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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을 담는다. 붓 한 자루, 먹 한 방울 속에도 시대의 무게가 스며든다. 한국 근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양식의 변천사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내밀한 기록이다. 1900년대 초 개화의 물결과 함께 서양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을 담는다. 붓 한 자루, 먹 한 방울 속에도 시대의 무게가 스며든다. 한국 근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양식의 변천사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으며, 그럼에도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내밀한 기록이다. 1900년대 초 개화의 물결과 함께 서양 미술의 개념이 밀려들어오고,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도 화가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책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피어났는지를 상세히 이야기 한다.

1910년 8월,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나라가 사라지는 그 직전의 봄, 신문 한 면에 작은 그림 하나가 실렸다. 이도영이 그린 판소리 장면이었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소리꾼이 부채를 들고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를 내지르는 그 그림은,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로 기록되었다. 이도영의 그림이 특별했던 것은 삽화만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뻐꾸기 소리를 '복국(復國)'으로 바꿔 부르는 소리꾼의 절절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나라를 되찾으라는 간절한 염원을 판소리 형식에 빌려 표현한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도 그림과 소리꾼의 몸짓만으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 연재된 시사만화는 계몽의 도구이자 저항의 언어였다. 이도영은 전환국에서 인쇄술을 익히고,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전통 화법을 사사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서양의 사실적 묘사 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모필의 전통적인 선 감각을 살려,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오세창이 글을 쓰고 이도영이 그림을 그린 대한민보의 시사만화는, 그림이 단순한 장식이나 기록을 넘어 정치적 발언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미술계의 국보'라 불리며 서화계의 어른으로 자리 잡았으나, 1933년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작별이었다.

조선의 산수화는 오랫동안 유교적 이상 세계를 그리는 관념의 그림이었다. 사대부 문인들이 추구한 군자의 세계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왕조가 무너지고 성리학적 세계관이 해체되면서, 그 이념을 담던 그릇도 함께 비어갔다. 그 공백 속에서 이상범은 다른 방향을 찾아나섰다. 이상범이 추구한 것은 관념이 아닌 실경(實景), 즉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우리 산하의 모습이었다.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그의 작품 '잔추(殘秋)'는 그 탐구의 결정이었다. 늦가을 어느 농촌의 황량한 풍경, 민둥산과 작은 초가집, 드문드문 서 있는 앙상한 나무들. 먹색 하나만으로 그려낸 그 장면은 쓸쓸하지만 거짓이 없었다. 그것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풍경이었다. 이상범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이후 실경산수의 맥을 근대적 시각으로 이어받은 작가였다. 그는 전통 화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서구 풍경화의 시선을 결합하여, 한국 산야가 지닌 고유한 정서를 가시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갈필로 문질러나간 건조한 붓질, 농담을 달리하며 쌓아 올린 먹의 층위,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서늘하고 적막한 정서야말로 이상범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 산야에서 찾아낸 감정은 화사함이 아니라 쓸쓸함이었고, 그 쓸쓸함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 깊이 닿았다.

정물화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 장르였다. 역사화나 초상화에 비해 이야기도 없고, 인물에 대한 통찰도 없이 그저 사물을 그리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상봉의 정물화를 마주하면 그 편견이 흔들린다. 1930년에 그려진 그의 작품 '파와 정물'은 식탁 위에 파 한 묶음과 귤 두 개, 토마토 하나가 놓인 단출한 장면이다. 화려하거나 풍성하지 않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파 뿌리의 흰 빛이 눈부시고, 좌측에서 흘러드는 빛이 과일들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감은 얇고 건조하게 발려 있어 마치 오래된 벽에 스며든 것처럼 화면에 착 달라붙어 있다. 도상봉은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반일의식을 품고 살았으며,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에는 단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화협회전과 동문들과의 그룹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정물화가 지닌 고요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는 단순한 기법의 성취가 아니라,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한 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길, 꾸밈없는 담백함, 그것이 도상봉 정물화의 진정한 힘이었다.

