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는 우리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아주 오래 전부터 끼쳐왔으며, 우리가 더 잘 살려면 유교의 잔재를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점이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유교식 권위주의, 봐주기 문화, 획일성 같은 가치를 없애고 수평사회, 창의성 높은 사회,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책을 대충 훑어보면 구구절절 옳은 말인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대부분 읽기 거북할 정도였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획일적인 교육을 없애고 창의적 사고를 키우는 교육을 하자는 것 뿐이었다. 물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옳다 틀리다 할 수 있는 기준이 희미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외래어 도용을 주장하는 등 과도하게 '바람직하지 못한 세계화'를 신봉하고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려는 것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제목에서는 유교 경전을 분석한 뒤 그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어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을 가할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저자는 다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잘못한 점을 꼬집을 수도 없는 수직적 문화'라는 사실이 무조건 유교의 잔재라고 규정하고 공자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한중일 삼국의 칼을 비교하는 것도 일본이나 중국은 음식마다 쓰는 칼이 다르니 변화무쌍하고 창조적, 한국 칼은 한 가지 종류밖에 없어서 획일적이라고 하는 부분. 그리고 만들기도 불편하고 한 가지 종류만 먹어야 하는 김치가 획일 적 문화의 표본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논리로 따진다면 총각 김치 열무 김치 부추 김치 등 수많은 종류의 김치가 있는데 이 것도 획일적이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허술한 비판을 하다보니 '씹을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지 비판을 위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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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온 건 1999년이다. 그 때는 내가 아직 대학생 시절이었다.
그 무렵,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오자, 온 나라가 큰 충격에 휩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교를 숭상하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무렵, 이 책을 수없이 읽었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에 대부분 찬성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이 30이 넘은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심한 질타와 반박을 들었던 백지원의 책들과 비슷하다. 저자만의 아집과 편견, 게다가 한국 사회를 극도로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혐오하는 시선까지 가득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은 수많은 오류들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저자는 고대 한민족의 나라였던 부여가 현재의 러시아 국경과 인접해 있으니, 부여인들은 러시아인과 혼혈이 된 민족이니, 순수한 한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심하게 말하자면 무식과 무지의 극치이다. 러시아가 만주 일대에 세력을 뻗치게 된 것은 아무리 빨라야 1660년 무렵이고, 정식으로 연해주를 영토로 편입한 시기는 1860년 제 2차 아편 전쟁에서 베이징 조약을 체결해 준 대가로 얻은 때였다. 그리고 17세기 이전까지 광대한 시베리아는 백인종인 러시아가 아닌, 몽골계와 투르크계 등 아시아계 유목 민족과 수렵 민족들이 살던 땅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에 발흥하여 서기 5세기 말에 멸망한 부여가 대체 어떻게 서기 17세기에야 시베리아와 만주에 나타난 러시아인과 피가 섞일 수 있단 말일까? 러시아인들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타임머신이라도 만들어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단 말인가? 그럴리는 없다. 저자는 지금의 국경만 보고 대충 짜집기해서 엉터리 발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로마가 다른 민족들을 야만인 취급하며 개처럼 몰아내는 배타적인 습관 때문에 망했다는 어느 일본 작가의 글을 버젓이 소개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무식과 엉터리로 가득 찬 헛소리이다. 로마가 그렇게 타민족에 배타적이었다면 어떻게 자그마치 1200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저자는 미국과 일본은 한국보다 잘 살고 힘 센 나라이니, 그들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그들과 동등한 대접을 바랄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왜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대하느냐고 자뭇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런데 이 발언이야말로 모순 투성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눌리고 뒤쳐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왜 우리가 우리보다 국력이 약한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대해 주어야 하는가? 그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에게 돈을 주는 강자는 우리인데?
