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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기원은 1605년 '영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국왕 제임스 1세의 가톨릭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 의회를 폭파하려고 시도한 것이 테러의 첫 시도다. 하지만 '테러'라는 명칭은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파가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던 '공포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테러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일까?
그건 '불의'에 저항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너무나도 강력한 불의 앞에서 정의의 외침은 종종 힘을 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정의로운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때때로 과격한 정의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는 안중근을 일본의 과격한 보수집단들은 '테러리스트'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을 과연 '살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안중근을 '살인자'라고 본다면 일본제국의 선두에 선 '이등박문'은 동양평화를 위해 혁혁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악의 소굴인 조선에서 '불령선인(일본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조선인)'이 난데없이 등장해서 정의로운 이등박문을 암살했다고 봐야 할까? 결단코 그렇게 바라볼 수 없을 거다. 전범국으로 동양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일본제국을 '정의'라고 말하는 이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안중근이 사람을 죽인 일을 무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거다. 이것이 바로 '테러'가 보여주는 딜레마다. 분명히 정의로운 일인데도 '방법적인 면'에서 결코 정의로울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선명한 테러는 '9·11 테러'일거다. 2001년 9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라는 테러단체가 벌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입에 불만을 품은 집단의 보복 테러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뛰어든 전쟁 가운데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남의 나라 내전'에 개입한 결과, 개운하지 못한 뒤끝을 남기는 '전통(?)' 덕분에 미국은 그 톡톡한 값을 치룬 셈이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테러'라는 행위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와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난 없다고 본다. 테러를 당한 쪽도, 테러를 일으킨 쪽도,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건일수록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테러'를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수와 약자가 보여주는 정의로운 행동일지라도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소수의 약자들이 '최후의 결단'을 보여주기 전에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 말이다. 그리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테러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유 없는 테러'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1995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옴 진리교 도쿄 지하철 테러'는 밑도 끝도 없는 종말론을 앞세워서 벌인 테러이기에 미연에 막을 도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비이성적'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이성적인 목소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어야만 하는 피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정당한 테러'도 '비이성적인 테러'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뿐이므로 근절해야만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에 '테러지원국'을 선포하고 공격적인 양상을 보였다. 또한 공항의 안전을 위해 '보안검색'을 높였고, 이로 인해 승객들의 소지품까지 일일이 검사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감수해야 할 일이고 당연히 협조해야 할 일이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건 어쩔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높은 보안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방향이 옳다면 아무리 어렵고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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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공중 납치된 비행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합니다. 우리에게 테러라는 큰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엄청난 사건이였지요. 이 일로 인해,미국은 대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9.11테러와 관련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하지요. 텔레리스트들이 9.11테러를 일으켰듯이 미국은 대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테러를 강행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텔러리스트일까요?자국민의 아전을 위해 테러범들을 찾는 자유투사일까요?
40년간 계속되어오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법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남아공의 백인정권은 흑인들에 대한 인간 이하의 차별 정책으로 흑인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키지요. 처음엔 평화시위를 하던 흑인들도 백인들의 변함없는 태도에 노선을 바꾸게 됩니다.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의해 태업,폭력시위 등을 주도하게 되지요. 그 결과 흑인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지고 남아공 최초로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선출됩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민족회의나 넬슨 만델라도 텔러리스트일까요?아님 자유투사일까요?
테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와 너는 종교가 달라 나와 너는 인종이 달라 나와 너는 정치이념이 달라 이렇듯 종교,정치,도덕,영토에 의한 분쟁으로 텔러가 발생했고 앞으로 더 다양한 문제로 발생할수 있습니다. 알카에다등 무장한 성인들만이 테러리스트의 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얼마 전에 발생한 러시아 지하철 자살 폭탄테러 사건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체첸공화국의 테러단의 20살도 안된 한미망인의 소행이였습니다. 검은 미망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들의 남편의 뒤를 이어 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미망인들을 텔러에 이용하는가하면 가난하거나 이슬람 이념이 강한 아이들을 세뇌시켜 자살테러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폭력으로 진압하려했던 정책은 효과도 없이 더많은 테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입니다. 방법은 대화 뿐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사로를 이해하여 많은 대화를 통해 노력하는 길 뿐입니다. 많은 폭력과 테러로 지구촌이 아픈 현실 속에서 아직도 비폭력 비무장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입니다. 중국에게 자치권까지 빼았기고 탄압이 극에 달했지만 그들은 비폭력 비무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협상처럼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관심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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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② 테러 왜 일어날까? 헬렌 도노호 지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2권으로 역시 전국사회교사모임에서 옮겼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테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테러의 의미, 테러의 역사와 다양한 사건과 사례, 테러의 다양한 원인과 결과, 테러리스트의 정체성 그리고 테러의 예방과 평화를 위한 대안까지 테러에 관한 모든 논란과 진실을 담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기에, 1. 도대체 테러란 게 뭘까요? 2016.11.24.(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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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더잘 - 테러, 왜 일어날까?> 우리는 ‘테러’라는 단어를 TV, 신문 같은 매체에서만 듣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설마 내가 테러 당하겠어?’라며 무감각한지도 모른다. <테러, 왜 일어날까?>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테러사례들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겁을 먹기 전에 테러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테러, 왜 일어날까?