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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향해 사냐는 물음에, 나는 늘 ‘행복’이라고 대답했다. 그랬기 때문에 행복이란 걸 생각해 보는 시간도 적지는 않았다. 어렴풋이나마, 행복이 나 하나만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기도 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적어도 둘 이상의 사람을 위해 기꺼이 비워주는 일에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 이 책에서 생전 처음 만나는 글귀는 거의 없다. 저자가 말미에 쓴 ‘나의 온 마음을 쏟았지만 나 자신이 창작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에 일견 수긍이 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이 책은 놀랍도록 새롭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문이 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새로운 세상이 늘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기. 그것은 찌르는 통증을 동반하는 고백과 참회의 시간이다. 스스로 덮어놓았던 장막을 들추고 남이 볼세라, 나 자신까지도 눈을 감아버렸던 미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 책의 어느 구절도 나를 향해 비난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부끄러움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절망보다는 희망에 대한 비전이 샘솟는 걸 느꼈다. 지금껏 나의 고민은 세상의 중심으로 가지 못하고, 변방에서 머뭇거린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부분이 적지 않았는데, 이 책은 단호히 세상의 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숴버린다. 나에 대한 집착, 내 것에 대한 집착이 한낱 머릿속에서만 떠다니다 사라지는 헛된 것임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그야말로 ‘어떻게 하면 세상에 무감각해진다거나 삶의 풍요로움을 퇴색시키는 일 없이(161쪽 인용)’ 자신을 속박하는 괴로움의 근원인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 준다.
얼마나 자주 나는, 우리는, 목마르다고 하여 짠물을 마시거나, 가려움을 피가 날 때까지 긁는 일로만 해결하려 들었던가. 얼마나 자주 우리는 증오와 복수의 감정으로 결국은 나 자신만을 소진시켜 왔던가.
솔직히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형광펜을 집어들었었다. 마음에 남는 구절에 밑줄 치고 때때로 들여다보고자 해서였다. 그러나 줄을 긋자니 한이 없었다. 형광펜으로 밑줄 긋기 식의 자기중심적이며, 편리 추구의 사고방식, 그것이 바로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의 근본적 오류가 아닌가 하는 자문도 해 보았다.
나는 종교가 없으므로, 이 책을 불교관련 서적이라 여기지 않고 그저 정신의 양식을 섭취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영화배우 누구의 말처럼 음식 다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서 편하게 받아먹는 기분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양이 많아서 때로 버겁기도 했고, 범죄자들을 대신해 자신의 육신을 기꺼이 내어놓고 미소로 목숨을 버리는 현자들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참 오랜만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더불어. [인상깊은구절] 질투에게는 욕망처럼 매력적인 구석이 없다. 그것은 분노처럼 정의의 수호자로 가장하고 나타나지 않으며, 자만처럼 가식으로 치장하지도 않으며, 무지처럼 혼수상태인 것도 아니다. 질투라는 것을 어떤 각도에서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그저 보기 흉하고 가련한 인물만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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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행복이란 말씀중에
밖에서오는 행복도 있겟지만 자기마음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것도많고 큰데서 오는것이 아니고 지극히 사소한
아주 조그마한 데서 찾아옵니다.
조그마한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을 느낄때
그것이바로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행복이란 그렇게 화려하지도,사치스러움이 아님을
알게합니다.
빈손으로 태어나 내것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마자 우리네들은
무조건 모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모으는
것보다 버림을 아는것이 어려움을 알게합니다.
공수레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것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합니다.
고정주영회장,고이병철 회장도 세월앞에서는 너무나 약한
사람이었어요. 살아있을때 베품을 알고 실천을 해간다면
모든것을 놓았을때 행복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지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지금이순간에도 쾌락과 절망,기쁨,환희와 슬픔,좌절이 공존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남을 아프게하거나 상처를 주는것보다도 더어리석음은
없음을 알게합니다.