최재덕은 '화가들이 인정한 화가'였다.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그의 색채 감각과 조형적 순수성은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것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월북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남아 있는 작품이 채 열 점도 되지 않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놀라운 감각으로 빛난다. '하얀 집의 테라스'는 정원 너머 흰 벽의 2층 집이 햇빛을 받고 있는 장면을 담았다. 밝고 섬세한 붓 터치, 오돌토돌한 물감의 질감, 난간 위 작은 화분들의 앙증맞은 존재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빛의 방향을 알려주는 동시에 화면에 풍성한 이미지를 더한다. 단순한 흰 벽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색이 공존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거창한 이념도 없고, 역사적 사건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일상의 한 순간, 빛이 잠깐 머무는 자리를 예민하게 포착했을 뿐이다. 시인 김광균은 그를 '천사가 이 세상을 잠깐 다녀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섭과 나란히 놓인 그 말은, 최재덕의 예술이 지닌 순수성과 단명(短命)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전쟁 중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51년, 광주에서 천경자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화실에 들어가 저녁 일곱 시까지 뱀을 그렸다. 여동생의 죽음, 가난, 불화했던 사랑, 그 모든 슬픔을 뱀의 형상 속에 밀어 넣었다. 25일 만에 완성한 그 작품의 이름은 '생태(生態)'였다. 뱀은 보통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천경자에게 뱀은 삶에 대한 저항이자 구원의 상징이었다. 화면 가득 뒤엉킨 뱀들의 덩어리, 무리에서 빠져나와 기어 나오는 몇 마리의 형상. 초록과 붉은색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색의 생동감. 그것은 단순한 생물의 묘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꿈틀거리고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의지였다. 천경자의 채색화는 전통 동양화의 채색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차원을 열었다. 물감을 여러 겹 올리고, 호분을 덮고, 다시 색을 얹어 만들어낸 투명하고 깊은 색층은 보는 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까지 건드린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해방 이후 화단이 채색화를 왜색(倭色)이라 몰아붙이던 시절에도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이 천경자의 예술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에 이르는 시간 동안 한국의 화가들은 극히 다른 방식으로 시대와 마주했다. 이도영은 붓으로 저항의 소리를 냈고, 이상범은 황량한 우리 산야를 진실하게 응시했다. 도상봉은 사물 속에 고요한 품격을 담았고, 최재덕은 일상의 빛을 감각적으로 건져 올렸으며, 천경자는 고통을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바꾸어냈다. 이들이 남긴 그림들은 어떤 거창한 선언이나 이념보다 더 깊이 시대를 증언한다. 그림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선 하나, 먹이 스민 여백 하나가 그 시절의 공기를 지금 여기까지 전달한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화가들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묻게 한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혹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절실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p****r 2026.04.1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심퉁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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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된 리뷰입니다 ㅡ심통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미술에는 문외한인 내가 그래도 인생의 후반에 접어드니서서히 그쪽으로도 관심이 생기더라구요그래서 서양화가들의 작품은 슬슬 읽기 시작했는데정작 우리작품들은 교과서에 수록된 것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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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된 리뷰입니다 ㅡ

심통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미술에는 문외한인 내가 그래도 인생의 후반에 접어드니

서서히 그쪽으로도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서양화가들의 작품은 슬슬 읽기 시작했는데

정작 우리작품들은 교과서에 수록된 것 외에는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거 있죠

먹고 살기도 바빴던 그 시기에 작품활동을 했었던

한국 근대미술 대표화가 40인의 작품들이 담겨 있다고 해서

그시절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요량으로 책을 펼쳤어요

몇몇 교과서 속 작품으로 만났던 이름 외에는

정말 단 한사람의 이름도 작품도 낯선 그 자체더라구요

1910년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의 다양한 작품들

처음에는 그림만 있는지 알았는데

최초의 신문만평부터, 조각, 사진까지 다양한 작품들

최초라는 타이틀이 가진 그 위대함을 단단히 기억에 박고

지금과는 다른 그 시절의 작품을 감상하러 시간여행 떠나기

객관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현재도 본업을 하고 있는 미술평론가이자 저자의 분석도

꼼꼼히 보면서 그렇게 눈으로 함께 해봤어요





조선최초의 여성 양화가 나혜석의 <수원서호>

그림 뿐만 아니라 글에도 아주 박식한 분으로 소개되었는데

지금이야 덜하지만 그 시절에 여자로 태어나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았고 또 후반부에 삶을 보면

지금 사진속 작품이 더 처연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유학파 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면

