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9%
  • 리뷰 총점8 81%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7.0
  • 40대 7.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짧은 단편들이 인상적인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저자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으로 '미국의 송어낚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작품을 아직까지 읽은 적이 없지만 62편의 짧은 단편이 가진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첫 단편이며 이 책의 원제인 '잔디밭의 복수'부터 예사롭지 않다. 화자와 너무나 빼어 닮은 친할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계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짧은 단편들이 인상적인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저자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으로 '미국의 송어낚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작품을 아직까지 읽은 적이 없지만 62편의 짧은 단편이 가진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첫 단편이며 이 책의 원제인 '잔디밭의 복수'부터 예사롭지 않다. 화자와 너무나 빼어 닮은 친할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계시고 오래시간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 의붓할아버지 잭... 차는 차고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는 친할아버지가 정성껏 가꾸던 잔디밭에 관심도 없고 오히려 그는 배나무에 몰려든 벌에 쏘인 일로 결국에는 나무에 불을 지른 이야기지만 친할아버지와 의붓할아버지 두 인물이 가진 캐릭터가 한 곳도 합쳐지는 곳이 없이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를 다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는 엄청나게 비싼 액수를 주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타이피스트로부터 최상의 타이핑 서비스를 받는 친구를 두고 있는 화자... 그녀는 친구의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녀의 손에 의해 나오는 글들을 보면 그녀가 헤밍웨이가 곁에 둘 수밖에 없는 최고의 타이피스트이고 그녀에게서 헤밍웨이의 존재를 느낀다.


의학이 발전하여 겉모습만을 보고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다. '낡은 버스'는 화자가 탄 버스에 노인분들이 탑승하면서 겪는 심리적 불안감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으로 인해 잃어버린 젊음을 떠올리게 하는 자신이 한 없이 미안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화자... 자신이 내릴 곳도 아닌 곳에서 내리고 그의 시야에서 버스가 사라진 후에야 버스 안 노인 분들과 화자는 비로소 안도의 시간을 갖는다. 학창시절에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른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예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속도... 젊음에 대한 생각이 재밌게 느껴진 이야기다.


제목과도 같은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해변에서 잠수복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야기로 1960대의 시대 모습 안에 자유를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진 단편이다.


저자가 쓴 '미국의 송어낚시'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간 '용서받은 '자' 역시 흥미로우며 이외에도 여러 단편들이 서정적 언어의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책이다. 62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상징적인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글 속에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 자꾸만 되묻게 된다. 다소 까다롭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재미를 안겨준다.


살면서 자신에게 가장 완벽한 하루가 얼마나 있을까? 나의 완벽한 하루는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며 내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제목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힐링을 주는 소설로 저자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가고 책에 소개된 ''미국의 송어낚시'는 조만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q******5 2015.06.24. 신고 공감 3 댓글 7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같은 것은 없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같은 것은 없다" 내용보기
여름은 싫다. 다른 계절보다 손에 땀이 많이 난다. 여름에 책 읽는 건 내게 고역이다.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다. 손의 땀에 책장이 젖을까 자꾸 신경 쓰인다. 책장이 그렇게 되는 걸 싫어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없다. 무더위, 벌레 등등 굳이 세상 일이 아니더라도 신경을 긁는 것은 잔뜩 있기 때문이다. 잊으려면 떠나야 한다. 견디려면 훌쩍 여기를 벗어나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같은 것은 없다" 내용보기

 여름은 싫다. 다른 계절보다 손에 땀이 많이 난다. 여름에 책 읽는 건 내게 고역이다.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다. 손의 땀에 책장이 젖을까 자꾸 신경 쓰인다. 책장이 그렇게 되는 걸 싫어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없다. 무더위, 벌레 등등 굳이 세상 일이 아니더라도 신경을 긁는 것은 잔뜩 있기 때문이다. 잊으려면 떠나야 한다. 견디려면 훌쩍 여기를 벗어나 다른 어딘가에 나를 내맡겨야 한다. 그러기엔 또 책만 한 것이 없다. 비용도 저렴하고 도착도 순식간이다. 손에 들고 펼치면 된다. 그러면 오늘의 이 덥고 습하며 짜증나는 대기와는 다른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가 펼쳐진다. 그래서 난 음식을 버무릴 때 흔히 쓰곤 하는 비닐장갑이라도 끼고 읽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그 대안으로 선풍기를 코앞까지 가져와 미풍의 바람 세기로 손을 식혀가며 읽는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라는 책을.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읽는 것은 이 책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읽다가 문장에 반하여 눈의 크기가 최소 1cm는 더 커져서는 나를 조금 더 잘 생겨보이게 했던(누군가는 그래봐야 수박에 줄 하나 더 긋기라고 하겠지만)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단편집. 그가 62년부터 70년까지 쓴 단편들을 모았다. 그 때는 그가 첫 아내인 디온 아들러와 이혼한 시기였다. 아들러는 브라우티건이 알콜 중독에다 신경쇠약으로 거듭 약물을 남용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둘 사이의 이혼은 62년에 이뤄졌지만 법적으로는 70년에 가서야 비로소 종지부를 찍었다. 단편들은 그 시기에 쓰였고 상황이 그랬던 만큼 당연히 이 소설엔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같은 것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가 시작되는 캘리포니아에서 라디오를 불태우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사실 브라우티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일종의 이상한 진공청소기처럼 나는 그를 위로하려 노력했다. 우리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이고 장황한 말로 그를 위로하려 했지만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일한 차이라면 또 다른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이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다. (p.38)


