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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후장사실주의자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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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정직한가와 즐거운가이다. 그러나 늘 즐거울 순 없고 그것은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정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불행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실함은 진실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이성복은 말했다. 그는 또 허구로서의 진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고 삶을 기획하게 한다고도 말했다.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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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정직한가와 즐거운가이다. 그러나 늘 즐거울 순 없고 그것은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정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불행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실함은 진실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이성복은 말했다. 그는 또 허구로서의 진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고 삶을 기획하게 한다고도 말했다. 시험 때 만화를 보면 더 괴롭다. 그럼 공부할 수밖에 없다. (p.56)

- 정지돈 작가노트 중에서

 

analrealism』이라는 독립잡지가 나왔을 때, 이 발칙한 이름의 잡지를 만든 이들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다가 오한기나 이상우, 정지돈이라는 일군의 작가들과 금정연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 일군의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기꺼이 후장사실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후장사실주의란 무엇일까? 정지돈이 2013년『문학과사회』신인상에 당선된 후 쓴 당선소감에 의하면 후장사실주의란 로베르토 볼라뇨의『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의 패러디다.

 

기성문단을 공격하고 기성질서를 파괴하길 서슴지 않았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20대 초반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사실주의-내장사실주의)를 결성했다면, 정지돈 등 일군의 젊은이들이 볼라뇨를 인용 혹은 패러디해서 후장사실주의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정지돈이라는 작가에게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된 이유이고, 이 책을 찾아 읽게 된 이유이다. 사실 계간 『문학동네』의 정기구독자인 나는 이 책을 선물로 받았지만, 애석하게도 태평양을 건너 내게로 오는 와중 분실된 책 박스에 들어 있던 불운한 책 중 한 권이 하필이면 이 책이고, 출간한지 일년이 거의 지난 시점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형식적으로 단편소설이나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고 방대한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건 다음의 세 문장이다.

 

1. 사실 이구는 자신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열아홉이었고 바야흐로 국적 따위 상관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p.10)

2. 시에는 국적이 없지 않습니까. (p.11)

3. 그들의 야망과 꿈은 왜 이렇게 낡고 초라하게 남아버렸나, (p.21)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요약되지 않는 소설이다. 억지로, 힘들게 요약을 한다고 해도 크게 의미가 없다. 이 소설이 의도하는 것 자체가 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지돈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를 축약한다면 다음의 세 문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지돈은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굽이 굽이 미로를 만들고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하지만 그것이 악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기존의 소설 문법을 구태여 답습하는 데서 오는 따분함, 싫증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더욱이 위에서 인용한 정지돈의 인터뷰 내용을 좀더 보자면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제일 잘 하는 건인용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인용이다. 문학은 세계의 인용이다. (……) 후장사실주의는 문학의 인용이다. 그러므로 후장사실주의는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다.”

 

그러니깐 정지돈은 후장사실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걸맞은 글을 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을 통하여 문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이 소설에 대한 첫인상들은 다분히 관습에 의한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애초부터 호의적으로 출발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읽는 내내 단점보다는 장점이 돋보였다.

작품을 읽으면서 정영문이나 배수아, 한유주, 손보미 같은 한국 작가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정영문은 「건축이냐 혁명이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2013년에 데뷔한 신인 소설가 정지돈은 작가 약력에서 이상우와 함께 후장사실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데 후장사실주의자는 한국의 정형화된 소설에 싫증을 느낀 몇몇 젊은 소설가들이 스스로를 약간 조롱하듯 일컫는 말로 여겨진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일본의 황족이며 아버지는 한국의 황족이지만 이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과 한국 모두가 그를 자국민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산 이구라는 실존 인물의 행적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화자인 가 이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에 대한 조서를 하는 형식을 취한 이 단편소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를 쓰고 싶어하지만 결국 건축가가 된 이구를 중심으로 이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20세기 후반부 미국과 한국 건축계의 여러 인물들과 그들의 흥미로운 일화들이 단편소설로는 약간 벅찰 정도로 많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교차하며 종횡무진하듯 전개된다. 실존했던 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사료를 많이 참조해, 좁게는 한국 현대건축사, 넓게는 한국 현대사회사의 한 면을 잘 그려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사실들을 허구와 잘 조합해 지적 소설의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준 점에서 개인적으로 높은 평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미덕은 음미해 읽을 때 드러나는 유머러스한,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도 있었다. “이구는 황족 행세를 한 적이 없는데 왜 황족 행세를 하지 않겠다는 요구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영문 (소설가)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굳이 지적 소설이라는 프레임으로 한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는 황종연의 평가에 좀더 동의하는 편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냐는 괴물 같은 작품이다. 실존 인물 이구의 일화를 모아 전하는 형식으로 역사와 허구의 협간에서 실로 현란한 곡예를 펼치고 있다. 이구가 살았던 시대, 이구가 관련된 분야의 다채로운 인물과 사건을 잇대어놓은 파노라마식 서술 묘기,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대목마다 번득이는 잡학과 유머, 역사 연표와 인명 속에서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익살맞은 드라마를 발굴하는 센스 등 여러 면에서 특출하다. 이 작품을 놓고 역사 같지 않다거나 소설 같지 안아 불만이라고 한다면 탈장르적 서사 예술의 묘미를 놓치는 일이 된다.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응하는 글로벌 만담이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면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 실제 선구 사례일지 모르겠다. 형식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반면에 스토리텔링의 기백과 활력이 넘치는 정지돈 작품이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유쾌한 일이다. 이로써 젊은작가상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된 셈이기도 하다.