가장 나쁜 글쓰기는 같은 사람이 같은 글을 쓰면서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찍이 백지원도 고려왕조실록에서 간도는 이미 중국 땅이니 찾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말이라도 못하느냐고 말을 바꿔서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보니 김경일도 백지원도 전혀 다르지 않다. |
| 우리 나라의 전통 속에 배여 있는 유교사상들이 잘못된 전통과 잘못된 습관들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깨닳게 되었다. 우리의 생활가운데 깊숙히 베여 있는 유교 사상이 이 나라를 망친다. 나라를 망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망친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학연과 지연은 없어져야될 것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학연과 지연은 실력을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아는 사람있으면 모든 것이 무마되는 나라이다. 나 자신을 봐도 그런것 같다. 나의 생각과 사상 가운데 학연과 지연이 먼저라는 생각이 내면속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뒤짚어 보면 내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아는 사람부터 찾는다. 어떻게든 온갖 방법을 사용해서 해결할려고 한다. 내 마음 속에 깊숙히 체득되어 있는 공자부터 없애야 이 나라가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
| 일단 작가의 직설적인 말투에 놀랐다. 이토록 유교적 가치관에 대해 일언지하에 비판을 해버리는 책은 없었다. 주변에서 하도 '공자가 죽어야 정말 나라가 사는거야'라는 말들을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런 책이 있었다. 읽어보니 사회,문화,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발전할 수 없었던 한국인의 삶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정말 잘못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비평의식이 생겼고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고쳐나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정내까지 뿌리깊게 파고든 공자. 무조건 그의 사상이 나쁘다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급변하는 세계화시대에 맞지않는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 갑골 문자의 발굴과 그 연구 결과를 통해 재구성한 역사적 진실을 밝힘으로서 유교는 진실을 왜곡한 위선적인 사상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사상 위에 세워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음도 말한다.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어느 정도 일리있는 면도 있다. 그리고 유학계에서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를 보며 유교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이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중문학자가 쓴 글 답지 않게 갑골문 연구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이 일반인을 위하여 쓴 것임을 고려한다고 해도 너무 빈약하다. 거기에다가 난삽한 구성에다가 별 근거 없는 주장을 나열한 것을 보며 이 책의 인기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선정적 제목 덕임을 확인하였다. 이 책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공자 사후의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따를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급속도로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에 젖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공자는 죽었을지 몰라도, 공자가 살아 있었을 때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게 우리다. 이 책은 유교처럼 위선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현실을 왜곡시키기는 매한가지다. |
| 99년 당시만 해도 한창 이슈가 되었던 책이다. 하지만 독자서평이 하나도 없는걸 보면 이 책의 가치가 절하된 느낌이다. 군대가기 전에 사놓고 제대해서 바로 복학하고 교육사회학을 배우면서 언급된 책이다. 교수님께서 논문 준비하면서 지도교수님께서 이 책을 읽으라고 해서 날새서 읽고 다음날 얘기 나누셨다는 일화가 있는 책. 읽으라고 하면 날새서라도 읽어와야 한다며 안일한 내 생활을 채찍질해주시던 고마우신 분. 그래서 책꽂이에 파묻혀 있는 걸(집에 책이 200권 정도 있음) 당장 꺼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간은 알게 모르게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패러다임에 젖어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인간을 사회화함으로써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렇다고 사회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른들의 가치관념을 아이들에게 내면화함으로써 이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가 똑같지 않고 각각의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개별성은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무엇을 경험하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앞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경험 중에서 한정된 경험만을 체험할 뿐이다. 이러한 경험을 넓혀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 나에게있어 이 책은 패러다임 전환, 의식혁명의 성격을 갖는다. 보통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내세가 없다는 이유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거의 생활처럼 굳어져서 의심할 이유가 없었고 또한 의심한다는 것 자체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교 자체가 사고를 많이 닫히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아들을 낳았을 때와 딸을 낳았을 때 각각 어떻게 길러야 되느냐하는 질문에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하며 따지는데 간단히 인간으로 키우면 된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이렇게 생각을 깨뜨려주는 내용의 책들을 만나면 굉장히 반갑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진리가 깨질수도 있다는 믿음. 나아가 무엇이 진리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진리인가가 더 중요하고 초자연현상이 있는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신비롭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한번 깨뜨려보고 싶거나 사회를 보는 눈을 다르게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은 기본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 내면을 흐르는 유교 전통은 '바이러스'일 뿐이다. 모든 사회적 부조리 밑에는 충효, 정절과 같은 유교 규범이 깔려 있고 결국 그것은 사회를 경직되고 퇴보하게 만든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공격의 대상은 명확하다. 유교는 이제 끝난 이념이라는 것. 유교를 버릴 때만 비로소 사회를 생기있게 설 수 있다는 것. 본디 유굔느 지배층의 권위를 합리화하기위한 사상이엇다. 효라는 허울좋은 이름아래에 노인 복지를 개인의 과제로만 고집하고 많은 사람들을 과중한 의무에 허덕이게 할뿐더러 사회적 해결 방안도 막히게한다. 여기서 파생된 충은 혈연 우선 주의와 무조건적인 복종의 문화를 낳았다. 상명 하달은 당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의 대화는 곧 버릇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 권위에 눌려 창의성이 꽃필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유교 사회는 일부 엘리트 계층이 이루어 질 수 없는 도덕적 이상을 앞세우며 사회를 이끌고,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실패하고 대화가 없는 권위를 앞세우기에 부패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도덕적 이상을 앞세우는 끊임없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작자는 유교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경직된 사회의 잔상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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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제목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저자 : 김경일 ISBN: 89-87180-39-5 03810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 : 유교문화, 출판년도 : 1999 쪽수 : 327 Page 전집권수 : 1 권 독서기간 : 2013. 01. 07 평가 : ★★★★★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10살 때부터 한자와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에 갑골문을 배웠고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상명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이력중에 인상깊은 것은 1990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갑골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동양문화의 기원과 갑골문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글쓴이는 1994년부터 해마다 진행하는 중국 배낭여행을 통해 중국인들의 문화적 특성과 의식구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서 얻은 결과들을 책과 강연, 방송, 칼럼 등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깊숙히 뿌리 내려진 ‘잘못 된 유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한민족이 ‘그릇 된 유교사상’을 바로 잡고 새로운 틀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집필했다.
