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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내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장 6~9절)
기록하라, 기억하라.
내가 유대인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이다. '기록'과 '기억' 부모대에서 자식에게로 계속 계승되었던 성경말씀처럼 그들의 역사는 늘 기록되었고 그런 방식으로 늘 기억되었다. 대표적으로 [안네의 일기]를 들 수 있겠지만 홀로코스트나 제2차 세계 대전의 경험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 비해 인류 전체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잊지 않기 위해 항상 기록하는 것, 그리하여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인류가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주는 예방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유의미하다.
2. 마술적 리얼리즘
[화려한 휴가]와 [스카우트]는 모두 광주 민주 항쟁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영화가 광주 민주 항쟁에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거대한 역사 앞에서 부담감을 느낀다. 따라서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건 일부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의 책임이지 한갓 일개 개인인 나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그 사건을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그럴 때 정공법으로 다가가면서 "네가 나빠. 반성해.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 몰랐던 것도 죄고 알면서 침묵했던 것도 죄야."라고 훈계하거나 꾸짖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있었단다.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바로 네 할아버지, 네 부모, 네 누이의 일이란다. 그리고 네 일이 될 수도 있는 거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짓누르지 않고 가볍게. 어떤 것이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이냐 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이견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휴가]보다는 [스카우트]를 훨씬 재밌게 보았고 훨씬 감동적으로 보았다.
이 작품은 세 개의 서로 다른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가이드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 알렉스가 작성한 여행기. 그리고 조너선이 쓴 트라킴브로드의 역사(자기 조상들의 역사). 어설픈 영어로 쓴 알렉스의 편지나 알렉스가 작성한 세 사람(과 한 마리의 (발정난) 암캐)의 여행기는 시종일관 재밌고 가볍다. 유쾌하다. 조너선이 쓴 조상들의 역사 역시 라틴 문학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지만 역사적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매우 잘 읽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작품은 아니다. 읽고 나서 책을 내려 놓는 손은 매우 묵직해진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당신의 의식엔 분명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3. 부절
나는 [사랑의 역사]를 읽은 다음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었다. 이 두 소설은 기본 포맷이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뭐랄까? 두 작품을 함께 읽을 때 빛이 난다. 말하자면 각자가 독립된 아름다운 작품이기는 하지만, 두 작품을 합쳐 놓을 때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보게 된다고 할까? 그런 경험은 독자로서 매우 유쾌하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를 읽은 후에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읽고 있는데, 이 두 작품 역시 주제나 등장인물 등만 보면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두 작품은 묘하게 상응한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이런 거다.
그는 샘슨을 유대교 집회에 데려갔고, 맥스가 하느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때도 박하향과 털옷 냄새가 나는 노인들 사이에서 유대 기도문을 외고 있을 때였다. '그러면 저 사람은 왜 오는 거죠?' 샘슨이 물었다. '기억하려고.' 맥스 할아버지가 대답했고 이 비밀을 전수받은 무리를 둘러보았다. 샘슨은 자부심에 압도당했다(96쪽).
니콜의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의 일부분이다.
이 두 부부는 이런 식으로 작품을 통해 서로 호응한다. 서로 다른 거울을 가지고 있지만, 둘을 잘 맞추면 하나의 거울이 되는 부절과 같다. 조너선과 니콜은 언제 봐도 참 흐뭇한 부부다.
스물 다섯에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뭘 먹고 누구를 만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이런 천재적인 사람이 또 다른 천재를 만나 함께 산다면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상호간 교류를 하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내가 조너선과 니콜 부부를 사랑하고, 이 부부의 미래가 무척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 둘은 매우 다른 것 같지만 닮았고 닮은 것 같지만 매우 다르다. 그러나 서로 참 잘 맞는다. 그들의 작품 역시 그렇다. 이 부부의 미래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내가 독자여서 행복한 이유.