 

황종연 (문학평론가) 

 

황종연의 지적처럼 이 소설을 대상으로 선정함으로써 젊은작가상은 그 존재 이유를 분명히 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한국의, 또는 외국의 작가들이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다양한 것을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이 젊은 작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시그니쳐를 구축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고로 정지돈의 첫 소설집이 5월 중에 나온다고 한다. 이 소설집까지 다 읽고 나면 정지돈이라는 소설가도 후장사실주의도 좀더 윤곽이 구체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6.05.08. 신고 공감 11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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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하나 더 쓰자. 상품에 눈이 멀다 보니, 이벤트가 아닌 책은 리뷰를 게을리하게 된다. 영감이 바닥나서, 이제 본업(책읽는일)에 충실해야겠다. 우선 이 책의 가격에 주목해보자. 페이지수가 좀 적긴 하지만 다른 책들 가격의 반 값이다. 책의 가격이 내용의 가치를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많이 팔리는 책일수록 대량생산 대량유통 뭐 이런 것 때문에 가격이 내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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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하나 더 쓰자. 상품에 눈이 멀다 보니, 이벤트가 아닌 책은 리뷰를 게을리하게 된다. 영감이 바닥나서, 이제 본업(책읽는일)에 충실해야겠다. 우선 이 책의 가격에 주목해보자. 페이지수가 좀 적긴 하지만 다른 책들 가격의 반 값이다. 책의 가격이 내용의 가치를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많이 팔리는 책일수록 대량생산 대량유통 뭐 이런 것 때문에 가격이 내려간다. 젊은 작가상의 대상은 등단한지 10년 이내의 작가들이다. 신경숙 표절 이후 등단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기득 '문학권력'에 편승해야 하는 억압적 시스템을 나타내는 말처럼 조금 부정적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책을 내서 읽히면 그냥 등단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표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렇게 2005년 이후 계간지와 월간지는 뿐만 아니라 각종 웹진이나 문예지 발표 없이 바로 단행본으로 묶인 작품들까지 심사 대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알 서점에서는 리뷰대회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고, 판촉 뿐만 아니라 좋은 리뷰를 확보하기 위한 이벤트도 하고 작품의 범위를 폭넓게 했다는 것은, 작지만 기존의 순수 문학이 해오던 것에 대한 약간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알려지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은 작품이 좋아도 노출되기 어렵다. 그러기에 메이저 출판사는 젋은 작가들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팔리는 책의 유치에만 돈을 쏟아붓지 말고, 앞으로 책을 잘 팔리게 만들어야 한다. 단지 가격 조정이나 소소한 이벤트성 마케팅 활동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독자들은 생각을 읽어낸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의 작가들은 정지돈, 이장욱, 윤이형, 김은미, 김금희, 손보미, 백수린이고, 대상은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띄엄띄엄 총 세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첨에 읽을 때는 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몰라 그냥 영혼없이 읽다가 이게 뭥미 하고 끝났는데, 나중에 그런 내용인 줄 알았지만, 중간중간 다큐처럼 사실들을 엮은 내용을 제대로 읽어볼 생각으로 한번 더 읽었고, 한 번 더 읽어보니 묘하게 매력적이어서 문학적인 의의를 짚어보고 싶어서 한 번 더 읽었다. 앞에서 책이 반값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북으로 샀더니 더욱 싸서 3천원 선이었다. 이북으로 폰에 쟁여놨더니 멍청히 시간을 때워야 할 피치 못할 때가 생길 때 읽게 된다. 여행중일 때도 옆지기가 주무신다고 불끄라고 짜증낼 때, 이북은 유용하다. 