법구경에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못해 마음아프고
미워하는 사람은 봐서 아프다는 말처럼
이또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하는 말씀인것같습니다
이첵에서도 죽음을 뒤로 내몰거나하지말고 아름답게 맞이하자는
데에는 일치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 그렇게 되기가
어려움을 아는 까닭입니다. 모든것을 놓고 참으로 평온하게
그순간을 맞이할수있음은 어느정도 마음의 평정이 있어야함인데
우리네 인간은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이책은 행복에 관해서 인간이 세속에서 느낄수 있는과제는
다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해박한 지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약간은 따분함도 가지고 있는것 같에요. 약간은
어려움도 있어요. 솔직히 말입니다.
모든것을 버리고 불교에 입적하여 많은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고 몸소 실천을 하지만, 그것또한 자신의 번민으로 임함이니
자신이 풀어야함을 알고 떠나지 않았나 보입니다.
조금은 편하고 간결한 문체로 만날수도 있었으면 더욱 빛을
발하지 않았나 합니다. 행복이란 지침보다는 행복에대하여
어떻게생각하고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행복은 우리네들 몫으로 말입니다.
불교는 고통을 시작으로 해서 그고통을 극복하고 그고통을
참고 견디고 이겨내 오로지 마음의 평정을 얻음이 우선이고,
마음의 평정으로 자비를 베푸는 일로써 실천하는 일이 두번째요,
그자비로 세상사람을 다포옹하고 고통과 슬픔, 기쁨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바 마음을 바로잡고 자아를 찾아가는것이 세번째일인듯
합니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음이며, 행복또한 그리가깝지 않음을 알기에
오늘도 부던히 행복을 좇아 다니는것 같아 보입니다.
모두가 공이요, 끝도 공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버리줄 아는 미학을 가져야합니다.
완전히 빈마음부터 저 밑바닥에서부터 고마음과 감사함을
다시한번 깨우치고 또 깨우쳐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cf에서와 처럼 행복도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모든분들이 이타적이아니라, 이세상에서 만남또한 인연이거늘,
그인연 소중히 하시어 참된 사랑 키워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아를 찾아감에 잠시나마 저자의 생각을 보고 배울수
있는 기회가 되어 무척 반가웠구요, 또하루를 정진해야함을 느낍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가내두루 평온하시기를 바라구요,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자비를 모두가 받으실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즐거운만남이었구요, 이런기회를 마련해주신 yes24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새음보살 [인상깊은구절] 행복이란 만들어가는것이기에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느것과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킬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 며칠 전 새해를 맞이하여 사람들이 연하장을 주고받았습니다. 연하장에 쓰인 "늘 행복하세요." , "행복한 한 해 보내세요." , "행복이 가득한 새해 되시길." 등의 인사말 뿐 아니라 "행복한 하루" "행복한 가족" 등 수식어에도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 행(幸)자와 복 복(福)자가 결합된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상태는 어떠한 것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복''을 찾아보면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제시되어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조건이나 상황이 다르고 기쁨이나 흐뭇함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스스로의 경험이나 사유의 정도에 기반하여 ''저마다의 행복''을 이야기하거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또한 이 점에 착안하여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우리가 흔히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오늘날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는 부유함, 명예와 같은 것들이 어째서 진정한 행복이 아닌지, 왜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달콤한 유혹에 지나지 않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잇달아 고통, 자아감, 욕망, 자유, 증오, 이타심, 질투 등 인간의 여러 감정에 대하여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그 성질을 명확히 하여 행복 즉, 불교에서 말하는 수카(souka)에 이르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항상 안고 사는 감정들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파악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이 책의 장점은 깨달음을 이론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만 풀어낸 것이 아니라 예를 풍부하게 들었다는 점, 특히 저자의 경험을 쉽게 풀어놓았고, 다수의 인용으로 가슴에 남을만한 명언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차의 위계 관계가 좀 더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논리의 흐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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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절히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까닭은 ‘진정 나는 행복할까?’라는 자문(自問)에 답을 얻고 싶어서였다. 물 흐르듯이 흘러간 시간들은 어느새 나를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로 만들어 놓았다. 어릴적 어른들의 말씀처럼 세월은 나이만큼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는 요즘이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든 나는 잠시 난감함을 느꼈다. 