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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은 섬 아마초에 도시의 몇몇 청년이 도착했다. 그들은 30대의 나이로 일본 대도시에서 살면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거나 나름의 영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나가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에 기반한 삶의 미래에 더이상 희망을 느낄 수 없었다. 취업난, 과도한 경쟁, 날로 악화되는 환경, 사회적으로 각박해진 삶의 조건들은 어느날 그들이 느끼는 도시적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징표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황무지처럼 방치되었기에 차라리 더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외딴섬 아마에서 보다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그들 청년들이 아마로 이주를 결정하게된 나름의 이유와 과정, 그리고 이주후 자신들의 꿈을 일궈하가는 경험담으로 채워져있다. 사회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주관적 언어로 지난 5년간의 섬생활 속에서 가진 일상의 서정과 경험을 풀어놓은 이책은 그래서 읽기가 쉽다. 그들은 도시에서 하던 직업경력이나 기업운영 경험을 토대로 하고 외딴 섬 아마의 섬자원을 자산으로 새로운 벤처사업을 시도한다. 그들은 섬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섬을 알리고 농수산물을 유통하는 홍보마케팅사업에 열중하기도 하고, 수산물 가공이나 판매 등의 새로운 방식들을 도입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청년들이 섬으로 이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다. 이들의 시도는 우리가 흔히 볼수있는 지역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저질러지는 난개발의 현실과는 대척점에 서있다. 그들은 지역의 풍토나 여건을 살피지 않고 무분별하게 공해 공장을 유치하여 농어촌같은 소외지역에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정부의 세수를 늘이는 방식과는 와전히 달랐다. 도시에서의 이력과 경험을 토대로 벤처기업 메구리노와를 만들지만 그들의 도시의 자원이나 도시적 기획을 무조건적으로 이식하여 지역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지역의 풍토와 자원 그리고 문화에 기반해 조화로운 지역공동체의 강화에 기여하는 사업영역과 사업수행방식을 모색했다.이는 그들이 날로 피폐해가는 자본주의 일본의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대안적 공동체에 대한 갈구를 지역공동체에 대한 애착, 아마초에 대한 절대적 사랑으로 승화했기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초의 시도는 아직 진행중이다. 따라서 이 책은 농어촌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성공적인 대안 모델을 만들어냈다기 보다는 성공적인 모델을 찾아 나가기위한 기본적인 관점, 방식, 철학을 보여준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어보인다. 지역사회에 청년세대가 유입되고 지역기반의 사회적 경제를 구축해 낸다면, 지역단위의 공동체가 자족적인 삶이 가능한 단위로 복원되고 항구적인 자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생력을 가진 지역공동체의 연대로 더 큰 사회를 이뤄나가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안전하고 안정된 세상이될 것이 분명하다. 이책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일본에서 청년세대들이 기존의 체제를 탈출해 새로운 공동체의 구축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물론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그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얼마나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의 시도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본다. 변화가 꽉 막힌 세상, 빈틈없이 짜여져있고 그 속에서 움짝달싹못하고 생명력을 잃어가는 청춘들이 드디어 발랄한 반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체제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근본적인 도전이 시골이라는 자본주의의 변방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빼앗고 주거와 의료 교육 등 최소한의 삶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제거함으로써 소위 상위 1%를 위한 세상에 도달한 신자유주의시대에 체제내에서 무력화된 청년들이 드디어 자각을 통해 체제의 균열을 내기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청년세대들도 환경 평화운동에 기반하고 문화예술을 수단으로한 다양한 지역 공동체 활동에 투신하고 있다. 체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사회구성을 향한 성과로 드러날 수 있을지 알수없지만 적어도 불평등과 부정의가 고착된 정체된 세상으로만 보이던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 청년들의 작은 반란들이 모의되고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그들의 시도가 성공하기를 그리고 그들 청년세대들의 시도에 기성세대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울지 고민하면서 이책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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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5 ‘돈’ 아닌 ‘삶’을 보면 ‘꿈’이 있다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 글 정영희 옮김 남해의봄날 펴냄, 2015.6.10. 어제 아침에 큰아이하고 ‘흙 옮기기’를 했습니다. 우리 집 처마를 따라 빙 두른 빗물받이가 있는데, 집 뒤쪽에 있는 빗물받이에는 흙이 쌓였습니다. 이 흙을 긁어서 마당 한쪽에 있는 앵두나무 둘레에 뿌려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뒤꼍 감나무 옆에 서서 ‘빗물받이에 쌓인 흙’을 꽃삽으로 긁습니다. 빗물받이에 쌓인 흙은 처음부터 흙이지는 않았습니다. 집 뒤꼍에 감나무가 우람하게 자랐는데, 감나무에서 풋감이 떨어지고 감잎이 떨어집니다. 때로는 하늘타리나 호박이 지붕까지 뻗습니다. 이러면서 이 넝쿨줄기가 겨우내 삭습니다. 나뭇잎이랑 풀잎이랑 풀줄기랑 풋열매는 한데 어우러져서 천천히 삭습니다. 