알아주지 못한것이 흠이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사공이 많은것이 안타까웠다. 책은, 역사 기록서같은 느낌이었다. 광해군 시대를.. 아니아니, 정명공주가 머물던 시대에 대해 상세하고도 오랫동안 조사하고 연구해 당시의 상황과 왜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는지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과 판단이 들어가.. 그것이 증빙이 되고 증거가 되어 일리있는, 논리가 뒷받침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역사책이었다. 그래서.. 그 어느때 읽었던 책보다 보다 정명공주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설명할수 있도록 유난히도 많은 주변 인물과 그들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제2대 왕비 인목대비가 생산한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인해 그를 둘러산 광해를 밀어주던 파(?)쪽의 장인 유자신의 참요 '선목제 만목제'는 마치 백제의 서동이 부른 향가 '서동요'의 느낌이 났으며.. 서동요보다 머리를 더 굴리고 굴려 만들고 부렀을 모습에 웃음까지 났다. '선목제 만목제'로 인해서건 아니건간에.. 임해군은 세자간택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영창은 죽음을 맞이했으니, 뭐 어쨌든 유자신의 잔머리는..통한 샘이랄까.. 그의 잔머리도.. 절대 지은이 신명호님이 풀어 해석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난 절대 알수 없었을.. 참요 '선목제 만목제'의 의미도 알고, 조금은 신선한 책이었달까.. 물론 어리디 어린 영창대군의 죽음은 같은 어미로써.. 그 많은 부와 명예가 무슨소용이라 싶을만큼 가슴이 저며왔고, 자식의 죽음을.. 후에.. 후에.. 알게 되어 그 고통이 이루말할수 없었을 인목대비의 아픔이 너무도 가슴아팠다. 그리고, 어렸다해도.. 선조의 죽음이후 눈치가 있었을 어린 정명은 동생의 죽음과 오빠 광해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 그리고 엄마 인목대비를 통해 느낌과 눈치라는것으로 불편(?)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을테니.. 그 역사적 상황만으로도 불편하다. 한시대를 살면서 동생을 잃고, 강등도 당해보고, 서궁 유페에 ... 또 다시 신분 복권. 이렇게 많은 일들 겪으면서도.. 그녀는 83살까지 살아남았다. 당시 83세라하면.. 장으로 장수한 나이라 한다. 게다가 실제로도 조선최장수 공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살아남았지만, 죽은듯 죽은것처럼 살았던 그녀. 그녀는 그렇게 숨어살면서도 당대 여성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될 만큼 힘있는 뛰어난 필체를 갖고 있었다 하지, 전해내려오는 그녀의 작품 중 가히 칭송받고 있는 것이 바로, 아래의 '화정(華政)'이다.
그껴지는가.. 83세를 살면서 부귀영화도 누려고, 온세상 사람들의 사랑도 받아 보고, 철없을 나이의 동생의 죽음과 신분의 강등. 그리고 살았으되 죽은것처럼 살았을 그녀의 83년간의 인생이. 희노애락이... 정명공주.. 그녀가..느껴지는가... 정명공주. 그녀가 바라던 꿈꾸던 빛나는 다스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화정... 빛나는 다스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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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광해,인조시대의 험난한 시대를 살아낸 정명공주의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만나다 <화정,정명공주>
선조와 광해군의 이야기는 임진왜란을 통해 잘 알려져있지만 정명공주에 대해서는 드라마를 통해 만났기에 호기심수준의 관심정도만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화정을 챙겨보기에 책 <화정,정명공주>을 재미있고 스릴있게 읽었다 책을 읽기전에는 드라마와 비슷한 소설일꺼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화정,정명공주> 는 역사적사실을 비교적 자세히 이야기 하고 있었다 역사기록을 토대로 정명공주가 살아낸 선조,광해,인조임금의 불안했던 조선시대이야기 이기에 역사적 사실속 정명공주의 이야기도 읽는 동안 긴장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특히 영창대군이 폐위되고 16살에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21살 5년을 살아낸 이야기는 인조반정 으로 신분이 회복되고 공주의 신분이 되어 결혼을 하고 부귀를 누리며 행복하게 잠시 살다 유효립역모사건으로 위기를 맞는 부분에서는 정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목대비가 죽자 이번에는 인조반정을 정당화 하기위해 지나칠정도로 배려와 비호를 보이던 인조의 의심속에서 살게된다 그래서 인생의 절정기인 30대와40대를 서궁유페 10년보다 더 숨을 죽이고 살아낸다 책의 중간 중간 역사기록내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명공주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삶의 긴장감이 반감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라마 화정과 다른 점은 21살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되는 정명공주의 부마인 홍주원은 실제역사에서는 혼인녀가 있었지만 간택령에 의해 파혼을 하고 정명공주와 결혼을 한다는 것 이다 드라마에서는 정명공주가 일본에서 화약가술을 익혀 온갖고난을 이겨내고 화기도감에서 남자로 위장해서 활약을 펼치지만 실제역사에서는 16살에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서궁에서 인목대비와 21살 5년을 살아낸다 하지만 정명공주의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같기에 드라마 화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다 