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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붙잡힌 개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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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알게 된 프랑스의 대통령은 프랑스아 미테랑이었다. 그땐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는 프랑스 최초로 사회주의자 대통령이었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으니, 1980년대생들이 그를 구세대의 상징처럼 여겼다는, 어디서 읽은 문구가 이해되기도 한다.  조금 더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면서는 미테랑 대통령 이전에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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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알게 된 프랑스의 대통령은 프랑스아 미테랑이었다. 그땐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는 프랑스 최초로 사회주의자 대통령이었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으니, 1980년대생들이 그를 구세대의 상징처럼 여겼다는, 어디서 읽은 문구가 이해되기도 한다. 
 
조금 더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면서는 미테랑 대통령 이전에 샤를 드골이 있었다는 것 정도까지 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굴복한 비시 정부에 대항해서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프랑스군을 이끌었던 장군.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불리었던 인물이다. 미테랑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를 구세대라 여겼을 듯하다. 
 
당연히 드골과 미테랑 사이에 또 다른 대통령들이 있었다. 조르주 퐁피두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이들은 이름만 알뿐이다.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 앞뒤, 중간에 알랭 포에르라는 존재감이 미약한 인물이 두 번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테랑 다음에는 자크 시라크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아 올랑드, 그리고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전부 기억하는 인물들이다. 내가 빠뜨려서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 있나 싶었지만, 검색해보니 그렇지 않다.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인물은 이게 전부다. 어쩌면 우리나라 대통령의 순서를 외우는 것보다 쉬울 정도다. 
(참고로 내가 겪은 대통령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소설을 읽고 프랑스 대통령의 순서를 되뇌는 이유는,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에서 그게 배경이기 때문이다. 아예 각 장의 제목이 대통령의 이름이다. 1958년 제5공화국의 출범하는 해부터 2003년 아직 자크 시라크가 집권하던 시기까지, 프랑스의 현대사가 배경이고, 그 현대사는 어떤 이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는지가 꽤 그럼직한 배경 설명이 된다. 
 
하지만 조금만 읽어보면,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면,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꽤 중요하지만, 또 그렇게 개인의 삶에 결정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와 성향을 가진 이들이 한 가족 내에서,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갈등하지만, 그것 때문에 파탄이 나지 않는다. 어떤 쪽이 집권하는지에 따라 열광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아주 경멸하기도 하지만, 개인과 가족의 삶은 정해진 트랙을 따라서 흘러가기도 하고, 혹은 완전히 경로를 벗어나기도 한다. 
 
주인공의 삶에 드리운 깊은 상처(주인공의 우상이자 가족의 희망이었던 형의 죽음)는 애초에 드골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게 그때 일어난 일이기에 프랑스적이었다. 
 
청소년기의 분출되는 에너지는 어쩌지 못해 벌어졌던 일탈들 역시 퐁피두와 상관없었다. 하지만, 68년과 어떻게든 관계되었던 그의 삶이 어떻게 시대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스카르 시대에 일어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여인과의 결혼과 혼외정사. 
미테랑이 집권한 후,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찍은 사진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소원해지는 가족. 
아내가 죽은 후에야 알게 되는 배신, 미테랑을 우상처럼 떠받들었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딸의 정신질환은 시라크의 시대였다. 
 