[덧붙임] 1에서 거론했던 것과 관련하여... 왜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작품들이 꾸준히 창작되지 못할까? 혹은 재외국민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는 걸까?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이것은 온 인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유대인들과 동일한 경험을 했던 한국인들 역시 이러한 작업들이 펼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폭력의 비인간성을 각성하기 위해. 작가들의 역사의식이라고 할까? 역사적 책임감이라고 할까? 이러한 주제를 천착하는 국내 작가들도 지속적으로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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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생, 유태계 미국인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24살에 쓴 데뷔작. 가디안 신인상을 수상하고 미국에서만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이른바 자아를 찾는 여행을 그리고 있지만. 비슷한 류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한가닥 다른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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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먼저 번역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을 읽어 보지 않아 조너선 샤프란 포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지만 2000년대 미국의 가장 논쟁적이고 독창적인 소설가라는 표지의 문구와 인터넷 서점의 괜찮은 평점을 보고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소설들처럼 가볍고 빠르게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부분부터 특이한 구성때문에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완성한 이 작품은 작품 속에 작가 자신인 조너선 샤프란 포어가 등장함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알렉스 페르초프와 조너선 샤프란 포어 두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으며 편지, 여행기, 소설 이렇게 세가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가 지망생이자 대학 2학년인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2차 세계대전중 할아버지를 나치의 손에서 구해준 오거스틴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조너선은 그의 통역을 맡은 알렉스, 운전을 하는 알렉스의 할아버지 그리고 맹인이라고 우기는 할아버지의 맹인용 개(연신 방귀를 뀌어 대는 발정 난 암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미지의 여인 오거스틴을 찾아 할아버지의 고향인 트라킴브로드라는 마을을 찾아 떠나는데요 그곳은 이미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 여인의 소재를 알길이 없어졌습니다. 알렉스와 그의 할아버지는 프로들이 아니었기에 헛점이 많았고 특히 알렉스의 영어 실력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잊혀진 과거를 하나씩 찾아 긴 여정을 계속되고...
"항상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알렉스에게 한 말인데 할아버지는 알렉스에게 전쟁 당시에 자신이 저질렀던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진실을 말하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삶에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게 됩니다. 진실을 말했을때에 힘겨운 일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시간이 흐른 후에 다른 사람이 과연 알 수 있을까요?
책의 소재는 2차 대전중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홀로코스트 입니다. 원치 않아도 폭력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이 소설에 담고자 한게 작가의 의도입니다. 유대인이 수여하는 상을 수여한 조너선 샤프란 포어... 과거에는 피해자 였지만 지금은 가해자가 되어버린 유대인들... 아직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들을 무차별적인 학살하고 있는데 이점에 대하여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참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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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밣혀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어두운 진실이리라는 막연한 생각!
이야기는 모두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책은 실제 작가와 같은 이름의 조너선이 할아버지의 은인인 오커스틴을 찾게되면서 유태인 대학살과 우크라이나의 슬픈 역사를 만나게 된다. 전쟁속에서 개인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은 과연 도덕적인가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단지 살고자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개인의 선택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기력해진다
책을 읽다가 영화 <뮤직박스>가 떠오른 것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비슷해서 일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밣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수도 있다. 그러나...과거를 아는 것 어떤 의미론 정리한다는 의미를 통해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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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만으로 미국 문단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을 올린 조너선 사프란 포어, 그의 처녀작 <모든 것이 밝혀졌다>가 이번에 소개할 책입니다. 400페이지 가량의 두께가 선사하는 묵직한 느낌과 그 묵직함을 발랄하게 둘러싸고 있는 샛노란 표지, 이 표지를 꾸며주는 예쁜 파란색 글씨체. 첫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표지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꾸며진 이유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배경인 우크라이나의 국기 색이 그 두 가지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겠죠.
‘모든 것이 밝혀졌다’라는 제목은 ‘거짓이 없고 참된’이란 뜻의 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최종 목적지, 진실을 향해 펼쳐지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진실’ 그 자체의 중요성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세 가지의 여정 속에 있습니다.
첫 번째 길은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두 번째 길은 알렉스가 제구성한 여행기이구요. 마지막 길은 할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관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두 번째 길에서 세 번째 길로 갔다가 다시 첫 번째 길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전개가 되는데요. 무릇 진실의 향한 과정이 그렇듯 세 가지 여정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군데군데 묻혀있는 유머와 위트는 이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줍니다.
