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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직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많은 후학들을 양성함과 동시에 평론가·연구가로서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김용직 평론선집의 편집자이자 해설자인 문혜원은 “김용직 교수의 비평은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한 축은 신비평적 작품 분석이며 다른 한 축은 역사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것”(김용직 평론선집,289쪽)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설은 실제 수록된 김용직의 글을 본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김소월론, 한용운론, 정지용론, 서정주론, 이육사론 등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한 시인들과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북한의 대표적 시인이라 평가받는 조기천론 까지 담고 있다. 김용직은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시인들에 대해 논하며, 그 시인들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한 예로 “정지용이 우리 시단에 처음 그 이름을 올린 것은 1920년대 중반기부터였다.…(중략)… 사람에 따라서는 정지용 시의 기원을 이보다 몇 해 소급시킬 수 있는 양 주장한 예가 있다. …(중략)…(박팔양의) 이런 회상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정지용의 시작 활동은 상한선이 1910년대 말경으로 소급·기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액면 그대로 인정되기에는 몇 가지 난점이 뒤 따른다”라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는 북한문학사라는 책을 저술할 정도로 북한문학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김용직 평론선집에 수록된 조기천론에서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과 시인의 활동을 함께 고찰하며 글을 전개한다. 그는 “북쪽의 조기천론이 일방적이었다는 점이다. 북쪽의 비평가와 문학사가들은 많은 경우 기법(북쪽에서는 형상화라고 한다)을 작품평에서 뒷전으로 돌렸다”(김용직 평론선집, 278쪽)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임화와 비교하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그는 “객관적 평가”를 내리며 “우리 주변의 선입견과 달리 조기천의 시가 상당히 거친 단면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를 그의 생애와 그가 받았던 한국어 교육에서 찾는다. 앞에서 제시했던 해설자의 말처럼 김용직 평론선집에 수록된 김용직의 글들은 작가의 생애, 구체적인 자료들의 제시를 통해 오류를 바로 잡고 구체적인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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