그래서 실제 역사에서 삶을 살아낸 정명공주의 삶을 알게 되면 드라마가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책에서 인상깊었던 것중 하나는 임금이 된 광해의 복수와 신분을 회복한 안목대비와 정명공주의 복수의 끝이 달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정명공주가 중년이 되어 깨달은 타고난 운명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음을 운명을 바꾸기 위해 팔요한 것은 굿 과 불공이 아니라 효경과 공손이 라는 글 에서 정명공주의 지혜로운 처세술을 알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서 암울하고 혼란스러웠던 선조,광해,인조임금의 시대를 살아낸 정명공주의 이야기여서 긴장감을 가지고 읽었던 책이었다 드라마 화정에서의 정명공주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책<화정,정명공주>에서의 정명공주도 만나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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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텔레비젼에도 방영이 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가고 궁금했는데, 험난한 시대를 잘 살아낸 우리의 '정명공주'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이 책을 통해서 즐겁게 선물받는다는 기분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저자이신 신명호 님은 조선의 왕실역사 전문가로 손꼽히면서 조선시대의 왕실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17세기의 왕실에서 펼쳐지는 모략들에 힘든 인생을 살다간 정명공주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 선조와 광해군 시기를 살아내며 힘겨운 삶에서도 어떤 이겨냄의 과정을 거치는지 자세하게 이야기 속으로 초대되는 기분이 들어요. 음모들 속에서도 정명공부는 정말 잘 견디며 살아내서 여든이 넘는 나이까지 장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처세들로 힘겹게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알 수 있어 더욱 집중하여 들여다 보게 됩니다. 이러한 정명공주가 쓴 빛나는 다스림의 뜻을 가진 서예 '화정'을 쓰는데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정명공주를 살아내게 만든 힘이 바로 이 '화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혜롭고 덕스러운 처세로 모진 세월을 잘 살아내고 견뎌낼 수 있었던 공주의 인품을 여실히 드러내는 내용이기도 하다 싶어요! 위대한 서예가로서 그 힘겨운 삶에 빛을 내며 살아간 정명공주를 새롭게 알고 또 바라볼 수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터라 더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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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인공의 연기력 논란으로 더 화제인 드라마 화정 그 주인공 정명공주에 대한 책을 볼 기회라 주저없이 신청한 책 화정, 정명공주 선조와 인목대비의 딸로 영창대군의 누이였던 공주. 광해군으로 인해 죽은 사람으로 살아야했던 10년 그러나 조선시대에 드물게 장수한 공주란 것외엔 아는 것이 없는터라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요즘 드라마로 나오면 소설로도 바로 출간이 되기에 다른 화정, 정명공주와 같은 류의 소설인가? 생각을 했는데 저자의 이력을 보고선 역사학자가 소설을? 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란 걸 알았다. 생각정거장의 화정, 정명공주는 역사적 사실인 실록이나 다양한 기록물에 나타난 것을 근거로 정명공주에 대해 쓴 책이었다.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정명공주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선조부터 광해군, 인조 그리고 정명공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쓴 책이라고 보면 된다.(오히려 정명공주보다는 광해군과 인목대비와의 일들이 더 자세히 쓰여져 있다는~) 그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역사적 사실의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잘 기술하고 있다. 특히나 내명부의 일들이나 왕실의 대군과 공주로 봉작후 받게 되는 것들과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 특색이다.
왕인 광해군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의 입장에서의 기록물들이나 다양한 증거들을 가지고 기술하고 있어 어떤 정치적 상황이었는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드라마만 생각하다 화정, 정명공주를 보면 드라마의 많은 각색으로 아이들이 역사적 사실과의 다른 점을 기억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상상력이 빚어낸 드라마를 역사로 오인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드라마 화정을 보면서는 생각정거장의 화정, 정명공주를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선조의 장성한 아들에 대한 자격지심과 또 어린 아들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이 결국엔 어린 아우를 형이 죽이게 만드는 불씨가 되지 않았나 싶고 그런 과정에서 폐서인되었다 죽은 이로 살았다 자신의 능력은 죽이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했던 정명공주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보는 기회가 되어 정말 좋았다.