제목이 ‘프랑스적인 삶’이다. 궁금하긴 하다. 주인공 폴 블릭의 삶이 과연 전형적인 프랑스적인 삶인지.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성공과 추락을 많은 사람이 경험할 것 같지는 않으니. 하지만 ‘프랑스적’이라는 것을, ‘프랑스의 시대와 함께 하는’이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지극히 개인적인 삶 같지만 결국에는 그 시대의 함께 하는 삶이기에,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삶이기에, 어찌 되었든 ‘프랑스적’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폴 블릭은, 아니 장폴 뒤부아는 이 사실을 조금은 냉소적으로 벗겨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우리의 삶은? 결국은 모두가 ‘한국적인 삶’을 살고 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25.01.0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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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Vie Franc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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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집어든 신문. 그 신문에서 나는 내 눈과 마음을 획 하고 잡아 끈 이 책, 을 발견했다. 나에게 책은 이렇게 찾아온다. 우연을 가장해서. 장뽈 뒤부아, 정말 프랑스적인 이름이다. 프랑스는 내게 그 어떤 브랜드보다 파워가 세다. 나에게 어렴풋한 향수와 아련함을 주는 원더랜드. 그 나라의 속내를 지극히 프랑스적인 프랑스인이 열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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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집어든 신문. 그 신문에서 나는 내 눈과 마음을 획 하고 잡아 끈 이 책, <프랑스적인 삶>을 발견했다. 나에게 책은 이렇게 찾아온다. 우연을 가장해서. 장뽈 뒤부아, 정말 프랑스적인 이름이다. 프랑스는 내게 그 어떤 브랜드보다 파워가 세다. 나에게 어렴풋한 향수와 아련함을 주는 원더랜드. 그 나라의 속내를 지극히 프랑스적인 프랑스인이 열어 보여준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너무나도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혼자 하고는 굳이 꺼내 다른 사람에게 말할 가치를 못느끼고 지나가는 생각들을 일일이 펼쳐 내보여준다. 그렇게 피식 웃게 해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미지적으로 남아 온통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준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 지극히 단순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몇 가지 이미지로 이루어진, 같은 메커니즘을 가진 기계들이다. ''인류의 가장 신비로운 사실은 인간이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니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유쾌지만은 않고 자꾸만 힘들었던 이유는 주인공을 이루는 추억의 이미지에 내내 깔려 있던 ''죽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과 허무. 행간에 숨어든 위트와 통찰력은 나로 하여금 정말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치고 싶지 않게 했다. 꼭 내가 <죄와 벌>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를 한 올 한 올 풀어 해치는 듯 느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을때에도 나는 아프면서도 시원함을 느꼈다. 이 책의 개성이자 강점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이벤트들이다. 작가는 5년 동안의 공백기간 동안 경험하고 수집한 소재들을 엮고 꿰매 한껏 멋을 부렸다. 마지막장까지도.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번역이 잘 된 책이다. 여느 번역서를 보면 내 감정이 작가와 함께 솟구치다가도 어색한 번역에 수직하강을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보았던 많은 외서들 중에서 가장 번역이 잘 된 책이었다. 멋진 번역으로 감동을 선사해준 옮긴이에 감사하다. 원래 아무리 좋아도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잘 없는데, 이 책은 이미 다 읽었지만 한 동안 내 손에 들려 있게 될 것 같다. 내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놓쳐버린 금가루들을 다시 찾기 위해. 다시 음미하기 위해.