인상깊은 구절
1) [page 23] 그보다는 더 단단한 자존심과 실력을 바탕으로 이들과 공존하고 이들과 악수하며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싶다. 남을 매일 미워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2) [page 24] 남의 땅에서 난 것이라도 깨끗하면 건강에 유익할 것이고, 우리 것이라도 뭔가 장난을 쳤다면 건강에 나쁜 것이다. 지구를 빙빙 돌며 벌어와도 시원치 않은데,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못난 우리 것 지킬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못난 짓이다. 우리 사회의 '신토불이'에는 일종의 기피증(avoidance syndrome)이 숨겨져 있다.
3) [page 27] 왜들 이러나. 눈을 잘 씻고 주변을 보자.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조금 차근히 보자. 그 어설픈 구호들에 속아넘어가지 말고 말이다. '우리 것' '우리 것'하면 할수록 우리 모습은 작아진다. 그건 아무리 봐도 자신감이 없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끼리 하지 말고 남들과 경쟁해보고 '너희 것 좋아'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4) [page 28] 우리 사회의 '신토불이'에는 일종의 기피증(Avoidance Syndrome)과 문화적 폐쇄성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 기피증이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싫어하거나 불안하게 느끼면 미리 도피해버리는 증세다. 그리고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핑계를 만들게 된다. 핑계 대지 말자. 입장 바꿔 생각을 해보자.
5) [page 31] 한국인들이 회식을 즐기는 이유는 공돈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 공돈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먹자'는 공범심리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각자 번 만큼 돈을 받고 돈을 쓰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공짜 심리가 어느 조직에나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판공비다.
6) [page 33] 그까짓 공짜 술 한잔이 무에 그리 대단해서 자존심을 다 내던지고 껄떡거리나? 이제 아주 배고픈 시대는 지났고 자존심을 생각하면서 살아도 될 만한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공짜 술에 취해서 비틀거려야 하는가?
7) [page 35] 조선 왕조가 멸망한 이후, 글을 다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한학자들이었다. 그들만이 글을 쓸 수 있었고, 학문을 점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역사와 사회 해석의 주체들이었다.
8) [page 36] 사실 전세계 민족들 중에서 일본인들만큼 한국인을 적나라하게 알고 있는 민족이 또 있을까? 이제는 "우리의 단점을 지적하시오. 고치겠소." 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겉으로 욕하면서 속으로 일본 부속품 죄다 수입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태도를 버리고 떳떳하게 배우고 비판 받고 훗날을 기약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9) [page 41] 동양 사회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점 중에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채 발전을 더디게 하는 현상으로 나는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법치가 되지 않는다. 둘째, 늘 과거에 묻혀 산다. 셋째, 주검을 숭배한다.
10) [page 43] 어느 나라나 법은 다 있다. 조선시대에도 위대한 법전 "경국대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법은 엿이었다. 늘이면 늘어났고 자르면 잘라졌다.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법은 있었지만 'rule'이 없었던 거다. 어느 누구에게도 법이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 그 규칙이 조선에는 없었고 한국사회에도 없는 것이다.
11) [page 47] 그래 좋다. 왕손이라고 치자. 그럼 그 대단한 황금 궤짝은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가? 임자를 못 찾는다면 그 잘난 경주 김가의 조상은 사생아가 된다.
