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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아니면 2006년 1월이었나보다. FM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리메이크한 노래가 자주 나왔었다. 분명 영어는 아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남자들 몇 명이 같이 부르는 것 같았다. 집안일을 하며 배경음악으로 라디오를 들었기에 가만 가만 부르는 부분은 늘 못 듣고 볼륨이 커지는 부분만 귀에 들어왔는지, 바리톤같은 남자가 쏠로 어쩌고 하며 뭐라뭐라 큰 소리로 질러대는 부분이 귀를 잡아끌었다. 어느날 작정하고 진행자의 멘트를 들어보니 '일 디보'라는 사람들이 부르는 Héroe란다.
외국 검색엔진에서 검색을 해 봤다. 서로 국적이 다른 네 남자가 모인 팝페라 그룹인데 실력 못지 않게 잘 생긴 외모로도 인기를 끈다나... 사진을 봤다. 바로 실망했다. (그 때 봤던 사진은 사진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노래만은 썩 마음에 들었기에 어둠의 경로를 통해 1집과 2집을 구해 들었다. 노래가 무척... 좋았다. 몇 개 안 되는 영어 노래를 빼고는 도무지 가사를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어떤 노래가 원곡이고 어떤 노래가 리메이크인지도 몰랐지만, 국적 만큼이나 다른 네 사람의 개성있는 음색의 어울림, 그리고 처음에는 듣지 못했던 한 사람의 맑은 소리가 점점 마음을 울렸다. 원래 사람 소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거의 클래식에 국한되어 있었던 내가 이들의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다. 특히 1집 수록곡인 Passerà는 하루 종일 이 한 곡만 듣는 날도 많았다. 우울하거나 마음이 아픈 날은 거의 이 곡만 들었나보다. 음악을 들으며 조금 찔끔거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곤 했었다.
2006년 겨울, 3집이 출시되었다. 역시나 어둠의 경로로 들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1월, 이들이 한국에 왔었다. 이틀에 걸쳐 내한공연을 한 것이다. 공연 일정을 여기저기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공연을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래를 듣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집이 서울이었다면 혹시 갔을까...
2007년 3월, 또 한 번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일 디보가 미국 LA에 있는 Greek Theatre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디비디를 보았다. 밤 11시, 식구들이 모두 자는 시간에 서재에서 소리도 키우지 못하고 보았던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음악을 들으며, 공연 모습을 보며,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식구들이 출근하고 등교하기를 기다려 소리를 제대로 키워 다시 보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이들의 음악을 들은 것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면서도 가지 않은 이들의 내한공연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그제서야 국내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은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팬카페..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10대에도 20대에도 안 해본 짓을... 이어서 이들의 음반과 디비디와 책을 모두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서대로 데뷔 초기 Gotham Hall 공연 실황이 담긴 1집 듀얼 디스크, 문제의 그릭 씨어터 실황 디비디, 스페인 Merida에서의 실황 디비디, 크로아티아 풀라에서의 실황 디비디, CD+DVD 4집 럭셔리 버젼...]
[1집 Il Divo, 2집 Ancora, 3집 Siempre, 덴마크 발매 The Christmas Collection + 그릭 디비디, 4집 The Promise, The Christmas Collection, 캐나다 발매 틴 케이스에 든 The Christmas Collection, 3집 수록곡 중 Caruso 싱글, 스웨덴 발매 4집 The Promise 럭셔리 버젼, 3집 수록곡 Come Primavera가 수록된 덴마크 발매 옴니버스 음반, 3집 수록곡 Notte Di Luce가 수록된 영국 발매 옴니버스 음반, 일 디보 멤버 Sébastien Izambard의 솔로 시절 프랑스 발매 음반 Libre... 이 중에는 다정한 친구들의 선물도 있다.]
나의 하루도 달라졌다. 한 마디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지만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정도 외에는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생활에서 크게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일 디보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말 그대로 '열을 확' 받았다.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의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단 말인가! 기사를 읽고 영상을 보고 영자신문과 뉴스도 보기 시작했다. 아주 무지한 상태는 아니라 차츰 나아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 디보의 노래는 70% 이상이 스페인어로 되어있다. 스페인 멤버가 있기도 하지만 스페인어가 로맨틱한 노래를 하는데 여러가지로 적합하다는데 전 멤버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이다. 노래를 따라부르고 싶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무작정 외우려니 공부하기로는 많이 늦은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스페인어 교재를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영어나 완벽하게 하지...라는 남편의 구박을 꿋꿋하게 물리치며 10분 전에 본 단어의 뜻을 바로 잊어버리면서도 오늘도 틈틈이 스페인어 책을 본다. 생각지 못했던 파급 효과는, 이런 엄마를 보면서 5학년인 딸은 프랑스어를, 1학년인 아들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겠다고 나섰다는 거다. Bonne nuit하는 딸과 Buona notte하는 아들에게 Buenas noches하는 기분, 그거 꽤 괜찮다. 이제 겨우 인삿말하면서 언젠가 유럽 여행갈 날을 꿈꾸는 우리... 전세계에 포진한 일 디보 팬들(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디보의 여성형인 디바..라 부른다. 하지만 일 디보의 팬 중 1/3 이상은 남성들이다.), 디바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 비행기삯만 마련한다면 기꺼이 나를 재워줄 집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일 디보 전기, 일 디보 자서전, 그리고 이들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구입했으나 아직 본전을 뽑지 못한 책들... ^^;;]
이렇게 살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일 디보 팬카페의 매니저가 되어있더라.
카페를 관리하고 정기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이미지 편집, 영상 편집과 변환 등 별별 프로그램을 다 배웠다. 물론 초보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걸 누가 시켜서 했다면 참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난 11월.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 디보의 4집 The Promise가 출시되었다. 내게도, 팬카페 모든 회원들에게도 일 디보의 4집은 정말이지 특별하다. 이전 음반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도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음반 속지에 들어가는 노랫말의 번역을 온전히 팬카페 회원들의 손으로 했기 때문이다. 음반 출시 전 거의 한 달동안 우리말을 다듬으며 준비한 결과다. 곡을 듣지 못하고 음반사에서 받은 가사만을 가지고 작업을 한 터라 아쉬움이 많았고, 나중에 보니 잘못된 가사도 있었지만, 아마도 팬카페 회원들이 나서서 정식 음반의 가사 작업을 한 것은 비슷한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수마저도 소중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보니 재미있는 건, 나는 분명히 일 디보의 노래가 좋아서 어찌어찌 팬카페에 오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일 디보가 더 좋은지, 팬카페 식구들이 더 좋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 기꺼이 이모가 되어주는 사람들, 내가 잊고 지나가는 기념일을 챙겨주는 사람들, 내게 일어난 기쁜 일을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사람들, 내가 마음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들... 아름다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들도 이토록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늘 팬카페 식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여러분을 가족같다..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라고... 이미 여러분 모두는 내게 가족이라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친구를 넘어 가족이 되는 사람들이 3천명이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어느 날 귓가에 울렸던 노래 한 소절이 나에게 이런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면 이것을 우연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4집 수록곡 She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She forse l'amore troppo atteso che
그녀 어쩌면 오랜 세월 기다려 온 사랑
일 디보의 음악과 코리안 디바스는 내게 늘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 힘이 내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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