[인상깊은구절]
너무 너무 많지만, 언제나 혼자서 걸었다. 몇 시간이고 그것을 만날 때까지, 그 길을 내내 걸어간 이유는 결국 그 나무를 찾기 위해서였음을 이해할 때까지. -p. 238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 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p.393
j**********0 2006.02.2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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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묘하게 엮인다.
"<프랑스적인 삶>,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묘하게 엮인다." 내용보기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에로틱한 재밌는 소설이나, 제 3자의 프랑스 여행기, 또는 프랑스 여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제목은 . 한 프랑스인의 삶, 또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어떤 프랑스 사람의 삶... 그 정도로 보였다. 제목으로 잡은 은 약간 왜곡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읽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감을 잡았다
"<프랑스적인 삶>, 시대와 개인의 역사가 묘하게 엮인다." 내용보기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에로틱한 재밌는 소설이나, 제 3자의 프랑스 여행기, 또는 프랑스 여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제목은 . 한 프랑스인의 삶, 또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어떤 프랑스 사람의 삶... 그 정도로 보였다. 제목으로 잡은 <프랑스적인 삶>은 약간 왜곡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읽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감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한 아이가 한 시대와 성장하며 겪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공적인 역사, 특히 정치가 묘하게 엮이는 소설이었던 것이다. 한 소년이 성장하면서 당연히 겪는 육체에의 입문과 그에 있어서 앞서는 친구의 괴기스런 경험담, 우러러 보던 형의 둑음으로 인한 내면으로의 가족의 붕괴, 사랑과 연애, 결혼, 아기들의 탄생... 사회생활을 하는 아내와 집안 살림을 하면서 남자는 아이들을 돌보고, 취미로 하던 사진으로 책을 내고 유명해진다. 그러면서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사업확장차 외국을 다닌다던 아내는 어느 날 자신은 모르는 남자와 소형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이런 한 개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평행적으로 사회상을 보여주듯이, 그 당시 프랑스 정치 상황이 정치가들의 성향과 함께 펼쳐진다. 자세한 사회상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이 대세를 이뤄,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았던 독자의 입장으로는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냉소적이다. 어떻게 보면, 참 무난한 삶 같지만, 씁쓸한 맛이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삶의 한 모습이었다. 이뤄내는 부 속에서 느껴지는 황폐한 영혼의 모습도 보였고,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던 사람의 무관심도 많이 보였다. 시대와 사람이 어우러져 그럭저럭 살아가는 모습이 쓸쓸하다. <안나는 특히 그 시대와 닮아가고 있었다. 건방지고 탐욕스러우며 소유하고 보여주려는 욕망에, 특히 역사가 정말로 끝이 났음을 증명하려는 욕망에 가득 차 있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보다 앞서서 이미 안나는 이러한 명제를 자세히 꿰뚫고 있었다. 즉 세상 사람을 무비판적 대중으로 만들어놓아야만 돈의 흐름을 조절하고 그에 병행하는 이익을 얻어내기에 좋은 것이다. 80년대에는 야망이 없으면 둑어야 했다.> 한 시대를 어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사회 분위기 가운데 살았던 한 사람, 한 가족의 이야기가 때로는 회의적이고 때로는 시니컬하게 펼쳐진다.
g******i 2006.06.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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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스럽다는 것에는 [외국소설-프랑스적인 삶]
"프랑스스럽다는 것에는 [외국소설-프랑스적인 삶]" 내용보기
글쎄, 내가 프랑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더구나 프랑스인의 삶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말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런데 소설 제목이 프랑스적인 삶이다. 프랑스인의 표준 혹은 평균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프랑스인의 어떤 전형적인  한 모습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고, 자신도 없고, 다만 내 삶과 내 삶을 우리나라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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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가 프랑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더구나 프랑스인의 삶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말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런데 소설 제목이 프랑스적인 삶이다. 프랑스인의 표준 혹은 평균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프랑스인의 어떤 전형적인  한 모습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고, 자신도 없고, 다만 내 삶과 내 삶을 우리나라 사람의 삶이라는 기준에 비춰 볼 때 어느 지점에 세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리해 보았을 따름이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은 궁리였다. 

 

소설은 화자가 살았던 시절의 대통령 이름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다. 소설을 읽는 중에 아주 자연스럽게 나도 내가 살아온 시절의 대통령 이름을 나열해 보게 된다. 화자가 그러했듯이, 내 경우에도 대통령 이름과 나의 어떤 시절이 밀접하게 맞물린다. 이런 방식으로라면 저마다의 생을 자신의 소설로 만들어낼 수 있을 듯도 하다. 아닌 것 같았는데, 미처 모르고 살았는데, 대통령 이름과 내 지난 날을 각각 연결하면서 보니 정치 상황이라는 게 내 삶에 미친 영향이 꽤 크다는 느낌도 든다.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어떤 개인도 그가 속한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 의도.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사항일 수 있겠다.

 

대통령 이름의 숫자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 화자와 내 삶의 차이는 크다. 그 간격이 이른바 소설이 되는가 안 되는가의 경계일 수 있을 것 같다. 화자 폴은 내내 시큰둥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짧다고 할 수 없는 생에 겪은 일들은 예사롭지 않다. 딱 소설스럽다. 그에 비해 내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나른하며 평범한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고마울 정도이다. 소설 속 주인공과 삶을 비교한다는 게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또 이런 맛에 소설을 읽기도 하는 것이고.