이런 까닭으로 여기엔 햇살 청명한 푸른 하늘대신 우울의 비가 처연히 내리고 근사한 비키니의 미녀와의 설레는 만남 대신 이별의 예감 혹은 실감으로 가득하다. 여름의 캘리포니아라기보다는 겨울의 시애틀. 혹은 앨마이러.


앨마이러를 걸을 때마다 나는 멈춰서 앨마이러 유니온 고등학교를 바라본다. 교실은 언제나 비어있고 안은 어두웠다. 아무도 거기서 공부한 적이 없고, 언제나 어둠 속에 묻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기 스위치를 켤 이유도 없는 것 같다.(p.42)


그 냉랭한 고독의 한기와 소름처럼 돋는 절망 속에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감으로 빚어낸 단편들의 갤러리가 바로 이 책이다. 그러니 이 단편집의 제목으론 원래 제목이었던 '잔디밭의 복수'가 더 맞을 지도 모른다. 그 단편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 역시 정말로 삶에 복수 당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갤런의 석유를 들이붓고는 불을 댕겨 삶이란 것을 확 불태우려 했으니까. 그는 잔디밭을 태우고 라디오를 태우고 탄창이 빌 때까지 연발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가 바라는 것은 파국이다. 세상을 끝장내는 것.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캘리포니아와 같은 유토피아를 바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망치려 하는 것은 유토피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토피아를 희구하는 마음이다.


일정한 형식도, 주제도 없는, 정말 제멋대로에다 이합집산이기만 한 이 단편들을 그래도 묶어주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란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목적의 파괴이다. 이정표의 매립이요 지도를 구김이다. '삶에 지도 따위가 있다고? 천만에! '워터멜론 슈가'같은 것은 우리 삶에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고!' 이게 온갖 분신을 통하여 들려주는 의미의 모음(母音)이다. 왜? 인생은 지도라는 것이 유용할 정도로 항구적이기 않으니까. 워터멜론 슈가에 나오는 '아이데스(IDEATH)' 마을처럼 시시각각으로 유동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굳이 그의 소설 워터멜론 슈가를 언급하는 것은 이 소설 역시 여기의 단편들이 집필되던 시기인 68년에 나왔으니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또 브라우티건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비슷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우티건 유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8개월) 부모는 이혼했고 더 이상 아빠는 볼 수가 없었다.(아빠는 브라우티건 사후에 왜 50년간 아내나 아들이나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툴툴거렸다.) 엄마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여섯 살 때는 엄마가 브라우티건과 아빠가 다른 여동생 둘을 모텔에 두고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는 바람에 며칠 동안 버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라 믿는 가족이 그랬으니 어떻게 삶이 안정적이며 지속적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하여 그는 지도는 구겨버리고 '완벽한 캘리포니아'에서 '완벽'을 빡빡 지워버린다.


하지만 한풀이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을 좋아할지 모르겠는데 여기엔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 인생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지도가 있고, 완벽의 존재를 가정하게 되면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은 부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피해야 할 그 무엇이며 조금이라도 빨리 단축시켜야 할 그 무엇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삶의 시간들이 완벽함에 다가가기 위한 유용성을 기준으로 서열화 되고 삶의 모든 순간을 동등하게 누리기보다는 하루 빨리 지름길을 찾으려는 조급증이 생긴다. 서열의 판단은 타인에 대한 판단까지 넘나들고 조급증은 타인을 수단화하는 잘못을 범하게 한다. 이혼하기 전의 브라우티건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는 권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의 불완전함을 긍정하고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그런 제안들이 알알이 모여 먹음직스럽게 여문 '포도송이' 같은 단편집이다.(무려 62편이니 꽤나 큰 포도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겨우 239 페이지. 먹기에 부담은 없으니 염려는 접어두시길.) 물론 우리가 한 알, 한 알 따 먹으면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완벽'이 아니라 '하루'다. 당신의 모든 하루가 다 완벽한 까닭이다. 지금은 얼른 동의 안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브라우티건이 튜닝하고 있는 음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다 보면 문득 당신도 자신이 가진 삶의 모든 순간에 건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l****1 2015.07.31.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하게 낯선 캘리포니아의 오늘
"완벽하게 낯선 캘리포니아의 오늘" 내용보기
격동의 60년대라는 상투적 표현에 따라 나 또한 ‘격동의 80년대’를 살아왔다며 때때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향해 당시의 느낌과 분위기를 희화화해 전달하기도 한다(내가 ‘꼰대들’을 싫어하면서도 이제는 나 자신이 ‘꼰대’가 된 셈이다). 과거를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내세울 것이 과거뿐인 처량함에 휩싸인다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쉬 잘라 말할 수도
"완벽하게 낯선 캘리포니아의 오늘" 내용보기

