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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저는 위인전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그 분들의 삶이 무척 훌륭했기 때문에, 대대손손 이름이 회자되는 것이겠지만, 이 나이를 먹으니 내가 살아가야 할 삶에 색깔을 더해가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지만은 않은 면도 있어서입니다. 또한 그네들도 분명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으로 위대한 발명을 했거나 사회에 공헌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만 조망이 되는 것도 썩 좋아보이지 않다는 생각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위인들이 부담을 주는 존재도 될 수 있겠고, 한 편으로는 비슷한 실수들을 합리화할 수 있는 대상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제 자신이 위인전은 거의 읽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읽힐 때도 가능하면 생각의 분화도 이루어지고, 사리판단도 할 수 있는 6학년 정도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자의라기 보다는 일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기려 박사님의 가족과 삶을 지배한 이념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내용 전반에 깔려 있는 기독교적인 색채가 썩 내키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글도 쓰지 않고 그냥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결국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종교를 떠나서 장기려 박사님이라는 한 사람의 생이 너무나 고귀했기 때문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우리나라의 슈바이처 박사로 불린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비유도 탐탁치 않은 것이, 장기려 박사님 그 자체로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굳이 왜 서양의 어떤 사람에 빗대어 표현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슈바이처 박사님 역시 인간애를 실천하신 대단한 분이지만, 각자 평가될 수는 없는 걸까요? 어쩐지 이런 행동에는 서양을 동경하는 듯한 인상이 느껴져 거부감이 들곤 합니다. 아무튼 장기려 박사님은 경성의전(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안위나 명예, 재산 등을 추구하기 보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신 분이자, 평생 실천을 하시며 사신 분입니다. 이런 박사님의 삶에도 이산의 아픔 등 여러 상처가 있었으나, 믿음과 사랑으로 그 부분마저도 극복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십니다.
사람은 모두 같을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라는 것이 있고,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해질 거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우리 아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침 장기려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 그 부분을 배운 뒤에 이 책을 만나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손, 행려병자를 이끌어 무상으로 수술과 치료를 해주시던 손, 물건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에게 무겁고 돈도 되지 않을 책 대신 돈을 내어주시던 손 등, 그 모든 행동이 가능하게 하신 장기려 박사님의 손이야말로 진정한 약손인 듯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