 

프랑스 사람은 대체로 이런 것일까.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특성들. 어느 정도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받은 인상이 프랑스인은 이러하더라는 어떤 선입견을 만들게 되는 건 아닌지. 프랑스인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니 별로 중요한 건 아닐 테지만, 그다지 괜찮은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도로 당혹스럽다. 앞으로 프랑스 소설을 읽을 때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고.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주인공 이름을 다 '폴'로 삼았다는데, 이번 폴은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21.01.0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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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프랑스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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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나라, 엄청난 중앙집권적 국민성과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 이제는 늙어가는 대국, 산업화 된 문화의 힘 등...그런 특징들의 프랑스는 아스테릭스의 골 시절부터 내려오는 맥락이 있겠지. 어쩌면 상당히 자전적으로 느껴지는 쟝 뽈 뒤부와의 '프랑스적인 삶'은 2차대전 이후에 대어나 68년 혁명을, 유럽의 퇴조와 동시에 세계화를,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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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라는 나라, 엄청난 중앙집권적 국민성과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 이제는 늙어가는 대국, 산업화 된 문화의 힘 등...


그런 특징들의 프랑스는 아스테릭스의 골 시절부터 내려오는 맥락이 있겠지. 어쩌면 상당히 자전적으로 느껴지는 쟝 뽈 뒤부와의 '프랑스적인 삶'은 2차대전 이후에 대어나 68년 혁명을, 유럽의 퇴조와 동시에 세계화를,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빠르고 복잡한 21세기를 살아가는 프랑스 남자의 이야기다. 


파란만장, 누구의 일생인들 파란만장하지 않겠는가? 작가는 가족에게서 가치를 찾는 듯 하지만 이제 여기에는 20세기 사람들이 생각하던 식의 가족이란 없다. 어떻게든 새로운 가족에 적응해 나가겠지만, 20세기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 어쩌면 그들의 부모 세대인 '벨 에뽀끄'를 누린 세대들이 68혁명을 주도한 세대들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않고 죽어갔듯이.


대통령의 집권기에 따라 장을 설정한 것은 아직도 왜인지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정치란 우리보다 훨씬 일상적이고 중요한 주제임은 알겠다. 이들은 가족끼리 식사하며 축구 얘기 이상으로 정치 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프랑스적인 삶의 일부이다. 우리나라 가족들은 무슨 얘기를 하나? 다시 비춰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e****h 2016.03.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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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겪는 한 프랑스 남자의 '농도 조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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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색은 검정이다. 죽음과 관련된 직간접경험에서 나온 추억,인식,감정,태도,생각,철학 등등 이러한 무형의 것들의 색깔 역시 검은 기운을 띠고 있다. 아무리 검정과 상극인 새하얀 퓨어 화이트를 섞어도 그레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블루를 섞어도 블루 블랙, 레드를 섞어도 다크 레드... 제아무리 죽음을 통하여 성숙해졌고, 삶을 다르게 보게 되고,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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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색은 검정이다.

죽음과 관련된 직간접경험에서 나온 추억,인식,감정,태도,생각,철학 등등 이러한 무형의 것들의 색깔 역시 검은 기운을 띠고 있다.

아무리 검정과 상극인 새하얀 퓨어 화이트를 섞어도 그레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블루를 섞어도 블루 블랙, 레드를 섞어도 다크 레드...

제아무리 죽음을 통하여 성숙해졌고, 삶을 다르게 보게 되고,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거나,고인의 삶을 대신 혹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등의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수확물을 거두게 되더라도, 그 수확물의 색 역시 다소 음울하고 고독하며, 차분하거나 무거운 느낌, 그리고 다소 진지하고 엄숙한 느낌을 지니게 된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죽음, 혹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온 본인의 경험, 혹은 뉴스로 접하는 죽음(오늘 혜진양을 살해한 범인이 자백을 했다고 한다)을 매개체로 우리가 불가피하게 겪게되기도 하는 정신적인 외상, 즉 트라우마....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트라우마의 끈질긴 영향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1. 개인사와 국사의 상관관계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도 모르는 주제에(그렇다고 '국사'를 외우고 있는가? not at all 이다... 쩝), 남의 나라 프랑스의 역사와 대통령 그게 내게 무슨 상관이랴...