동의 60년대라는 상투적 표현에 따라 나 또한 ‘격동의 80년대’를 살아왔다며 때때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향해 당시의 느낌과 분위기를 희화화해 전달하기도 한다(내가 ‘꼰대들’을 싫어하면서도 이제는 나 자신이 ‘꼰대’가 된 셈이다). 과거를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내세울 것이 과거뿐인 처량함에 휩싸인다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쉬 잘라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현재는 과거와 다르고, 미래 또한 과거가 될 현재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 아련한 노스탤지어,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다양한 매체를 통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는 방편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분명 브라우티건의 노스탤지어는 나는 어렴풋하게라도 겪어보기는커녕 그 시대가 어떤 시간 주기를 가지고 작동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완벽한(여기서 ‘완벽하다’는 형용사는 질 나쁜 부정어와 함께 쓰였다고 봐야 하겠지만) 낭만과 예스런 향수와 추억을 가지고 올는지 모른다(이 또한 세월이 흐르면 앞으론 2000년대가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될 거다. 더 이상 60년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물론 『워터멜론 슈가에서』와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줄기차게 송어(과거)를 끄집어냈던 것과 대동소이하지만 이쪽은 다소 힘을 뺀 수필처럼 상대적으로 덤덤한 기운이 있다. (맥락이 전혀 맞지 않으나,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영화 《쇼생크 탈출》이 떠올랐다. 앤디의 수수께끼 같은 지령에 따라 벅스톤의 흑요석을 찾으러 가는 레드의 모습.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느릿느릿한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고동색 웃옷을 벗고 땀을 식히며 끝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은 무척이나 ‘느렸다’) 특히 삼분의 일쯤 읽다 보면 「낡은 버스」라는 글이 나오는데, 거기서 ‘나’는 날씨가 좋아 버스를 타게 된다. 그런데 버스 안 승객은 20대인 나와는 달리 죄다 6, 70을 넘긴 노인들뿐이다. ‘나’도 그들도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결국 ‘나’는 목적지에 가려던 생각을 바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버리고, 그러자 모두가 그것을 반기며 기뻐한다(마치 저 옛날 백인투성이인 버스에 외따로 ‘침입한’ 흑인 같다). 낡고 오래되어 모든 것이 느리게만 흘러가는 시골길 사이로 갑작스레 뛰어든 포드의 대량생산 자동차가 따로 없었던 거다. 이런 ‘완벽한’ 진일보가 한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날개 달린 자동차가 건물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며, 택시 미터기와 선풍기는 모양만 변했을 뿐 예전의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문득 몇십 년을 뛰어넘어 먼 과거를 돌이켜보는 순간 그것들은 상당히, ‘완벽하게’ 달라 보인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가 보편성을 띠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u******o 2015.06.1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모두 62편의 단편들이 빼곡히 실려 있는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들을 읽고 있자니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처음 만난 시점이 언제였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그랬구나, 무려 2년 전쯤이다. 생각보다 오래전이었단 걸 되새겨보면서 당시 내겐 너무나 생경했던 생태문학이라는 형식의 <미국의 송어낚시>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저자의 비극적 삶과는 별개로 생명력 넘치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모두 62편의 단편들이 빼곡히 실려 있는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들을 읽고 있자니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처음 만난 시점이 언제였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그랬구나, 무려 2년 전쯤이다. 생각보다 오래전이었단 걸 되새겨보면서 당시 내겐 너무나 생경했던 생태문학이라는 형식의 미국의 송어낚시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저자의 비극적 삶과는 별개로 생명력 넘치는 문학성으로 지적만족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었다.

 

 

다시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 이번 단편집은 그 작품에 못지않은 흥미진진함 속에서 여전히예리하고 냉철하다. 그리고 유머러스함이 자칫 무거울지도 모를 전반적 분위기를 이완시키며비교도 안될 만큼 대중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송어낚시와의 연계성을 염두에 둔 나를 머쓱케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생태문학이 지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스타 탄생이란 의미로 정의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을 꼽자면 ‘1/3 1/3 1/3’을 주저 없이 얘기하련다. 계산식처럼 보이는 제목은 돈을 3등분하는 대가를 의미하는데 주인공이 타이핑하는 대가로 3분의 1, 편집자가 3분의 1, 소설가가 3분의 1을 인세에서 각각 나눠 갖기로 한 계약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서른 한 살의 나이로 타자기를 가지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이며, 편집자는 30대 후반에 아홉 살 아들을 둔, 사회복지수당에 삶을 의존하고 있는 여자이다. 소설가는 40대 후반으로 술에 절어 살면서도 소설을 써서 인세를 받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남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맴돌고 있을 뿐, 능력치를 콜라보레이션 할 기회란 막연할 것처럼 보였는데 때마침 우연처럼 맺어진다. 어느 날 그녀의 제안은 앞서 말한 대로 역할분담을 통해 인세를 나눠가지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를 따라 소설가를 만나러 간 주인공은 마침내 꿈을 실현시켜 줄 미 정리된 원고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 원고가 보여준 가망성이란 말이지. 저자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인지력이라고 하면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고 했다. 그리고 서정적으로 탈바꿈해주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결론에서 처음에는 실소를 뱉었다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창작의 고통을 넘어 진정한 문학이 태동하는 첫걸음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싶었다. 감상이 단번에 바뀌더란 말이지. 의외의 반전 같은 느낌. 그렇게 이 작가의 발상은 기발하다.