자연이 품고 있는 편안함을 그대로 그려내

여백의 미도 느껴지고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어요





너무나 짧은 생을 살고 사라진 천재 소년 화가

캔버스라는 낯선 도구의 유채화에는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와 꽃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더라구요

엄마와 딸들 같기도 하고 세자매같기도 한

이인성 <해당화>는 향토색의 이중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미스테리한 그림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님을 여러가지로 풀이하듯

이 작품 역시 일제 식민 통치기에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다는 설명

작품이 그려진 시대를 보면 같은 작품이여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여운이 남는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 시절에도 이런 작품 활동을 했었구나'하면서

하나같이 감탄하며 넘기다가 이 작품에서만큼은

친근함에 미소가 지어졌는데요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사진

한국최초 사진연구회 <신선회>의 창립회원 이해문 <가족>

단잠에 빠진 식구들보다도 요강에 먼저 시선이 간 것은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똑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그림이나 풍경이 아닌 다양한 유형의 일상을 담고 있는 사진들

1950년대 작품이지만 1980년대의 시골에서의 일상과도 같아서

그 시절에도 또 그 이후에도 진정한 가족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해요


가장 불우한 시기의 작품들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기억되는게 아닐까 싶은

한국 근대미술 대표화가 40인의 작품들

시대와 현실에 대한 낙담없이 묵묵히 나아갔던 행보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근대미술 #나는화가다그럼에도그렸다 #박영택 #심통 #북유럽


YES마니아 : 로얄 g****i 202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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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서양 미술사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많이 만나보았지만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기회가 많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라는 책이 굉장히 궁금했고 그 이상으로 기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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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서양 미술사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많이 만나보았지만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기회가 많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라는 책이 굉장히 궁금했고 그 이상으로 기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40인의 삶과 40점의 작품을 통해서 특정 시대의 우리 미술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시기를 좀더 구체화 하자면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전쟁을 겪고 현대 미술이 시작되기 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10년부터 1958년 사이를 의미하며 그 과정에서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 40인의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자칫 한국 미술의 암흑기가 될 수도 있었을 시기 제목처럼 화가이기에 그렸던 이들의 치열하고도 예술혼이 가득한 기록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예술적 표현은 단순히 회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각에만 그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문이나 책, 사진 등으로 좀더 다양해진 미술 세계와 활동을 만나볼 수 있고 암울한 시대의 아픔 속 미술계 역시 쉽지 않았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로 넘어가기 전까지 당당히 한 시대를 담당하며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창작했다는 점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흔히 '00의 아픔'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식상할 수도 있을 이 표현이 이 시대에 있어서만큼은 이보다 더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싶게 딱 맞아 떨어진다. 


특히 근대미술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지만 그 근간에는 한국적인 혼이 담겨져 있다는 점도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내고자 했던 화가들의 노력과 함께 굉장히 의미있는 시도이자 창작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근대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 미술사를 통틀어 너무나 유명한 박수근, 김환기 같은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알고 화가와 관련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도 좋았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화가들도 많아서 우리나라 미술사의 한 축을 좀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었던 기회이지 않았나 싶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2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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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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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이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의 삶과 작품을 담고 있다.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각 작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마다 느끼지만,특히 근현대사를 접할 때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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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의 삶과 작품을 담고 있다.

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각 작가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마다 느끼지만,

특히 근현대사를 접할 때면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겪으며 

생존 자체가 가장 큰 과제였던 시절.

그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생사의 위기 속에서 예술을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더욱 깊이 와닿았다. 



그동안 교양으로 서양 미술사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어왔다. 

신을 향한 경외를 표현하던 종교 중심의 미술에서 시작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흐름,

원근법의 발견으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던 시기, 

빛과 색을 정교하게 탐구하던 인상주의,

그리고 작가의 내면과 감정을 강조하는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서양 미술을 받아들인 작가들이 등장했고, 

한편으로는 이에 맞서 

동양적인 미감과 전통을 지키려는 흐름도 함께 존재했다. 


서로 다른 방향이었지만,

결국 모두가 

'자신만의 표현'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에 소개된 40인의 화가 중

천경자,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은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특히 작품만 따로 볼 때와 달리,

그들의 삶과 시대적 배경을 함께 알고 나니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 시대를 견뎌낸 기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를 살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작가들은 결국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작품에 담아낸다.

그것이 사회에 대한 시선이든,

개인적인 고통이든, 혹은 희망이든 말이다. 