각 챕터의 제목은 우리나라 시기로 치면 이승만에서 노무현까지(1958년에서 2002년 이후까지) 국가 원수들의 이름 및 임기시기와 일치한다.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상황과 묘하게 얽혀지는 한 프랑스 남자의 일생을 다룰 것이라는 선입견에 '포레스트 검프' 스타일의 개인사와 국사간 끼워맞추기식 이야기일꺼야라는 건방진 생각을 먼저 했는데, 읽어내고 나니 등장 인물들의 정치적 성향이 내비치긴 하나 그 색깔이 진하진 않다.

개인적으로 꼽아지는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이 에피소드만이 기억나는 이유는 나는 당연히 프랑스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당연히 모른다. 그래서 작가가 프랑스 정치와 관련된 상황을 묘사할때는 마땅히 이해할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한때의 여자친구 마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낙태하기 위해 불법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도 아닌)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기전, 여자친구가 누워있는 수술대 옆에 앉아서 듣게되는 의사의 대사가 다음과 같다.

" 운이 나쁘군요. 한 달만 있으면 새로운 법이 시행되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기다린다는 게 옳은 건 아닐겁니다...."

 

2. 이 책의 시작을 주목하기를...

'나의 형 뱅상은 1958년 9월 28일 일요일 초저녁에 툴르즈에서 죽었다. 텔레비젼에서는 그때 막 프랑스 인 17,66만 8,790명이 마침내 제 5공화국의 새 헌법을 받아들이기로 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열살의 나이로 죽은 형 '뱅상'이라는 이름이, 여덟살의 나이에 형을 잃은 주인공 폴의 인생이 펼쳐지는 소설 곳곳에서 (이미 죽음으로 소설속 역할은 끝나버렸으나) 언뜻 언뜻 내비춰진다.

이는 단순히 형을 회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쌍둥이를 잃어버린 남겨진 다른 한쪽의 쌍둥이의 트라우마를 대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트라우마의 잔재는 형의 것이었던 여섯마리 백마가 이끄는 크롬으로 도금한 사륜마차로 대변된다.

형의 죽음 그 순간에 해버린 폴의 첫 반응은 형의 물건, 이 사륜마차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그는 54세의 나이가 되어 아주 오래전 자신의 비겁하고 광적인 이 행동을 회상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인생을 덤덤히 얘기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가 첫아들의 이름을 뱅상으로 짓고, 또 자신의 아들이 이 도금까지한 장식용 사륜마차를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바닥에서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두고, 또한 어머니의 유해가 담긴 병옆에 이 사륜마차를 나란히 두는 행위는, 형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가 자발적인 고립을 택해 우연한 기회로 사진의 세계에 입문, 나무사진을 찍으려 수도자와 같은 여행을 하게 되는 여러 이유중 하나가 형을 잃어서 얻게된 이 트라우마때문이 아닐까 싶다.(스리랑카 호텔방에서 풍토병을 홀로 겪으며 그는 형을 보는 착란 상태에 빠진다)

이에 나는 이 책의 시작 부분- 형죽음을 묘사하는 부분을 다시 읽어냈다.

중년의 폴에게는 여러 죽음의 경험(아버지,아내,어머니 그리고 정신적으로 죽은 딸 마리)들이 있지만 그 중 영향력 일순위는 당연 형 뱅상의 죽음이지 않을까 싶다.

 

3. 비밀 자체가 되는 죽음 VS 비밀이 밝혀지는 죽음 which is better? - 안나의 죽음과 밝혀진 불륜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게되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것들은 정말 있었던 사실이고, 어떤 것들은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그들 version으로 각색된 비밀들이고, 또 하나는 고인이 살아계셨을 적에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시기를 놓쳐버린' 내 감정을 발견하는 새롭게 창조되는 내밀한 비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의 비밀들로 인한 충격이 컸다.

왜 그런고하니 어머니의 죽음후 오는 비밀들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몫이었기에,거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일부러 함구하신 것들이라 별로 비밀로 인한 충격은 없었다.

근데 아버지의 죽음후 오는 비밀은 고스란히 장녀인 내가 다루어야했기 때문에, 처신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했었다.

