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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끝없이 말을 걸어왔다.「장충동김씨를위한책이야기」 p.13 전사섭, (주)시공사 20031230.
ᄋ 한 권의 산문집이 안겨준 기쁨은 어떤 두꺼운 철학서적을 읽으며 느낀 형이상학적 각성의 희열보다 결코 작지 않다. 책 제목이 『쾌락의 옹호』이다. 저자는 낯설다. 제목의 도발성에 이끌려 책을 산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는다. 책의 볼륨이 얇기도 하거니와 그가 펼쳐 보이는 내용의 투명성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강철로된책들」 p.48 장석주, 도서출판바움 20031020.
ᄋ 근대적 철학자들도 진정한 대중을 마주 대하기 위해 장소와 의자를 좀더 자주 임대해야 한다면, ...철학자의 지식이라는 것이 이론적인 지식이나 개념의 조작으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삶의 지혜․행동으로 개시하는 일․평온을 찾는 일․위로하는 일․논거를 제시하는 일․왕자에게 조언하는 일․오성을 개혁하는 일․살아가는 동안 단호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 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는 일종의 디오게네스였다. 일상 속의 자신의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낸 것이었다.「유쾌한철학자들」 pp.125-130 프레드릭 파제스/최경란, 도서출판열대림 20050315.
ᄋ 이 책에서는 달콤한 분식, 화려한 수사(의미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 , 탈속의 아포리즘, 도덕적 경구를 바랄 수는 없다. ‘거침없이’자신이 누리는 쾌락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 향유가 얼마나‘인간적인 것’인지 독자들에게 유세한다. 이때 지은이가 말하는 쾌락은 사회 통념이랄지, 이데올로기가 이미 조작해 제시해놓은 것이 아니다. ...신변과 일상의 표피에 머무는 산문의 쇄말주의를 넘어서고, 한편으로 거대한 의논이 빠지기 쉬운 공허함의 함정을 피해간다.「보도자료」 문학과지성사, moonji.com 20010120.
ᄋ 행간을 읽어라(Read between the lines.). 라는 말이 있다. 행간은 여백이다. 여백은 텅 비어 있다. 일체의 인기척도 멍멍 짖는 소리도 없다. ...그 침묵의 공간에서 대체 무엇을 읽으란 말인가? 선사들의 어법으로 치자면 허공에서 뼈다귀를 꺼내 먹으란 말씀이다. 참으로 고약하다.「나는상식이불편하다」 p.39 김보일, 소나무 20041020.
ᄋ 인정한다. 이 책에서 나는 저자로서 겸손하지 못했다. 이것은 전략도 술책도 아니다. 그저 풀어 놓아야할 이야기들로 황망하여 예를 갖출 말미를 놓쳤던 것뿐이다. 이것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독자들은 그냥 책장을 덮어라. 도전이 나의 특권인 것처럼 묵살은 당신들의 특권일 테니까. 그러나 기억해 두라. 삶과 죽음은 멀리 있고 이득과 손실은 가까이 있어 보이지만 이런 원근법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쾌락의옹호」 p.7 이왕주, 문학과지성사 20010130.
ᄋ 의학용어에 소재식(所在識)이라는게 있다. 병원에서 환자의 의식수준을 판단하는 검사로 ①여기는 어디입니까? ②당신은 누구입니까? ③지금은 언제입니까? 등인데, 병원이라거나 자기이름이나 날짜 등을 답하면 된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답이 아니다. ‘우주’와 ‘실존’과 ‘본래시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나는이런책을읽어왔다」 pp.32-33 다치바나 다카시/이언숙, 청어람미디어 20040801.
ᄋ 철학함이 없는 시대에는 철학을 만들어야하고 철학을 잊은 시대에는 철학을 기억해야 한다. ...이 시대에도 우리의 삶을 종횡으로 걸어 묶는 신화들은 있기 때문이다. ...의심하여 물음을 던지는 반항의 정열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신화이자 사슬이 아니겠는가?「철학풀이철학살이」 p.140 이왕주, (주) 민음사 19970330.
ᄋ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때가 언제란 말인가?「우리는사소한것에목숨을건다」 p.127 리처드 칼슨/정영문, 창작시대사 19981225.