 

 

이런 식으로 62편의 단편들 모두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성찰들이 시대를 넘어 묵직한 동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지금도 유머는 통하고 재미가 있고 개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정적 이미지와 상징적 은유가 이번에도 마법 같은 문장을 제대로 토해낸다. 게다가 단순히 아름다운 이야기로 감상을 마칠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촉구하는 자성적인 외침에 반응하고 귀 기울여야 할 책임에 통감하게 되리라. 이 작품은 그렇게 읽으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송어낚시못지않은 가히 전설급인 것이다.

q****5 201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6-16.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6-16.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어쩌다 에메랄드빛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홀리듯이 책을 집어들었건만... 첫 번째 표제작 <잔디밭의 복수>에서부터, 이 책은 내가 이제껏 게으른 독서만 해온 것을 무지무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알 카폰에 버금가는 밀주 (특기는 '버본') 제조가인 할머니로부터 술술 풀려나온 이
"6-16.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리처드 브라우티건 스타일을 느끼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어쩌다 에메랄드빛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홀리듯이 책을 집어들었건만...

첫 번째 표제작 <잔디밭의 복수>에서부터, 이 책은 내가 이제껏 게으른 독서만 해온 것을 무지무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알 카폰에 버금가는 밀주 (특기는 '버본') 제조가인 할머니로부터 술술 풀려나온 이야기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할어버지가 소유했던 잔디밭의 무시무시한 이력을 소개한다. 의붓할아버지 잭은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인데 앞마당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앞마당을 미워했다.

어느날 잭의 지갑에 숨어 있던 벌이 시가에 내려앉았다가 윗입술을 쏘자 잭은 반사적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진해 잔디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은 술지게미를 먹고 취한 거위떼들의 털을 벗겨놓고 할머니가 나간 사이 벌거벗은 거위들을 본 잭은 벌이 쏘인 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시가를 찢어 던지다가 차 유리를 뚫어 상처를 입었다. 곧 제 2의 잔디밭 돌진이 이루어졌다.

능청맞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라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 집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936년 혹은 1937년의 일로, 어떤 남자가, 아마도 잭 같은데, 배나무를 베어서는 9미터나 뻗어 있는 그 커다란 나무에 여러 갤런의 석유를 붓고 아직 녹색의 배가 달려 있는 채로 불을 당기는 장면이었다-18

 

푸른 바다에서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장면을 찾으려고 했건만 첫 번째 작품부터 잔디가 없는 울퉁불퉁하고 메마른 잔디밭에서 일어난 복수 장면이라니...

그것도 화자가 처한 현실의 이야기에서 한참 오래 전 할아버지 할머니 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 자체로만 즐기자면 한바탕 웃고 넘길 에피소드를 기발하게 엮어 놓은 것으로 읽고 넘어갈 수 있으나 뭔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좀 더 깊은 뜻이 있을 것만 같은데

내 가난한 독서로는 쉽사리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목가주의의 상징적 종말을 목격한 화자. 벌과 거위와 정신병원에 들어간 친할아버지는 자연과 전원의 상징이라고 한다.

뒷 부분의 작품 해설을 읽자 그제서야 전체 내용이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첫 작품부터 이렇게 의미를 찾아나서야 하는 책이라면 이 책, 쉽사리 읽어낼 만한 만만한 책이 아닐 텐데, 하고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황폐한 현대문명, 기계와 자동차와 돈이 지배하는 세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자연을 슬쩍슬쩍 보여주긴 하지만 대놓고 으르렁대려 하지는 않는다.

큰 틀을 이해했다면 모두 62개나 되는 단편들을 관통하는 정서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잔디밭의 복수>를 읽은 뒤에는 같이 분노하거나 화내는 대신 '와하하' 웃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대면하더라도 거세게 비판의 목소리를 올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깨닫게 될 뿐.

그렇게 본다면 이 단편들에서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적이면서도 시적인 면모를 영 찾아볼 수 없다고도 할 수 없겠다.

어떤 단편에서는 잠시 문명사회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다는 아름다운 언어에 푹 빠져 그 세계 속에 들어가 앉아 있게 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가 그려 내는 환상에 이끌려 몽유병자처럼 무턱대고 걸어들어가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게지.