이 작품의 수상에 대해서 말들을 많이 하는 걸 봤는데, 일부 의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들 많은 것도 이해하고, 대상 수상작으로 뽑은 것도 이해한다. 기존 소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해야 하나, 이런 종류의 소설은 본적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 더 파격적일 수가 없다. 문장은 몹시도 길어서 따라가다보면 한 문장 내에서 원래 무슨 말을 하다가 이리로 왔는지 모를 정도지만, 그런 문장들이 묘하게도 구성지게 재미읽게 읽힌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혹은 실존했던)인물들이고, 그 인물들의 행적도 역사적인 기록에서 따왔다. 다큐처럼 인물의 행적들을 따라다니는데, 그렇다고 다큐처럼 어떤 주제가 있어서 그걸 캐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이구에 대한 다큐라면 이구의 행적을 충실히 따랐을텐데, 이구가 나왔다가, 그가 뉴욕에서 함께 일했던 이오밍페이가 살짝 나왔다가, 그들의 건축세계를 설명하는 다수의 건축가들이 함께 등장하며 당시의 건축가들의 세계의 아주 지극히 일부의 단면을 보여준다. 귀국후 이구의 활동에 대해 조금 내용이 좀 충실한가 싶으면 다시 또, 김중업이 프랑스에서 인정받아 영화화까지 되었다는 얘기서부터 여러가지 곁다리들이 나오고, 이어 장이 바뀌어서 <프루이트 아이고>라는 미국의 아파트가 지어지고 폭발되기까지의 스토리가 비교적 자세하게 프루이트아이고의 전 거주자의 입을 통해 서술되는데, 김중업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렇게 프루이트 아이고라는 건물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계기는 저자가 이구를 조사하다가, 김중업을 알게 되었고, 김중업을 조사하기 위해 고다르가 찍은 영화 김중업을 보는데, 그것이 프루이트 아이고의 폭발장면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다큐 <김중업>을 거의 다 완성했으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 부족분은 이 영화가 단지 김중업에 대한 것이어선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음을 프루이트 아이고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다. (43)


'모더니즘건축과 모더니즘도시계획의 정점인 푸루이트아이고'는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시장이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 들어오는 흑인빈민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에 구상한 '소수자와 가난을 감싸안는 미래형 공공주거단지'였고, 패전국 일본인인 야마자키를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앉혀 건축되었으나 얼마 안가 시의 애물단지가 되었고, 지어진 지 20년이 채 안되어 폭파되었다는 이야기였고, 이 내용은 보다 자세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폭파 장면의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검색해볼 수도 있다. 미래형 공공주거단지는 실패한 공공주택단지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이렇게 이구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끄트머리 저끄트머리로 이어지며, 이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 역사적 인물들이 두서없이 얘기되는가 싶더니만 다시 이구 이야기로 되돌아오는데, 오호, 세인트루이스 시의 당시 사정과 프루이트 아이고의 이야기는 서울시와 한강 뚝섬의 개발로 이어지는 도시 정책에 이구가 관여하면서 알레고리를 갖게 된다. 이구의 이야기는 자신이 황족임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자신도 물론 별 관심 없었던 미국에서 건축 공부를 마치고 이오 밍페이 사무실에서 근무를 한 후 결혼을 해서 서울로 돌아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서울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서울대 그의 밑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던 김원의 말을 빌려 이구의 생각과 사상이 단편적으로 표현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김원의 뉴욕 유학생활과 거기에서 만나고, 읽고, 들었던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것은 이구 뿐만 아니라 김중엽, 김현옥,  고든 마타클락, 푸루이트아이고, 밤섬 등 누군가 혹은 무엇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화자를 끌어들이고 그 화자가 다시 이야기의 작은 부분에서 주인공이 되었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이후 이구는 1966년에 취임한 김현옥 시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새서울백지계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함께 참여했던 많은 인물들이 차일석, 김중엽, 박일석,박학재 등이 새서울백지계획과 시정 계획에 참여하는 내용들이 나오다가, 밤섬 이야기에 도달한다. 소설에서 밤섬 이야기는 당시 밤섬에서 배를 만들던 유덕문의 회고를 통해 다루어지는 데 동떨어진 하나의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을만큼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밤섬 이야기가 끝난 후는 고든 마타클락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밤섬 이야기 못지 않게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다른 스토리와는 달리 이구와의 물리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 어딘가에 있는데 내가 흘려보냈을 수도 있고, 일부러 별도의 스토리로 넣었을 수도 있다. 


간략하게 전체 흐름만 정리해볼 생각으로 적기 시작했는데, 원 소설 자체가 워낙 압축적이어서 정리를 하느라고 해도 길어졌다. 다른 소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윤이형의 루카는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고, 손보미의 임시교사는 평생 임시교사를 하다가 늙어 어느 부자집 보모로 들어가서 보살피는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두 개의 소설이 가장 좋았다. 수상작 치고는 최소한 이게 뭐야 싶은 어려운 점이 없고, 바로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최은미의 근린은 뭘전하자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뒤에 평론가가 설명해 놓은 것을 보고 알았다. 설명한 거 안읽어 봤다면 몰랐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 누가 설명해줘야 알아먹을 수 있는 소설은 아무리 수상작이라고 하더라도 가치를 높게 사지 않는 편이다. 다만 정지돈의 작품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지는 몰라도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는 장점을 가졌다. 어린 시절 타카히로와의 (짝)사랑을 추억하는 백수린의 <여름의 정오>는 그 젊은 시절 마음에 담았던 일들이 너무 건조하게 쓰여져있어서 조금 언잖았다. 