책의 제목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섣불리 책읽기를 간절히 바랐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차피 ‘행복’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던 처음의 생각을 떠올리며 책장을 열었다. ‘행복원론’을 접하는 심정으로.... 책속에서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한 변명’을 찾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 전반의 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도’라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에서부터 로베르 미스라이나 앙드레 콩트 스퐁빌과 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저마다의 행복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에게는 이성적인 것이, 또 어떤 이에게는 물질적인 것이 행복일 수도 있듯이 저마다의 행복은 때로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나라는 개인은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때로 할 일을 끝내고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평온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닮은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속에 나의 행복이 숨어 있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행복이란 내적 실현의 상태이지, 외부로 향한 무한한 욕망들의 실현이 아니라고 조심스레 중얼거리듯 정의내리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삶에서 모든 일이 자신의 희망과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존재 상태’가 행복이라는 칸트의 주장에 대해 기적만이 행복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라며 의구심을 품는다. 결국에 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초등생 딸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직장인 남편과 살고 있는 나는 과연 행복을 내속에 품고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음에 때때로 감사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그렇지 못한 이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접할 때마다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문득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의 안도감을 행복이라고 느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주의 깊게 읽은 부분은 ‘겸손한 이들의 행복’이란 부분이다. 저자는 “진정한 겸손은 자의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며, 이는 겸손에 대한 의식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참으로 겸손한 자는 자신의 겸손함을 알지 못한다”라고 한 S. K. 싱Singh 의 말을 인용하면서, 겸손한 이들은 자신이 아름답고 총명한데도 스스로를 추하고 어리석다고 믿으려 드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중시하지 않는 이들이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지 않고 타인들을 향해 자신을 열며 만물의 상호의존성에 입각한 바른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겸손은 크나큰 마음의 자유와 함께 가는 것이며, 또한 겸손한 자는 읽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고 한다. 결국, 겸손한 자는 희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 태평스런 기질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이 그렇듯이 나도 가끔 남편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싸움까지 하게 되고 그로인해 며칠 동안 말도 안할 때가 있다. 속으로는 벌써부터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오지만 쓸데없는 고집과 이기심, 자만심 같은 것이 나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으로 행복을 지향하는 태도이기도 한 ‘겸손’을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역설적이게도 겸손은 성격을 강하게 만든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이미지나 타인의 견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지킨다. 티베트 속담이 말하듯, “그는 외적으로는 우리가 쓰다듬는 고양이만큼 온순하며, 내적으로는 야크(티베트 지역의 동물)의 목만큼이나 비틀기 어렵다”. 이런 단호한 태도는 고집이나 집요함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정해진 목표에 대한 명철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라는 부분이다.
흔히, 우리는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전적 의미에서 처럼 자기주장이나 자아는 온전히 비워낸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겸손은 고집이나 집요함과는 다르지만 단호하고 강하다고 한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비유이다.... 저자인 ‘마티유 리카르’는 이 책을 일종의 봉헌물이라고 했다. 동시에 자신의 온 마음을 쏟았지만 자신이 창작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다만, 이 책에 표명한 생각들은 저자의 정신적 스승들로부터 받은 교육과 생생한 본보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라고 하였다. 정말로 ‘겸손’한 표현인 것 같다.
‘행복’을 찾아내기 위하여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갖가지 다양한 분야에 관한 지식과 사실들, 자료들을 토대로 정말 합리적으로 설명해 내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는데도 스승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 책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행복을 위한 변명들을 더 찾게 될 것 같아서....