또한 한나라의 왕이기 전에 한 부모로써 자녀를 대함에 있어서도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중도를 지켜야하는지도 화정, 정명공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드라마 화정에서의 정명공주가 아니라 정말 역사적 진실 속의 정명공주의 삶을 보길 원한다면 생각정거장의 화정, 정명공주를 보길 강추한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글씨 華政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자들이 꼭 알아두어야할 글자가 아닌가 싶다. 빛나는 다스림으로 혼란의 시대를 밝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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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씨와 차승원씨가 열연을 하고 있는 MBC 드라마 화정 처음 몇 편을 보다가 지금은 보지를 못해서 아쉬웠는데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정명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가 아닌 책으로 만나 보았습니다. 생각정거장에서 출판된 정명공주,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으로 혼란의 시대를 밝혀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3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읽혀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군이 주인공이 아닌 정명공주가 주인공인 책 하지만 정명공주의 삶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주변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어머니인 인목대비와 광해군, 선조, 영창대군, 영안위 홍주원은 물론 여러 궁녀들이기에 이 책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고, 풀어가고 있답니다. 51세의 선조와 19세의 인목왕후가 재혼하여 나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 공주와 왕자의 탄생만으로도 축복을 받아야 할 이들에게는 세자 광해군이 있었고, 세자에게 이들의 탄생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닌 견제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정명공주와 영창에게 물려준 수많은 재산과 2장의 선조의 유언장은 이들을 지키는 방패가 아닌 철퇴가 되어 돌아오지요. 유릉저주사건과 계축옥사를 거치면서 인목대비의 권위는 크게 추락하고 서양갑사건으로 인해 영창대군은 폐서인이 되어 출궁을 하면서 비명횡사를 하게 됩니다. 정명공주는 서인으로 인목대비는 후궁으로 강등되어 서궁 유폐 되어 빈곤한 생활을 하며, 이들은 더욱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되는데요, 이때 서예 공부에 몰두하게 되니, 쓰여진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華政’으로 이 글씨에는 힘과 기세가 넘쳐흘러 여성이 썼다는 느낌보다는 남성이 쓴 듯 힘이 넘쳐흐른답니다. 16살부터 21살 때까지 서궁에 유폐되어 생활한 정명공주 그 긴 시간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더욱 친밀해진 모녀는 사경과 붓글씨를 통해 인내하고, 자비심과 지혜, 용기를 배우며 훗날을 기약,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에게 복수를 하고, 신분을 복권하게 되네요. 하지만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인조의 계속되는 의심으로 인해 불안한 시절을 보내지만 인조 이후에는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83살까지 산 조선시대 최장수 공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파란만장한 정명공주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과 사건을 이야기하다보니... 정작 정명공주에 대해 자세히는 알 수가 없어서 좀 아쉬운 마음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알게 되어 재미도 있었답니다. 이 책은 <계축일기>를 핵심으로 <광해군일기>와 <추안급국안>을 보조 자료로 해서 정명공주의 인생을 살펴봤다고 해요. 누구의 관점에서 쓰느냐에 따라 인물과 사건을 기록하는 법도 관점도 다르지만, 계축일기는 역사기록서로 손색이 없다니... 이것도 챙겨서 읽어봐야겠네요. 정명공주를 중심으로 한 17세기 조선의 궁궐 권력을 잡기 위한 각종 음모와 암투가 벌어지는 그 현장 속을 드라마가 아닌 책으로 살펴보는 것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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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 : 빛나는 다스림으로 혼란의 시대를 밝혀라
* 저 : 신명호
회복된 후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했던 개인적인 호기심은... 보다 더 생생하게 조금 더 객관적으로 당시 상황을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시대의 어지러움, 나이 어린 왕비를 맞은 연로한 아버지, 이미 세자로 있던 이복형제 광해의 존재 등으로 인해서 파란망장한 삶을 살게 됩니다.
광해의 눈에도 공주인 정명은 적으로 여기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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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간에 미처 접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부분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시선과 이목을 집중케 한다.또한 그렇게 발굴되고 소개되는 사료와 인물,사건들을 접하면서 당대 정치,사회상을 머리 속에 새롭게 그려가게 된다.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고 객관성을 띠어야 하기에 독자인 나로서는 저자가 전하려는 바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새롭게 세상에 소개되는,베일에 가려졌던 새로운 인물 정명(貞明)공주는 풍전등화와 같았던 시간과 세월을 용케 견디어 내면서 보기 드물게 83세까지 살았던 사람이다.그렇다면 정명공주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는 의주로 몽진을 가게 되고 그를 대신하여 정사를 펼치기도 했던 광해군 사이에 왕위 계승 문제에 의혹과 균열이 생기면서 궁궐의 암투는 서서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선조는 제 1왕비 의인(懿仁)왕후가 아기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제 2왕비인 인목(仁穆)대비를 왕비로 맞이하게 된다.선조에겐 대비 외에 공빈(共嬪) 김씨와 인빈(仁嬪) 김씨라는 두 후궁이 있었다.19세에 왕비가 된 인목대비는 딸 정명공주와 아들 영창(永昌)대군을 낳게 된다.특히 후궁에게서 낳은 광해군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을 적장자 원칙에 의해 차기 왕위로 옹립하려는 분위기를 읽으면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인목대비 제거를 시도하려 한다.선조는 52세와 55세에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지만 이미 정사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선조는 혼미한 상태에서 유교칠신에게 영창을 부탁한다.광해군은 왕으로 즉위하지만 인목대비 측근들의 세력이 커질까 우려한 나머지 먼저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위리안치한다.