예술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시대와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우한 시대 속에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태도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하거나 망설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미술서라기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처럼 느껴졌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한국 근현대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w***9 202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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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박영택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내용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면 다사다난하고도 암울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버터냈고 살아갔으며 예술을 꽃피우기도 했다. 이 책은 1910년부터 1958년까지 등장했던 시각이미지들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빼어난 작품이라 여겨지는 것을 선별한 것이다. 저자가 '근대 미술기'라고 칭할
"박영택 -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내용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면 다사다난하고도 암울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버터냈고 살아갔으며 예술을 꽃피우기도 했다. 이 책은 1910년부터 1958년까지 등장했던 시각이미지들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빼어난 작품이라 여겨지는 것을 선별한 것이다. 저자가 '근대 미술기'라고 칭할만한 시기를 설정해 선별한 작품들은 총 40점으로 신문 만평, 사진, 책 표지, 조각 등 다양한 시각이미지가 등장한다. 근대 한국미술가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대표적인 작가 박수근, 이중섭, 나혜석 등도 포함되어 있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나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련된 책을 좀 읽었던 편이지만 소개하는 작가의 절반이상을 처음 접했던 책이기도 하다. 근대의 작품들만 모아놓은 책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한국의 작가들만 모아둔 책을 찾아 읽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의 한국화가들만 모아뒀다는 책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일 처음에 민족의 소리를 대변하는 시사만화가 등장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근대의 작가들이라고 해서 막연하게 그림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양한 시각이미지가 등장한다는 점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 몰랐던 부분들과 작가들이 많이 나와서 생소한 세계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묘하게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취도 신기했으며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우리나라의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었는지 볼 수 있었던 점도 인상깊었다. 한 작가당 한 작품이 수록되었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다양한 작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j*******9 2026.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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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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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책 중 마음에 쏙 드는 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한국의 근대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글도 그림도 이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참으로 애잔한 마음도 든다.그러나 이 책은 1910년 조선의 붕괴~1958년 현대미술의 태동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마냥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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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책 중 마음에 쏙 드는 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한국의 근대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글도 그림도 이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참으로 애잔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이 책은 1910년 조선의 붕괴~1958년 현대미술의 태동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마냥 암울하고 어두운 그림만 담겨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근대미술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은 바꿔 놓은 시간이기도 하다.

신문만평, 책 표지, 회화, 조각, 사진까지 다양한 장르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빼어난 작품들로 한정해 싣고 있는데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김종태의 < 노란 저고리 > 라는 그림이다.

조선미전(3.1운동 이후 조선미술계의 식민지화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가 만든 공모전) 에 6차례나 특선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양화가'로 불렸던 김종태의 그림 솜씨는 순전히 독학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작가의 젊은 아내를 모델로 해서 그린 것으로 추청되는 이 그림은 유화물감을 사용하면서도 마치 수묵화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색감에 있어서도 조선인들이 좋아하는 원색 계열을 한복의 색채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서명도 동양화 형식을 따른 세로 서명으로 적었다.

그는 유학파 화가들의 작품에는 기교만 있을 뿐, 조선의 고유색이 없다고 비판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가장 중요시 여겼던 우리 고유의 미의식이 이 한 장의 그림에서도 여지없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둥근 항아리를 연상케하는 우리네 여인의 이미지를 그린 그림과는 극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작품도 눈에 띈다.

표지 자체가 굉장히 유혹적인 이 그림은 '능나도'라는 신소설의 표지 그림으로, 해방 이후에 제작된 까닭에 이전과 비교해 굉장히 자유롭고 솔직한 남녀 데이트 장면을 그리고 있다. 여성의 모습이 하도 인상적이라 조금은 관능적이고 요염해서 여성만 눈에 들어오고 자연히 처음에는 이 여성만을 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소개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오른쪽 구석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해문의 < 가족 > 이라는 사진은 그의 가족들이 잠자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속 지친 하루를 보낸 엄마의 피로가 단박에 느껴지는 한편, 깨끗히 정리된 책상 위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방의 일부를 보고 있노라면 굉장히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을 지닌 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에 곯아떨어진 어린 자녀와 아내를 사진에 담는 순간의 작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가난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자녀들의 자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을 없을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 근대미술에 더 많은 애정이 샘솟고, 좀 더 많은 작품과 작가를 알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요즘은 너무도 다양한 소재와 구성의 서양미술관련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우리나라 미술과 관련해서도 이런 좋은 책들이 앞으로도 많이 출간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m******7 2026.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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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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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요즘 다양한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피카소, 모네, 고흐 등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만한 화가들의 전시회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상파 화가 뿐만 아니라 제3세계나 여성, 또는 살아있는 작가의 현대 미술 등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전시회를 갈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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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요즘 다양한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피카소, 모네, 고흐 등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만한 화가들의 전시회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상파 화가 뿐만 아니라 제3세계나 여성, 또는 살아있는 작가의 현대 미술 등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전시회를 갈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평일에 가도 사람이 많아서 천천히 둘러보기 어려운데 그만큼 미술 관람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것 같아요.


