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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출판사 윤혜성 작가님의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재미있다는 추천글 보고 읽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숨겨진 진실과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다른 창작물에서도 그렇지만 로봇, 복제인간 이야기는 늘 슬픈것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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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고 하나뿐인 아들도 장모님과 양육권 싸움으로 뺏기게 생긴 주인공.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알수없는 택배가 도착한다. 택배 상자가 굉장히 크고 무거웠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건 자신의 복제인간 이었다. 그것도 죽은 아내가 보낸것..택배속 복제인간 위에 붙어있는 메모지 하나 '너도 너같은 새끼랑 살아봐' 정말 죽은 아내가 보낸 택배인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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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DNA까지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런데 그 존재가 나와 잘 지내지 못한다면 재미있는 설정으로 끝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거든요 과거의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너 왜 그랬어하고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나와 잘 살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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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되어야 하나?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감정을 잘 처리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 역시 그렇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어느 때보다 자주, 강박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지금, 나는 소설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를 읽으며 그 당위의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다정한 인간이라는 기준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가. 요즘 한국에서는 ‘회피형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관계를 피하고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의 결함 있는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사람에게 변화와 성숙을 요구한다. 소설 속 수한 역시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수한이 지원의 말이 심했다며 사과하러 전화를 걸었을 때조차, 그는 여전히 무심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실은 외롭고 서러우면서도 괜찮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 결국 혼자 그 감정을 견디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감정을 잘 다루고, 타인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정함을 요구하는 이유가 언제나 타인을 위해서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복제인간이 보여주는 다정함은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온기인 동시에, 갈등을 만들지 않고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학습된 기능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다정함에는 타인을 위한 마음뿐 아니라, 마찰을 줄이고 관계를 관리하려는 욕망도 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수한의 서투름을 옹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도 괜찮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사람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받으면서 자신의 방식을 돌아보고, 때로는 실패하고 다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우리는 아직 충분히 나아지지 못한 불완전한 사람들이 존재할 자리까지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완벽하게 다정한 인간이 등장하면, 우리는 오히려 묻게 될 것 같다. 그 완벽함은 정말 인간적인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 잘 수행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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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기괴해서 놀랐고, 니같은 새끼하고 살아봐라는 악담 혹은 빈정됨에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읽어감에 스릴, 반전,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니같은 새끼'가 복제인간인가? 복제인간의 인간성은 어디까지가 복제이고 혐오도 복제되나? 복제인간은 원본보다 나아질까? 등이 여전히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