* ...But Jesus said, "Let her alone ; why do you bother her? She has done a good deed to Me." For the poor you always have with you, and whenever you wish, you can do them good; but you do not always have Me.「Mark 14:6-7」(John 12:7-8, Matthew 26:10-12) NASB, kidok.info/BIBLE 20050419.
ᄋ 이 대지 전체가 어머니의 품이고, 학교이며 교회라고 믿는다. 대지 위의 모든 것이 스승이며 책이다.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에 어리는 안개의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오는 햇살줄기와 만나야 한다.
「나는왜너가아니고나인가」 pp.128-130 시애틀추장외(델라웨어족인디언 ‘상처입은가슴’)/류시화, 정신세계사 20020415.
ᄋ 팔 다리를 움직여 길을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포장도로 위로 퍼지는 내 발자국 소리가 박수소리 같았다. 나는 흥분에 휩싸여 혼자 중얼거렸다. 가로등과 점멸하는 신호등, 벨소리, 전차, 자동차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나의 살과 뼈의 일부인 것 같았다.「에릭호퍼자서전」 pp.56-57 에릭 호퍼/방대수, 이다미디어 20040427.
ᄋ 하지만, 미적지근한 체념 속에 안주하지 않으려면,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는 적당한 양의 분노와 증오심도 간직하고 있어야한다. 압력솥의 폭발을 막기 위해 안전밸브가 달려 있는 것도 똑같은 이치이다.「잠수복과나비」 p.75 장 도미니크 보비/양영란, 동문선 20030910.
ᄋ 우리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슬픔에 복받혀 운다. 그러나 사실인즉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피 울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 ‘즐거움’이 없다면 어느 미친놈이 돈을 내고 극장에 가겠는가?「길에서주운생각들」 p.256 이현주, (주)도서출판삼인 20030820.
ᄋ 책을 멀리하면 할수록,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지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장정일의독서일기6」 p.7 장정일, 범우사 20041125.
[인상깊은구절] ᄋ 철학함에 대하여 * ...(pp.167-168)철학은 철학함이다. ...철학함은 영원한 현재 시제로만 사용되어야할 단 하나의 동사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수행하는 싸움은 궁극적으로 내가 대적해서 싸워야 할 적은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깨우치도록 운명지워진 오이디푸스적 비극이다. 그 것은 관습적으로 물화된 자아와 자유를 통해 부단히 새롭게 자신을 선택하는 대자적 자기간의 투쟁이자 자기기만과 불성실에 대한 양심과 실존의 싸움이다. <끝> |
| 수필집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것일 거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산만하지도 않은,... 적당히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어우러져 있는 편안함.. 짧게 한 소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종국에는 한 주제로 흐르고 있는 일관성,, 잊고 지내온 아니 소홀히 지내온 지나쳐 버린 것들에 대한 사색을 벌이는 지은이가 좋아지려 한다. 처음에는 그저 제목에 이끌렸고,, 그 다음은 첫 독자리뷰에 적힌 글 삶을 음미하자.. 라는 말이 카트에 넣게 만들었다. 멋진 말이 아닌가... 삶을 음미하자.. 라는 말이.. 지은이는 글의 중간중간 그렇게 평소 내가 하고 싶은 말들 생각해 왔던 형상들을 아주 짧은 글줄 몇개로 쉽게 표현하고 있다. (아~~ 나는 언제쯤이면 쉬우면서도 무게있는 그런 글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책은 귀로 들어야 된다는 말도 지은이가 꿈꾸는 삶은 방랑이라는 것도 무지 매혹적이고 내안의 케케묵은 열정들을 전부 끌어내기엔 충분한 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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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왕주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소설 속의 철학>이란 책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문지 스펙트럼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내겐 그 한해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인 이왕주가 <쾌락의 옹호>라는 근사한 제목으로 밀어붙이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읽어보지 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쾌락. 한국 사회에선 이상하게도 그것을 죄악시하는 관습이 있다. 나 역시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그래서 작가의 '쾌락의 옹호'라는 도발적인 발언은 언뜻 보기에도 상큼하게 다가왔던 것일게다. 책을 읽고나서의 결론은, 쾌락은 피해야 하는 죄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쾌락이 흔히들 떠올리는 음습한 것들-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들이 아님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가리켜 '인문 좌파를 자청한다'고 말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짧은 글 속에서도 솔직담백 하게 얘기를 풀어내는 그의 방법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작가가 철저히 배격하는 것은 범람하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내면화되어버린 이데올로기들, 유교 사회의 관습에서 잘못 굳어져버린 금욕주의들이다. 그가 하는 말들은 다른 것들이 아니다. "네가 지금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사실은 '가짜'가 아니냐? 혹시 너 자신조차도 네가 이미 내면화된 이데올로기, 혹은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흔히들 말하는 '헤게모니' 속에 갇혀있는 것이 일상의 우리 모습은 아닌지 한번 뒤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 '체면'이란 이름을 쓰고, 혹은 '예의범절'이란 겉모습으로 '자연인'의 순수한 욕망과 쾌락을, 그 마땅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마디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철학을 어떠한 형태로든 접해보고 배워보고 싶은 이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인지 쉬운 철학 입문서를 읽는다는 것은 어딘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었다. 이 책은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철학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방향 설정조차 못한 채 난삽한 개념들 사이를 헤매는 것만이 철학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가장 공감 가는 부분은 그것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천상 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라는 것- 통 안의 디오게네스이기보다는, 아고라를 맨발로 거닐던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것.