신명호 작가가 쓴 《화정,정명공주》는 임진왜란에 의해 임금의 정전이 불타면서 정릉동 임시 행궁에서 벌어지던 왕궁의 권력 암투를 묘사하고 있다.참고로 이 글은 《계축일기》를 핵심 자료로 하고 《광해군일기》와 《추안급국안》을 보조 자료로 하여 정명공주의 인생을 살피고 있다.
영창 추대 세력을 축출하는 계축옥사(1613년)가 발발하고 사건과 깊게 관련한 역모인 서양갑,김제남 등이 체포되고,인목대비,정명공주는 유릉(裕陵 의인왕후) 저주조사차 체포된다.놀라운 점은 정명과 영창이 봉작 후의 처우가 대단했다.영창을 위리안치 하면서 그가 받았던 혜택들은 광해군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었다.광해군에게 선조는 생각하기도 싫은 왕이고 아버지였다.살아서는 권력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죽기 직전에는 유언장으로 자신을 위협했으니 인목대비 및 친혈육 및 척신들은 저주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인목대비가 대비가 된 후,선조 및 의인왕후의 지밀궁녀들을 측근으로 받게 된다.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속셈이었다.광해군이 인목대비보다 아홉살이나 많지만 대비는 어디까지나 대비인 법.허나 유릉 저주 사건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인목대비 및 정명공주 측근들이 줄줄이 몰살,고문을 받고 죽게 된다.게다가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를 배신했던 공노비들까지 있었고 영창대군까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인목대비에겐 누구를 믿고 살아야만 했단 말인가.정명공주만큼은 자신이 끝까지 보호하고 은둔시키기 위해 죽은 사람으로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궁궐 권력 암투로 인해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는 각각 서인(庶人,평민) 및 후궁으로 강등된다.인목대비가 폐서인이 되기 위한 죄목 10가지에 대한 요청과 상소는 영창대군 때보다 더 치밀하고 시간까지 길게 잡았다.이렇게 정명공주는 왕비인 어머니가 후궁으로 강등되고 자신은 폐서인이 되면서 죽는 날까지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한많은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그녀가 쓴 화정(華政 빛나게 다스려라)은 서궁 유폐 시절의 작품으로 남성적인 기상을 떠오르게 한다.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역모죄로 유폐시키면서 효보다 충을 더 강조했다.광해군 자신에게 불충을 저질렀던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했으며,그것이 민심이라고 확신했다. 1623년 야밤에 거사된 인조반정(능양군에 의해 실시)은 옥새를 서궁의 인목대비에게 올리고 도망치던 광해군은 은신처인 의원의 친척(정담수)가 광해군의 소재지를 밀고하면서 인조반정은 무혈 승리하게 된다.인목대비의 철저한 복수극이 완성되었던 것이다.이로써 인목대비는 서궁에서 대비로,영창대군과 정명 공주는 각각 대군과 공주로 복귀했다.공주의 재산도 환급되었다.인목대비의 친정 부모 모두 신원(伸寃)되고 재산은 환급되었다.정명공주는 인조반정 당시 21세로 과년을 훨씬 넘긴 나이로 남편감은 연하인 18세 홍주원으로 노론 명문가 풍산 홍씨 출신이다.당시 정명공주의 신혼 살림집(안국동)은 궁궐처럼 거대하고 으리으리했다고 한다.이것은 인조가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를 극진히 배려했기 때문이다.정명공주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이다.흥미로운 점은 남편 홍주원의 후손들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정조 시절의 혜경궁 홍씨를 비롯하여 홍봉한,홍인한이 돈녕보첩(敦寧譜牒)에 잘 소장되어 있다.정명공주의 죽음은 《숙종실록》 16권 11년(1685년)에 기재되어 있다.생과 사의 경계에서 정명공주는 지난 시절을 어떻게 회고하면서 살아 갔을까.한 여인의 굴절된 삶과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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