g******1 2015.09.18.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2015 제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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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단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난해함을 참고 견디는 과정이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책을 많이 읽다보니 묘한 매력에 사로잡혀 가끔 단편들을 읽게 된다. 더군다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단편집의 코스처럼 생각해 가능하면 찾아 읽으려고 한다. 지난 번 읽었던 제5회 작품은 나름 괜찮은 게 많아서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제6회 작품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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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단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난해함을 참고 견디는 과정이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책을 많이 읽다보니 묘한 매력에 사로잡혀 가끔 단편들을 읽게 된다. 더군다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단편집의 코스처럼 생각해 가능하면 찾아 읽으려고 한다. 지난 번 읽었던 제5회 작품은 나름 괜찮은 게 많아서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제6회 작품집을 읽어 내려가는데.... 이번엔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중도 포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번 잡은 책은 가능하면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다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어떻게 리뷰를 작성하지? 였고, 그 다음 생각한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리뷰는 나름 이해한 작품을 가지고 작성하고자 한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마지막 황세손이자 근대 건축가인 이구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정귀보에 대한 이야기다. 루카는 목사 아들인 루카와 딸기의 동성애를 다룬 이야기 이고, 근린은 한 공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자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한 여자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끝까지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조중균의 세계는 출판사의 조중균의 존재.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았고, 임시교사는 자신의 임시 교사의 타이틀처럼 한 중산층 가정의 보모 역할을 꼭 그렇게 임시직으로 끝내게 된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다. 여름의 정오는 스무 살, 파라에 갔을 때 사랑하게 된 타카히로와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게 뭘까 싶은 이야기는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단편이었고, 나머지는 어렴풋이나마 이건 아닐까 하는 느낌은 온다. 그나마 잔잔하고 애잔하게 마음에 남는 단편은 루카와 임시교사다. 목사의 아들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루카. 하지만 루카는 교통사고로 죽고 아들이 죽고 난 후 루카의 아버지는 딸기를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부모라면.. 커밍아웃을 한 아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고, 인정할 수 없었기에 루카의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했을 것이다. 더구나 신과 가장 가까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아들이 죽고 난 후에야 진정 아들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나와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닌데 우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긴.. 만약 그게 내 아이라면... 나도 정형화된 이런 답으로 인정하겠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서늘한 바람이 마음 안에 불었던 단편이다.

 

임시교사는... 느낌이 묘하다. 처음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아이를 돌봤던 전직 임시 교사 보모는 어느 순간 이 집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걸 처음엔 감사해하던 주인 여자는 그것이 불편해지고 바로 해고를 한다. ‘임시가 주는 단어의 뜻을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하기도 힘들 텐데.. 무감하게 읽었던 단편인데 끝은 씁쓸함을 남긴다. 이 밖에도 근린이란 소설도 기억에 남는데... 가장 궁금한 건 그날 죽은 여자가 누구일까? 하는 거다. 그래서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죽은 여자의 힌트가 있는지 다시 찾아본 단편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여자에 대한 힌트는 없다.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라는 말만 있을 뿐.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리뷰를 쓰는 것인지.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좋다. 단편이 주는 다양한 의미와 생각들이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 같으니까. 7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에는 어떤 단편 수록되고 상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5.06.13.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너는 거기 있었구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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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거기 있었구나, 그대로.   서점에 가서 매대를 쭉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앤솔로지들이 있다. 각종 권위 있는 문학상 작품집만 해도 몇 권인지, 찾아서 읽고 싶다가도 1회부터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챙겨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내게 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특별하다. 내가 유일하게 1화부터 챙겨본 앤솔로지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재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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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거기 있었구나, 그대로.

 

서점에 가서 매대를 쭉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앤솔로지들이 있다. 각종 권위 있는 문학상 작품집만 해도 몇 권인지, 찾아서 읽고 싶다가도 1회부터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챙겨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내게 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특별하다. 내가 유일하게 1화부터 챙겨본 앤솔로지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재기발랄함과 김애란의 혁신, 손보미의 놀람과 김종옥의 탄생, 황정은의 변화를 이어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올해의 젊은작가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가 정지돈이다.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젊은 작가상이니까. 이제 앞으로의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사람들이니까.

 

5회 젊은 작가상이 주었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래서 그 이상을 뛰어넘는 작품집이 나올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역시 기대 이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젊은작가상이구나.’하는 생각은 들었다. 작년의 5회 젊은 작가상 리뷰를 쓸 때의 테마는 공백이었다. 삶에 자리한 공백을 이야기하는 7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마음이 쓸쓸해지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 6회의 테마는 아마도 그대로 있음’, 자연이 아닐까 싶다. 인물과 서사들이 그 무엇도 특별하진 않다. 그리고 그 어떤 특별한 사건도 겪지 않는다. 혹은 특별한 사건을 겪는다 해도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일이다. 그래서 강렬한 임팩트는 없지만, 작품을 읽고 나면 하나 둘씩 잔상이 남아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안심하게 만든다. ‘, 그래, 너희 거기 그대로 있었구나하는 마음으로.