 

이상하게도 캘리포니아는 다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서는 예전의 삶을 잊어버리게 한다. 이곳의 에너지 자체가, 혹은 금속을 먹는 꽃의 그림자가 우리를 다른 삶으로부터 불러와 길거리 주차 미터기가 타지마할처럼 늘어선 캘리포니아의 주민으로 만든다.-34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표현 덕에 잠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는 곳도 종종 등장한다.

 

계곡의 구비로 천천히 내려가노라면 발걸음마다 특이한 꽃들이 피어 있고, 드디어는 태평양이 나오며 그리스도가 살았을 때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찍었을 사진 같은,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사진의 일부가 되는 드라마틱한 해변이 펼쳐진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진짜 거기에 있는지 자신을 꼬집어보아야 한다. -211

 

우리는 망각 사이의 캡슐 속을 걷고 있었다. 꽃들이 우리 주위에 조용히 만개해 있었다 꽃들은 마치 14세기의 이름 없는 프랑스 화가가 그린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혀가 그 화가의 붓에 합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2

 

시간은 클라크 게이블 영화를 볼 때 먹는 팝콘처럼 없어져갔다. -197

 

이제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노쇠한 소방차를 찾아 길을 건너게 해주는 것이었다.

"고맙네."관절염에 걸린, 노인 냄새가 나는 붉은 페인트, 백발로 뒤덮인 사다리, 사이렌 스피커 위의 약한 백내장 같은 경광등-204

 

바로 그 때 비눗방울 하나가 30번 스톡턴 버스에 치였다. 퍽! 신이 오른 트럼펫과 위대한 콘체르토가 충돌하듯 방울은 부서져 사라졌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다른 거품들이 어떻게 위대한 스타일로 사라지는가를 보여주었다. -205

 

비눗방울들은 각기 위대한 스타일로 부서져 사라졌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스타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큼한 해변과 보석같이 반짝이는 물결, 훈훈하게 귓가에 스치는 바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그려보며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에 완벽하게 흡족하도록 들어맞는 단편들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새로운 스타일을 느끼며 현대문명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도 괜찮았다.

수도관의 배관을 시에 비유하고 노인을 소방차에 빗대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을 만나 멋들어진 단편들로 탄생했다.

 

아.

첫 번째 <잔디밭의 복수>를 읽고 이 책을 덮지 않길 잘했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1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릴 것들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릴 것들" 내용보기
마지막 제재소 연못 옆에 노란색 트레일러가 나무 블록 위에 주차되어 있었다. 간선도로가 마치 천국처럼 멀어서 기도할 대상인 양 보이는 머나먼 곳에 선 트레일러는 다시는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동묘지 같은 굴뚝에서 스멀거리는 죽은 연기를 토해내는 트레일러는 슬퍼 보였다. (중략) 작은 싱크대에는 안 씻은 접시들이 있었는데, 그 접시들은 원래부터 더러웠던 것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릴 것들" 내용보기
마지막 제재소 연못 옆에 노란색 트레일러가 나무 블록 위에 주차되어 있었다. 간선도로가 마치 천국처럼 멀어서 기도할 대상인 양 보이는 머나먼 곳에 선 트레일러는 다시는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동묘지 같은 굴뚝에서 스멀거리는 죽은 연기를 토해내는 트레일러는 슬퍼 보였다. (중략) 작은 싱크대에는 안 씻은 접시들이 있었는데, 그 접시들은 원래부터 더러웠던 것처럼 보였으며, 씻어도 여전히 영원히 더러울 것 같았다. (p.28~29, 1/3 1/3 1/3)

# 완벽했던 것들에 대한 추억

골드러시가 한창이었던 19세기 후반 캘리포니아는 성공과 꿈을 쫓아 모여든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도시는 번창했고 사람들은 풍요로웠으며 영화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완벽할 것만 같았던 캘리포니아도 대공황과 전쟁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부침과 어지러운 변화를 겪었다. 물질적인 번영은 모습을 달리하며 꾸준히 캘리포니아를 잡아 먹었지만 다른 중요한 무언가는 사라져 갔고 이를 붙잡으려는 막연한 노력도 빛이 바래져 갔다.

이 모음집은 그런 노력의 '되다 만' 그릇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추억한다. 캘리포니아가 완벽했던 것인지, 어떤 하루가 완벽했던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되다 만 꿈들, 그저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를 글감을 뒤적이며 그는 손에 잡힐 신기루를 꿈꾼다. 또 한 번 완벽한 캘리포니아를 꿈꾼다.

라디오가 천천히 불타 사라지는 동안, 불꽃은 우리가 듣고 있던 노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인기순위 톱40 중 1위였던 노래는 13위로 떨어졌다. 9위에 있던 노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코러스 중에 27위로 떨어졌다. 노래들은 떨어지는 새처럼 인기순위에서 곤두박질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p.39, 태평양에서 불탄 라디오)

# 잃어버릴 것들에 대한 체념, 아니 극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그의 투쟁은 뒤적이는 것 이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없다. 자신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조부모의 시대까지 뒤적여보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단순히 '돌아가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꿈은 비록 과거에 존재하고 그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내일까지 끌고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리 만무하다. '돌아감'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나아감'을 위한 양분으로 쓰임이 맞다. 박제된 과거를 자랑하듯 추억하기보다, 정작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곰곰히 씹어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미래를 위한 일이다. 진정한 회복이다.

