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시절, 신화와 역사라는 강좌를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은,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 보고이며, 그것을 당대 사람의 관점으로 표현해 낸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상,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성이 추구하는 그 무엇을 읽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신화가 지어진 시대 사람들과의 마음과 마음을 소통한다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 아발론 연대기는 바로 이러한 소통을 함에 있어서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깨우침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아더왕의 전설은 고대~중세 유럽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대 서유럽을 지배했던 켈트족의 전설,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 문명과 성배의 전설이 어우러져, 그 어떤 역사책보다도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마치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원탁의 기사들과 같이, 책에 숨겨진 수많은 보물들을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손에서 책을 떼어 놓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이 책의 흡인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가장 빛나는 인물, 그리고 이 책의 분위기를 가장 잘 전달하는 인물은 ''오월의 매'' 가웨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는 뛰어난 용맹, 그리고 아름다운 미덕, 거기에 결코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모험을 찾아서, 그리고 비록 자신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더 나은 무엇, 궁극의 이상-성배-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기에 그의 숨결은 항상 기운에 넘치고, 그의 움직임은 역동적이며 진취적입니다. 이 신화에 나타나는 숱한 인물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를 나타내는 인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갖는 미덕을 바로 이 부분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아더왕 이야기가 갖는 방대한 분량과, 그 안에 녹아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고작(!) 여덟권의 책 안에 녹여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완벽을 향한 강한 몸부림을 보여줍니다. 풍부한 각주와 해설은 성배를 향하는 독자들의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주며, 역자의 매끄럽고 수려한 문체는, 원작이 갖는 미덕을 훼손시키지 않고 최대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몰입하게 합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바침으로써, 독자에게, 그리고 원전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의 신화에 대한 열정, 그리고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책에 바쳐져야 할 최대의 찬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무언가 알수없는 신비로 가득찬 숲과 같은 책입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숲에서 성배를, 지혜를 찾아 계속적인 모험을 떠나는 편력기사사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험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한번 이 책을 읽고 나서, 또 한번, 그리고 또 한번씩, 책이 감추어 놓은 신비를 모두 파헤칠 수 있을 때까지, 아발론 숲을 향한 신비의 여행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을 권해드리고저 합니다. |
| 현재 2,30대 분들은 기억할듯한 만화가 있다. 80년대 방영되었던 원탁의 기사들이다. 어리숙하지만 갑옷을 입으면 무적이 되는 청소년 아더왕과 친구들의 모험이 그려진 에니메이션으로 인해 언제나 동네구석 어귀에선 장난감 칼을 든 원탁의 기사(?)들이 몰려다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자라났고 가슴 한 구석엔 아더왕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인 필자는 신화와 판타지에 심취하여 가끔 판타지 소설과 신화에 대한 책들을 읽곤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본인을 만족시킬만한 원탁의 기사들의 모험담은 없었다. 그리스 신화로 유명한 토마스 불핀치의 원탁의 기사들 이란 책도 단지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소개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차에 영화 킹 아더가 개봉했고 다시금 아더에 대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출판업계에서도 그에 발맞춰 아더왕에 대한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러한 여러책중에 본인의 눈에 띄인 것은 아더왕 이야기란 책이었다. 총8권의 듬직한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본인의 입맛에 맞는 서술 방식(연대기적인 서술)이 필자의 맘을 끌었다. 결국 구입했고 4권이후로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필자는 독자의 부족으로 결국 안나오는구나 단념하던 차에 아발론 연대기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금 완결된 모습으로 나왔다. 손해보는 기분은 어쩔수 없지만 결국 묶음으로 하나를 구입하고 다시금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과연이란 탄사가 가끔 나올 만큼 기사들의 편력모험에 대해 자세히 풀어내고, 또한 연대기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여 단편단편 짤막하게 이야기를 붙여놓은 타 원탁의 기사책들과는 비교된다. 아더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한번쯤은 읽어볼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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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가 일단 책 디자인이 맘에 들고 연대기라 해서 역사책인줄 알고 일단 가격도 반이상의 가격이 세일을 하는 바람에
큰맘 먹고 전권을 샀다 역시 사보니 일정한 디자인의 약간의 변경만 있어서 통일성 있게 책 전체의 디자인은 맘에 들었다
그리고 첫장을 펼치자
우리가 일단 알든 알지 못하든 아더왕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가지 동화나 전설 이야기 그리고 워낙에 유명한 반지의 제왕이라던가 해리포터등이 여기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리스 로마신화의 지중해 문화와는 또다른 그리고 북유럽 신화와는 또다른 유럽의 중서부지역의 신화와 역사라는 것도 대부분의 지역이 영국과 아일랜드지역이고 다른 지역으론 프랑스 브리타뉴와 독일쪽 그리고 덴마크까지의 지역이 나온다는 것 정도?