12) [page 51] 민족이고 국경이고 하는 것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고 해석하기 나름인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경이라고 그어진 그 선들로 우리들의 삶을 재단해야 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13) [page 52] 무조건 넓은 땅은 다 우리 것이었고, 핏줄은 오로지 한 줄기였다는 '기대'를 역사에 라면 수프처럼 뿌려 넣는 한 국물은 탁할 수 밖에 없다. 제대로의 역사가 보일 리 없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14) [page 54] 단군의 곰이 반달곰이었든지 북극곰이었든지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 곰의 쓸개에도 관심이 없고, 더구나 그 곰으로부터 수혈 받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저 나는 '단일 민족'의 역사에서 벗어나 조금은 홀가분해지고 싶을 뿐이다. 동양의 역사도 사랑하고 싶고, 서구의 문화와 역사와도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15) [page 60]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폐쇄성에 있었다. 그것이 우월의식에서 비롯되었건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들 삶을 망가뜨리고,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만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6) [page 61] 친구인 인도 국제대학 중문학과 교수 쿠마의 영어는, 뿌리는 라틴어였지만 영국 영어와도 다르고 미국 영어와도 다른 독특한 인도식 영어다. 어려서부터 힌두어와 함께 익힌 영어가 그의 인도적 정체성을 망가뜨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국제사회에서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국제어인 영어를 이용해 자신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신들의 몸값을 높인다.
17) [page 72] 인간이란 따지고 보면 참 웃기는 존재들이다. 양복을 입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지만 뇌는 여전히 청동기시대에 멈추어 있다. 청동기, 철기시대부터 이어온 이 긴 애증의 역사와 함께 우리는 사이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로 들어가려 한다. 영남은 영남대로 '챠라!'만 내뱉지 마라. 호남은 호남대로 너무 '거시기 하게' 뭉치지 마라.
18) [page 75] 중국이나 일본인의 그것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끼리 만들어놓고 우리끼리 의미 부여해봐야 결국 서로 속고 마는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해야 다음 답이 나온다.
19) [page 78] 이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특히 우리 것에 대해 냉정해져야 한다. 버려야 할 것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을 차분히 골라내야 한다. 더 이상 새로운 세계의 흐름인 문화의 다원주의 앞에서 우물쭈물해서는 안 된다.
20) [page 85]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검은 곰팡이처럼 자라고 있는 유교의 해악을 올바로 찾아내고 솎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21) [page 91] 결론적으로 우리는 한 번도 유교를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다. 한일합방, 해방, 전쟁, 쿠데타, 지역 싸움, IMF 등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떠밀려왔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100년도 더 늦은 오늘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만으로도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아직도 그것을 끌어안고 나름의 방법과 위안을 찾는 우리의 어리석음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22) [page 94] 이들 세 새대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누구에게 기준을 맞추어야 할까?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 좀더 따뜻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문화적 타협과 가치의 빅딜을 해야 할까? 해답은 공자의 몇 마디로 재구성된 허구의 세계인 유교, 그리고 그 픽션의 허구를 따라가며 허공에 지어놓은 유교 문화에 대한 반성적 해체에서 얻어질 수 있다.
23) [page 100] 인류의 발전은 자신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투명한 사회 속에서 가능하다. 역사적 진실을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끼리라야 토론이 가능하다. 서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토론이며 화합이다.
24) [page 115]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며, 스스로 얽은 그 의미의 그물에 구속되는 동물이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허구의 가치, 왜곡된 가치를 추구했고 심지어 이를 제자들에게 강요했던 공자는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 되고 만다. 동양사회의 스승은커녕 동양사회 전체를 거짓과 왜곡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다.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찾기 위해 공자의 제자들 모두는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가야 했으며, 모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미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그물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이제 ‘과거’는 시간 속의 과거가 아닌 삶의 의미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가치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과거’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슬픈 일은 공자의 제자들이 문헌에 나오는 3,000명뿐 아니라 오늘날 유교 문화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를 지칭한다는 점이다.
25) [page 119] 유교만이 최고의 진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것은 배울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선언과 함께 유교를 제외한 모든 사상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요즘 말로 하면 언론에 대한 기술적 통제다.
26) [page 127]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우리 사회 병폐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았고, 그 중에서도 주자학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나는 그의 여러 담론과 책들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주자가 살았던 깊은 산수(지금도 교통이 불편)와 그가 살았던 남송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의 우주론적 에세이에 담긴 조금은 서글픈 한 사내의 고독과 우울을 알게 되었다.
27) [page 131] 잘못된 출발, 정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비열한 싸움, 당쟁으로 불리는 싸움의 시작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쟁이 만드는 죽음들은 연극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처럼 우아하지도 않았다. 나라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벌인 당쟁의 결과는 너무도 엄청났다. 짱시의 깊은 산 속에서 별을 헤며 끄적였던 한 불면증 환자의 에세이가 불러온 파국치고는 너무 비참한 것이었다.