빗물받이가 거름통 구실을 하는 셈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랑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총놀이를 합니다. 누나가 있는 집 뒤쪽으로 왔다가, 아버지가 있는 뒤꼍으로 올라옵니다. 뒤꼍에서 감나무랑 석류나무한테 물을 주기도 하고, 고들빼기나 모시풀한테 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 자그마한 아이한테 물총은 물뿌리개와 같습니다. 격무에 쫓기던 스물다섯의 어느 날, 불현듯 마음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도대체 내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나는 인간이 본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등산과 도보 여행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생활 속에서 조용히 틀어지고 만다.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자본주의 등 문명의 발전만을 중시해 온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 회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화하면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부분이 아닌 전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분이 아닌 전부를 해 나갈 수 있어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8, 21, 57쪽)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에서 ‘즐거운 앞날’을 바라보면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를 열어서 산다는 젊은이들이 쓴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남해의봄날,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스물을 조금 넘긴 젊은이들은 처음에 도시에서 ‘커다란’ 회사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으로 삶자리를 옮깁니다. 돈을 넉넉히 모아서 섬(시골)으로 가지 않습니다. 뭔가 대단히 잘 알기에 섬으로 가지 않습니다.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저 ‘삶’을 생각하면서 섬으로 갑니다. 섬이나 시골에서 젊은이가 회사를 열어서 ‘돈을 벌’거나 ‘먹고살’ 만할 수 있을까요? 섬이나 시골은 젊은이가 꿈을 품고 삶을 누릴 만한 터전이 될 수 있을까요? 도시에는 생태학이나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해 배울 기회가 풍부하다. 그러나 시골에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일자리가 부족하다 … 조금이라도 빨리 지역으로 들어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나 자신의 언어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바로 아마로 간다’는 선택지를 고르게 됐다 … 이익 창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익만을 창출하는 건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그 행사를 통해 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좀더 깊이 고민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33, 37, 53쪽) ‘돈’ 아닌 ‘삶’을 보아야 ‘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본다면 언제나 돈만 보이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돈을 더 모으고 자꾸 모으는 길로만 가는구나 싶어요. 삶을 본다면 언제나 삶을 마주하면서, 이 삶을 곱게 가꿀 꿈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삶을 보기에 꿈을 생각할 수 있고, 꿈을 생각하기에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구나 싶어요.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돈만 버는 일’이라면 삶이 없을 뿐입니다. 브레히트 님이 엮은 《전쟁교본》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 첫머리를 보면, 철공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사진이 나옵니다. 철공소 노동자는 ‘먹고살려’는 뜻에서 쇠붙이를 다룹니다. 그러면, 철공소에서 노동자는 어떤 일을 할까요? 장갑차를 만들고 탄환을 만듭니다. 비행기도 만들고 총도 만듭니다. 온갖 전쟁무기를 철공소에서 만듭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면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라도 일거리를 얻어서 돈을 벌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밥을 사다가 먹는다면, 우리 삶은 어디로 나아갈까요? 철공소 노동자한테는 쇠붙이를 다루는 재주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군수공장에서 일거리를 찾아야 할까요? 쇠붙이 다루는 재주를 내려놓고, 삶을 가꾸는 길로는 갈 수 없을까요? 손수 논밭을 갈아서 손수 밥을 얻는 길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얼굴을 마주보는 관계가 되면 이분법 개념이 아닌, 함께 걸어 나갈 길을 찾는 관계가 된다 … 고향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시골은 정신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그 문화가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세계유산일 필요도 없고 중요문화재일 필요도 없다 … 콩은 내가 밭에서 직접 키운 검은콩을 썼고, 간수는 근처 아키야 해안에서 퍼온 바닷물을 질냄비에서 뭉근히 끓여 소금과 간수를 분리해 썼다. 완성된 두부에 직접 만든 소금을 뿌려 먹었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80, 101, 165쪽)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에 나오는 젊은이는 섬(시골)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며 새로운 삶을 날마다 깨닫는다고 합니다. 도시에 있던 큰 회사에서는 ‘몇 가지 일만 전문으로 하면 끝’이었으나, 섬에서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지요. 도시에서는 언제나 ‘전문직 일꾼’이었지만 섬에서는 언제나 ‘종합 일꾼’이어야 한다지요. 아주 마땅합니다. 시골사람은 씨앗을 심거나 뿌린 뒤, 씨앗을 돌보고, 씨앗에서 돋아서 핀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까지 지켜보며, 열매가 무르익으면 거두어서 갈무리한 다음, 이 열매를 스스로 다듬고 손질해서 ‘먹을거리’로 가꾸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다 해내야 하는 몫’입니다. 