일단 난 이책을 사서 읽기 전까진 아더왕이야기를 그냥 들어반 보았다 즉 원탁의 기사 중세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정확한 이야기 그리고 등장인물은 아더왕 밖에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히 역사의 실제 인물인것 같은데 또한 등장인물을 보니 신화 같기도 즉 등장인물이 대두분 켈트 신화의 신들을 인간화 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또한 이상한건 전혀 기독교 적이지 않으면서도 이 책이 쓰여진 시대가 종교아니면 시체라는 중세시대라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점이 책을 읽는데 상당히 나에겐 곤욕이었다 너무나 많이 헷갈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 3번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따나 한 번 읽어서는 솔직히 전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이 이야기들의 숨은 의미를 전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도 읽을게 많은 나로선 다음에 한 번 더 읽어 보기로 하고 그래도 상당히 흥미로웠던 아발론여대기 리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1권이 시작되는데 각 권은 아더왕 전설의 중요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가 잘 아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구성 되어 있다 아더왕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정리 까지 한 요즘 외화로도 인기가 많은 멀린 부터 시작해서 모르간 가웨인 퍼시발 등 각 권에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른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다
난 그중에 모르간이란 인물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 인물이 꼭 내 성격과 비슷해서 였다
그런데 이 책을 쭉 읽어 보면 정말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다 정말 한편의 중세영화를 보는 듯 내 머리속엔 온통 중세의 성과 왕과 왕비 여왕 수도원등등 특히 이니그마의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니 정말 그리고 집에 고레고리안 성가 음반이 있는데 그것과 같이 듣고 보니 정말 한편의 환타지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꼭 동화 같기도 한 이 책은 정말 읽는 재미는 좋았다 그런데 그 속에 숨은 여러가지 주석들이 날 책을 읽는 재미에서 배를 더 함과 동시에 헷갈리게도 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 숨은 의미들 정말 나로썬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는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 주인공은 서기 500년 시대의 인물들을 끌어들였고 또한 이야기 전반에 기독교적이 요소가 섞여 있어서 상당히 약간 어리둥절한 부분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3번이상 읽어보라고 한것 같기도 하다
암튼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한것 발휘하는 책이다
그리고 여기선 여신이 즉 여자가 상당히 높은 지위로 나오는데 그것을 숨기려는 중세시대의 기독교적인 사상이 많이 들어간것 같았고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확실히 고대 문화는 모계 사회였고 여자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부계 사회로 넘어오면서 전지전능하신 신들이나 인물이 남자 밑으로 전략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이해 할만 했다
뭐 번역 자체는 재미있고 좋은데 단어 자체가 좀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읽기가 어려웠고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 각권마다 마지막장에 나오는 바로 저자의 말이었다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이는 하는데 그 내용 자체가 꽤나 어려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일단 한 번 읽어 보시라 당신은 또하나의 다른 지중해 문화도 아니고 북유럽 문화도 아닌 북서부유럽의 환상의 세계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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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권이나 되는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처구니없을정도로 단순하고 가벼운 이유에서였다.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 한국 신화, 그 외 여러 문화권의 신화에 대한 책을 여럿 읽다 보니 문득 '이번에는 켈트 신화를 한 번 읽어볼까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가 유럽의 3대 신화라고 쓴 문구를 보고서였다. 켈트 신화를 다룬 책을 알아보다가 <아발론 연대기>를 알게 되었고, 아더왕 신화를 집대성했다는 책 소개를 보고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발론 연대기>를 독파한 뒤 그 소개문구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대성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집대성이 아니다! 그저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용광로처럼 모든 것을 융화해 새로운 결정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1권 첫머리에서 당황한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분명 아더왕 신화라는데, 웬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들이 주르륵 나오는 거지? 란슬롯, 가웨인, 아더, 기네비어, 뭐 이런 이름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보티건, 로웨나 같은 이름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오죽했으면 멀린이 태어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드디어 알고 있는 이름이 나왔다고 안도하기까지 했을까.