28) [page 133] 물론 때로 과거를 참고할 필요는 있겠지만 동양인들은 이 논리를 불변의 진리로 못 박아버렸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2,000여 년 이상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은 수많은 해석들을 ,아니 억지들을 써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현상이 나올 때마다 낡은 경전을 뒤적였다. 때문에 이 옛 것에 맞지 않는 것들은 가치를 부정당했고,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문인, 지식인들은 경전을 펼쳐대는 지식인들에 의해 매장당해왔다.
29) [page 134] 주검의 처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거기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게 마련이다. 주검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소란은 언제나 상가집을 더욱 분주하게 만든다. 특히 주검을 주검으로 처리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연장’으로 해석하는 유교의 상례 문화는 주검 치장과 분묘 치장 문화를 만들었다.
30) [page 136] 이 ‘뒤돌아보기 문화’로 인해 한국인은 오래도록 미래를 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는 새해가 다가오면 그 해에 지내야 할 제사의 음력 날짜부터 헤아려 달력에 수십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이미 새로운 1년은 과거로 가득 차버리고 내일은 어제의 장례식 기억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인생은 없는 것이다.
31) [page 142] 새롭게 포맷이 되지 않는 한 어떤 프로그램도 결국은 공자 바이러스에 의해 다운되고 마는 것이다.
32) [page 145] 한국은 10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한일합방, 6.25, IMF라는 국가적 파란을 세 번이나 당했다. 거의 민족과 국가가 사라져버릴 만한 붕괴의 위기가 50년이 멀다 하고 순환적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50년을 주기로 멍청한 위정자가 잊지 않고 나타나기 때문일까? 사실 이유는 바로 유교 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체적 모순들 때문이다. 이 자체적 모순들이 위에 제시한 사이클을 거치면서 마침내 분출된 것이었다.
33) [page 157] 노인들의 문제는 효도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에서 제도와 설비와 관심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제도와 설비 마련에 더딘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가 이제껏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숭상해왔던 효도에 대한 터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거품처럼 부글대는 이 문제를 숨기면 숨길수록 희생자는 점점 많아져 간다.
34) [page 164] 황진이는 왜 기녀가 되었을까? 유교의 신분 사회, 유교의 틀을 가지고 붕어빵을 찍듯이 여자를 찍어내던 사회, 한치의 오차도 없는 유교의 굴레 속에서 힘과 배경이 없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몇이나 되었을까?
35) [page 180]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고 외칠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곁에서 배워야 한다. 그것이 설사 자존심 싸움에서 지기 싫은 일본인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또 사실 거의 베껴오고 있지 않은가? 조금 솔직해지고 허심탄회해지자. 그래야 인생이 즐거워진다.
36) [page 182] “월남전 때 전쟁에 참가했나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가려지도록 앞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던 그가 씨익 웃는다. 어려서 듣던 베트콩이란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난 계속 선생이었어.” “한국이 전쟁에 참가했는데 미워하지 않아요?” 또 씨익 웃기만 한다. “월남 여자들 많이 건드리고 한국 사람 닮은 애들이 많이 있다던데.” 다시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가 천천히 말을 꺼낸다. “우린 다 용서했어.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이야.”
37) [page 189] 두 개의 인접한 문화권이 공존하면서 어떻게 일방적인 주입만이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역사와 문화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 ‘역사 해석’을 학교에서 내내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한국 역사 왜곡만큼이나 유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38) [page 189] 주고받으며 때로 싸우고 화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다. 만일 우리가 일본에 건네준 문화의 일단면만을 가지고 일본을 문화적 속국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한, 그건 우리가 일본의 강제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부려보는 억지고, 또 다른 콤플렉스일지 모른다는 혐의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다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못났고,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을 용서 못한다면서도, 일본의 도움이 없이는 자동차 산업은 물론 내노라 하는 방송국 프로그램조차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우리의 현주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모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39) [page 190] 나는 내 아이에게도 일본을 미워하라고 말해줄 용기(?)가 없다. 나는 아이에게 일본 친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고베에서 만났던 제 엄마 친구의 딸인 눈이 땡그란 동갑내기 계집애 마이짱 같은 친구를 말이다. 순수한 내 아이의 가슴에서 어떠한 미움의 씨앗도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
40) [page 201] 유교의 가치관 중, 공자가 한 말로 이런 것이 있다. “괴이하고, 억지 쓰는 것,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이고, 순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만 말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상황들은 사회를 지탱해가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다시 다루어져야겠지만, 이로 인해 600년(조선 500년+근현대) 이상 억압된 상상력은 21세기가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터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41) [page 210] 성의 문화 역시 같은 동기, 같은 이유로 왜곡되고 있다. 건강한 성 의식과 부부의 아름다운 성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우리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건 꼭 일본의 성문화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무너지게 마련이다. 왜곡된 성이 일본적인 자극이 없다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는가? 결국 문제는 한마디로 허약한 우리 문화의 저항력에 있다.
