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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야 잘 죽고 영원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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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이 업이다 보니 장례 예배를 인도하거나 장례식에 참석할 때가 많다. 고정적 레퍼토리는 천국 소망, 내세 소망, 영생 소망이다. 사랑하는 이를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퍼하는 유가족들이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이겨내라는 말이다. 나도 천국을 믿는다.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천국은 내게 꼭 있어야 한다. 항상 그리운 아빠에게 따져 물을 것이 많다. 아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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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이다 보니 장례 예배를 인도하거나 장례식에 참석할 때가 많다. 고정적 레퍼토리는 천국 소망, 내세 소망, 영생 소망이다. 사랑하는 이를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어 슬퍼하는 유가족들이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이겨내라는 말이다. 나도 천국을 믿는다.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천국은 내게 꼭 있어야 한다. 항상 그리운 아빠에게 따져 물을 것이 많다. 아니 하나님께 호래자식이란 소리를 들어도 왜 그러셨는지 묻고 싶다. 그러니 천국은 꼭 있어야 한다.

성도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믿어온 터라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 어떻게 부활하는지? 부활이후의 어떤 삶을 펼쳐지는지? 알차게 묻지 않았다. 그러니 천국을 갔다 온 사람도 많고, 잠시 동안 사후세계를 경험한 자들의 증언이 심심찮게 들리는 세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예리한 질문에 연구해서 알려드리겠다는 궁색한 대답만 했다. 도대체 사후세계는 어떻게 펼쳐지는지 나도 그게 너무 궁금하다.

내세에 대한 지침의 으뜸은 단연코 핸드릭슨의 내세론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의 대부분은 그 책의 목차에 다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받을 때면 틈틈이 꺼내 보내는 책이다. 허나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만 고수하여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보수진영에만 속해 있는 필자의 목마름이라고 할까? 다른 의견도 듣고 싶은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서로 비교하면서 장, 단점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리면 좋으련만.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책을 만났으니 김균진 교수의 죽음과 부활의 신학이다. 철저하게 현대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요소들을 잡 끄집어내어 성경적인 가르침을 준다. 특별히 죽음 후의 상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성경적인 결론을 내는 5장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죽음과 부활의 의문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않는다. 차분히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여 점점 현세 지향적으로 바뀌어 영원을 잃어버린 세대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하여 이 책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 것인지,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더 다급히 묻는다. 그러고 보니 사후세계에 대한 멋진 대답거리를 찾다가 내 삶을 잃어버린 듯 하여 화들짝 놀랐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말하듯 잘 죽을 수 있는 길은 잘 사는 데 있다(538).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내세론과 함께 틈틈이 들 쳐 볼 책이 늘었다. 자주 넘겨보며 천국에서 만날 주님과 아빠를 고대하며 지금 잘 살아야겠다. 잘 살아야 할 텐데.

YES마니아 : 로얄 s******w 2015.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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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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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죽음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죽음에 대해 금기시하던 유교문화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제 죽음에 대한 책들이 즐비하다. 최근EBS 다큐프레임 “죽음”과 셀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것을 나타내는 증거이리라. 사실 논리와 이성만으로 설명하는 이 책들과 실험들은 기대와 달리 조금은 따분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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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죽음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죽음에 대해 금기시하던 유교문화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제 죽음에 대한 책들이 즐비하다. 최근EBS 다큐프레임 죽음과 셀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것을 나타내는 증거이리라. 사실 논리와 이성만으로 설명하는 이 책들과 실험들은 기대와 달리 조금은 따분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이 없는 것처럼 일상의 생활로 살아간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인가? 죽은 사람과 상관없이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잘 돌아간다. 다시 돌고! 그래서,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위로하러 장례식장에 가서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인가? (그리고 또 잊어버린다.)그런 연유로, 전도서 기자는 초상집 가는 것을 장려(?)했던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지난 2003년에 펴 낸 “죽음의 신학”을 재 출간하면서 죽음에 대한 방대한 자료로 우리를 “죽음학” 으로 초청한다. 죽음에 대한 고대와 현대의 안락사까지 철학과 신학을 오가며,심도있게 우리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또한 현대사회 속에서 죽음이 어떻게 배제되어 보여지고 있는지 그 실태를 이야기하면서 죽음에 대한 성서적인 인식을 신학자의 필체로써 말씀을 논한다. 또한 죽음 이후에 상태에 대해 영혼 불멸설,영혼 윤회설,카톨릭의 연옥설 등을 설명하면서 루터의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논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현대사회의 안락사와 품위있는 죽음에 대해 논하면서 가족의 인권을 배려하는 의식의 전환을 제안하기도 한다.

저자의 후기를 보면 저자의 의도를 알듯이 후기에는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p520) 그리고,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며(p536,p538)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죽음과 부활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하면서 죽음에 대한 방대한 신학을 논하고, 미래의 부활 소망속에서 오늘의 현실에서 가치있는 일에 뜻을 두고 살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 하루를 살더라도 선한 가치를 찾아 타인과 하나님 앞에 선한 인격으로 드려지는 인생을 살아야 함을 더욱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결국 죽음에 대한 다양한 철학과 신학으로만 끝나지 않고, 부활로 연결시켜 오늘의 삶으로 연결시키려는 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이어령 교수가 말한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어.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노을을 아침의 노을로 바꾸어버리는 재생과 부활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남들이 다 놀리더라도, 나는 그 힘이 믿음의 힘이고 희망이고 빛이라고 생각해.” (딸을 천국으로 떠나 보내며 하는 이어령 교수의 말)

결국, 저자는 죽음에 대한 깊은 사고와 묵상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라며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듯 하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였듯이 죽음앞에서 살아내기 위해 잘 죽을 수 있는 길로 초대한다.늘 자기 자신안에 새사람 그리스도가 있는지 반추하며, 멋지게 살아왔던 믿음의 선조들처럼 의미있는 죽음을 위해 오늘 하루도 그분께 다가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물어 보리라. 또한 죽음에 대한 궁금함과 의문이 생길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글을 잃을때 이 책을 꺼내 보아 죽음을 꼽씹어 보리라...

s***n 2015.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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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망각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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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망각한 사회. (김균진,「죽음과 부활의 신학」,새물결플러스)   오랜 암투병과 그로인한 부작용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작년 타들어가는 8월을 맞이하기 전 6월에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니 그전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했다. 치료는 중단된 상태였고,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상한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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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망각한 사회.