저자 브라우티건은 1984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49세의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결국 미래에 닿지 못하고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의 글이 남긴 여운은 여전히 생명력 있게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게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다.
YES마니아 : 골드 p*****s 2024.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러니까 자연친화적인 것이 인간친화적인 것이리라는 안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그러니까 자연친화적인 것이 인간친화적인 것이리라는 안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PC 통신을 하던 무렵 어울리곤 하던 몇몇 딜레탕트들이 꼭 읽어야 하는 것처럼 여기던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가 그중 하나였다. (함께 떠오르는 책들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오에 겐자부로의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콜린 윌슨의 《잔혹》 뭐 이런 책들도 있다) 책은 구하기 힘들었고 (당시에는 절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러니까 자연친화적인 것이 인간친화적인 것이리라는 안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PC 통신을 하던 무렵 어울리곤 하던 몇몇 딜레탕트들이 꼭 읽어야 하는 것처럼 여기던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가 그중 하나였다. (함께 떠오르는 책들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오에 겐자부로의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콜린 윌슨의 《잔혹》 뭐 이런 책들도 있다) 책은 구하기 힘들었고 (당시에는 절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구했는지 구하지 못하였는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지금 헷갈리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두 권을 더 주문하였다)


  “난 정말 그 강이 필요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송어낚시와 그것이 보여주는 환경의 망원경을 철저히 다루고 있는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소설을 썼다. 그래서 그 작가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할 것 같아 그냥 계속하려고 한다.” (p.214)


  책은 《미국의 송어낚시》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62년에서 1970년 사이에 쓴 아주 짧은 소설들 62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위에서처럼 소설 안에 자기 자신을 집어넣기도 하며 치기를 보이는 비트 세대의 생태문학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자신이 《미국의 송어낚시》를 쓸 때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복원하여 쓴 글도 두 편이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방은 천장이 높은 빅토리아풍이었고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가 있었으며 창문에는 아보카도 나무가 있었고, 그녀는 내 옆에서 멋진 금발의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잠이 들었다. 9월의 새벽이었다.
  1964년.
  그러다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녀가 일어나서 즉시 나를 깨우더니 일어나 나갔다. 그녀는 아주 진지했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일어나려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은 몽유병자처럼 파랬다.
  “침대로 돌아와.” 내가 말했다.
  “왜?” 그녀가 말했다. 금발의 한쪽 발을 마루에 발을 디디고 반쯤은 침대에 있는 채로.
  “왜냐면 당신은 아직도 자고 있으니까.”
  “오오오, 좋아.” 그녀가 말했다. 내 말이 맞았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서 이불을 끌어다 덮고 내 옆에 바싹 다가와 누웠다. 그러고는 한 마디 말도 없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황을 마치고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이제 막 방황이 시작되었다.
  나는 수년 동안 이 단순한 사건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다. 그건 마치 희미하고 흐릿한 영화처럼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pp.125~126)


  책에는 이처럼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상당수 들어 있지만 왠지 내가 친근감을 느끼는 건 위와 같은 다른 소재의 글들이다. 위의 발췌 부분은 온전히 <희미하고 흐릿한 영화> 라는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소설인데, 읽다가 그만 기시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그야말로 잠이 덜 깬 것처럼 몽롱한 채로 소설들을 스르륵 읽어 내려갔다. 별다른 맥락 없이 펼쳐지는 풍경과 상황과 사람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 것만 같다.


  “나는 그녀를 따라 층계를 올라갔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그녀는 급히 옷을 입었기 때문에 아직 옷이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엉덩이 쪽이 그랬다. 우리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p.45)


  유별난 묘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메시지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읽다 보면 속애 개운해진다. 작가의 문장을 투명하다고 표현한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작가가 다루는 투명한 자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의 문장이 갖는 담백한 맛 때문에 투명하다는 표현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그 여자는 열아홉 살 먹은 개를 엄청나게 사랑했는데, 그 개는 노망이 들어 천천히 죽어감으로써 사랑에 보답했지... 내 친구가 일하러 갈 때마다 개는 조금씩 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었어. 열아홉이면 개로서는 죽을 나이가 훨씬 지난 셈인데, 그 개는 너무 오래 죽어가다 보니 그만 죽는 방법을 잊어버린 거지... 이 나라의 수많은 노인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들은 너무 늙었고 너무 오랫동안 죽음과 더불어 살다보니, 막상 죽어야 할 때가 되면 죽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p.74)