(그렇다고 이 비밀의 성격이 불륜이나 개인적인 비밀 그런 은밀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과연 사후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더 나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낫다면 누구에게? 명예와 관련되지 않고서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는 비밀이 밝혀지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밀이 밝혀지면서 밀려드는 충격은 오로지 살아남은 자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내 안나가 오랜 기간동안의 내연남(완전 기둥서방이지 뭐...)과의 경비행기 여행중 사고로 목숨을 잃고 나서야, 폴은 아내가 불륜을 행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아내가 사장으로 있었던 회사의 심각한 재정난을 그동안 철저히 숨겨왔다는 것 역시 알게 된다. - 이에 폴은 아내가 연극에 상당한 소질이 있던 여자였구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폴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는 아내의 불륜에 분노하지 않고, 그녀를 오히려 이해하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후회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 이는 결코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의 끈질긴 간섭, 간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지진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폴의 딸 마리처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아픔을 앓는 이를 본적도 있다. 그리고 경미하지만 주기적으로 오는 '돌아가신 분들'로 인한 센티멘탈한 시간을 (나처럼) 보내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들 사이에는 남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그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혼탁한듯, 그리고 음울한듯 그리고 진지한듯한 어떤 묘한 색깔이, 나와 그사람들의 몸과 영혼에 칠해져 있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자의로 칠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칠함을 당했던 것, 어쩔 수 없이 맑은 물에 잉크가 떨어뜨려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이 트라우마를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이다.

'농도 조절하기 ' 그리고 '그라데이션 하기'...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Dark grey- Medium Grey- Light grey 순으로 농도를 조절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블랙에 가까운 색을 점점 very light grey로 그라데이션하려 한다...

그 노력은 힘겹지만 언제까지 블랙인 채로 살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블랙은 곧 죽음이므로...

 

트라우마로 인한 끊임없는 우울에 시달리는 이들을 보면 나는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어여쁜 그레이, 어여쁜 블루 블랙, 어여쁜 다크 레드가 될 수 있는데, 그걸 자신의 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죽음은 어떠한 형태로든, 삶의 한 모습으로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멀고도 가깝게 있다....

그걸 알아야만 죽은 사람처럼이 아닌 산 사람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j*****l 2008.03.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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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다운 프랑스적인 삶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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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랑스인의 삶이 내 영혼을 투과한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설이 바로 "프랑스적인 삶" 이라는 책인것이다. 이책은 1950년대에 집권한 샤를드골시대부터 21c 현재 자크시라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교체되는 시대마다 주인공 폴블릭의 삶에서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적나라하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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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랑스인의 삶이 내 영혼을 투과한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설이 바로 "프랑스적인 삶" 이라는 책인것이다. 이책은 1950년대에 집권한 샤를드골시대부터 21c 현재 자크시라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교체되는 시대마다 주인공 폴블릭의 삶에서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적나라하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여정길은 작가의 뛰어난 예술력으로 승화되어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나며 그 내용전개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폴블릭의 삶에 그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끔 만든다. 또한 그 폴의 삶속에 녹아 스며들어 있는 그 당시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코드, 즉 어떤 정치의식이라든가 성개념에 대한 인식 노동개념등 다양한 삶의 가치관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한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한가?! 그럼 당장 이 책을 집어들고 책장을 넘겨봐라 -by Mr_JaZzYi
YES마니아 : 골드 l********2 2006.08.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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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도 생을 위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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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도 생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   하지만 1950년도 생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분은 이 책을 읽으셔야 할 듯하다.   특히 한국에서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는 1950년도 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그들은 왜? 그들 또래는 왜? 그걸 "진보적"이라고 하지?라는 물음에 답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다.   젊은이의 눈에는 진부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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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도 생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

 

하지만 1950년도 생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분은 이 책을 읽으셔야 할 듯하다.

 

특히 한국에서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는 1950년도 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그들은 왜? 그들 또래는 왜? 그걸 "진보적"이라고 하지?라는 물음에 답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다.

 

젊은이의 눈에는 진부해 보이지만 나름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다는 점을 느낄 수도 있다.

 

다 읽고 나서의 느낌?

 

공지영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었다. (공지영 소설보다는 쪼금 낫다.)

 

그게 어떤 느낌이었나고?