'발딛고 서있는 자리에 충실하자. 삶을 음미하며 살아가자.' 어딘지 모른 채 떠돌고 있다는 느낌, 붕 떠있다는 기분,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진정한 나'인지 회의가 들던 요즘에 읽어 그런지, 이 책은 꽤나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거기서 발언하고 다투어야 한다. 뚜쟁이들과 술잔을 나누어 야 하고 늙은 창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뇌물 먹고 설사하는 세리들을 만나야 한다. 요컨대 이 풍진 세상으로 돌아 와서 우리의 삶과 진정으로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철학은 더 이상 박제된 천재들의 말장난일 수 없다. 표류하는 철학이여 이제 목숨을 안고 뒹구는 삶의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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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에 1년정도 연재 되었던 철학에세이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세상의 문법이라는 저 완강한 권력과의 힘 겨루기를 통해 한 실존이 남긴 꺾음과 꺾임의 흔적들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있다.
글쓴이가 철학전공에다가 교수님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대체로 "철학적"이란 느낌을 책을 읽는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즉, 좀더 쉽게 쓸 수 있는 글을 약간 어려운 단어로 바꿔놓은듯하고 철학용어가 나오기는 하지만, 내용이해에는 무리가 없다.
총48편의 산문으로 짜여져있다. 책 크기도 작을뿐더러 내용이 주제별로 짧기때문에 틈나는 대로 읽어도 금세 다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덧붙이자면, 책 제목에 쓰인 쾌락의 옹호는 48편 중의 한 편에 속한다. 여러모로 삶에관해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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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책 읽고 이 분 너무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제게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고요. 작가의 의견에 마음이 착착 들어맞는 것이 매우 기뻐서 신나게 읽었던 생각이 납니다. 읽은 지는 꽤 되었어요. 제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제목이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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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주, 쾌락의 옹호, 문학과 지성사, 2001 부산대학교 윤리학과 이왕주교수의 책 ‘쾌락의 옹호’는 산문의 맛을 일깨워주었다. 신문에 연재된 글모음이어서 그런지 적당한 길이에 경쾌하면서도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그의 글에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 한 인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드시 수동분쇄기에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 마시는 남자, 그 정도의 손놀림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단다. 커피를 마실 때면 방문을 걸어잠그는 남자,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일에 순수하게 집중하기 위해서. 출근하는 길이 일곱 개가 넘는 남자, 소소한 다양성을 통해 일상의 변주를 즐기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겨우 10분이 더 걸린다는 이유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그는 택한다. 그렇게 해서 빨리 도착한 10분덕분에 삶의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그가 말하는 ‘쾌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내 잔으로 커피를 마시듯, 고른 호흡으로 삶의 모든 향기를 놓치지 않고 마시며 사는 것을 말한다. 축구의 목표가 골대가 아니고, 삶의 목표가 잘 나가는 것이 아니듯,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쾌락’에 복잡한 연막을 치고싶은 생각은 없다. 당신과 내가 본성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말이며 일상의 작은 체험들로써도 쉽게 확인해낼 수 있는 언어다. 고도의 지적인 쾌락, 예술적 감동뿐 아니라 온 몸의 말초 신경계까지 전율시키는 성적 쾌락, 혀로써 전해지는 미각의 쾌락,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감각의 쾌락 등등. 이것들이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라는 이유로 자존심 상해 하는 사람들... 쾌락에 우열의 차이는 없다. 오직 종류의 차이만이 있다. 