42) [page 220] 흔히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한자 교육을 통해 유교적 가치관을 재교육하고 싶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버릇없는 요즘 젊은 것들(?)에게 도덕을 심어주겠노라며 “명심보감” 따위를 새로 읽게 만드는 해프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상품을 조금 괜찮은 물건과 함께 파는 일종의 ‘유교 끼워 팔기’ 형식으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불순한(?)의도 때문에 우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손실을 보고 있다.
43) [page 234] 이제 우리는 좁은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이야기하고 아시아 무대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 더 나아가서 아시아를 이해하고 아시아의 한 부분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는 데 한자는, 아니 아시아 사인은 필요한 것이다.
44) [page 240] 이제 공부를 위한 공부는 끝나야 한다. 그것을 끝내지 못하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박는 공부가 아닌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지혜를 이야기해야 한다.
45) [page 251]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헤엄치기에 편하듯이 영어를 그저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것을 너무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초라해진다.
46) [page 259] 교육이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도록 하는 과정이다. 얄팍한 지식을 팔고 돈을 받는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47) [page 259] 이제 경쟁은 자신의 재능을 상대로 벌어져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와 경쟁해야 한다. 전화번호부를 다 외울 수 있는 기억력이 없다 하더라도 색깔에 민감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색깔로, 소리에 민감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시대가 되었다.
48) [page 274] 육상 선수 모두를 모아놓고 5,000 미터 경주로 점수를 주겠다면 좋아할 사람은 5,000미터 선수뿐이다.
49) [page 280] 창의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획일화다. 그리고 그 획일화는 강제적 질서 유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 유지 콤플렉스는 유교 문화의 ‘도덕적 잣대’ 때문에 만들어졌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초등학생을 둔 30대, 40대의 부모님들도 유교적 교육 문화에 머리가 절어 있는 사람들이다.
50) [page 289] 점수와 학점을 인질로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유 의지를 말살하고 있는 교육 현장의 어설픈 권위들, 그들은 이제 20센터미터 강단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학생들의 나이가 많건 적건 부모가 돈이 많건 적건 서로가 ‘사람’이라는 동일선상에 설 때에만 가능한 존재다. 이젠 좀 사람으로 살자. 숨쉬고, 먹고,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일을 하는 데 있어 사람처럼 살아보자. 밥 한 그릇 먹는 일에도 민족주의적 눈치를 보아야 하고, 옷 한 벌 사입는 일에도 유교적 고려를 해야 하는 이 지겨운 환경에서 탈출하자.
51) [page 290]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의 국적이 어떻건 피부색이 어떻건 더불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검은 사람이건, 흰 사람이건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임을 존중하면서 한 팀을 이루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52) [page 291] 한국인을 넘어서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그곳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53) [page 307] 당시 있었던 나름의 지식인, 사대부, 무인, 글쟁이들은 다 어디가고 당신 홀로 그 북방의 찬바람 부는 하얼빈에서 차가운 총을 움켜쥐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렸단 말입니까? 뭉쳤어야 했고, 서로의 의견을 잠시 접어두며 커다란 목표를 위해 각자의 목소리를 낮추었어야 했던 그 잘난 지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왜 그렇게 찢어져야만 했습니까? 커다란 적을 눈앞에 두고 말입니다.
54) [page 312] 우리는 이제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을 감추고 진실을 감춘 왜곡된 ‘목소리’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55) [page 324] 남과 북은, 그리고 북과 남은 핏줄은 비슷한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질체다. 문화적 이질체가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와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공동체는 구호나 기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 문화를 융합해갈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심리적 문제들을 차분히 다루어갈 전문 컨설턴트들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는 남북의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통일 논의는 소모적 정치 쇼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고, 남과 북은 계산에 빠른 장사꾼들의 장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정치꾼들도 한몫 볼 테고. 제 버릇 개 주겠나?
56) [page 327] 한반도의 21세기는 통일로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치로 열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권의 ‘업적’을 위해 만들어져서도 안 된다. 물론 민족적 열망의 한탕 잔치로만 열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더불어 살아야 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가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서의 통일을 말이다.