 

이 글이 담긴 리뷰 카테고리 같은 느낌이었다.       

g*****l 2010.10.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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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프랑스적인 삶'
"한 남자의 '프랑스적인 삶'" 내용보기
1.한 치 앞 미래를 보이지 못한다. 그저 예측할 뿐이다. 과거시제 형 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러한 소설은 미래에 대한 숨겨진 공포를, 아찔함을, 내일을 향해 발을 내밀기가 무섭다고 독자를 향해 중얼거리는 양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일의 삶을, 고통스럽고 미련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90년대 이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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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치 앞 미래를 보이지 못한다. 그저 예측할 뿐이다. 과거시제 형 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러한 소설은 미래에 대한 숨겨진 공포를, 아찔함을, 내일을 향해 발을 내밀기가 무섭다고 독자를 향해 중얼거리는 양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일의 삶을, 고통스럽고 미련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과거 시제 형 문학(후일담 소설/시)은 과거의 파란만장한 열정과 시행 착오에 대해서 끊임없이 합리화하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것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현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낸다. 그래서 이런 류의 문학을 접한 독자들 대부분 그들의 과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재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몇몇 독자들은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끼면서 감정적 공감을 형성할 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미래에 대해선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다. 결국 씁쓰레한 현실만 남게 된다. 독자는 그저, 작가의 철없는(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과거를 들었을 뿐이다.

문학이 그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밝히는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이 세상, 우리들의 삶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드러내든가, 아니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 가치를 드러내어 주면 된다. 과거에 어떠했다는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 속에서 어떻게 우리 삶의 본질을, 우리 삶의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에 천착해야 된다. 하지만 내가 읽은 한국의 후일담 문학 모두 과거에 묶여 있었고 미래에 대한 한 마디로 하지 못했다. 오직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과거와 같은 실수의 반복으로의 미래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 과거에 대한 회한 만을 드러내었다.

2.
장 폴 뒤부아의 이 소설도 과거 시제 형 소설이다.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아내의 죽음과 정신병에 걸린 딸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소설도 미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허무의 끝’(393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한국의 후일담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한 번도 자신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심지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조차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할 지경이다. 그리고 미래 속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을 내딛는다. 미래에 대해서조차도 시니컬한 것일까. 그러나 이는 포기도 아니고 무모한 도전도 아니다.

‘시니컬함’(냉소주의)에도 급수가 있다. <<해변의 카프카>>가 결국은 환상 속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시니컬하게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서 그 세상을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이 든 하루키는 깨닫게 되지만, 소설을 변화시킬 힘도, 세상을 변화시킬 마음도 없이 그저 환상 속으로 숨겨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이 점에서 폴 오스터는 더 시니컬하다. 적어도 환상 따위는 만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거대한 현실을 긍정하고 타협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 속에서 최소한 자기 자리만 만들고 싶어할 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을 훼손하지도 않고, 원래 시작했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장 폴 뒤부아는 어떤가.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자신이 살아가고 살아갈 현실 속에서 한 번도 발을 빼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때로는 무책임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폴 블릭은 끊임없이 시니컬하다. 현대 프랑스 정치와 일상 세계에 대한 환멸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가의 작법 때문일까. 과거 시제 형 소설이 가지기 쉬운 자질구레한 감정적 표현들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과거를 온전하게 과거로 받아들이기 하기 위한 장치일까.

시니컬하다고 해서, 폴 블릭은 도망치지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지도 않고 현실적인 삶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독자를 안타깝게 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우리는 결국 현실적 삶 속에서 적극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끊임없이 소극적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폴 블릭을 통해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3.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393쪽)


그래서 폴 블릭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날 저녁 파티가 어떠했는지, 거기 있던 사람이나 거기서 연주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대해 아무런 기억도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붉은 립스틱이 지워진 완벽한 계란형인 안나의 얼굴이다. 즉 찬찬히 들여다보면 세상의 운명을 끊임없이 무시할 것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가진 유성遊星,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얼굴이다. 목은 또한 그녀의 몸의 모든 관절이 다 그렇듯이 가늘고 섬세해서, 전체적으로 마치 중력의 제 1 법칙과 일반 규칙을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139쪽)



그의 아내 안나는 다른 남자와 몇 년 동안 숨겨진 연애를 하다가 헬리콥터 사고로 죽는다. 그 사고의 여파로, 딸 마리는 정신병에 걸린다. 폴 블릭은 책 인세로 모아두었던 모든 돈을 아내가 남기고 간 빚을 갚는데 다 써버리고, 어머니가 죽고 아들은 일본으로 가고, 딸은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폴 블릭은 소설이 끝날 때조차도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내를 미워하지도 않고 정신병에 걸린 딸을 보며 울부짖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삶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을 애초부터 거세한 인물은 아닐까.

