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선생님께서 하신 거창한 말씀. '전쟁과 평화에 모든 인생이 들어 있단 말씀이야...그게 인생인 거지......인생을 아는 거야....' 저자 톨스토이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이상적이 었던 과거에 톨스토이는 내가 바라는 인간형 이었다. 그의 작품. 이를 테면 부활과 짤막짤막한 우화들인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등의 작품들만으로 톨스토이는 나를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대작'이라고 평가받는 그의 '전쟁과 평화'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장서실에서 그 책을 빌려다 보았다. 내 특유의 독법은 느껴질때 까지, 머릿속에 완전히 영상으로 그려질때 까지 활자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전쟁' 묘사는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작품의 끝 부분에는 엄청난 사상. 톨스토이의 역사관-역사에 있어서의 우연과 필연 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느라고 밤을 샜다. 눈이 데꾼해 질 때까지 두번 세번 읽었는데,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작품은 '이야기 중심'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축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인물'들이 중심 인것 같다. 정말 러시아 문학 특유의 기다란 이름에다가 많디 많은 등장인물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톨스토이라고 하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거인'은 특유의 필치로 생생하게 시대상을 복원했는데, '프리 메이슨'에 가입하는 베주호프의 내면 심리는 정말이지 탁월했다. 명작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침투할수 있다. '역사'라는 방향에서 침투하느냐, '전투'라는 방향에서 침투하느냐, '사랑'이라는 방향에서 침투하느냐, 정말이지 어느 방향에서 침투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은 다를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대단한 여웅'으로 인식되어져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전쟁과 평화에서는 '일그러져 있다는 것이다.' 영웅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 '영웅주의 정복자'는 톨스토이의 민중사관의 필봉(筆棒)에 난타 당하는 형편이다. 역사의 인식을 독자들은 '전쟁과 평화'에서 가다 듬을 수 있다. 한 영웅의 행위가 일으켜진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이 될수가 있을까? 아니다. 톨스토이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개개인 영웅의' 행동 단위의 파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의지의 총화'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 철학가'로서 '전쟁과 평화'에서 말하는 톨스토이의 주장이다. '형안(炯眼)'을 지닌 독자들은 눈치챘겠지만, 작품에는 '러시아'의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일례로, 귀족들의 분식(扮飾)으로서의 언어인 '불어'가 그것이다. 프랑스와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의 귀족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원수가 되어버린 '프랑스'의 언어를 입바깥으로 내면 거의 매국노로 오인받을 지경이 되어버린 마당인데, 러시아가 불어보다도 서투른 것이다. 이 소설은 방대한 분량의 쉽지 않은 소설이다. 해소성의 문화가 하나의 코드로서 뻔뻔스레 버티고 서 있는 실정에 과연 '전쟁과 평화'가 깊이 읽혀 질까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말 곰곰히 생각하고 꼼꼼히 읽어보면 톨스토이 만의 정제된 '문장'과 작품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상과 생각이 또렷이 느껴질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현장답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전투 묘사' 는 분명히 작가가 사실의 복원을 위해서 무진 공을 들인 장면일 것일진대, 나는 그 부분이 쉽게 그려지지 않아 헐후히 보아 넘겨 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볼 때에는 '그 부분' 그리고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의 끝 부분'을 천천히 읽을 생각이다. 단순한 이야기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 해서 읽을 책중의 하나가 바로 '전쟁과 평화'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