시골에서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서 요모조모 해 보고 다듬어 보고 고꾸라져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 배웁니다. 스스로 부딪히지 않고서야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온몸으로 겪지 않고서야 배울 수 없습니다. 섬으로 간 젊은이들이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바탕은 이러한 자리에 있다고 느낍니다. ‘앞날’이란 앞으로 살아갈 나날입니다. 예순 살 남짓이 되어 연금을 받으면서 ‘일할 걱정이 없어도 되는 삶’이 앞날일 수 없습니다. 일흔 살이 되고 여든 살이 되어도, 내 삶을 스스로 가꾸고 돌볼 수 있는 나날이어야 비로소 ‘앞날’이라고 느낍니다. ‘돈이 없어도 되는 살림’이 아닙니다. ‘돈이 아니어도 되는 살림’입니다. 오직 돈만 바라보도록 내모는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 삶을 마주하고 사랑을 바라보면서 꿈을 지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여러 젊은이가 섬(시골)에서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누린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지역에서 만들고 그 가치를 전국으로 발신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앞으로 일본이 존재할 곳’은 도시가 아니라 지역이 될 것이다 … 요즘 같은 시대, 도시와 시골 생활 양쪽 모두를 경험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지역과 미래를 연결하는 모두의 일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말이다. (197, 205쪽) 시골에서는 철마다 삶이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달마다 삶이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날마다 삶이 다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따라 다 다른 삶입니다. 날마다 동이 트는 때가 다르고, 해가 하늘에 걸린 길이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면서 날마다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새벽이 밝고 아침이 찾아오면, 나는 맨 먼저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하루를 그립니다. 새벽물을 길어서 쌀을 헹구고 낯을 씻으면서 하루를 그립니다. 마당과 뒤꼍을 돌며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를 하는 동안 하루를 그립니다. 오늘 하루는 아이들하고 어떤 삶을 지을 적에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기쁠까 하고 생각을 짓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길을 엽니다. 먹고 입고 자는 세 가지를 스스로 건사하는 길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은 저마다 재미있게 놀이를 찾고 생각을 빛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여러 젊은이가 섬마을에서 ‘기쁜 앞날’을 찾았다면, 나는 이 나라 시골마을에서 아이들하고 ‘기쁘며 재미난 앞날’을 찾으려 합니다. 흙을 만지고 밟으면서, 흙이 새롭게 태어나는 얼거리를 느끼고 배우면서, 바람이 흙을 살찌우고 햇볕이 흙을 북돋우는 숨결을 헤아리고 알아차리면서, 스스로 숲노래를 부르는 착한 숲사람으로 사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4348.6.2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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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일본이 20년 정도 앞서 있다고 보면 된다 하였다. 올림픽이 그랬고, 심지어 경기침체, 학생들 사이에서 끔찍하게도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집단따돌림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걸었다. 타산지석을 삼으라고 했지만 그들이 걸은 길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입장인지라 일본인들의 선택에도 주목하게 된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이들이 2~3년 안에 직장을 관두는 일이 잦아졌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제 발로 뛰쳐나오다니, 기성세대는 이해 못했다. 자포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동시에 대안 모색이라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젊은이들의 선택이 마냥 철없음으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회사가 어떠한 비전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판단이 섰기에, 스스로를 소진 시켜 가며 이 곳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 젊은이들은 차라리 벗어남을 택했다. 그렇다 하여 그들이 굶어죽는 길에 들어선 건 분명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고민하는 존재인데 이는 나이가 젊다 하여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현상을 어쩌면 보다 일찍부터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 또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둘 다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했다. 힘이 들기야 하겠지만 정해진 보수를 정해진 시점에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운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선망하던 길을 뿌리쳤고, 이름조차도 낯선 섬으로 들어갔다. 아마초라고 했다. 일본 본토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데,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점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아주 작은 섬인 듯했다. 2012년 8월말 기준으로 인구는 2331명, 1년에 태어나는 아이 수는 대략 10명이란다. 게다가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으로 저출산 고령화로 휘청거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마도 그들의 행보를 두고 현실도피라고 처음엔 평했을 것이다. 