그런데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 서양 화가들입니다.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등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게 없네요.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에서는 근대에 살았던 우리나라 화가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까지 우리나라 회화는 먹으로 그렸습니다. 반면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서양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회화에서도 이러한 영향이 나타났네요. 도상봉이 그린 '파와 정물' 을 보면 마치 과거 네덜란드나 인상파 화가 세잔의 정물화가 떠오릅니다. 이전에는 이러한 피사체를 그린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최신 미술 사조가 들어오면서 화가들도 정물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네요. 일제 시대에 국가 차원의 미술대전이 있었는데 많은 화가들이 입신양명의 기회로 여겼지만 도상봉은 철저하게 반일을 지향하면서 한번도 출품하지 않았다고 하니 더 대단한것 같아요.


조선에서는 철저한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였습니다. 일제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오히려 이런 제한이 풀려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도 등장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여성도 있었네요. 나혜석은 대표적인 여류 화가로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신여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삶의 후반에는 고향이었던 수원에 정착하였습니다. 이때 그린 그림으로 '수원서호' 가 있네요. 찾아보니 지금도 수원서호가 있는데 그림에 있는 정자가 아직 있는지, 없다면 그 흔적이라도 찾아서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책에 실린 그림 중에서 흥미로웠던게 '능나도' 라는 소설의 표지입니다. 과거에는 책 표지에 제목만 있었지만 근대적인 방식으로 책을 만들면서 표지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능나도의 표지 그림을 보면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식사' 가 떠오르네요. 남자는 약간만 나오지만 남녀 두 명의 그림을 보면 유교적인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자유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에 실린 능나도 소설은 최찬식의 신소설을 1946년에 재발간한 것으로 광복 이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몇몇 화가를 빼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수묵화 그림 뿐만 아니라 유화나 판화, 조각 등 여러 분야의 작품을 볼 수 있었네요. 일제 시대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예술혼을 잃지 않고 작업한 것이 대단하네요. 근대 미술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p***s 2026.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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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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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난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박영택 심통해방 전 일본의 식민아래있었던 대한민국의 1910년을 저자는 한국근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시기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때 활동했던 미술가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 더듬어가본다. 친일적인 행보를 걸은 이도 있었고 예술인이라 예외가 될 수 없듯 가지고 있는 사상에 따라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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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난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박영택 심통


해방 전 일본의 식민아래있었던 대한민국의 1910년을 저자는 한국근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시기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때 활동했던 미술가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 더듬어가본다. 친일적인 행보를 걸은 이도 있었고 예술인이라 예외가 될 수 없듯 가지고 있는 사상에 따라 진보적인 성향의 이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모양의 사상이라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미술에 대한 족적만을 탐구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이자 알려져 있는 특히 이건희컬렉션을 통해서 주목받은 근대미술화가들이 모두 등장한다. 바로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 박수근 등이 그들이다. 더 나아가 이상봉, 나혜석, 박노수, 김기림, 김기창 등 다수의 화가들을 다루기때문에 분량상 화가 한 명에 대해 어느정도의 약력과 주활동만이 다뤄진다. 또 한 미술가당 그림도 한 점 소개로 마무리 된다. 한 점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나 글의 흐름상 적합한 작품을 골랐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고르기 보다는 말이다. 


당시 수묵화, 민화, 카툰 형태의 것도 일본색이 느껴지는 화풍도, 서양화를 배워와 큐비즘을 재해석한 스타일의 작품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림의 감상은 책으로 즐겨도 직접감상만은 못하지만 나름의 즐거움을 주기 마련이라 이 책에 수록된 작품과 도슨트 적인 설명이상의 것을 자세히 다루어주어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워준다.