 

윤이형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평론가는 루카를 해석하며, 기왕 동성애 문학으로 써놨는데 특별하게 읽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오독을 하고 싶다. 퀴어 문학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꽤 기대하며 읽어내려 간 윤이형의 작품은 노골적이지도, 이게 퀴어 서사임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 속에서 상처를 입고, 다시 일어나는, 그저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다. 다만 이에 맞물리는 루카의 아버지 이야기가 그들의 근원적인 상처를 파헤쳐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들의 사랑은 그저 흘러간다. 그 점이 좋다. 동성애자이기에 그들의 사랑은 특이할까? 그저 그들은 사람으로 머물 뿐이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손보미의 서사는 언제나 나를 당황하게 한다. 처음 그녀의 작품집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다 똑같은 구도의 소설인데, 다 구별이 간다는 것. 그것이 손보미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성과다. 언제나 손보미의 이야기에는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 그들의 일상적인 세계로 파고드는 미세한 균열들을 날카롭게 포획된다. 그것은 이번 임시교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두 다른 정서다. 이 작품 속 P부인이 가지는 일상성은 임시라는 단어 속에 묻혀 드러난다. 그녀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한 부부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한 부부의 일상 속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P부인의 일상성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삶의 한 조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손보미가 놀라워 작품을 읽은 후에도 쉽게 다음 작품을 넘길 수 없었다.

 

백수린은 폴링 인 폴에서 받았던 충격이 너무 큰 작가였다. 신경숙, 조해진 이후로 이런 문체와 감성을 가진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렇기에 여름의 정오역시 특별한 것 없음에도 가슴에 사무쳤다. 이방의 감성, 그 속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의 정서,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여름의 정오폴링 인 폴에 수록된 작품들의 감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혹여나 자기복제를 의심받을 정도로. 하지만 분명 다르다. 그녀의 감성은 보다 확장되고 풍부해졌다. 마지막 작품이라 읽는 데 힘이 빠져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쳐있는 독서를 백수린은 황홀경으로 이끌어주었다. 젊은 작가상에 처음 발을 들인 작가,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은미의 서사는 눈앞에 그림이 펼쳐지듯,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지화 되는 점이 독특했다. 특별할 것 없는 서사, 일상적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들 사이로 녹여 작품을 구축해낸다. ‘누가 죽었을까?’로 시작해 누가 죽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구나로 끝나는 이 작품은 그렇게 허를 찌른다. 이장욱과 김금희의 작품은 모두 특이하지만 어쩐지 들어본 것 같고, 주위에도 있을 법한 인물인 정귀보조중균의 서사이다. 서사를 읽다보면 인물의 내력과 행동이 특이하게 느껴지다가도 곰곰이 곱씹어보면 언제 어느 서사에선가 마주쳤던 것 같은, 혹은 내 주변에서 얼핏 들어본 적 있었던 것 같은 인물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인물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고, 주제의식이 가미되며 이 작품들은 훌륭한 서사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정지돈의 이야기를 덧붙이려 한다. 나는 분명 살아오면서 많은 작품을 읽어왔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나름대로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지돈의 작품을 읽은 후, 나는 무너졌다. 내 한계를 여실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텍스트에 풀어놓은 것들은 많은데, 내가 독자로서 그를 온전히 해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체된 서사, 나열되는 건축사와 현대사, 그 속에서 나는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을 처음 읽었던 순간의 백배의 어려움이었달까. 혁신적이고 곳곳에 배어있는 유머 코드 역시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버거운 작품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이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혁명이다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내가 정지돈의 서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할 듯 싶다.

 

특별한 서사는 없었다. 어딘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일들이었다.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혁신파격대신 안정자연이 남아있었다. 그것이 내가 젊은작가상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짠 것도 아닐텐데, 어쩜 이렇게 매 해 작품집에서는 하나의 테마가 읽힐 수 있을까. 이 시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가장 젊은 작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테제가 그만큼 공동의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작품을 이렇게 행복한 가격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내년 7회 역시 기대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정지돈을 꼭 다시 보고 싶다. 그 때는 말할 것이다. 나 그대의 작품에서 분명 무엇인가를 느꼈노라고.