아이들이 포충망으로 나비를 잡듯이 나는 내 감각의 그물로 온갖 쾌락들을 건져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내 쾌락의 포충망은 숱한 목표물들을 겨냥하느라 바쁘다. 여인의 아름다운 미소, 살갗을 스치는 신선한 바람, 쏟아지는 햇빛, 싱그러운 젊은 웃음 소리, 쇼윈도에서 빛나는 상품들, 도시 빌딩숲 사이에 엉뚱한 푸르름으로 서 있는 유실수들. 짧은 길을 걸을 때조차 내 몸은 이런 모든 것들 안에 깃들인 즐거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팽팽한 긴장 상태로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유죄인가. 그 평결 따위에는 관심 없다. 살과 뼈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나는 그것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들을 철저히 누리고 싶을 뿐이다.” 69쪽 ~ 71쪽 근엄한 대학가에 자리잡기에는, 지나치게 솔직하여 좌충우돌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그는 화를 잘 내는 것이 자신의 단점이며, 그로 인해 많은 인간관계를 놓치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심한 말다툼이나 혹독한 나무람으로 죽마고우와 오랜 제자를 잃은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자신의 성정을 고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노 때문에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허망한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릴 나를 되찾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예민한 감성과 범람하는 열정을 과시하는 그가 누리는 최대의 쾌락은, 철학도로서 혹은 교수로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지적 쾌락’이리라 짐작된다. 너무나 쉽고 매끄럽게 읽히는 그의 글 이면에는, 거대한 빙산과 같은 공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책상물림 철학교수의 허장성세가 없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열려있는 천진난만함, 청명한 날씨에는 잔디밭에 앉아 수업을 하고, 지리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논문을 쓰는 로맨틱함, 흙이 되기 전에 이미 흙처럼 살기를 거부하고, 뼈와 살을 가진 인간답게 치는대로 소리가 나는 솔직함, 그가 책 전반을 통해 펼쳐놓는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쾌락에조차 공짜는 없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위해 고통을 받고 수고로움을 입는 만큼 즐길 수 있고, 소중한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가르쳐주는대로, 무엇으로 이 좋은 계절을 음미해볼까 궁리하다가 도보여행을 떠올린다. ‘전국의 걷기좋은 길 52군데’... 이런 책을 주문한다. 살아있는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지만, 파피용이 탈출을 결심한 순간을 떠올려도 좋겠다. 이미 감탄할 일이 사라진 일상의 감옥에 갇혀있다면 말이다. 죄없이 누명을 쓰고 중죄수들만 수감하는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히게 된 파피용이 어느 날 꾼 꿈의 장면. 천상의 신 앞에서 재판을 받게된 그가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는데, 보이지 않는 판관의 판결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유죄다. 죄없이 그렇게 갇혀있으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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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내내 비오고 구름잔뜩끼고 후텁지근한 장마철에 어쩌다 비 긋고 하늘이 갈라지며 반짝하며 노란 해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는 지리한 여름장마에 만난 뽀송함같은 "쾌락의 옹호"를 옹호하면서...
"스쳐지나듯 해치우듯 살아가거나 완상하고 음미하며 살아가거나 어차피 무덤안에서 한줌의 흙이 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수 있으리라. 그러나 흙으로 되기도 전에 벌써 흙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혹시 나는 흙처럼 살고 있는지 않는지 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살아 있는 모든 날을 기뻐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처절하게 정열적이고 있는지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내 하루를 살아가려한다..... 덧없이 마셔버린, 때로 억울하게 엎질러버린 그 소중한 커피들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남은 커피만은 내 방식대로 마시겠다, 비록 작더라도 내 잔으로 마시겠다는 말이다."
여전히 의미없고 가치없는 것들을 좇고 있는, 허망한 환상에 묶여 삶을 허송하고 있는, 작은 떨림에 민감하게 불면으로 치닫고 있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담긴 커피를 홀짝거리고 싶어하는, 그런 나를......