처음이 많았지만 특히 박노수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좋은 그림은 왜 좋고 상을 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의 하나인 <선소운>을 감상해본다. 화선지에 수려하게 채색한 이 작품을 본다면 대부분의 드는 감정이 비슷할테지만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작중 인물의 시선의 방향이 놀랍다. 해석에 따르면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라하는데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그림과 적절한 해석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감동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지점이 된다.


당시 박수근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이중섭은 선원일을 하며 궁핍한 생활로 간간이 끼니를 이어가며 주리기도 하며 자신들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어갔다. 장욱진도 친구의 집에 기거하면서 은둔적인 행태의 자신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하며 자신만의 그림세계에 푹 잠겼다. 그 때 그당시의 미술가들의 삶은 녹록치 않고 궁핍하기 이를데 없었다.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그림 하나 그리는 것도 별로 자신있게 말하거나 떳떳한 처지도 아니었고 잘 그린다고 주목을 받기도 어려운 때였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기에 직업으로서 위치는 하 중 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저 예술적인 표현과 타고난 예민함이 남다른 그들의 손과 마음과 머리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빛을 내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기약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설령 그들이 살아있지 않을 때 자리가 잡힐지언정 그들은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이어갔고 살아내고 버티어냈다. 하여 그들이 남겨준 소산물이 지금까지 후손들의 마음에 자리잡아 감수성을 책임져주고 있는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k*******i 2026.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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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시대를 예술로 극복한 근대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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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한국의 근대 예술은 불우한 시대를 거울 삼아 건너왔다. 가장 척박하고 치열했던 시대를 실험실 삼아 성장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1910년부터 1958년까지 한국의 다양한 시각이미지를 대상으로 삼아 근대미술 지형을 조감하고 있다. '40인 40선'인데, 순수미술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신문만평과 책 표지, 조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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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국의 근대 예술은 불우한 시대를 거울 삼아 건너왔다. 가장 척박하고 치열했던 시대를 실험실 삼아 성장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1910년부터 1958년까지 한국의 다양한 시각이미지를 대상으로 삼아 근대미술 지형을 조감하고 있다. '40인 40선'인데, 순수미술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신문만평과 책 표지, 조각과 사진 등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순수미술가라면 내 머릿속은 곧장 세 사람이 떠오른다. 「맷돌질하는 여인」의 박수근, 「통영 들소」의 이중섭, 그리고 「백자와 꽃」의 김환기다. 여기에 다시 페미니즘적 시각을 더한다면, 「수원서호」의 나혜석과 「생태」의 천경자를 꼽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한국 근대미술에 대한 내 교양의 한계다. 이 책은 그런 한계, 교과서식 이해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한국화'나 '동양화' 하면 거개가 산수화를 떠올린다. 그렇다, '조선의 그림', '조선의 색' 하면 산수화가 우선이다. 18세기 전반의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처럼 말이다. 이런 조선 산수화의 맥은 근대미술에 이르면 누구한테 이어졌을까. 바로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다. 이상범은 한국적 실경산수의 거장으로, 근대 한국화 6대가의 한 사람이다. 근대 한국화 6대가란 이상범을 비롯해 허백련, 김은호, 변관식, 노수현, 장우성을 가리킨다. 이 책은 한국화 거장들 가운데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세 사람을 소개한다.


이상범과 노수현 모두 조선 시대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이 운영한 경묵헌(1917년 6월 개설)에서 그림을 배웠고, 동연사(1923년 3월 출범)의 핵심 멤버였다. 동연사는 중국회화와 일본화풍과는 다른 "한국의 풍경, 흙냄새 그리고 그것들을 에워싸고 흐르는 한국적인 향토시를" 그리고자 했던 단체다. 청전의 초기 대표작 「잔추」는 1930년 제9회 조선미전 특선작으로, "치밀한 붓질과 건조한 먹의 흔적으로 적적하고 고요한 농가와 헐벗은 민둥산을 보여"준 수묵산수화다. 청전은 한국적 풍경의 정서를 쓸쓸함과 스산함으로 재현해냈다.  