 

 

 

x*****7 2015.05.31.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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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라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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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편소설에 주는 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다 모른다. 조금 알았던 건 ‘이상문학상’이다. 이상 말고 다른 작가 이름이 붙은 상이나 다른 상도 있을 텐데 아직도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해마다 주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까. 젊은작가상은 2010년부터 주었나보다. 올해로 여섯번째다. 2010년에 나왔는데, 그때는 바로 몰랐고 지난해에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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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단편소설에 주는 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다 모른다. 조금 알았던 건 ‘이상문학상’이다. 이상 말고 다른 작가 이름이 붙은 상이나 다른 상도 있을 텐데 아직도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해마다 주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까. 젊은작가상은 2010년부터 주었나보다. 올해로 여섯번째다. 2010년에 나왔는데, 그때는 바로 몰랐고 지난해에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소설을 잘 안 봐서 몰랐겠지. 거기에서 단편소설은 더 안 보았다. 잘 몰라도 그냥 읽었던 때도 있는데. 읽지 않아서 아쉬워하는 건가. 그런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상을 받은 작품집은 이상문학상만 몇권 봤는데, 거기에는 작품마다 평론가가 쓴 글은 없었던 것 같다. 젊은작가상 받은 작품에는 평론가가 쓴 글도 실렸다. 작가는 이름 아는 사람이 조금 있지만 평론가(본래도 아는 사람 얼마 없다)는 거의 모르는 이름이다. 심사평 쓴 사람 이름은 좀 아는구나. 한편마다 그에 따르는 글이 있는 게 신기해서. 그것을 본다고 해서 소설을 잘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건 괜찮지만 어떤 건 더 모르게 만든다. 후장사실주의는 뭘까 싶다.

맨 앞에 실린 <건축이냐, 혁명이냐>(정지돈)는 처음에 잘못 읽었다. ‘작가 노트’라 생각하고 보면서, ‘왜 이렇게 길지’ 했다. 차례에 나온 작가 노트는 소설 뒤에 있는데 그게 앞에 나왔다고 생각하다니. <건축이냐 혁명이냐>가 소설처럼 보이지 않아서일지도. 앞에 조금 읽은 다음에야 작가 노트가 아닌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제 있었던 사람 이야기를 쓴 거였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도 넣었다. 많은 게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노트는 도움 받은 책으로 가득하다. 겨우 이런 말밖에 못하다니. 구효서는 심사평을 시간과 농담이라는 말로 여기 실린 소설을 말했다.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가지를 찾으려면 찾지 못할 거 없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모두가 아는 사람이어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우리 가까이에 있을 듯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자기 이야기가 될 때도 있겠지. 하나하나 특색을 콕 집에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설보다 그 뒤에 쓰인 글이나 심사평이 더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 것은 나중에 읽는 게 더 나았을까.

<우리 모두의 정귀보>(이장욱)에서 우리 모두에는 책을 보는 사람도 들어갈까. <루카>(윤이형)는 동성애를 생각하게 하는데, 작가는 사랑 이야기를 쓰려 했다 한다.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라 하지만, 동성을 좋아하는 것은 동성애라 한다. 말에서 차별을. 나도 ‘동성애’라는 말을 썼구나.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다르지 않다. <근린>(최은미)은 한 여자가 죽었다는 말로 시작해서 여러 사람을 보여준다. 가까이에서 보지만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말하기 어렵겠다. <조중균의 세계>(김금희)는 뒤에 실린 글에서 조중균을 바틀비라고 말했다. 바틀비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조중균은 안 하는 바틀비라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바틀비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는 건 조금 비슷할까. <임시 교사>(손보미)는 오랜 시간 임시 교사만 하다 보모로 일하게 된 P부인 이야기다. 일하게 된이라고 했는데 일하다 그만두었다고 해야겠다.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없어지면 쓰지 않는 임시. 마지막은 <여름의 정오>(백수린)다. 이건 짧게라도 말하지 않다니. 여름, 정오를 상상하면 좋을 듯하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읽지 못했다.

하나라도 몇번 보고 썼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글 쓰는 게 그렇지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적당히 읽었다. 가끔 우리나라 소설도 보아야 할 텐데(‘보도록 해야겠다’고 안 하다니).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얼마전에는 시집 보고 이런 말을 했구나).



희선



이달의 사락 n***8 2015.09.0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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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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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면이나 구성면에서 나무랄건 없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가끔 (매년은 아니더라도) 모아오고 읽기를 즐겨하다가 이젠 그리 즐겨 보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점점 어른이 되고 한집안의 가장이 되다보니 문학수상작품집에 나오는 무거운 기분을 암울한 기운을 (왜 문학수상 작품집 소설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암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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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면이나 구성면에서 나무랄건 없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가끔 (매년은 아니더라도) 모아오고 읽기를 즐겨하다가 이젠 그리 즐겨 보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점점 어른이 되고 한집안의 가장이 되다보니 문학수상작품집에 나오는 무거운 기분을 암울한 기운을 (왜 문학수상 작품집 소설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암울한지..) 느끼기가 좀 벅차더라고요. 

 

 그런데 젊은 작가상이라는 문학상이 있는지도 몰랐고 올해 특가 보급판이 나와서 냉큼 구매해봤습니다만........................ 내용이며 재미며 뭐 논할게 있겠습니까? 훌륭하신 ... 공부하신... 그런 분들이 쓰신 소설인데.. 그점에서는 문제가 안되지요.

 

 그런데 뭐랄까요.. 이 젊은 작가상에서 조차도.. 역시 암울하고 얇은 희망 정도의 이야기로 가득한게 좀 안타까웠습니다.