준비 정도가 달랐고, 서로 이제껏 걸어온 길이 달랐지만, 단지 현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섬으로 들어간 건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섬이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던 바를 접목한 현실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우선 섬은 규모가 작다. 이 말은 보다 작은 사람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단 뜻이다. 공식적인 루트가 잘 작동하지 않는 대신 인간과 인간의 대면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등의 강한 제약 조건을 오래도록 겪으면서 견고해진 인간관계야말로 아마초의 최대 강점이었다. 동시에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기도 했다. 어차피 대도시라 하여도 현재의 아마초의 모습을 머지않은 미래에는 지닐 수밖에 없다. 섬으로 들어간 청년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섬의 위기를 곧 기회라고 여겼다. 상대적으로 작은 세계인 섬에서의 성공 사례는 대도시에도 접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해볼 만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변화를 써 내려갔다. 시골벤처기업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명확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간에 품은 생각이 너무도 다르기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아이디어가 있었다. 다르다는 점이 때론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머리를 쓰는 일에 강한 이가 있는 반면 사람과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게 주특기인 이도 있었다. 누군가가 치밀하게 기획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매진했다. 그들이 이뤄온 기록을 따르는 일은 실로 벅찼다. 고립에 가까운 상태였던 섬을 본토와 연결했다. 섬 나름의 문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인들이 주가 되는 듯한 모양새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 또한 어쩌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진통이었다. 무엇보다도 섬 내부에서 그랬듯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형성함에 있어서도 청년들이 네트워크를 중시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도 품질을 믿고 섬에서 생산된 품목을 구입하기까지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이는 마치 자신의 친한 친구가 생산했기에 가격은 묻거나 따지지도 않은 채 그저 믿고 구입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교류가 있었을지가 눈에 선하다. 섬 사람들 개개인의 저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닦는 일에 청년들이 앞장설 수 있었던 건 아마초 섬을 마치 고향과도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조만간 떠날 거라고 상정하고, 섬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려 들었더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서는 그런 엘리트주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초 섬을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 앞서서도 언급했듯 섬은 모든 조건에 제약이 있다. 섬에서 성공했으므로 고스란히 도시로 옮겨와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건 어리석은 태도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보여준 주인의식과 열정, 사람을 중히 여기는 태도만큼은 어느 곳에서 생활을 하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지 싶다. 우리 근처에도 이와 같은 것들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마초 섬과 같은 곳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웃 나라의 사례를 부러워하지만 말고 내 스스로가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 보면 어떨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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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생면 부지의 사람이 되었던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으려고 연결하려고 애를 쓴다. 어떤 때는 혼자 떠들듯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써볼까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며 글을 남겨놓는다. 좋게 말하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기록 같지 않은 기록이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에 매달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또 맺는다. 허영에 들떠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욕심을 내고 돈도 없으면서 당일 되면 어떻게 막나 전전긍긍하면서도 카드 하나 들고 남들 앞에서 괜히 허세도 부려보기도 한다. 삶이라는 것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그들의 삶은 어디로 향해 있는 걸까.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고 SNS를 찾아다니며 삶을 엿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유명한 닭튀김인지, 백화점 문을 나서는 중년의 여성들의 손에는 네모반듯한 닭강정 박스가 하나씩 들려 있다. 누구 손에는 두 개도. 뿌듯함이 느껴지는 중년 여성의 오후. 크지 안 않지만 이런저런 브랜드들이 위아래 신발, 가방, 옷, 모자, 선글라스마다 다 달려 있다. 그 닭 상자를 들고 가 아마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며 남은 오후를 보낼 것이다. 그렇게 닭을 들고 가는 중년 여성의 거리에서 비켜난 곳에서는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중년의 아저씨가 있다. 위아래 반바지 티셔츠 모두 검은색이다. 신고 있는 양말고 슬리퍼까지도. 구두약 때문일까,이라며 오래도록 입기 위해서. 한 사람의 일생을 누가 감히 쉽게 단정을 하겠는가.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공간이고 삶의 도구가 아닌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걸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든다. 