심산(心汕) 노수현(1899~1978)의 산수화는 실경이 아닌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를 계승했다. 특정 장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상상된 자연풍경, 즉 "대부분 기이한 절경과 암산, 굳건한 바위와 커다란 나무가 적막하게 자리하고 있는 비의적인 공간"을 선보인다. 심산의 산수화는 "정형적인 화면의 구도 위에 골격미 넘치는 필세와 창윤하면서도 유현한 공간감, 고고한 정신미를 추구"했다. 그의 대표작 「송하관월도」는 웅장하고 막힘 없는 자연의 기상이 있다. 


"아득한 거리에서 출현하는 거대한 산과 바위, 기세 좋게 솟은 소나무, 몽환적이기까지 한 달밤의 산속 분위기, 고개를 들어 허공의 달을 바라보는 선비의 멋이 깃든 매력적인 그림이다."(213쪽)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은 안중식, 조석진 문하에서 전통적인 동양화를 배운 수묵 산수화의 대가다. 1925년 이당 김은호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의 우에노 미술학교에서 3년 동안 청강을 했다. 한국적 산수 풍류의 이상향을 구현한 작품이 바로  「농가의 만추」다. 나무 줄기와 언덕, 논과 논두렁, 초가집과 마당 등 한국 농촌의 늦가을 풍경을 담았고, 길을 걸어가는 갓 쓴 노인이 등장한다.  


청전과 소정과는 결이 다르게, 인상주의 화풍으로 조선의 자연과 조선의 색을 화폭에 담은 거장도 있다. 바로 화가 오지호(1905~1982)다. 청전과 소정에게 스승 안중식이 있었다면, 오지호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있었다. 오지호가 다닌 휘문고보의 미술 선생이 고희동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지만, 오지호는 환하고 밝고 맑은 조선의 자연환경을 강조했다. 대표작 「남향집」은 1935년부터 1944년까지 화가가 살았던 개성의 초가집을 그린 그림으로, 초가와 흙벽, 고목과 삽살개, 단발머리 소녀 같은 가장 향토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한국의 전형적인 초겨울 정경을 한국적인 인상파 기법으로 담아냈는데, 원제는 「사양(斜陽)」이었다. 오지호는 서양의 인상주의를 한국의 풍토에 맞게 토착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미술 철학이 유달리 맘에 와닿는다. 


"어떤 미술의 특질이란 그 미술이 산출되는 지역의 자연환경(풍토)의 특질에 유래되는 것, 예술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게 자연을 반영하는 것이 회화다. 시각적 세계에 있어 사람, 특히 조선 사람의 감정이 요구하는 것은 명랑하고 찬란한 색채인 것, 조선의 자연은 공기가 청정하고 색채가 선명하고 기온이 쾌적한 것이다."(128쪽) 

z***a 2026.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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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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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40대를 넘어서면서 근대 문학과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이 책은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 전쟁이 끝나기까지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담은 책이라서 의미가 깊다.특히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설명해서 당시 시대상황과 함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그리고 수채화,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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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40대를 넘어서면서 근대 문학과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 전쟁이 끝나기까지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담은 책이라서 의미가 깊다.


특히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설명해서 당시 시대상황과 함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수채화, 유화 등 일반적인 순수미술 회화 작품만 다루는 게 아니라 첫 시작이 시사만화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치욕스러운 한일합병을 앞두고 그림과 문자를 통해 위태로운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다양한 시각이미지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등장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인쇄미술의 발전으로 신소설의 표지가 꾸며지는데 1912년에 발표된 최찬식의 신소설 <추월색>의 표지가 눈에 띈다.


193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의 실상과 모던 의식이 담긴 문화를 중심으로 만문만화가 그려지고 서구문화를 즐기려는 욕구가 높아진다.


그 와중에도 한국적인 색채와 주제를 지켜나가려는 화가들이 동양의 전통과 서구 인상주의를 결합한 아름다움을 표현해간다.


고난의 시기 속에서도 역사와 진실, 삶을 담아 표현해온 화가들 덕분에 한국의 미술이 발전해왔다.


이렇게 책 한권으로 20세기 초중반의 한국 미술의 역사를 만나게 되서 좋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현대미술전시가 진행중이고 5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유영국의 전시가 열린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 이 책으로 근현대미술의 얼개를 짚어보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h********1 2026.04.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