 

 젊은 작가상이라면 좀 신랄하고 밝은 내용이 많지 않을가 했는데... 암울하고 열린 결말에.. 좀 감당하기 어려운 (물론 제가 이쪽으로 공부가 덜되서 그리 느낄수도 있지만..) 감정은 마찬가지더라고요. / 결코 재미없다는게 아닙니다................. 이 젊은작가상 수상집도.. 그리 밝지는 않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럴뿐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j*******3 2015.06.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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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돋보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돋보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내용보기
해마다 발표되는 유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수상작품집이나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는 마치 헌 책방에서 좋은 책을 득탬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작품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몇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내용이지만 읽고 나서는 한 참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돋보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내용보기



해마다 발표되는 유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수상작품집이나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는 마치 헌 책방에서 좋은 책을 득탬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작품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몇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내용이지만 읽고 나서는 한 참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대면한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충격이었다.

얼마 전 또래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대문을 열어 두는 바람에 순시간에 무서운 중2와 초등학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한동안 그들의 대화와 사고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수상작들은 대부분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나이들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생소한 구성과 문장,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결말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내가 김훈 작가나 은희경 작가 같은 서사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나를 당황케 한다.



나를 가장 당황케 한 작품은 대상 수상작인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난관을 만났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이구'라는 구한말 황족에 대한 취재형식, 또는 전기형식의 작품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이구와 관련된 건축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김중업과 같은 사진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얽혀 있는 건축과 문예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물들과 그들의 저서나 음악 등이 언급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노트와 해설을 읽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나니 더 당황스럽다.

같은 동료가 이야기 하는 '후장사실주의'를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기도 했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글을 써 놓았다.

결국 내가 무식하다는 자학? 비슷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의 탓?을 하자면 젊은 작가의 과도한 열정이 만들어 낸 지적 허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젊은 교수가 한 번의 강의에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열정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 또는 신인이 자신의 연기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에 관중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상을 시상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실험적인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대상을 주었을테니 나보다 그들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김금희 작가의 [조중균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한 출판사의 수습사원인 주인공이 같은 수습사원이며 경쟁자인 해란씨와 그 출판사에서 거이 왕따를 당한 오랜 경력을 가진 교정부의 일을 하는 조중균씨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조중균은 조금 특별한 인물로 나온다.

사회의 부당함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맞서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기에 회사에서도, 사람들에게도 왕따가 된다.

그런 조중균씨를 해란씨만이 따스하게 대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조중균씨에 대한 부당함을 알지만 회사측 편에 선다.

결국 주인공은 정사원이 되고...

해란씨는 탈락을 하고...

조중균씨는 퇴사를 한다.


소설보다 더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작가 노트에서 한참 후에 조중균씨를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때 주인공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이 김금희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주인공이자 작가는 작가가 된 것을 축하는 조중균씨의 말에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왜 그녀는 작가가 된 것이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왜 계속 눈물란 흘렸을까?

글에는 나와 있지 않다.

마치 조중균씨와 해란씨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던 것처럼...

작가나 주인공 역시 자신이 왜 우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과 함께 해설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최은미 작가의 [근린]이란 소설을 해설하는 이재형의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작품이다.

[근린]이라는 소설은 한 공원에 소형 비행체가 추락하면서 한 여자가 죽은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은 사건 전으로 되돌아가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세 명의 여성 노인과 몸빼 바지를 입은 중년여인,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일상이 기록된다.

당연히 나같은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중에서 누가 과연 사고로 인해 죽은 여인이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떡밥?으로 꿈을 판 노인과 꿈을 산 노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꿈을 판 노인은 꿈을 판 것을 후회하며 불안해 한다.

그러나 비행체 사고로 죽은 여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소설에서 나와있지 않다.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해설을 읽었는데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공원에 무인정찰기가 추락하고, 한 여자가 죽는다. 누군가 말한다.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소설은 추락지점에 새겨진 X, '그 여자'가 누군인지를 추적해보겠다는 듯 한 달 전으로 돌아가 차례 차례 후보군을 소개한다. 젊은 여자, 늙은 여자, 중년 여자,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들 적절한 조연인 맥도날드 라이더까지, 하지만 결말은 어떤가. 사고 시각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그들 전부이고, 사망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묘연하다.

 '그여자가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소설은 대답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일 터,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이 지도가 아닌 도면이라면, 설열 그 위에 의뭉스러운 좌표가 하나 찍혀 있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문제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위에 그려진,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섞이고 갈라진 선들 - 동선들과 시선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평면도를 읽는 일은 곧 '근린'의 관계도를 읽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P197)



이 외에도 성소수자의 아픔과 그것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의 아픔을 다룬 이장욱작가의 [루카]라는 작품이나 다른 계간지에서 이미 읽었던 손보미작가의 [임시교사]라는 작품등이 인상에 남는다.

i*******3 2015.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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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희망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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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상당히 저렴하게 유통된다. 응24에서만 그렇게 옵션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 모음, 작가 후기, 평론까지 섭렵할 수 있어 꽤나 알찬 구성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젊은작가상의 기준에 관하여는 작품집 후미에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함께 심사경위를 소개하면서 서술하고 있다.단순히 생각하면, 기성 문단에 깊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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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상당히 저렴하게 유통된다. 