첫 번째 길인 조너선에게 보내는 알렉스의 편지는 늘 세 번째 길 뒤에 나오는데요. 이 편지글은 앞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라 내용을 정리해주기도 하지만 독자가 가지는 생각의 길을 제한시키는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가 가진 인상과 생각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길은 진실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뻗어있지만 종점을 향한 무미건조한 수단은 아닙니다. 각 길에서 진실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조각들을 야금야금 얼마나 찾아 주워 담느냐에 따라 여행이 주는 보람이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조각들을 모아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편지, 여행기, 소설이라는 다른 장르들이 멋진 앙상블을 이루며 펼쳐지는 <모든 것이 밝혀졌다> 따뜻한 봄 햇살이 아름다운 요즘, 낮잠은 잠시 접어두고 포근한 봄바람과 함께 진실을 향한 의미 있는 여정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아! 여행을 떠나기 전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은 이 여행은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 위한 관광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 속 밑줄 긋기이 냄새 못 참겠다! 똥싸개 바로 옆에 있는 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신에게 가까이 갈 수가 있겠냐고! p.40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과거를 잘 알고 받아들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p.29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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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볼때도 조금은 정신이 없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책표지와 제목에서 느꼈다. 책을 펼쳐서 읽는데 이처럼 책이 부산하고 요란스러운적은 처음이다. 쉴새없이 내 귓가에서 떠들어 대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순간에는 나조차도 정신을 잃을정도 였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하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책이 떠오른다. 읽어 보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에 유명세를 탔던 책이였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 이 소설은 저자의 첫번째 작품으로 출간에 성공하면서 '문학신동'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과거의 진실, 감추고 싶은 진실, 전쟁속의 진실, 때론 무엇이 진실인지 아니 옳은것이 무엇인지 알수없다. 그들은 그녀를 찾아 떠나지만, 실상은 허상이 아닌 진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거나 마찬가지이다. 정작 진실을 알고나면 씁쓸함이 밀려오는 차라리 모르는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재에나 미래에 그런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더 아파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이라서 적응하는데 한참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내 머리속은 어수선하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들도 잘못이지만, 그들을 방치한 강대국들에 더 화가 치밀었다.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유대인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때론 현실적인 일들이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으로 표현되어 더욱 효과적으로 현실성을 갖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책이다.
전쟁의 무차별적인 살상과 파괴력은 실로 상상하기 조차 싫다. 국가적인 폭력이든 개인적인 폭력이든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전쟁이란 단어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저자의 표현력에서 전쟁의 폐허와 아픔 그리고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떄론 말이라는 무기로 사람을 때리거나 죽게 만들기도 한다. 총을 싸서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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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노란표지에 어지럽게 적힌 영어 제목 (Everything is illuminated) 이 책에 붙는 여러 매체와 저명인사들의 찬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을만큼 가까운’이라는 이미 ‘베스트셀러’인 책의 저자라는 조너선 샤프란 모어의 ‘아름다운 데뷔작’이라고 한다. 책을 읽어나가는 초반에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일단 책을 덮고 서평을 검색해 봤다. (이미 책소개를 통해서 내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의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역시 무슨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더라, 읽어내려갈 수록 매력에 빠지게 되더라 이런 말이 있어 그래, 그래.. 그런 책들이 있어 라고 생각하며 나아갔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했다는 ‘서술방법-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주욱 나열하기, 띄어쓰기 없기, 볼드체로 표현하기’ ‘문단나열-알렉스 편지, 조너선 소설, 알렉스 설명’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거기다 알렉스의 ‘익숙치않은 영어’사용을 흉내낸 ‘익숙치않은 한글’표기는 읽기가 힘들다. 번역자 고생 많이 했겠다 싶다. 이처럼 일단 이 책은 내용을 떠나서 서술방식에서 테클을 거는 이 책은 중반쯤 가서야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며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2차대전 나치의 유대인 박해, 나치가 무서워 유대인 박해를 모른척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이 소설은 실제 작가의 ‘우크라이나 여행기’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최근에 많이 읽게 되었는데 책도둑, 더 리더 같은 식의 소설이 내게는 편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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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들의 데뷔작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면, 그것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로서 자연스러운 1:1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음반들도 1집을 즐겨듣는다. 자신들의 음악성을 가장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는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그의 성공작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표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치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 이 책에서는 3가지 성격을 가진 글들이 실려 있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소설. 알렉산더 페르초프의 편지글. 그리고 여행 에세이. 