<아발론 연대기>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그 부분부터다. 신화적 배경을 줄줄 늘어놓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행동하고 생각하며 말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더왕 신화를 집대성했다지만, 아더왕의 기사의 신화를 총정리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기사의 이야기가 연이어 펼쳐지는데, 아더왕이 아예 나오지 않은 채 이야기 꼭지가 마무리될 때가 많다. 하지만 산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대한 대서사시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주석이나 해설, 작가의 말을 보지 않으면 이 책이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 줄거리 자체를 다듬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어색한 부분도, 삐걱이는 부분도 거의 없다. 출전이 다르다 보니 같은 등장인물의 성격이 바뀌어버리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는 한다. 그런데 어찌나 솜씨 있게 이야기를 짜맞추고 구성을 손질했는지, 이런 과정이 '경험을 통해 인간상이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로 여겨질 정도다.
게다가 주석도 정말 충실했다. 고유명사의 발음, 풍습, 신화적 출전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주석 페이지를 따로 만들지 않고, 페이지 하단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주석을 삽입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주석을 별도의 챕터로 편집했을 때는 주석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어 웬만해서는 그냥 넘기게 될 때가 많다. 본문과 주석 페이지 사이의 몇백 장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번거로운 건 둘째치더라도, 독서의 흐름이 끊기기 십상이니까. 반면 <아발론 연대기>는 곧바로 주석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한층 읽기가 수월했다.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이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여덟 권짜리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낀 적은 딱 한 번 있었다고. 란슬롯이 한 아가씨의 수호기사를 자청하며 마상창시합에 나서자, 그 아가씨가 부적 삼아 자신의 옷소매를 뜯어 건네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난 그 대목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왕이면, 르네상스 이전에는 옷소매를 옷과 따로 만들어 굵은 실이나 리본으로 꿰매었다는 주석을 넣어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때에는 옷소매를 뜯기 편했을 뿐 아니라, 아예 소매와 옷을 바꾸어가며 착용하기도 했다는걸."
옷 소매의 구조를 모른다면, '멀쩡히 붙어 있을' 옷 소매를 뜯었다는 것이 꽤 괴상한 행동으로 보일 수 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족처럼 느끼는 독자도 많을 법한 설명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복식사에 관심이 많은데다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주석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동시에, 그만큼 이 책에는 흠잡을 곳이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여러 신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데다, 다른 아더왕 신화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아울러 심어준다.
여담이지만, 난 <아발론 연대기>를 완독한 후 일전에 읽었던 <파르치팔>을 한 번 더 읽었다. 예전에는 <파르치팔> 자체로만 보았을 때라 그려러니 하고 읽었는데, 아더왕 신화와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대목을 포착할 수 있게 되자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발론 연대기>에서 나왔던 대목이 나올 때는 이중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둘 사이의 표현이나 묘사가 다르면 다른 대로 또다른 재미를 느꼈다. 같은 대상을 다르게 다룬 책을 읽는다는 건 역시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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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없는 상상력의 원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
과거의 왕이었고 미래에도 왕인 자 - 글래스턴배리 수도원 아더왕의 묘비에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 어린 시절 우리의 상상력과 꿈을 그 얼마나 자극하던 단어였던가. 우리는 막대기 엑스칼리버를 들고 상상의 백마를 타고 골목 골목을 브리튼의 어느 숲속이라고 여기며 달렸다. 이순신도 멋졌고 김유신도 멋졌지만 아더왕와 원탁의 기사는 무언가 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였다.
우리에게만 그러했을까? 아더왕과 그의 멋진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중세 유럽의 시인들은 각 민족과 지방의 전설에 아더왕의 이야기를 결합했고 끝없이 순환시켜가며 마침내 죽지 않는 왕, 과거에도 왕이었고 미래에도 왕인 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불멸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종교와 신화, 신화와 비의, 그리고 주술과 상징이 버무려진 이야기들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여긴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중 천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왜 아더왕은 그토록 오래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아발론 연대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더왕이 살았던 브리튼의 숲속에 숨겨진 수많은 비밀과 상징들이 고스란히 아발론에 잠들어 있었고 인류는 그 비밀과 상징을 통해 시간을 넘어서 한 때 인류가 가졌던 지혜를 후손에게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의와 상징들은 기독교가 고대의 신비를 억압하기 전, 태고의 인류의 원형적인 사고와 신앙이었다.