응24에서만 그렇게 옵션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 모음, 작가 후기, 평론까지 섭렵할 수 있어 꽤나 알찬 구성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작가상의 기준에 관하여는 작품집 후미에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함께 심사경위를 소개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기성 문단에 깊숙히 편입되지 아니한 시작 단계의 문인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등단 시기와 발표 작품의 수가 객관지표로 활용될 것이다.

단편적인 시선으로 젊은작가의 유형과 특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특징을 어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상(활자를 흡수하여 이미지를 그리는 메커니즘)에 상당히 불편을 초래하는 역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작문이나 플롯의 과감성, 스토리텔링에 있어서의 계몽주의 등)


젊은 작가들이 써내려간 의미 있는 발자취에 대해서 심사평 외에 평론가들의 애정이 넘치는 비평이 붙어 있는 점은 독자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을 제고시키는 장점이 있겠으나, 평론 자체의 객관성이 일정부분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이제서야 읽고나서, 2016년 작품집을 카트에 담는 것은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참신함과 열정때문일 것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기대하게 되는 것 또한 기존의 문단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의미있게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일테니 말이다. 


몇몇 작가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씨앗을 뿌려놓고 토마토 줄기가 뻗어 나오길 기다리 듯 작가의 성장과 발전을 상상하는 것 또한 작품집이 가져다 주는 기분좋은 상상 혹은 설렘이다. 


다독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읽는 양도 질도 부족한 마당에 이렇듯 좋은 작가들이 발굴되고 의미있는 글들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을 보면 쫓아가지 못해 안절부절 하게 되기도 하지만, 기쁜마음이 가득하다.



s*****g 2016.11.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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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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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문학을 해석할 틀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인지해온 바이기도 하니 공공연하게 떠돌던 구조조정 소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지금껏, 문맹이었다.해석의 틀이 없다는 건 독자일 때보다 쓰는 사람일 때 더 치명적이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되니까. 이야기 속에 뭔가를 담아야 하는데 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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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문학을 해석할 틀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인지해온 바이기도 하니 공공연하게 떠돌던 구조조정 소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지금껏, 문맹이었다.


해석의 틀이 없다는 건 독자일 때보다 쓰는 사람일 때 더 치명적이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 끝나선 안 되니까. 이야기 속에 뭔가를 담아야 하는데 틀이 없으면 차곡차곡 일관성 있게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은 구멍 투성이. 곰곰히 들여다보면 엉터리 방터리다.


어찌해야하나? 고민이다. 앞으로는 평론을 좀 읽어볼까 싶다. 틀을 짜는 법을 배우면 이야기 짓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쉬워질지 모른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구매 결정하는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대상 수상자가 83년생이다. 자극이 됐다. 동시대, 비슷한 나이대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얘기할까. 이것은 그 쪽 바닥에 발 붙일 길 없는 나같은 외인에게 대단히 궁금한 얘기다. 소설가들이 자주 모이는 카페 구석에 앉아 홀로 자몽에이드를 홀짝이며 그들이 떠드는 말을 엿듣는 기분으로.


대상 수상작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처음 몇 페이지는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페이크 다큐 풍의 이 소설은 역사와 허구를 교묘히 섞어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문체 또한 진지한 나레이터의 모습을 하다가도 어느새 코미디언이 되어 소설을 스탠딩 코미디로 만든다.


가장 흥분되는 건 이 소설에 소설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확실히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냥 이야기. 뜨끈뜨끈한 타이어 위 버스 좌석에 앉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들려주는. 흔들리는 전철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방금 앞에 생긴 공석을 서로 사양하다 "얘기하기 불편해 그냥 서서 가자"하며 나누는 것. 여기에 무슨 놈의 상징이 있고 대단한 진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제목은 기가막힌다. 틀을 만들어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소설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틀이고 나발이고 깡그리 부숴버려 그 위에 앉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그야말로 건축이냐 혁명이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혁명이다.


건축을 모르고 건축이 힘들고 그래서 혁명으로 도피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정색하고 부정할 일은 아니다. 정말로 나는 건축을 모르니까. 다행히도 소설의 끝에는 한 편의 평론이 짝꿍처럼 붙어 있다. 언제나 소설 뒤에 설 수 밖에 없는 이 짝꿍이 나는 가끔 안쓰럽다. 그러나 이 짝꿍 덕분에 어떤 기회를 얻었나? 건축이냐 혁명이냐, 이 진지한 물음에 대답할 기회. 나는 정말로 혁명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모르겠다.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나?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s*******r 2015.08.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