4.
하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한 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장 폴 뒤부아의 문장은 서정적이고 위트가 넘치며, 시공간의 운동과는 무관한 인상을 풍긴다. 결국은 아무도 책임 지지 않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것에는 아무런 정답이 없듯이, 소설은 과거에 대해서 변명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한 번의 결정으로 모든 것은 이미 결론 난 상태였다. 그것이 행복한 결말이든, 절망적인 파국이든, 폴 블릭의 삶이 산산조각 났다고 해서 그가 죽음을 끊고 자살을 택하거나 딸 마리를 버리거나 하는 짓 따위를 하지 않을 것임을 독자는 안다. 과거의 신념을 버리지도 않고, 현실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다.

우리 대부분도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끝까지 시니컬함을 버리지 않는 이 소설은 삶에 대한 거창한 교훈을, 미래에 대한 격정적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끝난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버리지 않는다. 과거와 똑같이 그렇게 살아갈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골드 s***s 2011.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랑스적인삶] '인생'이라는 단어와 조우하고 싶을 때
"[프랑스적인삶] '인생'이라는 단어와 조우하고 싶을 때" 내용보기
결코 쉽지 않은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한 남자의, 아니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읽으면서 책 한권에 모두 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줄을 긋는 대신 마음을 아리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쬐그맣게 접어놓은 모서리들 덕분에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계속 그 구절들을 다시 펴보고 펴본다.   책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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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은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한 남자의, 아니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읽으면서 책 한권에 모두 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줄을 긋는 대신 마음을 아리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쬐그맣게 접어놓은 모서리들 덕분에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계속 그 구절들을 다시 펴보고 펴본다.

 

책을 보는 동안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몇 번이나 큰 한숨을 내뱉었는지..

 

좀 더 나이가 든 후에 

인생이 우울하다고 느끼거나

하늘도 우중한 비오는 날 방안에 콕 박혀서

'인생'이라는 이 두 단어와 조우하고 싶을 때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

 

접어 둔 구절들 중 ..

 

그곳은 아주 특별하고 외로운 우주였다. 위반과 자유가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거나 금지되지 않은

방탕한 공국이었다. - p.40

 


식욕은 가고, 세탁은 다 되었다. 인생은 좋은 냄새가 난다. - p.90

 


인생은 '그것'일 뿐 결코 다른 게 아니다. 인내의 연습이다.

 항아리 밑바닥에 언제나 진흙이 좀 남아 있을 뿐이다. -p.136

 

 

남쪽으로 향하는 봄날의 비행에서 느낀 가변운 대기를,

이베리아 보잉의 빛나는 동체를 기억한다.
일체의 사물은 변하고,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고 중얼거렸던

너그러운 감정 역시 기억한다.
비행기를 타면 언제나 진통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황홀하게도 지상의 근심과 권태가

 미치지 못한다는 환상을 주는 3만6천 피트 상공을

 날아간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산소가 희박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 p.197

 


"이걸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서도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거의 팔도, 다리도, 심장도, 폐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모든 것을 발견하고 인생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는 열여덟살의 나를 본단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죽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
- p.354

 


나의 어머니는 십오 분 가량 탔다.

사람들이 아직 따뜻한 재를 가져왔을 때, 나는 아주 깜짝 놀랐다.
그토록 깊은 삶이, 그토록 많은 지성이, 그토록 많은 친절이

 이렇게 작은 항아리에 모두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클레르 블릭은 여름 날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다. - p.355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 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p. 393

 

YES마니아 : 로얄 i****7 2009.06.11.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