차례 1부.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 이제 지도는 찢어졌다 나는 신토불이가 싫다 술 한잔이 망친 나라 억울하면 출세해라 법치가 되지 않는 이유 역시 ‘핏줄’뿐입니다요! 모두가 왕손인 나라 찬호와 세리가 미국으로 간 까닭은? 3김의 DNA-‘거시기’와 ‘챠라’ 우리는 무엇으로 한국인인가
2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중국과 일본이 유교를 버린 이유 유교의 그릇된 출발-역사의 왜곡, 왜곡의 역사 조상 숭배 의식의 기원 공자는 왜 거짓말을 했나 우리는 영원한 중국의 속국인가 주자학, 그 위대한 사기극 죽은 박정희가 다스리는 나라 공자 바이러스 유교문화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가 효도가 사람 잡는다 유교 속의 여자, 유교 밖의 여자
3부. 일본이여 들어오라! 중국이여 기다려라! 칼마다 맛이 다르다 일본을 용서한다 일본 문화의 뿌리를 보는 시각 일본 만화에서 배운다 유교는 어떻게 우리의 상상력을 죽였나 왜 일본 문화에는 폭력과 성이 난무하는가 문제는 창조력이다 중국을 이기려면 먼저 철저히 장사꾼이 돼라 한문 사용을 주장하는 분들의 진짜 속내 한자가 아니라 Asia Sign입니다 한자 간단히 배우기
4부. 공부는 끝났다 공부는 끝났다 당장 ‘양놈’을 찾아 나서라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실력이 도덕이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피곤한 이유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논술이 바보를 만들고 있다 신영이의 ‘더불어 학교’
5부. 한국인을 넘어서 한국인을 넘어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종아리를 걷어라 안중근과 서태지, 그리고 장보고 할 말을 해라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두렵다
다시 읽어봐야 할 페이지 P92, 230
감상평 좋은 책을 읽게 되면 누군가에게 책 선물 해주기를 좋아한다. 이전까지 상대방이 책 선물을 받고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좋은 책을 발견하면 머릿속에 내가 알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머릿속에 ‘아버지’가 문뜩 떠올랐고, 권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께서는 티 내거나 내색하시지는 않는 편이지만, 약간 ‘권위주의적인 가장’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연세가 많아지시고, 가끔 가장으로써의 위치가 한없이 낮아진다거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가끔 소외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아버지와 소주 한 잔 하면서, 맞장구도 쳐드려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자리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또 아버지와의 의견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안 그래도 대화가 없는 아버지-자식 사이에 대화가 더 없어지고, 이런 나의 행동이 아버지께서는 내심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예전에는 종종 ‘미국물까지 먹고 온 자식이 자랑스럽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들놈이 배웠다고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어머니께 속내를 털어 놓으셨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면 최대한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하고 나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내가 가진 ‘다른 의견’에 대해서 아버지는 완강하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신다. 나의 부족한 대화법을 인정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을 글로 써보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실 만한 몇 권의 책도 안방에 가져다 놓은 적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께서는 내가 쓴 편지와 책을 꼭 읽어보시지만,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그 내용에서 ‘틀린 점’만을 콕콕 집어서 내게 말씀해주신다. 어디서부터 비틀어졌는지 모르겠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대화를 했지만, 아버지와 나의 사이는 완전히 비틀어졌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아버지께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에 대해서 좋은 점만 보려고 애쓰면서 다짐한다고 하시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 좋은 점 하나 찾기 어려울 만큼 못난 자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다. 수 십 번 이 책을 아버지께 전해 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포기했다. 옳은 선택이었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께서는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쓰레기 책’이라고 말씀하실 것 이다. 아버지를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혹은 아들 생각도 틀린 것 같지는 않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나의 희망사항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나는 아버지를 이길 자신도 없고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저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콬 집어서 저렇게 속 시원하게 말할까?’라고 감탄하면서 읽었다.저자의 의견에 적극 공감하지만, 아직 내 의견을 저자처럼 상대방에게 말할 용기는 없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한 가지는 ‘매국노’소리 들을 까봐 겁이 난다. 한창 FTA 그리고 스크린쿼터제 반대 시위가 일어날 때 조용하게 FTA 찬성을 마음속으로만 되 내었다. 우리집은 한번도 농사를 지은 적은 없지만, 나는 20년 이상을 농촌에서 살았고, 농민들의 심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폐쇄성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혼자 생각만 했다.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문을 닫고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량 생산되어 치고 들어올 수입 농수산물 앞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게 어찌 보면 현명하고 농민들도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백인들을 증오하고 겉으로는 백인들을 좋아하는 것도, 일본을 ‘족바리’라고 욕하지만 일본의 모습 대부분을 베껴오는 이중성 그리고 이중잣대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스무살 무렵에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싫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보다 더 한국인 같이 행동하기를 원하고 나에게 형 대접을 강요하는 유학생 형들을 보면서 다짐했다. 