  세상이 소란스럽고 속이 번거로운 즈음에 읽었더니 그 느끼함이 조금 가셨다. 나이 든 세대에게 느끼는 서운함과 불편함(을 뛰어넘는 분노)으로 여전히 피곤하지만, 이 땅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너무 오랫동안 인식의 죽음 속에서 살다보면, 생체 나이와는 무관하게 너무 늙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너무 늙었고, 너무 오랫동안 죽음과 더불어 살다보니, 죽는 방법 혹은 물러서는 방법을 잊은 이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위정자들이 제 이익을 위하여 이들을 부추기고 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 김성곤 역 /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Revenge of The Lawn: Sotries 1962 ~1970)) / 비체 / 239쪽 / 2015 (1971)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엊그제 티비에서 캐나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 비교를 하는데, 원주민과의 전쟁을 통해 그들을 거주지에서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미국의 백인들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다문화가 발전한 캐나다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민족을 받아들인 미국은 닮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엊그제 티비에서 캐나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미국과 비교를 하는데, 원주민과의 전쟁을 통해 그들을 거주지에서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미국의 백인들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다문화가 발전한 캐나다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민족을 받아들인 미국은 닮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떠올려본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잔디밭의 복수'에서 저자 리차드 브라우티건은 '인간으로서의 최초의 기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류'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 까지는 없지만 왠지 그 모습은 인류의 등장으로 자연의 파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의 오랜 역사는 '공존'이라기보다는 지배를 더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증명하듯.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도대체 어떤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캘리포니아 해안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제주에서는 이국적인 풍경의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에 누워 - 때로는 야자수가 곁들여지기도 하는 그런 여름 풍경을 그리며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파도타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중문 해수욕장의 멋진 모래사장 해안과 가까운 곳의 언덕이 무너져내릴뻔 했다는 뉴스가 며칠 전 방송을 탔다. 자연 풍경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자꾸만 인간들의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 무엇인가를 건축하고 만들어내면서 큰 참사가 생겨날뻔 한 것이다. 그뿐인가. 온갖 곳에서 자연의 복수 - 복수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잔디의 복수'가 떠올라서 - 가 이뤄지고 있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아마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저 멀리 잠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고 그녀들이 물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을 못하는 우리는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밟고 거닐며 보말을 따며 깔깔거리고 웃는 그 순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짧은 단편들을 읽으며 솔직히 '응?'하는 느낌이 드는 글도 많았지만, 몇몇 작품에서는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가 진하게 다가오기도 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한두편씩 읽어내려갔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는 작품도, 간혹 읽다가 다시 되돌아가 읽어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처럼 또 다른 진한 느낌을 갖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단편집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YMCA에 바치는 경의]이다. 일상을 '시'만을 바라보며 살아갈수는 없지만,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로 가득한 멋진 변기를 마주하며 나도 화장실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하며 의미심장하게 글을 읽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요즘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떠올라 좀 찜찜해지기도 했지만 - 생태라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의 어느 곳에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망가뜨려버리고 만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조만간 다시 이 단편집을 꺼내들어보고 싶다.

 

 

 

 

 

 

 

 

이달의 사락 r***2 2015.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미국의 송어 낚시> 뒤의 1962~70년 사이에 쓰여진 62편의 단편을 모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입니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잔디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브라우티건의 사상과 그의 삶에 있어서의 느낌과 작품들의 특징이 잘 보여지는 제목이죠. 무척 <미국의 송어 낚시> 비슷한 감이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는 그 작품에서 잃어버렸던 챕터도 같이 곁들여저 있어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내용보기

 

미국의 송어 낚시뒤의 1962~70년 사이에 쓰여진 62편의 단편을 모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입니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자면 잔디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브라우티건의 사상과 그의 삶에 있어서의 느낌과 작품들의 특징이 잘 보여지는 제목이죠. 무척 미국의 송어 낚시비슷한 감이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는 그 작품에서 잃어버렸던 챕터도 같이 곁들여저 있어서 브라우티건의 의미있는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회상과 당시의 사건이나 이야기, 바람의 것 등 다양한 단편이 아로 새겨져있어서 역시 브라우티건 특유의 그 매력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잔디밭이 복수

우리 할머니는 미국의 과거라는 풍랑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술을 몰래 담는 밀주업자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영원한 오렌지와 햇빛의 대한 비전을 파는 사람인 플로리다의 토지를 매물하러 온 잭이라는 남자와 대면을 하게 되죠. 그는 거기에 정착해 삼십년 이상 할머니의 집에서 살게되고, 잔디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 재난을 잭의 앞마당의 잔디의 복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보복에 나무를 벌목하고, 쓰러뜨리고 충분히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남자의 모습. 그것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최초의 기억이라고 합니다.

작품의 원제목이자 책의 처음에 나오는 이 1편인 잔디밭의 복수는 죽은 할아버지가 소중히 여기고 있던 잔디를 파괴 한 남자가 그 앞마당에서 나무를 태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것이 브라우티건의 작품전체의 잃어가는 미국이라는 주제의 원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인상깊은 내용이죠.

 

‘1/3 1/3 1/3’

남자 친구가 소설을 쓰고 그것을 편집하는 여자에게 제안을 해서 브라우티건이 타자를 치게 되면서 수익을 3등분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죠. 인세의 몫은 각각1/3. 부부가 살고있는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원고를 읽게 한다. 밖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죠.