처음에는 무수히 등장하는 낯선 이름들- 가끔가다 교과서에서 배운 몇몇 철학자들의 이름이 보이기는 하지만-과 인용구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웠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러한 것들에 익숙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유들로 인해 저자가 제시하는 행복론이 더욱더 설득력을 갖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한때 분자생물학 박사로 활동하던 서양의 과학자였던 저자여서 일까.. 지독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행복론’에 조금은 낯설기도 한다. 문득,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
| 사람들이 새해에 덕담을 할때 "건강하세요" 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이 " 행복하세요" 란 말입니다. " 행복 " 이란 좋은 말이지만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 역시도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이책의 저자인 "마티유 리카르"는 스물여섯 살에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과학자였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모든것은 벗어던지고 티베트로 떠나 서른살에 승려가 되었답니다. 이런 저자의 독특한 이력때문에 이 책이 더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책은 저자가 정말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불교철학에 대해 무지한 저에겐 너무나 벅찬 책이었음을 시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엔 가슴의 한쪽 구석이 벅차오름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이책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너무 터무니 없는 일인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좀더 행복하게 살려면 먼저 행복이 정말 무엇인지 알아보고 또 책에 나온대로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불교에선 비범한 건강과 평온한 정신에서 생겨나는 행복의 상태를 수카라고 합니다. 그 반대의 개념인 두카는 고통, 불행, 또는 불쾌감을 뜻한답니다. 이때 쾌락과 행복을 혼돈하면 안되고 타인을 희생해서 쾌락을 맛볼 수 있지만 거기서 행복을 끄집어 낼수 없답니다. 다음으로 고통과 불행도 구분을 해야합니다. 고통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것이지만 불행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랍니다. 제가 제 마음을 다스리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명상을 택하겠습니다. 거창한 의미의 명상이 아닌 매일 아침 10분이라도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명상을 해보려 합니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머리속이 온통 헝클어져 있는 기분이거든요. 명상으로 마음의 평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기초단계인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조금만 자아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 제가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처음에 "나"를 의식하고 거기에 집착한다. 이어서 "내것"을 의식하고 물질적 세계에 집착한다. > 책의 구절인데요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마음의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려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된다는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여러 집착에 대한 마음과 욕심을 조금 줄여보려 합니다. 세번째. 책을 읽고 가장 가슴에 남는 부분인데요. 늘 제가 앞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던 봉사, 선행에 관해서 확신을 했답니다. 학생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실험을 했습니다. 한쪽은 하루종일 자기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여 영화보기, 책읽기, 친구만나기등을 합니다. 또 다른 한쪽은 불우한 이웃을 도울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 만족감을 조사해 보니, 선행이 제공하는 만족감이 자신만을 우한 유쾌한 환경보다 훨씬 높았답니다. 얼마전 한비야 님의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평생 자신을 희생해서 남들을 도울수 있을까 생각 했엇는데, 한비야님은 자신이 행복한 길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답니다. 앞으로 저도 제가 행복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이 여러 이웃을 도우면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다시 느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느낌입니다. 행복은 늘 우리곁에 있으며 그것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렸고, 제 자신의 인생목표를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데 두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책이 다소 난해하고 무거울수 있으나 끝까지 읽어보면 저처럼 무엇인지 모를 감동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다 읽었으나 저자의 뜻을 10분의 1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전 아무래도 다시한번 이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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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쓴 저자의 노력이 보였지만, 첫 장을 펴고 읽어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문제들을 개념부터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이지만 어찌할 도리없는 감정이라고 여기는 두려움, 질투, 증오,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슬픔과 같은 감정들에 대해서 왜 그것들에 휘둘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행복을 바라지만, 그것을 원하는 열망만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짚어간다. 우선, 자신이 바라는 행복이라는 실체는 무엇인지 충분한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행복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학교나 직업을 갖기 위한 만큼의 노력을 행복을 얻기 위해 시도해 본 적은 있냐고..
많은 비관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운명이라는 고약한 것이 우리의 불행을 가져왔다고 믿는다. 나는 그것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원인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초한 것이고 불행을 피해가기 위한 노력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터무니 없는 행운을 얻는 사람들인지 이해가 갔다. 텔레비젼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의 감정에 감정이입을 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손쉽게 획득하는 성과들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비관한다. 광고나 드라마에서 하는 일들은 기분 좋게하는 거짓말, 실체가 아닌 환상을 심어주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운명이 자신을 휘두르고, 현실이 자신을 속였다고 하지만, 문제의 실체는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왜곡해서 봤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는 뜨끔해졌다.
