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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레공동체에 대한 논문 속에는, 제2단계의 두레를 설명하는 데 있어 고려시대의 기록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아무리 유구한 전통이라 하더라고 500년 동안이나 변화없이 지속할 수 있는 전통은 드물진대, 이 기간동안 두레가 어떤 식으로 부침을 거듭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300년 동안의 시간을 동질적인 것으로 보아 버리는 것이 된다. 저자가 논문에서 일관되게 두레공동체를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형성되어 면면히 계승되어 온 두레를 민족문화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저자는 두레꾼들을 두고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악을 치며 노래를 합창하면서 즐거운 노동을 했기 때문에 가슴 뿌듯하게 생산노동의 보람을 느끼며 피로한 줄도 모르고, 출역할 때보다 더 흥에 겨워서 농악에 맞추어 힘차게 소리 높이 노래를 합창하면서 이리저리 춤을 추며 돌아왔다" 라며 감정이입을 하고 있고, 끝부분에는 "오늘날에는 한국 민족성원 모두의 고향이며, 한국 민족문화의 뿌리 터전인 농촌사회가 '두레공동체'를 상실하고 호미씻이의 축제 한 번도 없는 메마른 곳이 되어가고 있다" 라며 두레공동체의 상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전통사회에서 농민의 한국민족의 절대다수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두레가 창조해 낸 농민문화는 또한 바로 민족문화를 창조해 낸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두레는 한국의 농민문화를 창조해 낸 주체로서의 공동체였을 뿐 아니라 한국의 민족문화를 창조해 낸 주체로서의 공동체이기도 하였다" 라고 말하며 농민층을 민족문화의 담지자로서 보고 있다. '민족문화의 담지자로서의 농민'이라는 아이디어는 독일 민속학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독일 민속학자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서구 문명(Zivilisation)에 영향을 받지 않은, 그리고 오랜 기독교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독일 고유의 민족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소위 낭만주의적 민속학자라고 불리는 이들 민속학자 중에는 Johann Gottfried Herder(1744-1803)와 Jacob Grimm(1785-1863)과 Wilhelm Girmm(1786-1859) 형제, 그리고 Wilhelm Heinrich Riehl(1823-1897) 등이 있었다. 특히 Riehl은 당시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농촌공동체의 붕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시민계급이나 노동자계급에 대하여 전통적인 공동체의 파괴자라고 규정하고 농민문화에 훨씬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농민문화가 현재의 시점에서 어떠한 사회현실적 함의를 가지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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