2. 비밀과 상징의 숲
상징은 다른 표현양식을 통해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을 드러낸다 - 진 쿠퍼
유럽의 성당을 가면 우리는 가끔 놀라게 된다. 도대체 중세에 건설된 성당에 왜 이렇게 기독교와 관계없는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일까? 물론 전면을 장식한 화려한 모자이크와 벽화, 조각은 틀림없는 기독교의 그것이다. 그러나 기둥아래, 벽면 아래를 살펴보면 기기묘묘한 조각과 그림들이 곧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미앵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연금술의 상징도, 옥스퍼드와 킬펙의 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셰엘라-나-기그의 이교도적인 상징도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신비의 속성을 알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중세의 옛 모험담과 로맨스만을 볼 뿐이다. 그리고 그 상징들 속에 녹아있는 풍부한 진실들을 놓치게 된다. 중세의 고딕 성당을 지나가며 고작 그림엽서에 실릴만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처럼 우리는 눈앞에 있는 생의 신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삶은 결코 단체 관광여행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삶은 편력이자 모험이며 모든 이는 그 자신의 삶에서 여신의 부름을 받아 퀘스트를 떠나는 기사이자 영웅이다. 그리고 그 중 축복받은 몇몇은, 여신의 부름에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질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이들은 이시스의 베일을 들추고 신비의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3. 꿈, 그리고 신화
우리의 내부에는 가득 차 있는 꿈의 판테온이 있다 - 조셉 캠벨
기사들이 모여 만찬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는 궁성으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왕비를 납치하고는 머나먼 자신의 나라로 떠나버린다. 왕비를 찾으러 가는 란슬롯은 그 들어보지 못한 왕국이 한번 가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등장 할 때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그 검은 기사는 알고 보니 먼 마법의 왕국의 유명한 왕자이자 기사이며 그 아버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최고의 현군이다.
전형적인 꿈의 내러티브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우리, 혹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가져간다. 우리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그를 쫒던지 혹은 그로부터 도망간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전혀 낯선 곳에 서있는데 그 침입자는 익히 알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로 변해 있다.
신화는 인류가 꾸는 꿈이다. 그 속에는 먼 시간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인류의 내밀한 사고와 욕망이 담겨있다. 그 상징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할 때 우리들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아더왕의 신화는 그리스신화보다 더 오래된 인류의 원형의식을 보여준다. 여신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로고스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야훼라는 이름으로 여신을 몰아내기 이전의 시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의 시대에 인류가 꾸었던 꿈들이 소박한 내러티브 내에 반짝이고 있다.
4. 우리 모두는 성배를 찾아야 한다.
<길가메시>는 모든 사람의 서사시다 - 마크 헤드슬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매일 매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할 뿐 진정한 삶의 의미는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곤 한다. 그러나 바쁜 일상사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을 여유를 베풀지 않는다. ''옷 속의 가시 같은‘ 의문을 묻어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마음속의 가시는 꿈속으로 스며들고 언젠가는 우리 곁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궁정생활을 즐길 때 먼 마법의 나라에서 온 여인은 외친다. 그대들은 그저 밥만 먹으며 흥청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그녀의 나라에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떠나지 않느냐고. 그 여인, 혹은 여신은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가려진 비밀이 우리를 부르기 위해 보낸 사자인 것이다.
삶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모험을 향해 떠나야 한다. 실제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비밀을 찾는 모험의 여행을 말이다. 아더왕이 찾던 성배와 길가메시가 찾던 불사의 비밀은 우리의 존재 깊숙이 숨겨져 있는 비밀의 상징이다.
반드시 브리튼의 숲이 아닐지라도 모험은 존재하고 존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시작될 수 있다.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방에서,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서도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여신은 언제나 알고자하는자를 부르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는 법이다.
