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인연이란 게 있을까.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이 모든 게 인연인 것일까.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일까. 죽을 만큼 괴로워하면서 헤어지는 연인들의 인연에서부터 잠깐 스쳐가는 상쾌한 만남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정말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가 만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
|
세계사의 오늘의 작가 기획 다섯 번째 작품으로 등재된 구효서의 작품이다. 이응준의 것과 비교해 자극은 덜하지만 느릿하게 조금씩 읽는 사람의 살갗에 소름을 돋게 하는 구효서의 기술 방식은 어쩌면 한 수 위의 것처럼 보인다. 일상을 향하는 살가운 관심과는 거리가 있지만, 충만한 기운으로 전해지는 예감과 아슴프레한 기억의 교차는 우리 생의 겉면이 아니라 속의 면을 들여다 보게 한다. 노린재, 숙갓꽃, 쑥방망이, 원추천인국처럼 곤충이나 낯선 식물을 이용해, 거칠게 진행되는 우리네 일상의 흐름을 잠깐 멈추어 세우고, 거기 당신이 모르고 있는 속세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고 귓속말 하는 것 같다.
결혼한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서현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그리고 서현은 여름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데 우연히 날짜를 확인하니 7월 22일이다.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던 어느날 불현듯 자신의 불안감의 원인을 찾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거의 어느 시점, 농활에서 만난 강선생님. 태어나 자라는 동안 고아였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자연을 향해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 되어 있던 사람. 그래서 농활이 있은 다음해에 나, 서현은 강선생을 한 번 더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 여행에서 서현은 강선생의 죽음(그의 죽음의 날이 바로 7월 22일이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박선생이, 농활 기간동안 강선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연관되어 있다. 서현은 박선생에게 전화를 넣어 강선생의 묘지를 찾고, 그로부터 강선생이 서현에게 낯모를 흠모의 정을 가지고 있었음에 대한 고백을 듣게 된다.
서현은 집으로 돌아오고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입양 기관을 찾는다. 그리고 그 입양 기관에서 노란 꽃을 들고 있는, 파양의 경험으로 입양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한 아이를 발견한다. 인연은 질기어 박선생이 죽은 그 즈음에 태어난 아이를 서현은 결국 입양한다. 그리고 서현은 7월 23일이라는 생일을 그 아이에게 부여한다.
결여된 현실감과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작가의 자신만만함으로 가득찬 소설. 서현이 이미 죽은 강선생에게 보내는 전언의 형식을 띠는 작품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휘말리는 우리들 삶 속, 인연의 깊은 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영영 모습을 감추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는 하수상하게 펼쳐지는 인연들.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인연이란 주어지는 것이며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자신과 강선생의 인연의 속내를 알게 된 서현은 그렇게 또다른 인연을 다른 사람, 그러니까 입양한 아이와 맺게 되는 것이다. 속절없이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인연들이란 능동적이지 못한 삶의 패턴을 보여주는 또다른 양식일 따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정색을 하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조용한 자기 응시의 또다른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소설 외적으로 이 책은 소설에 실린 평문이나 발문 등에는 절대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좀 아까울 수 있다. 300페이지 정도의 책 중 130페이지 정도가 이런저런 작품론과 작가론에 배당되어 있기 때문. 하지만 작가 구효서에 대해 나름의 정보를 제공받고 싶어했다면 소설보다 더 크게 만족할 수도 있다. [인상깊은구절]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인연이란, 스치듯 지나치는 순간 바람처럼 이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스치듯 지나쳐버리고 말 수는 없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버림으로써 초래되는 결과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
|
원래 '몌별'의 의미는 소매끝을 부여잡고 차마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이라는데 작가는 소매만 스치듯 섭섭히 작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근데 어째서 소매를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이별보다 소매만 스치듯 만나 섭서하게 헤어지는 그 이별이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소설은 간결하고, 굉장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많았다. 어릴때 읽은 동화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주인공의 얼굴 생김새까지 머리속에서 영상으로 그리면서 읽어졌는데, 커서 읽는 소설은 느낌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래서 내 상상력이 흐려졌구나..라면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지금 찾아가 보면 너무나 작아졌을꺼 같은 시골 교사와,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나무와, 바스락대며 잡초 무성한 가을 뒷산이 시종일관 떠오르고,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는 상추잎이 떠오르고...읽는 내내 설레였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 안타깝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과의 이별인데도, 아침이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처럼 헤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하루하루가 훤하게 다 드러나고, 그 결과가 너무나 자명하게 보여서 맘이 아펐다. 우리들 중 누구하나, 지난 기억을 들춰보면 이런 아타까운 이별 하나 없었을까... 그걸 주인공처럼 어떤 인연으로 이끌어내고 승화시키지 못하고, 덮어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작은 사람들인지...
나에게도 혹시 특별한 날이면 가슴 한켠이 애려오고, 일탈이 그려지고 그랬던 건 아닌지... 그 날들의 공통성하나 잡아내지 못하고, 서둘러서 주어진 길을 가느라고 소중한 것들을 오랜 기억의 끝에 묻어두고 사는 건 아닌지... [인상깊은구절] ... 그냥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지요. 사람들은 때로 지나칠 만큼 충분한 준비와 연습을 하고도 정작 싫애에 옮기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심지어는 실행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준비와 연습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지요. 준비와 연습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마는 경우 말이예요... |
| 갑갑하다고 표현해야 옳은 것인가..아님 정확한 건가. 암튼 읽는 내내 맘 저편이 깝깝했다. 스치는 인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엇갈리는 것 같지도 않다. 엇나가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맘을 줄 때 그 사람이 그 맘을 받는 정도까지 우리는 배려해야 하는가. 내가 혹 누군가에게 전한 마음이 비수로 남아 누군가의 운명을 뒤집거나 휘접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별의별 몽상 속에 책을 덮는다.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가슴 뛰는 설렘이나 손끝에 와닿는 온기만으로 얼굴을 붉힐 수 있는 확률이 혹은 그런 현실이 얼마나 비참하게 낮은지 나는 알아버렸다. 그리고 인생이 감히 사기라고 악을 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구효서 선생은 나를 비웃는다. 인생에 복있는 부류와 지질이 복도 없는 부류가 너무도 확연히 변별되다는 전제 자체를 나는 몰랐나보다.. 낯설고 민망하고..억울하고... 그래 너는 좋겠다. |