>는 우리가 테러에 대한 의미와 테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테러, 왜 일어날까?>는 기존 테러의 의미와 현재 테러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기존의 테러가 사회적 관심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면, 현재의 테러는 적으로 설정한 사회를 강력한 공포로 몰아넣어 해당 정부에 사회적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테러가 일어나는 이유를 유대교와 이슬람교, 체첸 공화국 등의 실제 사례를 들어 테러가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 뿌리를 갖는 현상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테러, 왜 일어날까?>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테러가 단순한 폭력이 아닌 약자의 최후 투쟁수단으로써 사용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테러가 일어난 시점에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왜 그들이 끝끝내 테러를 일으켰어야만 했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테러를 옹호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점이 <테러, 왜 일어날까?>에서 거듭 말하는 ‘상호 간의 이해’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나 자신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찰 정도로 바쁘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내 일도 해결 못 하는데 테러와 같이 큰일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며 선을 그어놓고 끙끙 앓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테러도 사람 간의 일이다. 우리 모두가 <테러, 왜 일어날까?>에서 말하는 것처럼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테러로 신음하는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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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뉴스를 보면 알카에다가 어떻고 체첸 반군이 어떻고 하면서 피를 부르는 테러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이런 뉴스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잠깐 미국의 9.11 사건 정도나 되어야 뭔가 싶어 묻고 테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을 뿐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세계는 대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있어 테러나 테러리스트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미화되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했다. 테러는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결국은 갈등을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것 역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을 보고서야 현대 사회에서 테러가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어떤 것이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리스트가 동시에 자유 투사일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그렇다. 아주 쉬운 예로 책 뒤쪽 박재열 님(전국사회교사모임, 중산고등학교 교사)의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분명 자유를 위한 독립운동이자 투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틀림없이 테러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존재의 이유가 된다. 테러가 됐건 정당하고 합법적인 투쟁이됐든 간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관심을 테러로 보았다는 관점이 주목할 만한 작지만 알맹이가 꽉 찬 책이다.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게 될 교양서로 후속 주제들이 참 궁금해진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했다면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풀었어도 좋았을 것을 하는 것, 그러나 테러지도를 넣어준 것은 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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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고 있어야할 지식들은 뭐가 있을까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주변 더 크게 세계를 보면서 앞으로 우리 자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었네요.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 천안함 침몰 사건을 바라 보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고이기만을 바랐지만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이제 문제는 나만 열심히 나만 안전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논리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집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사건들 왜 일어날까요? 저자는 예전에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행해진 테러가 이제는 적으로 설정한 사회를 충격과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어 해당 정부를 공황상태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차별 인명 살상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테러와 범죄 이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은 행동은 범죄라고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이 테러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저의 생각은 결국은 범죄라고 결론짓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갈등이 어떻게 나오는 간에 나의 신념을 확인시키고 위해 목표도 없이 무차별로 일으키는 행위야 말로 더 큰 범죄라고 생각했지요. 책 속에는 최근에 발생된 테러로 규정된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누구는 적이고 누구는 아군이다라고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국익에 이익이 되면 적이고 아군이라도 언제든지 등을 돌리면 적이 되는 상황 결국은 힘없고 약한 여성과 노약자, 일반인들이 희생당하고 아파하며 상대국에 대해 격렬한 감정과 분노가 일어 예비 테러리스트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부분이 바로 테러와 범죄의 동기에서 찾을 수 있는 엄청난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우리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테러가 하루속히 평화롭게 갈등과 분쟁을 해결해 행복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책을 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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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미녀로 둔갑하고 살쾡이는 선비로 가장하네 뉘 알리 짐승들이 사람 몸으로 변신해 홀리는 줄을 하지만 변신은 외려 쉬운 일이요 양심 지키기가 제일 어렵네 그러니 참과 거짓 알고 싶다면 마음의 거울 닦아 비춰보게나 - '옛뜻' 최치원(857~?) 대한민국의 사회과 교사들이 이런 책을 번역했다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2001년 맨하탄에서 벌어진 9/11 테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이슬람 문명권을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는 기독교 문명의 심장부 미제국에 대항하는 반미테러다. 쉽게 말하자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국제테러를 방지하려면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기독교 문명이 이슬람문명과 조화롭게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십 년 동안 일방적으로 강자의 폭력에 시달려온 '지렁이'들이 한 번 꿈틀했을 때 폭력의 심장부를 박살내는 괴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알카에다'라는 이름의 '반미 테러단'은 맨하탄에 이어 발리, 마드리드, 런던 등등으로 옮겨다니며 무시무시한 내공을 선보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 비자금과 최첨단 무기와 초현대식 감청 시스템을 굴리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알카에다의 초절정 연기를 바라만 보고 있는 세계최강의 군부와 비밀정보기관의 수장들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는 커녕 그 때마다 듬뿍 듬쁙 곱배기 예산을 따내어 배를 불린다. 언젠가 세계 도처에서 동시다발 핵테러나 생화학 테러가 벌어지면 이 책의 저자나 역자, 감수자는 그것도 알카에다의 반미 저항이라고 떠들지도 모르겠다.
이 지구에서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괴력의 군단을 '밟히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이라고 우기는 저자와 역자들 그리고 감수자 (http://blog.yes24.com/document/67785)의 요설을 그대로 믿는 청소년들에겐 카드 게임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 http://blog.daum.net/ychgok3/6044232 "대중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도자들에게 행운인가!" (히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