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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부정당할 때, 이제껏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것이 거부당할 때.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A가 맞는다고 말하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이 B가 맞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우겨도 나는 진실을 더 말할 수가 없다. 계속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테니까. 이건 어느 정도의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말해봤자 더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멈추게 된다. 더는 내 정신력이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는 게 맞는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말하는 진실이 계속 거부당한다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걸까?
남자는 10년 넘게 기른 콧수염을 깎는다. 아내를 깜짝 놀래주고 싶은 게 이유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콧수염이 사라진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한다. ‘이상하다. 아내가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걸까? 오히려 나를 더 놀라게 하려고?’ 남자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의 반응이 없자 먼저 자기 콧수염에 관해 묻지만, 아내는 정색한다. 남편에게 처음부터 콧수염은 없었다고 말한다. 아니다, 나는 콧수염이 있었어. 아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콧수염이 없었어. 남자는 주변 친구에게도 묻지만 다들 그의 콧수염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말한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그는 콧수염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착각하는 것일까. 그때부터 부부는 서로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아내에게 더는 자기의 콧수염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아내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다. 남자는 이 광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충동적으로 홍콩행 비행기를 탄다.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하찮은(?) 일이 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자기 몸의 한 부분이 변화한 것을 인지하는 것을 본인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이가 있던가? 하지만 주변의 모든 이가 그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에 이른다. 생각해보라. 나의 변화를 내가 아는데, 주변에서 모두 아니라고 하면서 나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한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는가? 단순하다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닌가 보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맞는 건가 보다 생각하면 된다. 더는 그놈의 콧수염을 생각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쉽게 생각하면 그렇다. 한편으로는 나에 대해 타인의 무관심이 이렇게도 심했던가 생각하면 그 서운함이 배신감처럼 다가온다. 그저 배신감으로 끝나면 다행일 것을. 남자는 급기야 자기 존재에 관한 물음까지 이어지면서 비극의 결말을 불러온다.
읽으면서 내내 긴장감을 멈출 수 없었다. 단순히 콧수염 하나가 있었다가 없어지는,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 한편 벌어진 것으로 여기고 끝날 줄 알았다. 그냥 장난으로 여기며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 아니었던가. 당신은 왜 나의 변화를 몰라주느냐며 티격태격, 한번 싸움 아닌 싸움처럼 옥신각신하다가 웃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말이다. 그러나 장난처럼 시작된 악몽은 그냥 끝나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계속 불안을 던져주었다. 급기야는 의외의 결말로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건 무관심에서 시작된 일이던가, 아니면 그냥 그가 예민하게 반응한 결과이던가.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은근히 느껴지는 게 있다.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있어야 할 것은 관심 아니던가? 우리가 ‘관계’라는 이름으로 맺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안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상대의 존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아닌지 하는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말이다.
개인주의 만연한 세상이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보다 우선인 것은 없을 것이고, 나 이외의 것에서 얻을 게 없으면 굳이 관계하지 않아도 괜찮은 게 요즘 세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개인주의나 타인에 관한 무관심이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를 보여주는지 하는 것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버스 기사가 전자 발찌를 끊고 도망중인 성 범죄자를 신고하고, 길 가던 사람이 편의점에 든 강도를 잡고, 마트 계산대에서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마트 직원이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일들. 별것 아닌 거 같은 일들에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일 보는 사이에서 콧수염 하나 없어진 걸 모르는 게 그럴 수도 있는 일인 게 아니라, 10년 넘게 길러온 콧수염의 행방을 먼저 물어야 맞는 거였다.