그 부름을 인식하여 존재의 비밀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우리는 경험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 옛날 브리튼 숲에서 있었던 일, 아니 그 보다 더 먼 옛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두자.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길가메시이고 오시리스와 호루스이며 아더왕의 기사들이니까. [인상깊은구절] 또 말해보게. 그대가 잠들어 있을 때 그대는 누구인지. 그대는 아는가? 그때 그대는 그대의 육체인가? 영혼인가? 아니면 인식의 본거지인가? 영혼의 자리는 어디인가? 영혼의 팔과 다리는 어떻게 생겼나? 영혼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나? 영혼은 어떤 공기를 숨쉬지? 대답해 보게, 탈리에신. 밤의 파도 속으로 사라지기전에 태양이 붉은 빛을 띠는 나라들의 최고시인이여." ------ "나는 나였던 바의 존재이며, 나인 바의 존재이며, 나일 바의 존재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대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형태를 입기 전에 무수한 모양을 가졌었지요. 멀린, 나는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날카로운 금빛창이었고, 허공 속의 빗방울 하나였으며, 글자들 중의 한 단어 였습니다. 나는 근원에 있는 책이었고, 등잔불 빛이었으며, 예순여개의 강물 위에 걸친 다리였고, 길이었고, 독수리였고,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이었고, 잔치 음식이었고, 소나기 빗방울이었고, 손에 쥐어진 검, 전쟁터의 방패, 하프의 현, 물과 거품 속의 해변이었습니다.........길가메시>아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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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왕 이야기는 초등학생때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에서 처음 접한 이래로 너무나도 익숙한 테마입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귀네비어 왕비까지... 꿈꾸듯 스케치해 놓은 삽화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죠.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러한 어릴 적 꿈의 세계를 사정없이 깨뜨려 준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말이죠.
세계사를 배울 때면 늘 중세 서양사 부분이 가장 어려웠어요. 농노? 가신? 봉토? 너무나 낯선 제도들과 사는 모습들이 늘 피상적으로만 맴돌았죠.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중세 유럽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너무나 현실적으로 들어옵니다.
백마를 탄 기사!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그들은 아마 대부분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벗지도 못하는 철겅거리는 쇠사슬 갑옷을 입고 다니는 백수(!)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기사들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싸움을 걸어 오기를 기다리든가, 혹은 무술 대회에 출전하든가, 아니면 어딘가 있을지 모를 모험을 찾아 막연하게 길을 떠나든가 그랬었을 거예요. 즉,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족속이 아니었단 거죠.
이 책의 미덕은 또 있어요. 우리가 여태껏 배워 온 세계사란 것이 그저 기독교의 입장에서 바라본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거죠. 전 솔직히 켈트 문화나 드루이드들의 이야기를 잘 몰라요. 아주 낯설죠. 하지만 이 책을 슬슬슬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또 배우게 돼요.
이 책이 역사적 사실일까요? 아니면 그저 신화나 이야기 혹은 전승에 불과할까요?
저는 아마도 그 중간쯤 어디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의 여기 저기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괴물들, 용, 홀연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처녀, 호수 아래에 있는 집, 마법의 식물들, 바위 속에 박힌 검, 땅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뱀들... 마치 판타지 소설을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실재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 골격을 이루고 있으니 소설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죠? :)
마지막으로 이 책의 미덕 하나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군데 군데 아름다운 그림들이 박혀 있는 ''그림책이다''라는 점입니다요. 읽는 중간 중간 지루해질 수도 있는 부분에 흥미로운 그림들을 넣어 놓았어요. 자세히 보면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지요. 사실, 김정란교수가 번역한 문체는 좀 지루해요. 기승전결이나 굴곡이 없이 똑같은 톤으로 이어지거든요. :) [인상깊은구절] 나는 산 위에 있네 전사의 정신은 이제 더이상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네. 이제 나의 날은 곧 저물고, 집은 폐허가 되리. 바람이 나를 물어뜯는구나. 니 생은 길고 긴 고행의 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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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시대에 아발론 연대기를 읽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원탁의기사' '아더왕'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그 진정한 근원은 어디인지, 알고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으리란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게 된건 순전한 우연이었으나 그 우연못지 않게 나에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 일으켜 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다. 성서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고 각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이 책에 주옥같이 그려져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어쩌면 우스꽝스런 맹세와 그 맹세를 지키고 여자의 부탁을 저버리지 못하는 '기사도'의 원형인 기사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진중한 모습과 맹세를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기사들을 보며 누구보다 자유롭고 명예롭게 사는 모습을 접하며 나 또한 나의 일상생활을 반추하며 반성하며 읽게 되었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며 모진 시련을 거치고 전쟁의 비운까지 왔음에도 끝까지 아더왕에 성하는 란슬롯은 진정 내가 꿈꾸는 이상형의 하나였다. 누군간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을것 같은 일들에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들을 보며 근래 보기 드물게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배신과 배반이 난무하며 자본의 논리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명예'란 무엇이고 자기가 자신의 길을 찾아 방황하더라도 과감히 떠날 줄 아는 원탁의 기사들의 모습은 무언가 확실히 사뭇 다른것이 확실하다. 수많은 재산과 영지, 천상의 미녀의 유혹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고 굳건히 '명예'를 지키며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의 삶에 필요한 것이 이런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운명의서에 적혀져 있어 운명에 저항할 수 없지만 그런 운명따위는 믿지 않고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모습들......