"사십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진한 발언이다. 인간은 이십대 아니 심지어 십대에서부터 자기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아마...스물두어살쯤 이후로 모든 정신적 연령은 정지하고 성장을 완전히 멈추어버린듯하다. 다만, 가로로 세로로 주름의 깊이와 숫자만 수를 늘리는 노탐만 늘어가고 있는 그런 나를......
"사귐에서 필요한 것은 닮음이 아니라 다름이다. 비슷한 한통속들이 끼리끼리 놀고 저들끼리 무리짓는다면 그것은 작당에 불과하다...사귐은 이 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지켜나가는 것"
나와 다름을 "나와 틀리다"라는 범주안에 인식하면서 나와 색깔이 비슷한, 형태가 닮은, 냄새가 묻어있는 나만을 고집하고 살고 있는 그런 나를... 끊임없이 발견하게 된다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앗아가버리는 것은 주름이 아니라 노탐이라 하였던가... 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부끄럽다 하지 않을 그런 커피잔에 나의 커피를 마실 준비가 되어있을까....... |
| 철학풀이,철학살이/ 소설속의 철학 그리고 이번에 나온 쾌락의 옹호는 지은이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일상생활속에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게 여겨지고, 재미 없게 여기지는게 일반적인데, 이왕주 교수의 책을 읽으면 어느새 그와 같은 생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아마도 필자의 글을 전개하는 능력, 삶에 대한 폭넓은 경험등이 뒤받침해 주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쾌락의 옹호라는 책도 첫번째 내용부터 너무 본인의 마음에 와 닿아던게 사실이다. 커피한잔으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라는 것...사치가 아니라 진정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닷게 해주는 책이었다. 또한번 작가의 좋은 작품을 기대해본다. |
|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우리 몸을 불온한 것으로 낙인찍고 몸이 아닌 영혼, 가슴이 아닌 머리, 물질이 아닌 정신만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더욱 이성의 산물이 최고로 발달하면 할수록 불온한 땅이 잉태한 몸의 욕구는 정직하다 못해 과하게 들끓게 되었고 우리를 자극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몸을 짖누른 댓가로 몸의 지배 아래 이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산업은 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위해 더욱 번성하고 있다. 저자 이왕주는 쾌락을 옹호한다. 그는 몸이 가르쳐주는, 몸이 말하는 정직한 메세지에 귀를 기울인다. 머리로 익힌 것은 몇 달, 아니 몇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만 그 옛날 몸으로 익힌 자전거는 십수년이 지나도 금방 그 감각을 회복한다. 손가락과 가슴과 우리의 발은 정확하게 그것을 기억한다. '쾌락의 옹호'는 이성을 매도하기 위한 전략이 결코 아니다. 남사당패의 줄광대는 줄타기를 할 때 어느 한 손에 부채를 펴고 균형을 잡는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줄광대는 부채를 몸 중간에 딱 놓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우는 쪽으로 부채를 펴든다. 이처럼 이성의 역사가 몸을 지양하면서 일구어놓은 기울어진 텃밭에 저자는 그 기울어진 쪽에서 다시 몸의 텃밭을 일구려고 하고 있다. 그 시도는 그의 일상에서의 몸의 관찰과 그에 따른 철학적 통찰과 독자를 위한 해설에서 시작된다. '쾌락의 옹호'에는 저자만의 독특한 글쓰기와 살아있는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버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점잖을 빼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저자도 그러한 것 같다. 쾌락에 대한 탐닉과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생각할 독자는 없으리라 본다. 여기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을 열면 저 쪽 문으로 통하고, 또 다른 문을 열면 그 문은 또 저 너머에 그 출구가 있다. 그 출구에서 시작하면 이 너머 있는 것이 또 다른 출구가 된다. 이성이든 몸이든 어느 하나에서 시작해서 그 끝을 보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가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함께 기대고 섰는 짚단처럼, 삼발이처럼 우리의 몸과 영혼은 그렇게 서로 기대고 섰다. 왜 그렇게 기대고 섰는가라고 묻지는 마라. 기대고 서지 않을 때는 그렇게 물을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가에, 의지하는가에 우리는 관심을 쏟을 일이다. 왜 태어났는데, 왜 죽는데라고 묻는 것을 종교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철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쾌락은 이쪽 문에서 저쪽으로 이어지는 한 길을 자기 몸으로, 자기 체험으로 옹호하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