갑지기 말도 안되는 문장들이 나열되면서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해 나가는데 문장이 아주 가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또한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매력이라면 엄청난 매력입니다.

송아지 커틀릿을 조아하나바요 메이벨이 말했다. 그녀는 사가처럼 이쁘고 빨간 입수레 연필을 무렀다!

작이가 주문 할 때만 그래 칼이 말했다.그는 수지벗지만 제재소의 주인인 작이 압어지 만큼 크고 힘셌다!

그래비 마니 줄게!

바로 그때, 카빼의 무니 열리고 린스 아담스가 드러왔다. 그느 salska이지만 나쁜 사라미어서 모두가 무셔워 했다. 하지만 칼과 압어지는 무셔워하지 아났다!

검은 체크무니 방코트를 입고 린스가 거기 서 인는걸 보고 메이벨은 무셔워 했다. 린스가 여자에게 미소짖자 칼의 피가 커피처럼 뜨겁게 다라 올랏다.!

린스가 안뇽하고 마라자, 메이벨이 꽂처럼 얼구를 불켰다.”

이런 상태의 문장이 이어지고 이 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 때 브라우티건은 미국 문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브라우티건의 말이 어떻든 실제의 원문이 신경쓰여서 한번 찾아봤는데

“You sur lik veel cutlets don’t you Maybell said she was holding holding her pensil up her mowth that was preti and red like an apl!

Onli wen you take my oder Carl she said he was a kind of bassful loger but big and strong lik his dead who ownd the starmill!

Ill mak sur you get plenty of gravi!”

나쁜 의미로 언문일치해 나가는 문서를 미국 문학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일침을 놓는 그의 모습에서 무척 유쾌함과 유머가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의 송어 낚시에서 잃어버린 챕터 2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았다는 렘브란트 하천카르사지 싱크2장은 당시 왜 즉시 재작성하지 않았는지 미스터리하며 부연설명이 없는데, 설정인지 실제인지 중요하지 않고 무엇보다 카르사지 싱크는 우화적이고 무척 재미있었던 내용이었습니다.

 

태평양에서 불탄 라디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는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에서 시작 또는 거기서 끝난다.”

아내와 해어저서 상심한 친구와 둘이서 포트와인을 구입해서 태평양으로 향했다. 마시면서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로큰롤을 듣고, 비치 보이스가 캘리포니아 걸스를 불렀다. 친구에게 상투적인 위로를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고, 이윽고 그는 라디오에 불을 붙였다. 누군가가 라디오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불타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순위가 1위였던 곡이 순위가 곤두박칠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모든 것은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가장 정적이면서도 전하려는 깊은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나름 깊은 뜻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재미있는장이나 문구가 많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하며 인용했던 문구나 내용들이 어떤 것인지 한번 찾아보려했는데 거기까진 힘들고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그러나 시적이면서도 이야기가 너무 구체적인 이 두 라인의 작품은 매우 간단하지만 독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그 정경을 환기시키며 강하게 각인시키는 이 작품. 게다가 정말 말할 수 없는 유머도 넘치고 감돌고 있는 이 작품 너무 훌륭하다는 말밖에 안나옵니다.

앞으로 나올 빅서출신의 남부장군중절그리고 도쿄-몬태나 익스프레스등 브라우티건의 얼마되지 않지만 그의 작품들이 무척 기다려지고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막 감도는게 브라우티건이라는 작가의 그 탁월하고 훌륭한 필력의 마력에 매혹되어 빠져든게 아닌가 싶었던 의미있는 단편집이었습니다. 

b******2 2015.06.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볍지 않았던 이야기
"가볍지 않았던 이야기" 내용보기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집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읽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로 전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는 하나 하나의 단편이 매우 짧다. 240쪽 정도지만 62편의 단편이 들어있어서 한 페이지로 끝나는 단편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빠르게 마무리되는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했
"가볍지 않았던 이야기" 내용보기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집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읽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로 전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는 하나 하나의 단편이 매우 짧다.

240쪽 정도지만 62편의 단편이 들어있어서 한 페이지로 끝나는 단편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빠르게 마무리되는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했는데

앞에 있는 작가의 소개와 뒤에 있는 작품의 해설을 보고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소개에서 가난했던 삶과 정신병원에서 전기치료를 받게 된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는데다가, 

원래의 표제작이라고 하는 [잔디밭의 복수]는 잭이 잔디밭에 돌진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들어있는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목가주의의 상징적 종말과 전원주의의 부재를 비판하고 있다는 해설에 놀랐다.

 

 목가주의가 없어지고 있는 사실을 비판하는 작품만 이 책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단란한 내용이지만 세 명의 합작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는 [1/3, 1/3, 1/3],

미련이 남아있는 바보같은 남자를 볼 수 있는 [커피],

한 문장으로 충격적인 단편 소설을 만들어낸 [핏빛 다툼]까지,

작가의 문학적 재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표지와 함께 은은함을 가지고 있는 단편들이 멋진 작품이었다.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미국의 송어 낚시'도 읽어보고 싶다.

 

d******e 2015.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