고통을 불행으로 해석하게 주체는 정신이기 때문에, 지각을 다스리는 것도 정신의 몫이므로 정신의 유연함을 기르라고 충고한다.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 정신에게 가해지는 일은 없으므로,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의 명상의 방법을 제시하고, 과학자로서의 저자의 실견을 살려서 왜 비관주의보다는 낙천주의가 나은지,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보다 어떻게 자신에게는 결과적으로 이롭게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행복의 본질에 대한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면 정독을 권하고, 여러 번 읽어봐야 할 책. [인상깊은구절] 정신적 작위는 우리의 인식과 현실사이에 구덩이를 판다. 그로 인해 세상과의 끊임없는 갈등이 야기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나서 세상이 우리를 속인다고 말한다" .. ... 우리는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기고, 고통의 원천에 다름 아닌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p. 26) "우리는 오락에 바치는 시간의 100분의 1도 자기 성찰에 바치지 않는다. 애정생활이나 직업상의 변괘가 생겨 ''사태를 새삼 의문시''하게 되었을 때나 잠시 그렇게 할 뿐이다. 그나마 얼마 동안 어떻게 하는가? 진정으로 우리는 그런 기회들을 덧없는 확신들의 합당성, 애 착이나 감정들의 덧없는 본성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는가? 대개의 경우 우리는 다만 ''나쁜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요. ''생각을 바꿔줄'' 기분 전환 거리를 열심히 찾을 뿐이다. 배우들과 무대장식은 바뀌었어도 연극은 게속 되는 것이다." (p. 332-333) |
| 행운을 의미하는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세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행복의 의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희열일 수 있겠지만 갑자기 현실이 바뀌면 예전엔 사소한 일들이 지금은 너무도 감사하게 되는 걸 깨닫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일,빨간 불이 들어 오기 전에 횡단 보도를 건너는 일, 저만치 정차한 버스를 향해 뛰어서 놓치지 않고 타는 일,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는 일 등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 사소한 일들이 불가능 할 때 알게 됩니다. 이 책은 분자 생물학 박사인 촉망 받는 과학자 마티유 리카르가 행복론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다소 무겁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감정에 대한 부분에서는 절실히 공감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강화하고 타인의 행복을 지향하는 감정을 긍정적 혹은 건설적 감정으로 본다.반면, 마음의 평화를 파괴하고 정신을 깊은 혼란에 빠쁘리고, 타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감정은 부정적이거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감정이다. 결과를 살펴 봄에 있어서도 유일한 기준은 우리의 행동과 말, 생각이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행복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느끼는 증오나 분노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을 보자마자 우리의 생각은 온통 그가 우리에게 했던 나쁜 짓에 대한 기억과 현재 그가 하고 있는 공격, 미래에 그가 할지도 모를 공격들에 고정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여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이름조차 듣지 못할 지경이 된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에 휩쓸릴수록 분노는 우리를 사로잡으며, 급기야는 돌이나 막대기를 집어들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어진다. 그리하여 아주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우리를 증오의 절정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 글들이 가슴에 와 닿는 건 지금의 제 감정이 이런 상태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두카(고통,불행)였는데 그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말씀 하나하나 되새겨 보려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우리 마음을 바꾸는 일은 가능하며, 마음을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지만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지금의 마음 상태가 두카(구통,불행)지만 이 책의 내용들로 하여금 제가 수카(행복,평안)로의 삶을 얻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보며 독자 여러분의 삶도 수카가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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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생각한다. 고로 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언 중에 하나를 인용한 <행복을 위한 변명> 리뷰의 제목이다.
이 책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 지식과 경험을 한데 모아 행복에 대한 정의와 행복을 찾아 나서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행복 백과사전이다.
저자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줄만 안다면 세상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작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스리라는 내적 행복, 즉 안으로부터의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몇 해전에 조사한 세계국가의 행복지수를 보면 방글라데시가 1위이다. 열악하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그들이 가장 행복한 이유는 기대치는 낮고 욕심은 없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감사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집, 다른 회사, 다른 나라와 나를 비교하는 수평적 행복변화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비교하는 수직적 행복변화가 진정한 행복찾기일 것이다.
