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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광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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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17일 한 남성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한다. 여자 친구는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다. 이 남성은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예일대학교를 3년 만에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영 컨설팅 업체에 취업했다 그만두었고, 이후 조현병으로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었다. 상태가 호전된 이후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들어갔고, 졸업 후 법학교수를 지망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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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17일 한 남성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한다. 여자 친구는 뱃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다. 이 남성은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예일대학교를 3년 만에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영 컨설팅 업체에 취업했다 그만두었고, 이후 조현병으로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었다. 상태가 호전된 이후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들어갔고, 졸업 후 법학교수를 지망했다. 이러한 그의 삶은 <뉴욕타임스> 1면에 소개되면서 대대적인 관심을 받는다. 그는 조현병을 극복한 예일대 법학대학원 졸업생이었다. 출판사와 회고록 계약을 맺고, 영화사와도 영화 제작을 위해 판권을 팔며 많은 돈을 받았다. 여기까지가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밖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는 경력의 최정점에서 사이코패스 살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장 지성적인 인물이 가장 광기 어린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라우도어. 왜 그는 그렇게 되었을까?


이 책은 마이클 라우도어의 삶의 행적을 그린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흥미롭다. 저자 조너선 로즌은 마이클 라우도어와 10살 무렵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둘 다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지만, 치열한 경쟁 관계이기도 했다. 주로는 저자 조너선이 마이클의 놀라운 능력을 부러워하는 투로 썼지만,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마이클은 놀라운 기억을 지녔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마이클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아는 것처럼 내세울 수 있었다. 


인간 승리의 본보기로 떠받들여지던 천재 조현병 환자의 추락에 대해서 절친이었던 소설가이자 출판 편집자가 쓰는 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한 인물의 삶을 추적하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롭고 읽을 만하다. 


그렇다면 추락한 천재 정신병자의 삶 외에 무엇이 담겼을까? 

우선 저자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다. 마이클에 대한 자격지심 비슷한 것을 지녔던 것으로 보이는 저자는 마이클의 삶의 변곡점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한다. 그건 반성이라기보다는 투사다. 자신은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 혹은 왜 자신은 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지. 자신은 어떤 지향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쳐왔는지. 결국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당대의 미국이라는 사회의 구조, 정신병(특히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대응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는 정신질환이 생물학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를 발현하고 문제가 되는 지점에는 분명 사회적 요소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조현병이라는 악령에 씐 거라는 전근대적 개념, 조현병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개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은유들, 조지프 캠벨의 신화, 미셸 푸코의 권력과 통제에 대한 강박 속에서 조현병이 왜곡되어 온 역사는 길었다.” (652쪽)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해 여전히 혼란스러워 한다. 그것이 자신의 절친이 저지른 것이라는 것도 관련이 있겠지만, 철학적, 사회학적, 생물학적, 법적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치료의 대상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분명한 피해자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고,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나아가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를 처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한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우리도 때로는 이에 대해 매우 강경하게 어떤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다다르고는 다른 입장에 서기도 한다. 그게 이 문제의 복잡함이다. 


그런데 무척 궁금한 점이 또 있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유년기에 뿌리를 둔 개인적 회고이며 20세기의 역사와 한데 엉켜 있는 이 이야기는, 인생의 반환점을 돈 중년의 남자가 열 살 때 시작된 우정을 돌이켜보며 2020년대에 써내려간 것이다.” (699쪽)


사건은 1998년에 벌어졌고, 저자는 그 이후 거의 25년이 지난 후에야 이 이야기를 썼다. 무엇이 이 시간을 채웠을까? 조현병과 사회 구조, 역사의 관계를 알아내고, 정리하고, 성찰하는 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을까? 아니면 불편한 우정에 대한 상처를 보듬는 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을까? 

YES마니아 : 로얄 n*****m 2026.04.27.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