(김균진,죽음과 부활의 신학,새물결플러스)

 

오랜 암투병과 그로인한 부작용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작년 타들어가는 8월을 맞이하기 전 6월에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니 그전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했다. 치료는 중단된 상태였고,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상한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포기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암흑에 의학도, 기도도, 어설픈 위로도 묻혔다. 무력감을 느끼며 죽음을 알려고 책을 읽어댔다. 관련 책들은 많았고, 죽음은 삶에 대한 이해를 넓혀줬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을 탐구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곤 후회했다. 더 빨리 알았다면 하고 말이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죽음에 직면하고서도 응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죽음의 배재현상이다.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현상들이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무감각해진 그들은 죽음을 감지해내지 못한다. 가족을 땅에 묻고도 죽음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왜일까? 성숙한 삶의 태도인가? 아니다. 깊은 신앙의 힘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죽음을 부인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생각한 것처럼, 죽음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까? (p53) 그럴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배재 현상을 성의 터부로부터 찾은 사람이 있다. 인종심리학자 고러(G.Gorer)과 의학자 바알(C.W.Wahl)이다. 그들에 의하면 과거 성에 대한 터부가 죽음에 대한 터부로 대체된 것이다. 과거에는 성에 대한 공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죽음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하여 오늘날 죽음은 의사소통 장애를 겪고 있다. (p74)

 

친족이나 가족의 장례를 치르고 나면 주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위로형이다. ‘힘들지.’라는 말로 어깨를 두드리며 슬픔을 달래주려고 한다. 또 하나는 분투형이다. ‘더 열심히라는 말로 생활을 독려한다. 죽음을 묵상, 생각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애도는 딱 3일 안에 끝내야 하는 패드스푸드와 같은 것이다. 교회조차 다르지 않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장례는 하나의 행사로 그치고 만다. 여기서도 죽음은 실종된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도 어머니는 좀처럼 삶을 포기하지 못하셨다. 살아있음을 사랑하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죽으면 너희들 어떻게 하니?’ 그때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이 뻣뻣해졌고 생각은 끊겼다. 침묵했다. 죽음을 머릿속으로 이해했지만 가슴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머니와 함께했던 추억가운데 한 곳으로 잠시나마 되돌아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하겠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죽음을 응시하겠다.

 

눈 빠지게 기다렸네.’ 23일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죽음을 망각한 곳엔 삶이 없다. 죽음의 배재가 곳 삶의 재배임에 다름없다. 우리는 죽음을 이해할 때, 삶을 알 수 있다. 필연적으로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되는 사역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피상적 죽음에 대한 이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삶조차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죽음은 곧 삶에 대한 앎이다.

q***h 2015.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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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을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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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부활의 신학’이라는 이 두꺼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죽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마지막 저자 후기에서 그는 그렇게 쓴다. 이 책은 독자 여러분 모두 잘 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썼노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고 노교수는 전한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은 죽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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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부활의 신학이라는 이 두꺼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죽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마지막 저자 후기에서 그는 그렇게 쓴다. 이 책은 독자 여러분 모두 잘 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썼노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고 노교수는 전한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은 죽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읽어야 하나? 모두가 죽지만 모두 죽음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죽는다.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의 사는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 일 때만이 가능하다.

 

이 책은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죽음이 다가와 있는지 부터 먼저 알려준다. 죽음에 대해 시대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실존적 정의는 물론이고 문화적, 사회적, 신학적 성찰까지 망라한다. 그리고 현대사회 속에 죽음이 배제되어진 현실도 적나라하게 직시해준다. 타자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은 팽이처럼 돌아간다. 이 책은 영원히 살 것처럼 현실에 집착하게 하고 탐닉과 끝없는 자기 추구 속에 잘못된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이 시대를 고발한다. 그리고 성서는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죽음에 관점으로 깊이 통찰한다. 죄의 원인과 결과는 물론이다. 철학과 신학을 넘나드는 그의 죽음에 대한 논거는 노학자의 경륜과 함께 실증적 자료가 된다.

 

죽음이후의 세계, 함께 영원한 죽음 그 이후의 나라에 대해,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도 알려준다. 죽음과 부활의 세계를 고민하고 사는 사람은 오늘의 선택에 지혜를 준다. 오늘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죽는 그 날에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삶이 말하게 될 것이다. ‘죽음과 부활의 신학은 오늘 날 성장주의 흐름 속에 발전해온 한국교회에 중요한 신학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죽음과 부활은 사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 땅에서 기독교인이 나그네로 살아갈 명분이기에 그렇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분명하게 지켜줄 수 있는 가치이다. 예수를 잘 믿는 방법은 나는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 예수를 잘 믿는 삶으로 살게 된다. 잘 죽고자 할 때 이 땅에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살게 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원리와 같다. 그렇게 죽고 살기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반드시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k*****k 2015.07.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