간디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사의 양이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의 양이다”라고 하면서 더 많이 감사할수록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의 크기만을 키우기 위해 맹목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불행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통과 불행의 크기를 줄이면 행복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 작심삼일하는 우유부단함, 참을성 없는 조급함,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선입관 등의 마이너스적인 요소들을 스스로 가꿈으로써 플러스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행복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큼이나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 접근을 통한 저자의 행복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어렵고 무겁다. 지금까지 편하고 가볍게 얻은 행복은 쉽게 잊혀지고 사라졌으니 이 책을 통해 얻은 행복은 오랫동안 내게 머무르면서 내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난 행복하다. 고로 난 존재한다” [인상깊은구절] 불행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을 좇느라 불행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저마다 남의 행복을 좇느라 행복하다. 숱한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자기 이익에 얽매인 어리석은 자와 타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성인을 비교해보면 알 일이다. p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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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봤을때 생각이 난 것은 생각보다 두껍다는 것과 상당히 고급용지를 쓴 것처럼 냄새가 풍겨져왔습니다.
책 제목에서 행복을 위한 변명이라는 것인데 부제로는 행복하거나,존재하지 않거나입니다.그러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는데 책을 보니
행복에 대한 정의를 수천가지라고 하며 저자는 수카라는 단어로 삶의 순간순간에 잠재해 있는 충만을 얻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깨달음을 하나하나 밝히는데,내 생각으로는 저자의 이러한 저술이 상당히 금방 머리에 익혀지지 않고 맴도는 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순간적이면서도 오랫동안 생각하며 썼으며, 단숨에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차례에 보면 여러가지의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상당히 깊은 명상적인 상황에서 저술한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한번에 읽혀지지도 않고 두고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책으로 본다면 내용은 쉽게 풀이했지만,난독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명상에 대해서 자비심을 갖고 단혼한 결심으로 시작해야 한다는데,보통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하는데서 문제점이 생깁니다.
이 책에서는 그 후에 기쁨에 대한 명상을 갖고 그것이 지나치면 공평함의 단계로 가고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가야한다는 것으로 보아도 단순히 읽기 위한 서적이 아니라,실천을 위한 명상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적인 경향으로는 티베트의 성인들에게서 볼 수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가 존재하는 성스러운 산은 티베트를 뜻한다고 전해질 정도로 많은 은자들이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신비주의는 불교에서는 밀교(밀종)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밀교는 상당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존재하는데,위 저자는 서구적인 논리를 갖고 이러한 밀종의 교리실천적인 면을 부각합니다.(우리에게 친숙한 달라이라마도 그러한 의미에서 실천을 강조하죠.행복이라는 주제를 말합니다.)
몇가지 동의하는 부분으로 약간을 든다면
지금은 명상제로상태가 보편화되서 오락에 바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것,
몰입이라는 것은 흐름이라는 것과 흐름은 쾌락과는 다르다는 점
정신의 본성에 대한 명상은 긴장이완과 흐름이 조합되는 체험이라는 것 같은 것입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다른 명상서적과는 다른 실제로의 실험부분에 있습니다.
(뉴스에도 나온 그 부분입니다.)
대부분은 필자가 말했듯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 내적인 조건들과 외적인 조건들의 관계를 표현하는데(다른 책들에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실험실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행복과 뇌 기능의 관계를 탐문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다른 명상과는 달리 저자와 달라이라마가 행하는 명상이라는 것을 서구적인 의미에서 증명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명상이 지극히 주관적이 아니고,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말합니다.
마지막 제목인 길하나에서 이 모든 여러방면의 행복에 대한 것,그에 도달하기 위한 것,여러가지를 단순하게 정리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을 내 나름대로 제목을 붙이면 행복을 위한 실천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부제인 행복하거나,존재하지 않거나처럼 행복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인상깊은구절] 명상은 지적인 힘만이 아니라 결단력과 겸손과 성실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중략) 아무리 훌륭한 명상이라 한들 그것이 존재를 전반적으로 개선시켜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