미국에 온 이상 나는 ‘한국인도 미국인도’아니었다. 어리고 싹쑤 없었던 나의 행동에 잘못된 부분도 많았음을 인정하고 고쳐야 할 부분도 많지만, 그렇다고 나의 행동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미국인들의 개인주의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일본인 친구에게 본받을 만한 일본의 좋은 문화 그리고 약간의 일본어도 배웠다. 그 사람의 배경, 피부 색깔, 학력에 대한 선입견 없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은 내가 미국에서 4년 동안 배웠던 어떤 학문보다 값어치가 있는 인생공부라고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유교사상’ 그리고 ‘공자’이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 아니 능지처참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오랜 기간 동안 ‘공자’, ‘논어’, 그리고 ‘유교사상’이 한국에서 대접받았으니,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과거고, 이제는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뭔가 새로워야 할 미래의 달력에 과거로 가득 차는 것도 우리의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유교사상’은 이제 없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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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책이 있는지도 몰랐다..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하는데 여러분야책을 뒤지다 사회비평에 관련된 책을 보다 이책이 눈에 띄었다. 사게된 계기는 엄청난 독자들의 관심인데 저는 참고로 책을 사는 기준은 모든 여러분들의 글들 그리고 책 제목, 목차입니다. 이책을 받아본디 저는 충격......그자체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나라에 사는 한 남자로서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고 날로 영향력이 커지는 조국을 그래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글로벌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뭐가 글로벌이라는것야 했습니다. 진짜로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날카로운 비평은 진짜 저의 마음속의 뒤집어 놓았다니까요. 여러분야를 오가면 비유나 은유 여러가지 형식으로 글을 이어가므로 읽는데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제가 20년 동안 알게 모르게 익힌 여러 관습과 습관들을 뜯어고치지 않은면 저의 미래가 어두울 것 같더군요. 참고로 저는 이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 나라라고 하는 이 한국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참... 한심합니다. 제가 imf 가 발생했을 당시는 제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뭔지 몰랐습니다.
방송에서는 난리를 폈지만 저한테까지 피해가 바로 온것이 아니어서 진짜 몇년이 지나고서야 이게 뭔지 알았습니다.(경제 신문 정기적으로 읽으면서여 돈없어도 경제 신문하나는 꼭 읽으십니다. 밖을 보는 눈이 깊어집니다. 세상보는 눈을 부모가 아닌 신문으로 배웠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은 저는 수업시간에 이것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는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고작 알려준것은 영어 뜻이 고작이었습니다.(이것 하면서 선생하고 학생이 장난이나 치고 있었습니다. 씁....나라가 무너지고 있었는데 수많은 가정이 이것으로 붕괴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제가 한심합니다. 그들은 알려주시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요. 이 책은 진짜 사시미칼처럼 날카롭습니다. 잘못하면 살점이 떨어질 정도입니다. 정말 부탁드리고 싶 은것은 이책을 읽으신 수많은 분들 한 번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으면 합니다. 변하자구요. 진짜 부강한 것은 많은 돈도 잘된 사회 시설보다도 깨어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부강한 이 나라가 보고싶습니다. 모든 대한민국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져야 나라가 강해집니다. 저는 희망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인상 깊은 구절은 다른 여러분들이 이미 올렸을겁니다. 저는 이말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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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공자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중국보다 4배나 더한 유교 충실도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 이다. 저자의 표현은 과격하다. 공자 한 번 죽여 나라를 살려 보자는 도발적 제목에서부터 느낄수 있듯이... 저자는 유교가 갖는 해악중에 권위주의의 문제에 주목한다. 사실 유교는 인간을 성인, 군자, 백성 식으로 분류하는 봉건적 사상이다. 이러한 계급사회에서 현재 시민사회의 필수 덕목인 합리성이나 공공적 논의는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디 군자가 말씀하시는데 미천한 백성이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소위 인정이 넘치는 봉건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한 창조력이나 법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IMF 이후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그간 기득권들이 하층민을 세뇌시키기 위해 악용하던 유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고 부르짖는다.
이 책을 본 유림에서 저자한테 공자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고 들었다. 유림이 공자의 친인척인가? 명예 훼손은 형법상 친고죄가 아니던가? 아뭏든 공자의 정신을 이어받은 분들....대단하다. [인상깊은구절] 이제는 유교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한 번 쯤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모든 껍질을 벗고 자신의 모습에 솔직해질 때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독자들이 정말 한 번쯤 허심탄회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좀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삶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으면 한다. 이제까지처럼 허풍으로 가득 찬 '아,아, 대한민국'이 아닌, 유교적 허세문화와 정치적 허세에서 벗어난 맑은 삶의 옷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