이중에 작가인 동시에 등장인물인 조너선의 소설은 그의 할아버지의 과거를 찾아서 떠난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것이고, 알렉스의 편지는 조너선의 소설을 보면서 그가 느낀 내용을 실은 것이며, 여행 에세이는 조너선과 알렉스 그리고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동행한 여행의 출발에서 끝까지 진실을 담은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소설과 여행 에세이의 딱 중간에 편지가 있는 형식으로, 편지글은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를 표현해주는 장치로서 사용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구성상의 치밀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데뷔작’ 이라는 책의 소개글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3가지 구성의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커녕 곳곳에서 끊어져 오히려 집중을 방해했으며, 알렉스의 편지에서 우리들의 생각을 고정되게 만들어 일관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억지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너선의 소설의 내용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특히, 그의 할아버지가 독일군의 침입과 그들의 포탄 소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고 그의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이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많은 경험으로 인해서 성적인 감정을 상실했다고 하더라고 7년간 만난 집시 소녀는 그에게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3가지의 구성중에서 알렉스의 여행기에는 유머와 반전도 있고 알렉스의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과거. 그리고 그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야 했던 상황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여행지를 알고 나서 왜 한동안 침묵했는지, 왜 그는 자신의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을 다시 갔는지에 대한 궁금증에 할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는 비록 그의 자식에게까지 슬픈 기억을 물려주기 싫어서 그곳을 도망쳤고, 40년 동안 혼자 가슴에 묻어놓고 살았지만 그는 그의 친구를 죽음에 몰고 간 자신의 비겁했던 행동을 한평생 잊지 않고 있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여행 중간 중간 잠에 빠져서 그의 아내를 부르던 행동들이 그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어놓고 저자가 설정한 복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너선은 알렉스의 할아버지의 경험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우리들이 어떠한 참혹한 현실을 겪게 되더라도 항상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감추려고 애써도 결국은 그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책의 제목대로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참혹한 과거, 고통스러운 진실, 잊히지 않는 기억들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것들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결국 나중에 그것들은 참혹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는 그냥 과거의 회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상깊은 구절폭포 옆에서 산다는 건 이런 것이란다. 사프란. 수년간 순수하고 확고한 비탄에 잠겨 나날을 보내던 과부들도 어느 날 아침 문득 깨어나 밤새 편안히 잤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침밥을 넘길 수 있게 되고, 남편의 유령이 항상 내는 소리도 가끔씩 밖에는 못 듣게 되는 거지. 과부의 슬픔은 실용적인 슬픔으로 대체된단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도 어떻게든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법이지. 목재도 빛이 바래기 시작한단다. 모서리도 무뎌지는 법이고, 상처도 사라지지. 어떤 사랑이든 상실로부터 깎여 나오는 거야. 내 사랑도 그랬고, 네 사랑도 그렇지 네 5대 후손도 그럴 거다. 하지만 그런 사랑 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항상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해 주었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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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저자의 처녀작이다. 77년생, 2002년에 썼다고 하니 8년 전, 우리 나이로 스물여섯에 썼다는 말이 된다.
이럴 때 괴롭다. 나이 지긋하신 양반들이 쓰던 시기가 지나고, 어느 순간 나보다 조금 더 연배가 높은 분들의 소설이 휩쓸고 지나가니 이제 한참 후배격인 작가들이 소설을 쓴다.
아, 거참, 게다가 너무 잘 쓴다. 이 책을 한 어절로 표현하면? '아름답다!' 두 어절로 표현하면? '아, 아름답다!' 세 어절로 표현하면? '또 읽고 싶다!'
엄청나게~~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오스카'가 성인이 된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우크라이나 여행을 함께 하고 소통을 하게 되는 알렉스처럼 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아홉살 오스카가 스무살 알렉스가 되었네..하고.
엄청나게~~가 꼬마 오스카의 목소리와 오스카의 조부모가 손자에게 혹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교차로 배치되어 재미를 더해 갔다면, 구성형식은 매우 유사하다.
주인공과 함께 여행을 떠난 알렉스가 먼저 이야기를 열고, 여행이 시작되면서 알렉스의 여행기-포어의 소설-알렉스의 편지-여행기-소설-편지(마지막은 할아버지가 조너선에게) 형식으로 구성된다. 여행 중 벌어진 일들을 익살맞게 구성해나가는 알렉스의 현실의 이야기와, 조너선의 '사실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소설'이 교차되고, 서로의 글을 읽어나가며 편지로 소통해나가는 방식... 공동저작이 쓰여지는 절차를 보고 있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렉스가 쓴 여행기가 너무나 조너선의 '말투(아니 문체)'를 닮아가고 있다. 이거 작가가 실수한 거다..라고 생각한 순간 알렉스의 편지엔 이런 문구가 들어간다. '조너선,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된 거예요.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내가 된 거죠.'(내 기억이 맞다면 저 문장쯤 되었겠다)라는 대목에서, 와우 작가가 서로 소통하고 닮아가는 그 지점을 적었고, 난 그것을 읽었다...라는 묘한 흥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꼭 머릿속에 넣고 싶은 문장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내 머리는 이제 기억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애석하다. 소설을 이제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지만, 이 책은 좀 사야겠다는 생각이다. 기억할 수 없므므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유대인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누구도 알렉스의 할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주 홀가분하게, 해야 할 일을 하니 행복하다는 편지와 함께.
전쟁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 꿇고 평생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개인들, 어루만지는 손길 조너선.
그의 두 권의 소설은 모두 폭력 앞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치유 받아 마땅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책이 실제로 작가가 우크라이나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떠났던 기억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하니, 주인공들이 가진 트라우마는 작가의 그것이 아닐까? 트라우마를 다독이기 위해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
조너선, 태어날 때부터 이빨이 나 있던 당신의 할아버지, 그래서 엄마의 젖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그래서 한 팔이 죽어버렸던, 그 팔 때문에 많은 여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던, 그러다 최초로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잃게된, 그의 이야기... 너무 아름다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