어쩌면 우리는 별거 아닌, 어쩌면 하찮게 보이는 털 몇 가닥에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마음이 빠진,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한 관계를 만드는 게 익숙한 건 아닌지 고민해보게 된다. 소설 속 남자가 자기 존재감을 놓쳐버린 것처럼, 절망하며 마지막으로 한 선택이 보여주는 건, 우리가 이루는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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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절판되었던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이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카레르 작품 전체가 다 서비스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하여 읽고 있는데, 카레르식 글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본 작품은 <리모노프>였는데 이 작품은 프랑스소설로 분류되고 있으나 우리가 접해온 소설과는 좀 다르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니 소설(Roman)이 아닌 이야기(Recit)로 분류되고, 카레르는 1995년 <겨울 아이> 이후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허구인 이야기 말이다. 물론 여전히 카레르의 작품들은 소설이긴 하다. 논픽션이라고 해야 하려나... 현실과 허구(소설)의 경계를 흩뜨리는 방식에 자기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랑은 좀 다르다. 사실을 기술한다 해도 작가의 관점이 녹아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기 생각과 실제 일어난 일들을 좀 구분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쓰기는 로망 사건(L'Affaire Romand)을 다룬 작품 <적L'Adversaire>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콧수염>에서도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카레르가 주목하는 점은 일상성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어떤 점, 어떤 행위가 무너진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날 콧수염을 깎기로 한다. 아내 아녜스가 장을 보고 오는 동안 얼른 깎고 놀래주어야지 하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아내가 몰라 보는 거다. 장난기 많은 아내가 일부러 모른 척을 하나 보다 싶었는데...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얼굴에 붙어 있던 수염이 없어진 걸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저녁을 함께 먹은 친구 부부 반응도 여상하다. 남자는 완전히 토라져버린다. 너희들 다 짜고 모른 척 하는거지?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끝내 집에 돌아온 남자는 폭발해버리고 아내는 좀 놀란 눈치다. 남자는 쓰레기 봉투를 뒤져 자기 털을 찾아내 아내 앞에서 막 흔들어본다. 이게 뭐지 알겠어? 뭐긴 털이지. 아니 이건 내 콧수염이었다고! 이번엔 앨범을 뒤져본다. 아내가 좋아해서 길렀던 콧수염인데 본인이 몰라볼 수가 있나? 사진에 떡하니 있는 콧수염을 아내는 보지 못한다. 이제 남자는 아내를 정신병원에 보낼 생각까지 한다. 함께 저녁을 먹은 친구 제롬에게 전화했더니 이상한 건 남자라 한다. 자기가 아는 정신과 전문의를 소개할테니 상담을 좀 받아보란다. 남자의 편집증은 심해진다. 제롬이랑 아녜스랑 전부 짠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음모란 말이지? 직장 동료들조차 콧수염이 없어진 사실을 몰라보고 남자는 미칠 것만 같다. 유일하게 매달리는 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은,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 뿐이다. 신분증 위에 있는 사진을 보고 콧수염이 있다고 말했던 그 여자. 남자는 아내와 찬찬히 이야기를 나눠본다. 남자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분명 있었던 콧수염이 없다고 한다. 절친들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 한다. 그중 가장 큰 비극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다. 아니 얼마 전에도 아버지와 만나 이야기했잖아! 제발 장난이라면 그만 둬... 아내의 눈빛에서 남자는 이것이 진실임을 알아차린다. 이젠 내가 부모까지 잊다니... 크게 상심한 남자는 수면제를 먹고 눕는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아내가 이 모든 것을 조율했을지 모른다. 남자는 집을 뛰쳐나간다. 약기운에 비몽사몽한 남자의 기억도 오락가락한다. 엄마 집이 어디였더라... 이제 남자는 지구 반대편 홍콩에 가, 페리를 타고 같은 구간을 맴돈다. 처음엔 콧수염 하나였는데 이제는 세상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읽다보면 나도 제정신이 아니고 남자도 제정신이 아니고 이런 글을 쓴 작가도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다. 얼마나 속도감있게 전개되는지, 콧수염이 있냐 없냐에 대한 의심이 존재에 다다르는 것이 순식간이다. 1986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그때 카레르 나이가 스물 일곱 쯤 된다. 영리하면서도 노련한 글쓰기에 모두가 감탄했을 법하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소재들이 그리 낯설진 않지만(그때도 그렇긴 하지만) 어떤 패기, 천재성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마지막도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 그래서 콧수염이 있었게요, 없었게요? 거기에 대한 답, 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아래에 있다. 뭐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자는 그를 향해 몸을 돌린 채 파도 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말을 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저거 보여요Did you see that?〉, 남자가 여러 번 소리쳤다. 그는 얼굴 윤곽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남자가 영국인이거나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해변에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 것도 없었다. 청년들이 계속해서 공을 주고받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중국인인, 반바지 차림의 한 젊은이가 수영복 허리춤에 워크맨을 꽂은 채 종종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뭐요What?〉 그는 형식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여전히 물 속에 누운 채 목청이 터져라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됐어요Nothing, forget it!〉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대화가 이 정도 선에서 멈췄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