이제는 그만 묻고 내가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따라 움직여야 할 텐데도 나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는 그런 삶 가운데서 마주쳤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갈등으로 남겨져 있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 한 분 세상을 등지고 있다. 그분들의 듣고 싶은 것은 진정성이 담긴 '사과'다. 이런 일 이외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고 갈등으로 남아 있는 일본. 일본의 미래는 과연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역사적으로 얽힌 문제들을 뒤로하고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에 일본 청년들의 답이 이 책 안에 들어 있다. 다들 섬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때에 잘 나가는 기업에 몸담으며 생활하는 청년들이 도시에 사표를 던지고 섬으로 몸을 던졌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들은 섬 밖의 사람들을 안으로 불러 모으며 섬이 다시 살아나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기획하며 섬사람들과 하나가 되도록 애를 썼다. 도시에 사는 이유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그들이 내린 결정은 섬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둘 사람을 모으고 섬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썼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농촌으로 들어가서 자신들의 역량과 꿈을 키우려고 한다. 청년이 없는 시골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다. 생명이 있고 삶이 있은 그런 땅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계 문명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이 아닌 다른 삶으로의 방향을 튼 청년들, 그들의 길이 쉽지 않겠지만 생명을 잃어버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당연한 진리 앞에 마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길 바란다. 어느 날 성장 동기를 잃어버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연과 접하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주식회사 메구리노와의 아베 히로시, 노부 오카 로스케가 아마초에 일군 섬 학교 가 희망을 잃고 자신의 길을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길을 찾아 떠나는 용기를 불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직장 생활 20여 년을 하고 있다는 분은 여전히 회사를 그만두고 내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꼬박꼬박 나오는 한 달 월급의 유혹을 벗지 못하는 탓이라고 한다. 내년에 그는 어디에 있을까. 닫혀 있던 생각을 깨고 나올 때 다시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아니 기회를 여는 것이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그 모든 것들을 활용하고 그 속에서 살아갈 때 다가오는 삶의 감동을 이들은 찾았다. 배우는 자세는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는 사람들을 움직였다.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는 삶의 현실을 고민하고 얽혀 있는 문제들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도 삶의 기대를 걸 수 있는 한 걸음이 되어 줄 것이다. 전통의 공간에서 청년들이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섬 학교, 요리 체험, 오감 학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마 섬을 가꾸고 도와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역시 사람이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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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는 "자신이 속할 수 있는 다양한 거처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문화나 일상의 문맥을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여백을 마음속에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문화적 동요가 필요한다는 말일것이다. 또 먼저 상대방에게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싹트면 상대방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 그런 자세여야만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공감도 중요하다는 말은 현재의 사회에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살아갈 아이,손자,심지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대지에서 찾아올 새로운 생명까지 내다보고 지금을 살아간다고 한다. ) 자기라는 시간만으로 전전긍긍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섬 사람은 보다 먼 곳을 보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이말은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말이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책의 내용중 1.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섬 : 말만 하는 사람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가는 사람이 필요하다. 2. 진심으로 소통하기 :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같은 시선에 서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규칙이라는 것, 더 나아가서는 지녀야 할 마음 자세라는 것 이것은 섬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도 공감,동행을 위해서 필요한 것 같다.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도... 모두 중요한 현재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