이 책에 대한 기독교와 켈트족 따위의 진부한 이야기는 필요없을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자체가 이야기이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을 날을 기원하며, 지금 읽고 난 뒤의 기분과 그 때의 느낀점은 무엇인지 벌써 궁금해진다.
명예와 영광을 신앞에 나아가 자신이 했던 행동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순간에만 가치를 가치는 것이다. -퍼시발에게 늙은사제가...- |
| 신화에 대한 관심이 퍼지기 전에도, 아더왕은 우리에게 중세와 기사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유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더왕에 대해 경험한 것은 동화나 TV 만화가 대부분이고, 그 이후로는 <퇴마록> 세계 편에서 잠시 소재로 접하거나, 혹은 <아발론의 안개="">처럼 새로운 시각의 소설까지 선택의 폭은 넒어졌으나. 정작 아더왕 전설 자체를 접하기는 힘들었다. 범우사에서 나온 토마스 불핀치의 <원탁의 기사="">가 가장 분량이 많고 한국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원전`의 의미에 가깝지만, 21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토마스 맬로리의 <아더왕의 죽음="">의 축소본이면서, 영국과 유럽의 신화에 낯선 미국의 독자들을 위한 간략한 참고 서적을 목적으로 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본의 아니게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2004년 <아더왕 이야기="">란 제목으로 4권까지 번역되었던 책의 후속편인 <아발론 연대기="">를 보면, 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연대기로 제목을 바꾸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외양과 달리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저자인 장 마르칼이 수많은 이본(異本)을 가능한 한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한 이 책은 때로는 완만한 풍경(기사가 위험을 겪고 아가씨를 구하는)에 지루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이전에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서 제외되었기에, 우리에게 단순한 마법사로 알려져 있던 멀린의 역할과 고뇌. 모르간과 비비안의 입장과 생각을 고스란히 살려둔 풍경은 아더의 왕국이, 아발론이 어떤 곳이었는가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도와준다. 그런 숨겨진 풍경들을 지나서 아더의 죽음이나 멀린의 은둔 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유명한 일화들을 볼 때의 기쁨은 더욱 더 각별하다. 늘어난 내용에서 독자들이 헤맬까봐 기독교에 의해 지워진 켈트신화와 여성들의 위치를 복원하는 역자의 주석과 책 말미의 원저자의 주해는 혹여 독자가 놓쳤을 모든 함의와 유래, 상징들을 꼼꼼히 담아두고 있다. 이렇게 첫 책을 야무지게 내놓은 북 스피어에서 켈트신화에 대해 내놓겠다고 약속한 책들이 벌써부터 기대가된다.아발론>아더왕>아더왕의>원탁의>아발론의>퇴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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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판본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하게 쓰여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 마르칼의 유려한 문장과 해석에 공감하는 바이며 중세 유럽과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토속 신앙, 신화들이 어떻게 각색 또는 윤색되는지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영웅들은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나 편력하며 성숙해 가는 과정은 반복되는 느낌이며, 란셀롯 기사의 왕비사랑은 불륜이 아닐까 하는 경계를 무너뜨리게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